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사위가 멈춘 곳
베레싯으로 가는 길목.
소명이 혼자 탄 말과 영이와 진이 함께 탄 말이 나란히 비탈진 산길을 위태롭게 올라가고 있다.
“영이야…언니는 아직 이해가 안돼…또 다른 세계라니….”
진은 앞에서 말을 끌고 있는 영이에게 묻는다.
“언니…그 날 우리 가족이 웜홀을 열던 그 때…그 날부터 잘못 된거야….”
“잘못되다니?...”
“아빠는 너무 많은 정말 너무 많은 불특정의 염원을 수집했고, 그것을 1차로 좁혀진 염원에 무리하게 믹스(mix) 시켰어…주와 객이 전도 됐다고 할까?...”
진과 소명은 여린 영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신기한 듯 할 말을 잃는다. 그들에게 영이는 아직 4살 짜리 어린 딸이자, 막내동생.
영이는 계속해서,
“그래…이해는 해…이미 당국에 신고한 귀환일자는 어겨버렸고….귀환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하고…더군다나…나 영이까지 있으니…무리해서라도 돌아가야 됐겠지…”
“……”
“당국은 세기말…환경 조사를 위한 명분으로 우리 가족을 보냈지만….왜 하필 우리 가족 이였을까?...염원 수집의 대가 아빠….염원 변환 수식의 일인자 엄마…. 그리고 그들의 피를 물려받은 언니와 오빠…까지…”
“영이야…대체…너….”
“언니…..나 영이가 여기 이 또 다른 세계에 도착하고 보니…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더라고….”
“그 이유?...”
“그들이 원하는 건 세기말 환경 조사가 아니였어….”
“그럼?....”
옆에서 같이 가고 있던 소명도 영이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웜홀…..그때 2002년에 우리가족이 열어버린 그 웜홀…. 또 궁극적으로는….”
“…?...”
“ 나 영이…..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철이 오빠….”
어느 수풀이 우거진 숲속,
경철이 우두커니 서있다.
‘뭐지…….’
뭔가에 얻어맞은 표정.
‘또 열린건가?......’
경철이 정신 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이건 분명…영이 가족의 염원인데….또 열린건가….’
“뭔소리야..그게?....영이랑 경철 오빠를 원한다니…?”
진은 답답함에 영이를 다그친다.
“언니..그리고 엄마…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그래 전부….얘기해줘…”
“우리가족이 웜홀을 열던 그 날…나 영이와 철이 오빠도 그 웜홀로 뛰어 들었어…하지만 그 웜홀이 우리가족이 원래 있던 시간대 즉 2127년 6월로 돌아가는 웜홀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소명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떻게 알 수 있던거야?...”
진은 조급하게 다그친다.
“놀라지마…언니…그리고 엄마…”
영이는 묵묵하게,
“나….나 영이는 0.5 부정인….다시 말하면,,,,반신 (半神) 이야…..”
우거진 숲 속에 경철.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생각에 잠긴다.
‘웜홀을 못 통과한 아저씨와 율이….라면….구하러 가야 하는데….아직 셀레바에 사자단이 있을거야…젠장….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떤 무리가 숲을 뒤지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이다…이곳에 지나간 흔적이 있다…샅샅히 뒤져라…!...”
‘사자단.’
사자단과 셀레바 경비대 이다.
경철은 나무 뒤에 몸을 은폐한 채로, 조용히 복면을 뒤집어 쓴다.
‘아직…영이 가족의 웜홀이 다시 열린 건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군….’
경철은 결심한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가오는 무리를 향해 그들의 언어로 소리친다.
“여기있다!.여기 거짓 선지자가 있다! 전원 쫓아라!....”
무리가 외침을 듣고 경철이 있는 곳으로 우르르 달려 간다.
“어디? 어디 인가?....”
사자단 일원이 경철에게 다가와서 다급하게 묻는다.
“저쪽입니다. 저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경철이 무리에 섞이자, 흡사 경철과 사자단이 구별이 안간다.
경철은 다소 키가 작을 뿐.
사자단과 같은 옷에 같은 복면을 쓰고 있어서,
구별이 가지 않는다.
사자단과 셀레바 경비대는 경철이 가르킨 곳으로 서둘러 이동하고,
경철도 그들을 쫓아 가는 듯하다가, 서서히 무리에서 이탈한다.
무리에서 완전히 빠져 나온 경철은 셀레바로 다시 방향을 튼다.
‘다시 돌아간다….셀레바의 성지로….’
경철의 눈이 빛이난다.
베레싯으로 가는 길목
영이, 소명, 진은 어느덧 산을 넘어 길게 이어진 오솔길을 지나가고 있다.
진과 소명은 자신의 사랑스런 딸이자 막내 동생이 반신이라는 말을 듣고부터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영이가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들인거니?...”
엄마 소명이 오랜 시간 닫고 있던 입을 열어 나즈막하게 영이에게 묻는다.
“아니…엄마…말했듯이…나는 우리 가족이 원래 세계로 못 갈 것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어..”
“영이야…엄마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우리 사랑스런 영이가 지금까지 우리의 귀환을 방해한 반신이라니…”
소명이 참아왔던 감정을 터트리며 울먹인다.
“울지마..엄마…내가 반신인건 맞지만, 우리가족의 귀환을 방해하지는 않았어…”
“네가 아니라고?....그럼 누가 우리의 염원에 손을 댈 수가 있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아마도 우리보다 훨씬 이전에 들어온 또 다른 반신이 아닐까…실은 나에게도 정보는 없어…”
가만히 듣고 있던 진
“0.5 부정인인 영이에게도 정보가 없다면, 우리보다 이전에 들어온 존재라는 건데….그럼 그 존재가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들인건가….”
묻는다.
“그럴지도…원하는 건 우리가족의 또 다른 차원의 웜홀…그리고 나….”
“또…경철오빠?....”
영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왜 경철 오빠가 필요한거지?...경철오빠는 그저 평범한 현재인인데 말야…”
“언니…이곳은 말야…..우리 가족이 온 2137년 6월과 동일한 시간대에 또 다른 세계야…말하자면, 신의 대전제에서 비껴난 또 다른 세계의 2137년….”
“말이 안돼….신의 대전제를 비껴나다니…”
“믿기 힘들겠지만, 들어봐…인간이 염원으로 시간대를 다룰 수 있게 된 그 때….뜻하지 않게…수 많은 0.5 부정인과 부정인들이 생겨버렸지…초창기에는 나 같은 0.5 부정인들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으니깐…”
“맞아…그 이후 카를로 학살로….대부분의 반신들과 부정인들이 죽었어….”
“아니…..그때 그들은 죽지 않았어..”
“무슨소리야…? 카를로 학살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 인데…”
영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언니…당국은 그들을 학살했다 공표했지만…실은 그들을 죽이지는 않았어…아니 못했다고 해야 할까?....”
“왜?...”
“간단해….그들은 반신 이니깐….쉽게 건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
“그럼 그 많은 반신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거야?....”
영이는 고개를 돌려 진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다시 앞을 보며 입을 연다.
“죽이지 못한다면, 차선책은…뭘까….”
“….?...”
“가둬버리는 것…”
“가둔다고? 어디에?....”
“그 때 카를로 학살이 일어나던 그 때, 인간은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질러 버렸어… 바로 반신들과 협정을 맺은거야…”
“….협정이라니...?”
“신의 대전제에서 벗어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주겠노라고….반신들과 협정을 맺은 거야….반신들은 그 제안에 선뜻 응했고 상상할 수 도 없는 아니 상상해도 안되는 또 다른 세계를 열어버렸지….바로 신의 주사위를 통해서..…”
“…?!....”
“바로 이곳…신의 주사위가 멈춘 세계를 말야….….”
셀레바 마을이 보이는 어느 높은 지대.
경철은 몸을 낮춘 채 마을 전경을 내려다 보고 있다.
‘아저씨와…율이만 구하면….된다….이제 끝이 보여…’
해가 거의 넘어가는 어스름한 저녁.
언덕 및 마을에는 하나 둘 횃불이 걸리고 어딘가 모르게 분주한 느낌이다.
‘마을에 아직 사자단이 남아 있군…역시 위장은 너무 위험하겠어..…..’
경철도 뭔가 뾰족한 수가 안 떠오르는 모양이다.
‘영이가 있다면….마을 주민으로 위장할 텐데….젠장…일단 베레싯으로 돌아가야 하나…’
눈살을 찌푸린다.
‘베레싯으로….말 없이 이동하려면….3일 정도…….그렇게 되면 너무 늦을거야….위험해도 정면돌파 밖에 없다….’
경철은 중얼거리며, 툴툴 일어난다.
“ 자 가볼까…마지막 선지자를 구하러….”
셀레바 수용소 앞.
다수의 사자단과 셀레바 경비대가 수용소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경철은 조금 떨어진 건물 으슥한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그들의 동태를 날카롭게 지켜본다.
‘사자단 여섯에….경비대가 열 둘…’
경철은 사자단의 복면을 다시금 뒤집어 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수용소 정문으로 향한다.
“멈춰라!”
사자단 한 명이 다가오는 경철을 막아선다.
경철은 대꾸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팔목 안쪽에 새겨진 사자단의 문양을 들이민다.
자신보다 높은 계급 표식을 확인한 사자단원은 경철에게 고개를 숙인다.
“들었는가?...이곳 셀레바의 성지에서 또다시 선지자의 통로가 열렸다는데…”
경철은 태연하게 묻는다.
“그렇습니까? 저는 아직 들은 바가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를 쫓다가 급하게 명을 받고 돌아왔는데…아직 전달이 안된 모양이군….지금 성지에 남아있는 단원이 있는가?...”
“아닙니다…전원 철수하여 거짓 선지자를 쫓고 있습니다…”
“그렇군…”
경철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 그럼 나는 명을 받은 데로, 성지로 가서 조사를 하겠다. 나머지 단원들은 그대로 임무를 수행 하도록…”
경철은 말을 마치고 발길을 돌리려 할 때,
사자단원이 그를 불러 세운다.
“잠시만….”
“?...”
“명을 누구한테 받으신건지…”
“그것을 왜 묻는가?...”
“제가 알기론 이번에 파견된 사자단에서 하론님이 가장 높은 계급이신데…”
“그런데..?..”
“…보여주신 계급 표식이 하론님 보다 높은 표식이라….”
경철, 멈칫한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젠장…’
경철의 표정이 복면안에서 일그러 지고.
사자단원은 경철을 주시하며 주위 다른 단원들을 손짓으로 부른다.
한편, 베레싯으로 향하는 영이 일행.
“신의 주사위가 멈춘 곳?...”
진은 영이에게 계속해서 되묻는다.
“그래…이곳은 신의 주사위가 멈춘 곳이야….어떠한 염원도 통하지 않는….”
“이곳이 바벨탑의 정점이로군….”
가만히 듣고있던 엄마 소명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맞아..엄마…이 세계가 바로 인간이 만든 바벨탑의 정점이야…신의 의지가 없는 곳…바로 주사위가 멈춘 곳…”
“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심각한 침묵이 잠시 이어지다,
진이 이내 말을 한다.
“그런데 경철 오빠.... 왜 경철 오빠를 필요로 하는거지?....”
영이는 언니 진을 대답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철이 오빠는 이 또 다른 세계….바벨탑의 정점….신의 주사위가 멈춘 이곳에서의 유일한…..”
“?....”
“반신 이야….”
“잡아라! 거짓 선지자다!”
사자단원 무리가 신속하게 경철을 둘러싼다.
경철을 원형으로 둘러싼 사자단원과 셀레바 경비대들은 날카로운 창 끝으로 경철을 위협한다.
“:생포하라…!...반드시….”
사자단원 한 명이 소리치자 둘러싼 무리들이 일제히 경철을 덮친다.
‘젠장….’
경철의 짧은 외마디.
“경철 오빠가 반신?...왜…?...”
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영이에게 묻는다.
“간단해…언니….”
“그니깐..왜….?...”
영이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우리 가족이 연 웜홀을 통과 했으니까….”
“…..”
영이는 계속해서,
“나의 정보대에 있는 사실부터 말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