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소설) 또 다른 세계 (1부)

용용이 |2012.10.09 12:10
조회 635 |추천 4

 

 

 

또 다른 세계

 

 

 

 

 

 

 

 

 

 

 

 

 

 

 

 

 

 

 

PROLOGUE

 

 

 

인천 국제 공항 관제탑

 

5년 차 관제사인 필수가 다급한 표정으로 팀장에게 다가간다

 

“팀장님!”

 

무료한 표정으로 인터넷 가십 기사를 읽고 있던 심주학 팀장은 괴고 있던 손을 턱에 괸 채로 눈을 올려 필수를 바라본다.

 

“왜? 뭔 일 있어?”

“저기……그게……”

 

심팀장은 머뭇거리는 필수에게 다소 짜증나는 어투로

 

“뭔데……”

 

다그친다.

 

“체코 프라하 발 대한항공 K404편 연락이 안됩니다……”

“K404편?”

“네……”

 

노련한 심팀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통신장애 아니야? 오늘 뇌우(雷雨) 있잖아”

“그렇긴 한데……랜딩 신호가 들어올 타임 이라서요……”

 

심팀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살피며

 

“도착지연 연락 사전에 없었고?”

“네……”

 

심팀장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일단 기다려봐……오늘 기상상태가 매우 안 좋으니……”

 

그때.

 

“팀장님!”

 

자리에 앉아 활주로를 살펴보던 박주호 관제사가 소리친다.

 

“랜딩 입니다!”

“뭐 랜딩? 지금 들어올 비행기 없잖아!”

 

심팀장이 다급하게 주호에게 다가간다.

활주로 끝에 조그맣게 항공기가 다가오고 있다.

 

“뭐야.. 이거? 통신 들어온 거 있어?”

“없.. 없습니다……어떡할까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일단 랜딩 시켜!”

“네!”

 

주호가 다급하게 활주로 상황을 체크하고 랜딩 준비를 한다.

 

[띠리리리리리]

 

이때 전화벨이 관제탑 전체에 요란하게 울린다.

심팀장이 다가가 수화기를 든다.

 

“네.. 관제실 입니다……아……네……지금 확인 중에 있습니다……현재까지는 미확인 항공기입니다. 일단 랜딩 후 게이트 대기 해놓겠습니다……아……네……”

 

심팀장은 전화를 끓고 활주로를 말없이 바라본다.

 

“여기는 대한민국 인천공항 관제실. 8번 활주로 착륙 항공. 도착 신호 바랍니다……This is control tower in ……”

 

주호는 끊임없이 미확인 항공기와 통신을 시도한다.

 

“필수!”

 

심팀장이 필수를 부른다.

 

“네!”

“너는 일단 비어있는 게이트 확보하고, 관리 팀에 연락해서 조사완료 될 때까지 게이트 도킹 금지 요청 해놔……”

“네!”

 

필수가 자리로 돌아가 급하게 무전을 한다.

미확인 항공기는 어느새 8번 활주로로 랜딩하고 항공기의 전체적인 모습이 관제 실에 잡힌다.

 

“……뭐야……저거……”

 

관제탑 전원이 넋을 잃은 듯 도착한 항공기를 바라본다.

항공기 후미부분이 연기에 휩싸여 있다.

 

“비상!”

 

심팀장이 정적을 깨고 소리친다.

 

“비상!”

 

팀원들이 심팀장 비상호출에 대답한다.

관제사들은 분주하게 비상 수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때,

 

“팀장님! 랜딩신호 입니다!”

 

필수가 소리친다.

 

“뭐 랜딩……8번 활주로는 안돼!”

“그게……8번 활주로로 연락 두절된 K404 편입니다..”

 

심팀장 다급하게 필수에게 다가가 필수의 무전을 낚아챈다.

 

“ 칙……칙……여기는 인천공항 관제탑.. 대한항공 K404……활주로 변경 바란다. 현재 인천공항 8번 활주로 비상상황 발생……칙……칙……”

[칙……치……가릿……그럼 랜딩 가능한 다른 활주로 준비 바란다……칙……칙……]

 

심팀장은 잠깐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칙……칙……12번 활주로……12번 활주로……”

[칙……칙……가릿……12번으로 선회하겠다……칙……]

“후……”

 

심팀장은 크게 한숨을 쉬고,

 

“K404 12번으로 랜딩 시켜……”

“네!”

 

관제탑 밖으로 소방차 여러 대와 앰뷸런스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미확인 항공기로 다가간다.

미확인 항공기의 선체는 항공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그을려져 있고 비가 오는 날씨에도 연기가 군데군데 피어난다.

 

“저거……”

 

심팀장이 미확인 항공기를 관제탑 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대한……항공 이잖아……대한항공 이라고!!”

 

심팀장의 말에 팀원들이 다시 다급하게 무전을 한다.

 

“칙……칙……소방 팀……소방 팀……미확인 항공기……대한항공 소속 추정……기체……확인 바람……기체 확인 바람……칙……칙……”

 

분주하던 관제탑……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심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창 너머로 항공기만 바라본다.

소방 팀의 진화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연기가 가라앉자,

무전이 울린다.

 

[칙……치……여기는 소방 팀……여기는 소방 팀……화재 항공기 대한항공 소속……칙……치……]

 

심팀장은 자리로 돌아가, 금일 대한항공 착륙 리스트를 살펴본다.

 

[치……칙……여기는 소방팀……화재 항공기……대한항공……. K404편……확인 완료……치……칙……]

 

순간, 관제탑 사람들은 황당한 듯 12번 활주로로 눈을 돌린다.

멀리 대한항공 K404편이 12번 활주로로 랜딩하고 있다.

 

[치……칙……관제탑……관제탑……여기는 프라하발 대한항공 K404편……12번으로 지금 랜딩 한다……치…칙…]

 

 

 

 

 

1부 다른 사람들

 

 

 

 

Day 1.

 

 

 

-인천공항, 같은사 같은 기종 항공기 2대 동시착륙, 북한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

 

인터넷 뉴스기사를 읽고 있는 경철

 

`북한놈들 이제 별짓을 다하는군...'

 

속으로 되뇌이고는 금새 스포츠 뉴스로 창을 옮긴다.

 

-2002 월드컵 최종 점검, 프랑스전 결과분석-

 

삼일 전, 월드컵 최종 점검 프랑스 친선전 분석 기사이다.

하지만, 복학을 앞둔 경철에겐 아사아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 따위가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복학까지 아직 3개월...등록금은...군대 가기 전보다 휠씬 올랐고...알바 라도 해야 하나...'

 

경철은 심란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인다.

다시 인터넷 창을 키우고 검색 창에 '아르바이트'라고 입력한다.

 

경철의 집, 거실

경철의 부모님이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글쎄 북한이 왜 그런짓을 했냐...말입니다...]

[그거야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현 정권을 압박하기 위한...또는 이번 월드컵을 방해하기 위한....]

[아니...현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똑같은 항공기를 인천공항으로 뜬금없이 보냈다구요?...이보세요...문의원님...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그게?..]

[확실한 조사결과가 나와야 되겠지만...]

 

TV에서는 삼일 전 인천공항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늙은 정치인들이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경철의 방문이 열리고,

 

"엄마...저 좀 나갔다 올게요..."

"어딜 자꾸 나가?...집에서 조용히 공부나 하라니깐...느그 아부지 회사 짤려서...장학금 못 받으면 졸업 못혀..."

 

경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노려본다.

 

"아니...이 여편네가...아무렴 하나밖에 없는 아들...등록금 하나 못해줄까....아들 앞에서 쪽 팔리게...."

"아이고...요즘 등록금이 얼만지 알고나 하는 소리슈?..."

"얼만데? 얼만데?...까짓 거....얼만데?..."

 

경철의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부터 매일 반복되는 작은 다툼.

두 사람의 어깨 만큼이나 경철의 어깨도 무거워 진다.

 

"아...엄마...아빠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저도 집에만 있으려니깐...답답해서...아르바이트나 해볼려구요...복학하면 공부 열심히 할께...싸우지 좀 마세요~"

"아르바이?..."

"나갔다 올게요~"

 

어머니의 말을 싹뚝 자르고 빠르게 집을 나가는 경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집에서 적어온 쪽지를 확인한다.

 

[베이비 시터, 송파구 가락동 이주환 010-8861-XXXX]

 

가락동 이주환의 집.

 

조그마한 마당이 딸린 흔한 개인주택. 높은 담벼락이 다소 이상하게 보인다.

주환의 가족이 거실 쇼파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50대 중반의 주환.

그리고 같은 나이대의 부인 지소명.

20대 중반의 아들 이율.

10대 후반의 큰딸 이진.

그리고.

너무 작고 귀여운 4살 정도의 아이, 작은 딸 이영.

주환은 모여 있는 가족들에게 작은 소리로 입을 연다.

 

"글쎄 내가 뭐랬어...실패한다고 했잖아..."

"반은 성공한 셈이죠..."

"뭐가 성공이야?...당신 때문에..괜히 시끄러워만 졌잖아..."

"이 사람이...어디서 큰 소리야..."

 

티격태격 다투는 이주환 부부.

큰 아들 율이 끼어든다.

 

"아빠...갇힌지 5년 이예요...뭐래도 시도해서 어찌됐건 결과라도 얻었잖아요..반은 성공한 거라구요...저도 엄마 말에 동의해요..."

"나...참..."

 

주환이 혀를 차고,

 

"그래...이제 어쩔건데...?"

 

모두에게 물어본다.

 

"월드컵 첫 경기...그때 다시 한번 해요...확실해졌어요..."

    

큰 딸 진이 대답한다.

이때,

 

[찌리리리링...]

 

주환의 집 초인종이 울린다.

 

"뭐야...? 진아 나가봐..."

 

큰 딸 이진은 일어나 인터폰을 들고 화면을 본다.

경철이 서있다.

 

"누구세요?"

"아...저 연락 드린 박경철이라고 합니다. 베이비 시터 구하신다고..."

 

이진은 수화기를 막고 주환에게 소리친다.

 

"아빠...베이비 시터 라는데?...남자야?..."

"아...베이비 시터?...들어오라고 그래...자...그럼 회의는 나중에 다시..."

 

주환은 일어나서, 닫혀있던 거실 커텐을 연다.

어두웠던 집안이 금새 환해진다.

 

"아...아빠...왜 남자냐고...?..."

 

주환은 묵묵히 거실 창으로 마당을 바라보며,

 

"목소리가 듬직한 게 맘에 들더라고...그래도 우리 딸이 싫다면...돌려보내야지...일단 들어오라고 해봐..."

 

진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대문 열림 버튼을 누른다.

 

"들어오세요..."

 

이진은 인터폰을 끊고 아빠 주환에게로 다가간다.

거실창 밖으로 경철이 씩씩하게 마당을 가로지르며 문 쪽으로 걸어오다, 창문 안에 서있는 주환과 진을 발견하고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경철의 미소가 산뜻하다.

 

"뭐....남자도...괜찮겠네...."

 

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환에게 들릴 듯 말듯 말을 한다.

주환도 경철이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웃어 보인다.

 

'뭔 사람들이 저렇게 크다냐...'

 

경철은 창안에 서있는 부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주환의 키는 대략 1 미터 95 정도,

큰 딸 이진은 1미터 80 정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문 앞에 서서 노크를 두 번하자 금새 문이 열린다.

아들 이율.

 

'크다....'

 

경철은 문을 열어준 이율을 보고 살짝 놀란다.

이율의 키는 대략 2미터 정도.

 

'농구 선수 가족인가....'

 

경철은 율의 큰 키에 위축되어 문 앞에서 쭈뼛 대다가

 

"감사합니다..."

 

하며, 문안으로 몸을 들이민다.

경철은 율에 비해 키가 한참 작아서 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흡사,

율에 품에 안기는 듯 하다.

 

"어서오세요...이주환 입니다...이 집의 가장이죠...하하하..."

 

주환은 들어오는 경철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리고 그 뒤에서 이진이 수줍게 목례를 한다.

 

"네...처음 뵙겠습니다. 박경철이라고 합니다.."

"그래요...그래요...경철군...아주 핸섬한 청년 이로구만..하하하...여기..여기 들어와 앉아요..."

"아..예...감사합니다..."

 

경철이 거실 쇼파에 앉자,

주환의 가족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소개할게요...여기가 우리 집사람 지소명...그리고 아들 율, 큰 딸 진 그리고...앞으로 경철씨가 봐줘야 할 막내...영이..."

 

거대한 가족들 틈에 가려져 있던 작은 아이 영이를 보자 경철의 눈이 커진다.

 

'너무 귀엽다...완전 인형같아...'

 

영이는 새하얀 얼굴에 조그마한 몸을 가지고 바른자세로 쇼파에 앉아 있다. 정말 너무 작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아이.

 

"우리 영이는 이제 4살 입니다...앞으로 잘 부탁해요..."

 

부인 소명이 입을 연다.

 

"4살이라구요?...생각보다..."

"그렇죠?...우리 막내가..성장이 좀 더뎌서...좀 작고 약해요..잘 보살펴 줘야 해요..."

"아...네..."

 

너무 큰 키를 가진 가족들이라, 영이만 성장이 더디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 경철,

 

"일은 내일부터 하도록 하구요...저희 가족은 내일부터 집 마당에서 일을 해야 되요..."

 

경철을 묵묵히 바라보던 주환이 입을 연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하시는 동안 저는 집에서 여기 영이를 돌봐주면 되는 거네요..."

"그렇죠...아주 쉽죠...? 우리 영이 밥 챙겨주고...책 읽어주고...하면 되요...아주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라서...어렵진 않을 거예요..하하하.."

"네...알겠습니다..."

 

경철은 영이를 바라보며 살짝 웃는다.

 

"자...영아..인사해야지?...."

 

큰 딸 이진이 영을 일으켜 경철에게로 보낸다.

영이는 아장아장 경철에게로 다가와서,

 

"잘 부탁해. 멋진 오빠."

 

앙증맞은 손을 들이민다.

경철은 너무 귀엽고 당돌한 영이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래..나도 잘 부탁해..."

 

경철과 영이가 즐겁게 웃으며 악수를 한다.

 

 

 

Day 2.

 

 

 

'이상한 일이다...'

 

경철은 주환의 집 거실에 영이와 나란히 앉아 생각에 잠긴다

 

[우리 가족은 마당에 있을테니 영이한테 무슨 일 있으면 인터폰으로 말하세요...나올 필요는 없어요...]

 

순간, 이 집 안주인인 소명의 말을 떠오른다.

유난히 키가 큰 가족들, 부인인 소명의 키도 대략 1미터 85는 되어 보인다.

그리고 무얼 하는지 아침부터 마당 앞에서 온 가족이 분주하다. 좀 이상한 일이다. 많이 이상한 가족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철.

 

"오빠, 책 읽어줘..."

 

가만히 앉아 TV 뉴스를 보던 영이가 심심해진 듯 경철을 부른다.

 

"책? 그럴까?....가만있자....책은 영이 방에 있나?...읽고 싶은 책 영이가 직접 가져올래?..."

"오빠...공대 다닌다고 했지?...그것도...꽤 좋은 대학이라 하던데?..."

"공대는 맞는데.....좋은 대학은 아니야...오빤 꿈이 크거든...세계적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학교야..."

 

경철이 쑥스러운 듯 말하자,

 

"기다려봐...세계적인 대학이 될거야...아마...살아있는 동안 볼 수 있을려나..."

 

영이의 대답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아..읽고 싶은 책 가져오렴...오빠가 실감나게 잘 읽어줄께..."

 

경철은 화제를 돌린다.

 

"....."

 

 

영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책을 가지러 방으로 간다.

 

[비행기 슝슝]

 

영이가 방에서 가지고 나온 책이다.

경철은 책을 받아 들고 야심 차게 첫 페이지를 넘긴다.

 

"비행기 슝슝~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어요~ 슝슝슝~"

 

경철은 양 팔을 벌리고 비행기가 나는 시늉을 한다.

영이는 그런 경철의 모습을 보고 즐거운 듯 웃는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면서, 반가운 참새 친구를 만나요...'안녕? 나의 친구 참새야?...'....."

 

순간,

경철이 멈칫한다.

책 밑에 누군가 작은 글씨로 무언가를 써놓았다.

 

[비행기 평균 고도를 고려해 볼 때, 비행기가 참새를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

 

'누가 써놓은 거지?....애기 글씨인데...'

 

경철은 영이를 바라보며,

 

"영이야...이 밑에 말...니가 써놓은 거니?..."

 

영이가 고개를 두 번 끄덕인다.

 

'고작 4살짜리 애가...평균 고도...라니....천재인가...이 아이...?...'

 

하긴, 공대라는 단어도 4살 꼬마애 한테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철.

 

"오빠...공대 다니면, 희대의 사기꾼한테 한참 놀아나고 있는 중 이겠네..."

"희대의 사기꾼?..."

"아니...사기꾼이라기 보다는...뭐랄까...잘못된 '염원' 이라 할까...?..."

"하...."

 

경철은 기가 막힌다. '비행기 평균고도', '희대의 사기꾼', '염원'...이런 단어가 4살 짜리 아이한테서 나오다니...

 

"영이는 천재 인가봐...도무지...4살로는..."

"그렇지?....하지만 천재는 아니야...남들보다 조금 빠를 뿐이지..."

 

경철은 신기한 듯 영이를 바라보다,

 

"근데...희대의 사기꾼은 누구지?..."

 

영이는 해맑게 웃으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두꺼운 책 하나를 낑낑대며 가지고 나온다.

 

[양자역학]

 

경철 앞에 책을 들이민다.

경철은 책 표지를 보고 어이없는 듯 웃어 보인다.

 

"잘못된 '염원' 으로 시간을 멈추게 한 사람...."

"보어를 얘기한 건가?...."

"아니..."

 

영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천천히 입을 연다.

 

"보어를 반대한...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순간, 문이 열리며,

큰 딸 이진이 들어온다.

 

"우리 영이 잘 놀고 있어?..."

"언니~"

 

영이는 쪼르륵 진에게 다가가 안긴다.

진은 밖에서 힘든 일을 했는지 얼굴이 다소 그을렸고 피곤해 보인다.

그래도 큰 키에 어울리는 늘씬한 몸매와 이국적인 마스크가 돋보인다. 매력적인 사람.

 

"우리 영이가 많이 귀찮게 하지?...아 미안...아까 가족들끼리 서로 편하게 지내려면 말을 놓고 지내라 해서..."

"아...괜찮아...나도 편하게 대해주면 좋지....근데 영이가 보통 꼬마가 아니네..."

"그래?....어떤 점에서?...."

 

경철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영이가 진의 품에서 경철에게 무언의 표시를 보낸다. '안돼...말하면 안돼...'

 

"아...그게....영이가 아..아주....아주...밝은 아이야....하하하..."

 

경철은 멋적은 듯 웃고, 영이도 안심한 듯, 살짝 웃는다.

 

"우리 꼬마숙녀가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데...경철 오빠가 맘에 들었나 보네..."

 

진이 유난히 작은 영이를 번쩍 들어 좌우로 흔든다.

 

"까하하하..."

 

영이는 즐거운 듯 웃는다.

진은 다시 영이를 내려놓고,

 

"엄마가 그러는데...12시 되면 영이 밥 먹이고, 낮잠도 좀 재우래...오빠도 밥 챙겨먹고..."

"아...그래...근데...다른 가족들 식사는...?"

"우린 알아서 먹으니깐...신경 안 써도 돼..."

 

진은 경철에게 살짝 웃어 보인다.

 

"그럼 자주 들릴 테니깐, 영이 좀 잘 봐줘...부탁할께.."

"그래..걱정말고 볼일봐..."

 

진은 영이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고 이내 다시 문밖으로 나간다.

영이가 다시 경철 곁에 다가와 앉는다.

 

"고마워...오빠...아직 가족들은 내가 빠르다는 것을 알면 안돼..."

 

경철은 말없이 영이를 바라본다. 너무나 귀여운 얼굴...초롱초롱한 눈빛...통통한 볼을 잡고 도리도리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짧게 스쳐진다.

 

"그럼...왜 나한테는 영이가 빠르다는 것을 알려 주는 거야?..."

"글쎄....아직 솔직히 모든걸 말해줄 순 없지만, 오빠는 나를 인도해줄 사람이거든..."

"인도?...어디를?..."

 

영이는 경철을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연다.

 

"또...다른...세계..."

 

경철은 영이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지만, 이해가 되질 않는다.

 

"또 다른 세계라니....?"

"내 '염원' 이야...지금과 다른..."

 

천재라서..그런걸까...천재는 사실 미쳐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문득 생각나는 경철.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영이는 잠깐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텐이 쳐져 있는 거실 창으로 다가간다.

 

"일로 와봐..오빠..."

 

경철은 순순히 영이 곁으로 다가간다.

영이는 커텐을 조금 열고 밖을 가르킨다.

 

"우리 가족들...밖에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경철도 커텐을 조금 열고 빼곰히 밖을 바라보며,

 

"마당 조경 공사 하는 거 아니야?..."

 

마당에는 어느새 제법 큰 규모의 흰색 천막이 만들어져 있고, 가족들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영이는 경철을 올려다 보며,

 

"며칠 후의 월드컵을 기다려...저 천막 안에서..."

 

경철은 영이를 내려다 보며,

 

"월드컵?...."

"어쩌면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이제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너가 말하는 또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기회?..."

"헤헤..똑똑하네...멋진 오빠..."

 

영이가 웃는다.

 

 

주환의 집, 마당, 천막 안.

 

주환은 가족들을 불러모은다.

각자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던 가족들이 주환 곁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생각해보니깐...우리 집 마당이 너무 작아..."

 

주환은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만 작은 소리로 말을 한다.

 

"어쩔 수 없잖아요...집이 이런걸..."

 

장남 율이 대답한다.

 

"지난번 '염원'의 크기를 생각해보라고...아마 이번엔 발 딛을 틈도 없을 거야...."

 

주환이 걱정하듯 읆조리자,

 

"그러니깐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구요..."

 

딸 진이 받아 친다.

 

"그나저나 아까 정한데로...영이는 포기하는 걸로 하자...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주환의 말에 모두 고개를 떨구고 숙연해진다.

 

"내 '염원' 대로라면....경철군이 앞으로 영이를 잘 보살펴 줄거야..." 

 

 

다시 주환의 집, 거실

 

경철과 영이가 여전히 창 밖을 몰래 보고 있다.

 

"도무지 모르겠어...니가 하는 얘기 전부...아인슈타인이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하질 않나..그리고 또 다른 세계라는 건 뭐야...."

 

영이가 쇼파 쪽으로 걸어가며 연설하듯 말을 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영이의 말을 듣는 순간, 경철의 뇌리에 예전 교수님이 한 말이 떠오른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명언 이지...모든 현상엔 법칙이 존재하고 확률 따윈 현상을 규명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야..]

 

교수의 말이다.

 

"그 말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사기꾼이라는 거야?..."

"아니, 아까도 말했듯이...사기꾼이라기 보단...잘못된 '염원' 이라구..오빠..."

"자꾸 '염원'..'염원' 하는데 그 말도 무슨 뜻인지 솔직히 모르겠어..."

 

영이는 다시 경철쪽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린다.

 

"'염원' 내가 바라는 생각..."

"그래서....?..."

 

 

"생각은 '법칙'이 아닌....'확률' 이라는 거지...."

 

 

이 아이 너무 재미있다...

라고 생각하는 경철.

 

 

 

Day 3.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경철은 주환의 집을 향하면서 어제 영이가 하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생각은 '법칙'이 아닌 '확률' 이다...그것이 바로 '염원'...'

 

사실 영이의 말이 옳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라면 모든 현상은 법칙으로 규명되어야 하지만, 인간의 생각만큼은 어느 법칙으로도 규명하기가 힘들다. 즉 확률의 문제이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잘못됐다는 것일까?

 

경철의 생각이 꼬리를 문다.

마치 학교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기분.

어느새, 경철은 주환의 집에 도착하고, 초인종을 누른다.

 

"들어와.."

 

장남 율이 직접 문을 열어준다.

경철은 다시 한번 움찔한다. 경철의 눈엔 율이 거인처럼 보인다.

 

"..어...고마워...아침부터 바쁘네..벌써부터 공사 시작했네...."

"알려고 하지 않는데 좋을 거야..."

 

율은 차갑게 대답하고 이내 천막 안으로 사라진다.

 

"오빠~ 안녕? 일찍 왔네~"

 

천막 안에서 진이 빼곰히 얼굴만 내밀고 경철에게 인사를 한다.

 

"그래~ 진이도 아침부터 바쁘네.."

"그렇지 뭐...헤헤...오늘도 우리 영이 잘 부탁해..."

"걱정 마~ 우리 벌써 친구라고~"

 

경철은 진에게 웃어 보이고는 집안으로 들어간다.

 

'아저씨와 사모님은 어제부터 안보이네...'

 

궁금해진다.

 

"멋진 오빠 왔어?..."

 

영이가 경철을 반갑게 맞이한다.

 

"꼬마 아가씨 잘 잤어? 아침부터 독서 중이시네..."

 

영이는 거실에 앉아 어울리지 않게  '비행기 슝슝'을 읽고 있다.

 

"비행기 슝슝이야..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영이는 들고 있는 책을 흔들면서 자랑한다.

경철은 이럴 때 보면 영이는 영락없는 4살짜리 꼬마 같다고 생각한다.

 

"엄마..아빠는 어제부터 통 안보이시네..."

"글쎄...실은 나도 어제 일찍 잠들어서..못 봤어...아마...천막 안에 있을 거야..."

"천막 안이라..."

 

경철은 천막 안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새삼 또 궁금해진다.

 

"영이는 천막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 그러는 거지?..."

 

경철이 영이 옆에 다가가 앉으며 물어볼 때,

 

"그건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갑자기 현관문에서 장남 율이 들어오면서 다시 한번 경고한다.

경철은 순간 움츠러든다.

 

"아...미안...그냥 단순히 호기심이 생겨서...미안...주의 할께..."

 

율은 끼고 있던 면장갑을 벗으며,

 

"단순한 호기심도 갖지 않는 게 좋아...날 위해서가 아닌 널 위해서야..."

"알았어..."

 

대답은 했지만, 율의 태도에 호기심이 더 커진다.

이와 중에도 영이는 천진난만하게 '비행기 슝슝'을 읽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율은 간단히 옷만 갈아입고 다시 밖으로 나간다.

그때까지 경철과 영이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자리에만 앉아 있다.

율이 나가고 문이 다시 닫히자,

 

"니네 오빠 많이 차갑네..."

 

경철이 속삭이듯 겨우 입을 연다.

 

"글쎄...."

 

영이는 관심 없다는 듯 책만 본다.

 

"그나저나 생각은 좀 해봤어?...내가 어제 한 말..."

 

영이가 책을 덮고 경철을 빤히 쳐다보며 물어본다.

 

"니네 오빠가 저렇게 나오는데...어떻게 천막 안을 훔쳐봐..."

"하지만 율 오빠의 말 때문에..호기심이 더 커지지 않았어?..."

"음....그건 그렇지만..."

 

영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건 철이 오빠의 '염원'이 조금 더 커진 거야...다시 말하면, 확률이 높아진거구..."

"아침부터 어렵구나...정말..."

 

영이는 갑자기 일어나서,

 

"난 지금 배가 고파..."

"그래?...아침 안 먹었어?...빨리 차려 줄께..."

 

경철도 곧바로 일어난다.

 

"봐봐..오빠...쉽지?..."

"뭐가?..."

 

영이는 부엌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서, 다시 아장 걸음으로 경철에게 다가온다.

 

"'난 배가 고프네...' 라는 생각을 했어...'그럼 뭐 좀 먹어야 겠다.' 라는 염원이 생긴 거야...그럼 내가 무언가 먹을 확률이 높아진 거겠지?..."

"...그렇겠지..."

"그리고 오빤 나한텐 밥을 차려줄 의무가 있으니깐, 배고프다는 말을 들으면 곧장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할 확률도 같이 높아지는 거야..."

"....."

 

경철은 유심 있게 영이의 말을 듣는다.

 

"즉...'뭐 좀 먹어야겠다...' 라는 나의 염원이 미래의 나의 행동과 오빠의 행동을 결정 짓게 한 거지...물론 확률적이지만 말이야...."

"아...."

 

경철은 뭔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아주 쉬운 예이지만, 이 '염원' 이라는 게 생각보다 아주 복잡해...어떤 '염원'에 따라서는 경우의 수가 무한히 증가하거든..."

"...아마도..."

 

영이가 경철의 코 앞까지 다가와서, 귀여운 얼굴을 들이밀고 말을 한다.

 

"그러니깐....신은 말이야...주사위 놀이를 아주 좋아한다는 거야...아니 주사위 놀이만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주환의 집, 마당, 천막 안.

 

주환은 다소 피폐해진 모습으로 어떤 기계장치를 만지고 있고,

율과 진은 마당 한 가운데에서 삽을 들고 열심히 땅을 파고 있다.

안주인 소명은 커다란 화이트 보드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주환이 갑자기 큰 소리로,

 

"이것 봐봐...신호가 조금씩 잡히고 있어..."

 

말하면서, 기계 한 가운데 디스플레이 장치를 가르킨다.

 

"그래...?..."

 

아들 율이 삽을 내려놓고 주환에게 다가가서 화면을 쳐다본다.

 

"정말이네...조금씩 한 곳으로 모이고 있어요...엄마!..."

 

무언가를 계속해서 적어대던 소명이 뒤를 돌아보며,

 

"알아...기다려봐...6542 차까지 줄일 수 있을 거 같아..."

 

진은 땅을 계속 파다가, 소명을 쳐다보며

 

"엄마...좌표가 또 틀어 진거야?....여기 계속 파면 되는 거냐구...."

 

소명이 잠시 적는 것을 멈추고 진을 돌아보며

 

"...아직...'염원'이 좀 더 모여야돼...아직이야..."

 

주환, 소명, 율과 진.

 

분주하다.

 

 

주환의 집, 거실

 

"오빠가 천막 안을 들여다 보느냐...안 보느냐...이건 선택이 두 가지야...즉 2차...이렇듯 모든 '염원'의 시작은 2차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어..."

"Yes or No...라는 건가?..."

"그렇지..근데 거기에 제 3자가 끼어들면...가령 나 영이가 다른 '염원'으로 끼어 든다면....나의 'Yes or No' 선택사항이 오빠의 'Yes or No' 선택과 물리게 될거야.."

"그럼....4차가 되는건가...?..."

"아니...'염원'은 그런 단순한 조합이 아니야...그건...무한차가 될 수도 있고...물론 1차가 될 수도 있고...."

"너무 어려워...영이야...."

 

경철 곁에 앉아있던 영이가 일어나 활짝 웃는다.

 

"확실한 건, 1차로 좁혀진 '염원'은 '생각대로 된다'...그건 반드시...따라서...아인슈타인의 '염원'은 잘못됐다는 거야..."

"....왜지?...."

 

영이는 차고있던 조그마한 손목시계를 경철 앞에 들이밀며,

 

"오빠...인간은 말야..."

"....."

 

 

"충분히 시간을 지배할 수 있거든...'신의 주사위'라는 비물리적인 방법으로...말야..."

 

 

영이는 엄청난 천재이거나, 미쳤거나, 아니면 엄청난 천재여서, 미쳐버렸거나,

갈수록 이해하기가 힘들어지는 경철이다.

 

 

 

 

Day 4. (part 1.)

 

 

어젯밤.

대한민국은 고대하던 월드컵에서의 첫 승을 이루었고,

흥분한 미디어들은 이와 관련된 내용을 앞다투어 내보내고 있다.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

조금씩 광란의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듯 하다.

 

"오빠...어젯밤 우리나라 축구팀 정말 잘했지?..."

 

무심한 표정으로 어제 경기 재방송을 보던 영이가 경철에게 물어온다.

 

"그러게...정말 잘했어...설마 이길 줄은 몰랐는데..."

 

영이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어젯밤 저 경기에서...우리 가족들은 많이 접근 했을거야..."

"접근?..."

 

영이가 경철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말했잖아...우리 가족들은 천막 안에서 월드컵을 기다린다고..."

 

경철도 말없이 영이를 쳐다본다.

 

"그래서...니가 전에 말한 '또 다른 세계'?..."

 

영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조금씩 머리가 아파지는 경철이다.

영이에겐 용량에 맞지 않는 지식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망상이 커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래도, 영이의 망상이 커지는 만큼 경철의 호기심도 자꾸만 커져간다.

 

'저 천막 안에서 영이의 가족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번 가볼까? 몰래?"

 

영이에게 제안한다.

 

"오빠의 '염원' 이군...."

"'염원'..? 그런 거 아직 모르겠지만, 그냥 호기심 이야...또..."

"또?...."

"이 오빤 영이의 임시 보호자로서...영이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영이처럼 똑똑하고 귀여운 아이가 망상에 잡혀있게 놔둘 순 없어.."

 

영이가 이를 드러내지 않고 살짝 웃는다.

 

"좋아...대신 천막 안을 보고 내가 망상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면 오빠는 앞으로 나를 그곳으로 인도 해줘야 해...임시보호자로서..말야..."

 

영이의 표정이 즐거운 듯 하면서 비장하다.

 

"알았어...도와줄께...나도 한가지 조건..."

"좋아..말해봐..."

"나를 납득 시킬려면...너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말해줘야 할거야...'염원'...'또 다른 세계'...모든걸...말야..."

"하지만 내가 말해줄 수록 나에 대한 오해만 커질 것 같은데..."

"알아...그래도...선택은 내 몫이니깐...영이 말대로 확률이잖아..이건..."

 

영이가 잠시 생각을 하다, 이내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다.

 

"좋아...잘 들어..."

 

영이가 경철에게 가까이 다가와 주위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가족은 말야... 지금과 다른 세계에서 왔어..."

"...훗.."

 

경철은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 만다.

영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지금과 다른 세계...미래를 얘기하는 거야..."

"미래?...."

"쉿...조용히...이건 미래의 시간법 상 절대 현재인 한테 이야기하면 안 되는 사항 이거든..."

 

경철도 작은 소리로,

 

"그럼...내가 현재인...영이가..미래인...?..."

 

영이가 고개를 가로 젖는다.

 

"아니...나도 오빠와 같은 현재인이야...지금 이 시대에서 태어났으니깐...좀 더 명확히 말하면...반현재인...혹은 반미래인...가족들이 온 세계의 말로 하면..."

"?...."

"0.5 不定人(부정인)"

"0.5 부정인?"

"0.5 부정인은 시간법에서 가장 큰 위법이야..그리고...내가 바로 그 0.5 부정인이야.."

"근데 왜 그게 위법이야?..."

"휴...이해가 가지 않아도...일단 들어봐...오빠...미래에서 혹은 과거에서 온 사람들은 절대 이동된 시간대에서 후세를 남기면 안돼..왜냐하면 원래 없어야 할 존재이거든...하지만 이동된 시간대에서 임신을 하여 태어난 사람들은 그나마 괜찮아..그들을 그냥 부정인이야...."

"그럼...0.5 부정인은?..."

 

영이는 자신을 가르키며

 

"나처럼...엄마가 임신한 채로 시간대를 통과하여 결국 이동된 시간대에서 태어난 경우..."

 

경철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영이를 바라본다.

 

"나같은 0.5 부정인이나 부정인들은 대부분 미숙아처럼 성장이 더뎌...그런데..."

"그런데?..."

 

"0.5 부정인들은 엄마 뱃속에서 시간대를 통과했기 때문에...이동한 시간대의 모든 정보가 머리속에 담겨진 채로 태어나게 돼..."

 

경철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빠르다고 했지? 그건 단지 0.5 부정인이기 때문이야..나는 2127년 부터 1997 6월까지의 모든 역사, 정치, 과학 등 수많은 정보를 이미 가지고 태어났어...그리고..."

"그리고...?..."

 

영이는 한 숨을 크게 한 번 쉬고는,

 

"중요한 건, 우리 가족들은 아직 내가 0.5 부정인 인줄 몰라...가족들은 내가...그냥 부정인줄만 알고 있어..."

 

경철은 영이의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가다가,

 

"좋아...영이야...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답해 줄 수 있어?..."

"좋아..."

"고마워...첫번째...시간대를 통과하면 0.5 부정인은 모든 정보가 들어온다고 하는데...그럼 너희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겠네?..."

"....."

 

경철은 영이의 표정을 한번 살피고 말을 계속 잇는다.

 

"두번째...왜 그냥 부정인보다..0.5 부정인이 더 큰 죄인거지?...."

"....."

"마지막 세번째....어제 인간은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고 했지?....그것도 비물리적인 방법으로 말야...그건 어떤 방법이지?...."

 

영이는 경철의 말을 유심히 듣고 고개를 한번 숙였다가 다시 천천히 들면서 답을 한다.

 

 

"세 가지 질문의 답은 하나야..."

 

"하나?.."

 

"그래...하나..."

 

"그게 뭔데?..."

 

 

"그게 바로...염.원 이야...."

 

 

 

같은 시간, 주환의 집, 마당, 천막 안.

 

 

"이것 봐...벌써 3자의 염원이 이만큼이나 모였어...방향성은?...."

 

주환이 기쁨에 찬 얼굴로 아내인 소명에게 소리친다.

 

"방향성은 대략 52차 정도...."

 

아내 소명이 대답하자, 근처에 지쳐 앉아있는 진이 입을 연다.

 

"52차...1차 시도 때보다 많이 줄었네...."

 

진 옆에 같이 앉아 있는 율도 한마디 한다.

 

"52차...아직 부족해...1차 시도 때 보다 더 확실한 '염원'이 필요해요...."

 

주환이 피폐해진 얼굴로 갑자기 일어나서 천막 가장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아니야...아니야...우리가 넘어올 땐, 이것보단 훨씬 작은 '염원' 으로도 가능했어...혹시...우리보다 강하게 '염원'을 조종하는 누군가...있을지도.."

 

아내 소명은 주환의 말을 듣고,

 

"하지만, 이 시간대 신청 허가자는 우리 가족과 3년 전에 돌아간 헥토르씨 뿐 인걸..."

 

라고 말한다.

 

"아니야..여보...이 시간대엔...분명...'염원'으로 장난친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우리가 1차 시도 때 실패한 것도 뭔가 꺼림칙해..."

"아빠...그게 무슨 말이야...누가 감히 시간대를 가지고 장난을 쳐? ...그리고 우리 가족이 보유한 '염원' 변환력은 국내에서도 손꼽히 잖아요..."

 

장남 율이 흥분하듯 말한다.

 

"가령..."

 

주환은 걸음을 멈추고 나즈막 하게,

 

"半神(반신)이...이 시간대에 있다면...."

 

 

다시 주환의 집, 거실

 

"답은 하나....그게 염원 이라구?..."

 

경철은 영이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이 염원을 알기 전 까진...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물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갇혀 있었어...즉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세계...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이분법적 사고...물리학이란 틀에 인간 스스로를 묶어버린거지.."

"그것이 자연이니깐..그것이 법칙이니깐..."

"아니야..오빠...자연의 법칙은 지금의 물리학 따위로 규정할 수 없어..."

"왜지?..."

 

"왜냐하면...자연 전체를 주관하는 하나의 인격체가 있거든...."

"인격체?...."

"그래...인격체...바로 '신'이야..."

 

경철은 다시 한번 영이의 망상에 놀란다.

 

"내가 '신'을 인격체라 했지? 전에도 말했듯이...인격을 가진 존재들의 생각을 물리학으로 규명할 수 있을까?...생각은 '법칙'이 아닌 '확률' 이라구..."

"....."

"'신'이 가진 생각....그것 또한 무한의 경우의 수지......법칙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이 시대엔 많은 사람들이 신께 기도를 하지?...."

"그렇지...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게 바로 '염원' 이야....내가 바라는 생각..."

 

"영이야 이해가 안 되는 걸...."

 

"이 시대 사람들이 기도한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신의 생각을 내가 바라는 데로 맞춰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야...신이 던지는 생각의 주사위가 내가 원하는 숫자로 나오게끔 바라는거라구..."

 

경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영이야...너무 비과학적이야..."

 

이에 영이는 손가락 한 개를 가로저으면서

 

"아니야..오빠...지금의 과학이 점점 한계에 부딪히면서...사람들은 틀을 깨고 나와 절대적인 존재가 가지고 있는 주사위를 건들기 시작했어..."

"어떻게?...."

 

"사람들의 염원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한거지...신의 생각을 컨트롤 하기 위해....다시 한번 바벨탑을 쌓기 시작 한거야...그리고..."

"그리고?..."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염원을 1차로 즉 한 개의 염원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터득하게돼..."

"그래서?..."

 

"거대한 염원이 한 개로 통일되었을 때....신 만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권한이 틀어지게 된다는 것을 인간은 알게 된거지..."

"신의 절대적인 권한?...."

 

"생..과..죽음..."

 

경철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영이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즉....시간이야..."

 

 

 

 

Day 4. (part 2.)

 

 

 

국방부 인천공항 사건 합동 조사본부.

 

다소 어두운 회의실, 긴 타원형의 테이블 주위로 십 수명의 사람들이 앉아있고

정점엔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한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국방장관 이창무 이다.

 

"자...그럼...조사 위원장인 이원식 박사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회의 진행자인 듯한 한 사람이 이원식 박사를 소개한다.

이원식 박사는 소개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다가간다.

 

"안녕하십니까...이원식 입니다...지금부터 지난 12일 발생한 인천공항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중앙에 프리젠테이션이 켜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믿을 수 없는.....결과가 나왔습니다...이 사진을 보시면 같은 기종의 두 항공기이지만, 먼저 도착한 항공기의 연대를, 방사선을 이용해 측정해 본 결과..."

 

회의장 주위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일부 부품에서 연대가 130년 이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회의장이 웅성 되기 시작한다.

팔짱 끼고 있던 국방장관이 입을 연다.

 

"연대 측정의 정확도는 어떻게 되는가...?..."

 

이박사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대답을 한다.

 

"예.....연대 측정의 정확도는 오차범위 5% 내외 입니다.....하지만, 현대기술로 충분히 연대 조작이 가능합니다... "

"....그렇군요....계속 하시게..."

"네..."

 

이박사가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넘긴다.

 

"두 번째로...먼저 도착한 항공기에서 발견된...수 십구의 시체관한 것 입니다...화면을 보시면 발견된 시체는 모든 수분이 증발된 상태이나, 피부조직이나 내부 골조직의 상태는 양호합니다..."

"....."

"즉...전 시체가 미라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프리젠테이션의 화면이 바뀌고,

 

"이 미라형태의 시체 역시, 연대측정을 해보았습니다..."

"결과는?..."

"네....앞과 동일합니다...130년 이상...."

 

회의장이 다시 한번 크게 웅성댄다.

국방장관이 양 손으로 진정하라는 모션을 취하고

 

"자 계속해보세요...이박사님..."

 

라고 말한다.

 

"네...국방장관님...흠...."

 

이박사가 잠시 망설이다가,

 

"다음은 저 역시 믿기 힘든 일입니다만..."

 

이박사가 화면을 넘긴다.

 

"왼쪽 사진은 먼저 도착한 K404 항공기의 내부 전체 모습입니다....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후에 연이어 도착한 정상적인 K404 항공기의 내부 모습입니다.."

"...."

"인원배치와 수, 복장, 가방 갯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품, 예를 들면 시계라던가..심지어...끼고 있는 반지까지..두 항공기가 전부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또한..."

"....."

"정상적으로 도착한 K404의 승객의 양해를 구하고 전원의 DNA를 채취하였습니다...분석해본 결과....."

 

화면이 넘어가고 나선형의 DNA 그래프가 나온다.

 

"자...왼쪽은 먼저 도착한 K404 항공기 좌석번호 A-1 에서 발견된 시체의 DNA 그래프 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은 정상적으로 도착한 K404 항공기 동일 좌석 승객의 DNA 그래프 입니다..."

 

두 그래프가 천천히 합쳐진다.

그리고 이원식 박사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잇는다.

 

".....동일한 DNA 입니다......그리고 다른 좌석의 경우도 전부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

 

"즉 동일 인물이라는 겁니다..."

 

 

주환의 집, 거실

 

"'염원'으로 시간을 조정한다고?...."

 

경철의 말에 영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그럼...시간지배에 대한 원리는 알겠어....그러면...0.5 부정인에 대해서 말해줘..."

"좋아..."

 

영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철 앞에 선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우리 가족들이 있었던 2127년 6월이라 하자...우리 가족은 당국의 시간대 이동에 대한 허가를 받고...이에 필요한 일정량의 '염원'을 수집하는 거야..정확히 130년 정도의 시간대만 틀어버릴 수 있는 제 3자들의 '염원'을 말이지..."

 

영이는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그리고 무한의 경우의 수를 가진 가지각색의 염원들을 특정의 1개의 염원으로 변환시켜...그 특정의 '염원'으로 오직 신만이 굴릴 수 있는 '시간의 주사위'를 직접 굴릴 수 있게 되는 거야...가족들이 원하는 130년 전 6월로 말이야..."

 

영이는 옆으로 한 발짝 옮기면서,

 

"이렇듯 가족들은 특정의 염원을 품고 있어서....이렇게 1997년 6월로 오는 동안에 일종의 외부 방어력을 가질 수 있어..."

"그래서...가족들은 시간대 이동을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거야?...."

 

영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맞아...이동 전, 후가 동일한 상태로 유지돼...하지만...."

"하지만...?"

"만약 의지가 없어서...전혀 염원을 품을 수 없는 태아가 뱃 속에 있다면..."

"방어력이 없겠지...물론..."

 

영이는 웃으면서

 

"맞아...그 방어력이 없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이동되는 시간대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노출 된다는 거야..."

"그것이...0.5 부정인..."

"맞아..."

 

경철은 다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근데...왜 그게 위법이야....?..."

 

영이는 조그만 손으로 자신을 가르키며

 

"나 같은 0.5 부정인들은 뜻하지 않게 엄청난 '염원' 변환력을 가지고 태어나..왜냐하면...시간대 통로 속에서 '신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까지 노출되거든...일부이긴 하지만..."

 

영이가 두 눈을 부릅뜨고 경철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그래서 미래에선 0.5 부정인을 다른 말로 불러...."

 

"....?...."

 

 

"0.5 神(신).....바로 半神(반신) 이라고...."

 

 

사랑스런 영이의 얼굴에서,

순간, 두려움을 느끼는 경철이다.

 

 

 

다시 국방부 인천공항 사건 합동 조사본부.

 

 

이창무 국방장관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침묵에 휩싸여 있다.

오랜 생각에 잠겨있던,국방장관은 어렵게 입을 연다.

 

"조사 결과대로 라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거로군...같은 시간에 같은 항공기라니...심지어 승객 까지도...비록 한 쪽은 이미 죽은 상태이지만....하...."

 

국방장관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어이없는 실소를 내뱉는다.

 

"일종의 그....뭐라고 하더라..."

 

국방장관은 잠시 생각하다가, 비로서 생각났다 듯이

 

"도플갱어.....같은 건가?...."

 

 

주환의 집, 마당, 천막 안.

 

 

주환 주위에 나머지 가족들이 모여있다.

소명이 남편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1차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간대가 틀어졌던 게 반신 때문이라는거야?..."

 

주환은 말없이 기계장치 앞으로 가서 가족들에게 오라고 손짓 한다.

 

"잘봐...지난번 1차 시도때 모인 염원의 량이야...알다시피, 우린 한국과 프랑스의 축구경기에서 승리를 바라는 염원들만 수집했어..."

 

가족들은 말없이 화면을 보고 주환의 말을 듣는다.

 

"우리가 월드컵 경기를 주목한 이유가 이거잖아....순수하고 단순한 통일된 염원...그래야 순도가 좋고 변환도 쉬우니깐..."

 

진이 궁금하다 듯이 물어본다.

 

"그래서...이게 반신하고 무슨 상관인데...?..."

"여기 보라고..1차 때 수집한 양...우리가 여기로 건너올 때 만큼의 양보다 휠씬 크고 깨끗해...근데 왜 실패했을까?...."

 

가족들은 대답이 없다.

주환은 계속해서 말한다.

 

"우리는 염원의 양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월드컵 첫 경기를 다시 기다렸어...그리고 1차 때 보다 더 많은 양을 수집했지만, 솔직히 결과가 두려워...."

 

가만히 듣고 있던 장남 율이 입을 연다.

 

"아빠...그렇다면 1차 때....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진 것이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고...반신이 장난을 친거라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

"여보..그럼...어떡하지?....반신이 있다면...염원 변환이 우리보다 강할 텐데..."

 

아내 소명이 걱정하듯 물어본다.

 

"아니...방법은 있어....일단 가장 큰 규모의 염원을 모으는 거야....반신조차 건들 수 없는...."

 

장남 율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래 봤자...우리의 변환력이 안 될 텐데...."

 

주환이 바로 받아 친다.

 

"우리는 그 염원 중 우리가 필요한 일부만 변환해서 웜홀(시간대를 이동하는 통로)을 만들면 돼..."

 

듣고 있던 진이 웃으면서,

 

"아하...그러니깐...엄청난 염원의 양으로 반신에게 혼란을 주자 이거군요...."

 

 

 

주환의 집, 거실

 

 

"오빠..어때? 이제 약속대로...천막 안을 보러 가는 거야?...."

 

경철은 여전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얼굴로 영이를 바라본다.

 

"......"

 

영이가 보채듯이,

 

"약속했잖아...모든 걸 설명해주면...날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 준다고...."

 

경철은 계속해서 영이를 바라보다,

 

"근데 왜 하필 나지?...왜 내가 영이를 그곳으로 인도해야 하지?...."

 

영이는 잠시 뜸을 들이고 대답한다.

 

" 왜냐하면 내 머리 속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정보에...."

 

"......"

 

 

"오빠가 들어있거든...."

 

 

 

Day 5. (part 1.)

 

 

 

`철이 오빠…내일까지 잘 생각해봐…’

 

경철이 집을 나설 때, 영이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올라 잠시 멈칫한다.

 

` 또 다른 세계라….’

 

경철은 어이없다는 듯 살짝 웃으며 바쁘게 집을 나선다.

 

주환의 집, 거실

 

영이를 제외한 주환의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있다.

주환은 가족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연다.

 

“ 오늘이야….오늘 웜홀을 열겠어…”

“ 오늘?.....월드컵 2차전 때까지 염원을 더 모으기로 하지 않았어?...”

 

장남 율이 의아하다 듯이 반문하자,

 

:”아니야…통일된 염원은 1차전 때 양이면 충분해….어제 생각해보니 너무 순수한 염원만 가지고는 반신을 혼란 시킬 수가 없어…”

“그러면 어떻게….?”

“어제 나는 통일되지 않은 불특정의 염원을 닥치는 데로 수집했어…우리는 1차로 통일시킨 월드컵의 염원으로 돌아가고… 무한차로 확대된 불특정 염원으로 반신에게 혼란을 주는 거야…”

 

가족들이 주환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여보…그러면….영이는….우리 영이는…..”

 

아내인 소명의 얼굴빛이 어둡다.

 

[띵동]

 

그때, 초인종이 울리고, 인터폰에 경철의 얼굴이 비친다.

 

“말했듯이….영이는 경철군이 잘 보살펴 줄거야….”

 

주환의 가족은 일제히 일어나 마당으로 나간다.

 

주환의 집, 마당

 

“여어~ 경철군….”

 

주환은 직접 대문을 열며 문 앞에 서있는 경철에게 반가움을 표시한다.

 

“아…아저씨…오랜만이네요….”

 

경철은 첫째 날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주환에게 인사를 건네며 집으로 들어선다.

 

“그래요…경철군….오늘도 우리 가족은 마당에서 매우 바쁠 거 같으니….영이 좀 잘 보살펴 줘요…조금 있으면 일어날 거예요….”

 

주환은 경철의 양 어깨를 감싸 쥐고 살짝 흔들며, 신뢰감을 표한다.

 

“네…걱정 마시고…일 보세요….”

 

경철도 그런 주환의 제스처에 미소로 답한다.

경철은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살짝 눈인사를 보내며 성큼성큼 집안으로 향한다.

경철이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고,

큰 딸 진은 눈으로 계속 경철을 쫓다가 한동안 현관문을 바라보며 자리에 서있다.

 

“진!...뭐해….빨리 시작하자…”

“어….그…그래…”

 

아들 율이 멍하게 서있는 진을 부르고, 이내 천만 안으로 들어간다.

 

주환의 집, 거실

 

경철이 아무도 없는 거실로 들어와 소파에 앉자,

기다렸다 듯이 영이가 방에서 나온다.

 

“ 영이…일어났구나…”

 

경철은 영이를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다.

 

“철이오빠….오늘이야….”

“뭐가…?”

“웜홀이 열리는 날….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는 날이라구…”

 

경철은 말없이 한동안 영이를 쳐다보다가

 

“오늘…오늘….돌아간다 이거지?....가족들이 온 세계로…”

 

혼잣말 하듯 되뇌인다

 

“철이오빠…아직 확신이 없겠지…아마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그치만…오빠와 나는 가야되…아니 갈 수 밖에 없어….”

“…..”

 

경철은 너무 작은 영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 하다.

뭔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영이의 옆으로 다가간다.

 

“ 그래….영이의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아니….사실이라고 믿을께…그렇지만, 나는 너희 가족들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어….이 오빠도 소중한 가족이 있거든…그 가족들을 버리고 영이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거야….”

 

영이는 자신보다 한참 큰 경철을 올려다보며, 조그마한 입을 연다.

 

“오빠는 운명이라는 것을 믿어?...”

“운명?....”

“그래. 운명….사람마다 정해진 길..말야….”

 

국방부 인천공항 사건 합동 조사본부, 이원식 박사 연구실

 

이원식 박사가 그의 부교수 강은희 박사에게 말을 건다.

 

“강교수….자네 대학시절 박사논문 주제가 뭐였지?....”

“참…교수님도….그때 지도교수셨잖아요….”

“그랬지…근데 그때 자네 논문이 좀 특이한 주제 였는데….”

“생각의 방향성에 대한 물리학적 접근론 이였습니다…”

“생각을 물리학으로 규정한다라…..”

 

이원식 박사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래서? 결론은?....”

 

강은희 박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한다.

 

“결론은 아인슈타인이 틀렸다는 겁니다…”

 

주환의 집, 거실

 

“맞아…참 웃기지…?...까르르르…”

 

영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웃는다.

 

“모순이야.....모순이라고….”

 

경철은 영이와 다르게 심각한 표정으로 받아친다.

 

“영이야….그건 모순이야..모순이라고…넌 분명 인간의 생각은 법칙이 아닌 확률이라 했잖아…그런데 갑자기 운명론이라니….운명은 확률이 아닌 법칙 쪽에 가까운 거라고…”

“모순 맞아…각 개개인의 생각은 확률적인 거라서…쉽게 정의를 내릴 수도 예측을 할 수 도 없지…”

“그런데….왜 사람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 하는 거야?....그렇다면 결국 어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해서 무슨 행동을 하던 간에…결국 가는 길은 한 가지란 말이잖아….”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무한대의 확률….하지만 그 무한대의 확률은…..”

 

영이는 조그마한 손가락 하나를 펼쳐 경철의 눈 앞에 들이민다.

 

“그 무한대의 확률은! 결국! 하나! 하나의 의지에 의해 정해진 다는 거야…..”

“……그게…또 무슨 소리야…..”

“하나의 의지….”

“하나의 의지?....”

 

“미래에서는 그것을 ‘대전제’ 라 불러….”

 

 

주환의 집, 마당

 

주환이 알 수 없는 기계장치 앞에서 가족들을 불러모은다.

 

“모두들…이제 준비하자…돌아갈 염원은 1차로 좁혀졌지만….반신을 교란시키기 위해서는 무한차의 불특정 염원을 믹스 시킬거야….모두들 순수한 1차의 염원을 잘 기억하고 그것만 변환시켜서 돌아가야되….”

 

아들 율이 가만히 듣다가 입을 연다.

 

“아빠….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상대는….반신 이라구….”

“성공하길 바랄 뿐이지….그게 우리 모두의 염원이고…..어쨌든 확실한 건…..”

“확실한 건?.....”

 

“실패던….성공이던……어차피 ‘신의 대전제’ 안에서 움직인다는 거야….”

 

 

주환의 집, 거실

 

“결국….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던지….나는 영이가 말하는 ‘또 다른 세계’ 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거야?....”

 

영이가 말없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경철은 다시 소파에 앉으며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 쥔다.

영이는 그런 경철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을 한다.

 

“정확히 오후 3시반….그러니깐….앞으로 5시간 28분 후에 가족들이 웜홀을 열거야….매우 잘못되고 위험한 웜홀을….”

“잘못되고 위험하다니….?...”

“그건 나도 모르겠어…..”

“머리가 아파….영이는 0.5 부정인 이잖아….반신이라며….미래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태어났다며…..그런 영이가 모른다니…”

“웜홀이 열리는 건 확실해….그건 대전제 안에서 이뤄질 일들이야….그런데….”

“그런데….?....”

 

“내 머리 속에 우리 가족들의 정보는 오늘까지 뿐이야..…..”

 

 

국방부 인천공항 사건 합동 조사본부, 이원식 박사 연구실

 

“맞아…. 자네 논문이 참 특이했었지….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인슈타인을 부정하다니…”

“아니예요…박사님….부정이 아니라….하나의 견해 또는 가정이라 해주십시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 근데 교수님….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이원식 박사는 깊은 생각 끝에 입을 연다.

 

“이번 인천공항 사건….물리학으로 규정하기엔 여기가 한계야….즉…뉴턴과…아인슈타인의 틀 안에서는 답을 밝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물리학의 외적인 것들….이를 테면….자네의 논문 처럼 사람의 생각이라던가…아니면….”

“….?....”

 

“그 어떤…..절대적인 존재….라던가……”

 

 

 

 

Day 5. (part 2.)

 

 

주환의 집, 거실

 

경철은 의아하고 다소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영이를 바라보며,

 

“ 그래서..영이네 가족들은 오늘 죽는다는 거야?....”

 

영이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철이 오빠…그건 나도 정말 몰라….정보가 없다는 건….”

“…?...”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는 것…….그리고…”

“그리고?....”

 

경철은 궁금한 듯 영이에게 더욱 붙어 앉아 다그친다.

 

“나에게 정보가 없는 또.다.른.세.계 로 이동될 수 도 있다는 것…..”

“잠깐..잠깐….”

 

경철이 영이의 말을 끊으며,

 

“이제까지 영이가 말한 ‘또 다른 세계’ 라는 것은 영이네 가족들이 온 130년후의 미래 잖아….그런데…영이에게 정보가 없다니….”

 

영이가 경철을 빤히 쳐다보다,

 

“철이 오빠….말했듯이 난 0.5 부정인 이라고….즉….가족들이 미래에서 웜홀을 연 시점부터의 과거….아니 지금 2002년까지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어….그러니깐….”

“…?..”

“130년 후에 미래는 나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야….또한….”

“또…?....”

 

“가족들의 정보가 오늘까지라는 건 오늘 중으로 가족들이 나의 정보대에서 벗어난다는 거일 수도 있어….아니면…”

“아니면….?...”

“나의 정보대안에서 비껴나갈 수도 있다는 것…..”

 

경철의 표정이 찌그러진다.

 

“이해가 안돼…영이야….”

 

영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펜을 집어 메모지에 가로로 줄을 하나 긋는다.

 

“철이오빠….이 선이 바로 2127년 6월부터 2002년 6월까지의 ‘대전제’라 치자…..즉…..이 130년 정도의 시간 내에서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신의 대전제라고….”

 

경철은 유심히 메모지를 살펴본다.

 

“우리 가족들은 이 대전제의 줄기 그대로 2127년 6월로 돌아가는 거야….그리고 원래의 시간대로 도착하는 순간….나의 정보대에서 벗어나는 거지….”

“그렇겠지…..그런데?.....”

 

영이가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그어진 선의 시작점에서 다른 한 선을 긋는다.

경철은 말없이 계속 메모지를 본다.

 

“만약…..이렇게 우리 가족들이 신의 대전제의 줄기에서 벗어난다면?.....”

“…너의 논리대로 라면…대전제에서 벗어날 순 없잖아…”

“물론 그렇지….물론 그래왔고….이제부터 나도 가정을 하는거야….”

 

영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메모지에 글씨를 쓰면서,

 

“신의 대전제에서 벗어난 또 다른 세계…..쉽게 말하면….나의 정보대에서 벗어난…또 다른 시간대….”

 

경철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상해…영이야….너희 가족들의 정보가 오늘까지라면….가족들은 원래의 시간대로 무사히 돌아간게 아닐까?.....신의 대전제는 불변하다는 가정아래….”

“철이 오빠…..”

 

영이가 메모지를 바라보던 시선을 경철에게로 고정시킨다.

 

“가족들이 원래의 줄기로 돌아갔다면…..그 돌아가는 정보도 나의 정보대라고…..근데….가족들의 정보는…..”

“……..”

 

“오늘까지 뿐이야!.....”

 

국방부 인천공항 사건 합동 조사본부,

 

“버지니아 사건이요?...”

 

강은희 박사가 그의 상관 이원식 박사에게 되묻는다.

 

“그래…버지니아에서 출항한 브레이크라는 함선이 출항 5시간만에 통신이 두절되고 같은날 오후에 노포크 항구에서 표류하다가 발견되었는데….그 안의 선원은 전부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건이지…”

“그게….이번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죠?....”

 

이원식 박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 당시 배 안의 선원들은 전부 미라 형태로 죽어있었어….마치 수 백년이 지난 상태같이….”

“…..”

 

강은희 박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원식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비슷한 사건은 또 있었지….1945년 독일에서 브라질로 향하던 센디에이고 항공이 갑자기 사라진 사건인데….”

“네…”

“이 항공기가 35년이 지난 1980년에 포루투갈 공항에 착륙을 한거야….”

“35년이 지나서요?...”

“그래….35년 전에 사라졌던 모습 그대로…..”

“승객들은요?....”

 

이원식 박사는 다시 한번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답한다.

 

“버지니아 사건처럼 모두 미라형태 였어….”

“그렇군요…”

 

두 사람은 말없이 들고 있는 차를 마시다가

강박사가 천천히 말을 한다.

 

“그래요…교수님…이 시점 이네요….”

“?....”

 

“교수님께서….신의 주사위를 생각하는 시점이…..”

 

이원식 박사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강박사를 쳐다본다.

강박사는 혼잣말 하듯 나즈막한 목소리로

 

“교수님께서…신의 주사위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시점이….바로 오늘….이군요…”

 

주환의 집, 거실

 

“영이야….알지도 알 수 도 없는 그 세계….신의 대전제를 벗어날 수 도 있는 그 세계로 왜 가려는 거야?...”

 

영이는 경철을 빤히 쳐다보다가

 

“철이오빠….그건 간단해….”

 

경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영이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오빠와…나 영이의 정보도 오늘 까지거든….아니….”

 

경철은 영이의 말을 끊으며,

 

“아니야…영이야….넌 분명….또 다른 세계에 내가 들어있다고 했어….그런데….오늘까지라니….앞 뒤가 안맞잖아…”

“정확히 얘기 하면 오늘 그리고 신의 대전제 안에서의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이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메모지에 그려진 선의 시작점에 동그라미를 친다.

 

“지금 그러니깐 오늘부터 오빠와 나 역시 나의 정보대에서 벗어나…그런데…”

“그런데?....”

 

영이는 선의 끝점에 다시 동그라미를 치며

 

“여기 신의 대전제로 이루어진 이 줄기 안에서….여기에도...오빠와 나의 정보가 있다는 거야….즉 가정을 하자면….”

 

영이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철이 오빠와 나는 신의 대전제에서 벗어난 어느 또 다른 세계에 갔다가…다시 여기 바로 본래의 신의 대전제로 돌아간다는 거지…..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어렵구나….”

 

경철은 의아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영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또 다른 사람들…?...”

 

“모르겠어…누굴까….?....또 다른 세계로부터 우리를 따라 온…..2127년 6월의 그 누군가들…..”

 

국방부 인천공항 사건 합동 조사본부,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이원식 박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강은희 박사를 다그친다.

 

“염원…?....시간대 이동?.....”

 

강은희 박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말씀드린 그대로 입니다….교수님…이 모든 이론의 시작은 교수님 이십니다…”

“하…”

 

이원식 박사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자네….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세우고 있군….신의 주사위로 시간대를 이동하다니…”

“교수님…결코 미친 소리가 아닙니다…혼란스러우시겠지만 들어주세요…저 역시 시간대를 통과하여 온 사람입니다…교수님을 찾으러요….”

 

이원식 박사가 미친듯한 자신의 애제자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자네…휴가가 필요한거 같네…”

 

주환의 집, 마당, 천막 안

 

“아빠….얼마나 남았어요?....우리 준비는 다 끝났어…”

 

큰 딸 진이 기계장치 앞에 있는 주환에게로 다가간다.

 

“앞으로 한 시간….정확히 15시 30분에 웜홀을 연다…”

 

주환의 집, 거실

 

“영이야…어렵지만…정리해볼께….그러니깐…우리가 가는 또 다른 세계에서…우리를 따라온 그 누군가….그리고….신의 대전제의 미래로부터 오는 또 다른 무리들…”

“ 맞아….지금은 뭐라 단정 지을 수 없지만….신의 대전제를 뿌리채 흔들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아….그래서…우리 가족들이 열려고 하는 지금의 웜홀이 위험하다 한거야…”

 

경철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그렇다면….막아야지….아예 웜홀을 못열게….”

 

영이가 조그마한 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철이 오빠….절대 그럴 순 없어…아니 막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가족들이 여는 위험한 웜홀도 엄연히…..신의 대전제이니깐….”

 

오후 2시 45분

 

이원식 박사는 말없이 운전을 하며 도로를 달리고 있다.

조수석엔 강은희 박사가 손에 핸드폰 같은 장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이원식 박사가 강박사에게 말을 건다.

 

“자네를 따라 나선 나도 웃기지만….흥미로운 가설이긴 하군….현대의 물리적 차원을 넘은 또 다른 이론…..”

“그렇죠….아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절대적인 존재의 차원이죠….”

 

강박사는 계속 장치의 디스플레이를 보며 대답한다.

 

“교수님…분명 오늘입니다…지금 엄청난 염원이 이 부근에서 집결되고 있어요…체코발 대한항공을 틀어버린 양하고는 비교가 안됩니다…이제 곧 웜홀이 열릴겁니다…”

 

이원식 박사가 살짝 강박사의 장치를 쳐다본다.

 

“그래....오늘 시간대 통로가 열린다 이거지?....참…그런 것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한다면 자네 말을 믿어주지….그래…정확히 어디야?....”

 

강박사는 들고 있는 장치를 잠시 내려놓고,

 

“가까워지고 있습니다…저기 저 주택가….쪽…”

 

손을 들어 주환의 동네를 가르킨다.

 

오후 3시 5분

 

주환의 집, 마당

 

“자!...이제 의식을 시작하자!...”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장한 얼굴로 가족들에게 말한다.

 

“말했듯이… 여기 집결된 염원은 무한대차로 확장된 불특정의 염원들이야…”

“엄청나네….여보….이렇게 많은 량을 불법으로 모으면…돌아가도 처벌을 받을거야…”

“어쩔 수 없어…우린 여기에 섞여진 1차의 순수 염원만 잡아서 돌아가야돼….그리고 돌아가서 그동안 우리가 갇힌 이유와…이 시간대에 있는 반신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고….”

 

아내 소명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주환은 계속해서 가족들에게 말을 한다.

 

“절대 의식에 소홀해서는 안돼…어려운 의식이 될거고….잘못하다간…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어…”

 

아들 율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빠….우선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자…”

 

주환은 유난히 더 큰 율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래! 듬직하다! 우리아들!....이제 시작하자!....웜홀을 여는 의식을…”

 

네 가족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후 3시 15분

주환이 집, 거실

 

“철이 오빠…가족들이 드디어 의식을 시작했어…”

“의식…?..”

“웜홀을 열기 위한 의식….”

 

경철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영이를 바라본다.

영이는 계속해서,

 

“변환된 다수의 염원을 송신하는 의식이야…궁극적인 목표는 원하는 웜홀을 여는거지…”

“원하는 웜홀…?....”

 

“말하자면…..신의 주사위를 굴리는 중이라고 할까….?”

 

오후 3시 20분

원식과 은희를 태운 차가 주환의 집 앞에 멈춰선다.

 

“박사님…이곳 입니다…이곳에서 웜홀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원식 박사가 창문을 내려 주환의 집을 유심히 살펴본다.

 

“뭔가….대기가 오묘하군…마치 이 집 주위로만 구름이 모이는 것 같군…”

 

강은희 박사는 디스플레이 장치에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없이 차에서 내린다.

원식도 조용히 시동을 끄고 하늘을 계속 주시한 채로 차에서 내린다.

약간 겁에 질린 표정.

 

“이보게…강교수….이거…막아야 하는 건가?....”

 

오후 3시 30분

주환의 집, 마당, 천막 안

 

주환과 그의 식구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로 그동안 열심히 파놓은 구덩이 주위에 둥그렇게 서있다. 각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동시에 눈을 뜬다. 초점이 없다. 어느 누구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뭔가에 빙의된 듯 한 모습.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

 

구덩이 중심부에서 한 점의 빛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구덩이 전체를 휘감는다.

 

오후 3시 30분

주환의 집, 마당, 천막 밖

 

영이와 경철은 천막 안의 상황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

 

“열렸어…우려하던 웜홀이 드디어….”

 

영이의 얼굴이 묘하다.

 

“저…저게….웜홀?....저…저게 시간대 통로?...”

 

경철의 얼굴에는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다.

 

“ 철이 오빠….이제 우리 가족들은 웜홀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사라질 거야…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약 이십여초…”

“ 이십초?..”

 

영이는 천막 안 상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계속 말을 한다.

 

“가족들이 웜홀로 사라지는 순간, 그들의 염원도 사라지게 되…철이 오빠 잘 보고 있어…그들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도 곧바로 뛰어 들어가야되…”

“영..영이야…염원이 사라지면, 웜홀도 사라지는 거야?..”

 

“아니….해당 염원이 사라져도 웜홀은 일정시간 열려 있어….단….”

“…,..?”

“ 염원이 사리진 웜홀은 도착 지점이 불명확 해…”

“ 그게 무슨 말이야?....”

 

영이가 잠시 경철을 쳐다보며

 

“ 즉 가족들과 동일한 세계로 못간다던가….아니면……”

“아니면?...”

 

“시간대 통로 안에 갇히거나…”

 

순간 영이의 눈이 커지면서,

 

“ 사라진다….”

 

영이의 가족들이 웜홀 안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철이 오빠….지금이야!...”

 

영이가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경철은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다가 곧바로 영이를 뒤따라 뛰어 간다.

 

주환과 큰 아들 율은 이미 웜홀 안으로 사라져 버렸고, 소명과 큰 딸 진은 거의 사라져가는 순간 이다.

 

이때,

 

큰 딸 진의 초점이 돌아오며,

뛰어들어오는 경철과 눈이 마주친다.

놀라는 표정.

 

그리고 사라진다.

 

“ 철이 오빠…가자….또 다른 세계로…”

 

경철은 영이를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영이를 안고, 웜홀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추천수4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