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9살되는 남자아이 입니다.
김해김씨 73대손 삼연파 이구요
고향은 경기도 포천 일동이며 현 거주지는 경기도 안산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저희 아버지와 그 친척 일가에 대한 만행을 밝혀
그사람들이 조금에 뉘우침이라도 느낄수 있게끔 잇슈화 시키고 싶습니다.
한 겨울 전 유치원도 들어가지 못할 그런 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술을 마시고 집에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느라
집에 계시지 않았는데 그때 아버지가 저를 야단을 치셨습니다..
110v짜리 멀티탭으로 저를 때리기 시작하셨고
저는 아프고 무서워서 팬티만 입고 그 겨울에 어머니가 계시는 시장까지 도망갔습니다..
시장에서 저를 알아보시는 시장아주머니들이 추운데 팬티만 입고 다닌다고 저를 잡으셔서
옷가지를 구매하셔서 입히시고는 엄마한테가자... 라며 제손을잡고 어머니에게 대려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제 몰골을 보시고선 그자리에서 주저앉으셔서 저를 안고 한참을 울면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엄마가 미안해... 라며 저를 꼭 끌어안아 주셧습니다...
어머니 품은 저에게는 피난처이자 안식처였고
세상 어느곳보다 따뜻했습니다..
초등학교3학년 때였습니다. 이때는 전북 익산 모현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술과 돈때문에 다투었지요. 아버지는 페인트칠을 하시는 업자입니다.
일을 잘하셔서 겨울에도 일이 많이 있었지요.. 허나 아버지는 항상 술드시는데 돈을 많이 쓰셨습니다.
때문에 집안에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추운겨울에도 전북 익산의 재래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셨습니다.. 생선은 항상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얼려 있었구요..
겨울에 그 추운데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어머니는 항상 밖에서 돈을 버셨습니다.
아버지도 돈을 버셨지만 항상 주변에 술병과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닥 잘사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돈은 통장이나 다른 부동산이 있는것도 아니어서
그날 번돈은 그날 쓰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날도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오셔서 어머니를 죽이네 살리네 하시면서 부엌에 있는 칼로 목에다도 대시고
찌르는 시늉까지 하시며 죽인다고 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집을 뛰처 나왔구요...
결국 그날 어머니는 아버지 폭력에 팔이 부러져서 깁스를 해야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등산하다 다치셔서 그랬다고 하셨는데... 다 알지요.. 아버지가 때려서 그리되었냐고
그 어린놈이 추궁을 하니 울음을 터트리시더군요... 한참동안 어머니를 안고 울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머니도 사람인지라 아버지 폭력에 더는 못견디시고
외할아버지댁으로 아버지를 피해 도망을 가셨습니다... 거즘 한달동안
아버지는 어머니를 눈에 띄면 죽여버린다고 오기만 해봐라 라며 이를 벅벅 가셨죠...
뉘우치기는 커녕 동네사람들에게 이년이 바람나서 도망갔다며 말하고 다니셨습니다.
동네분들은 아셨어요 어머니는 그럴분이 아니란것을... 그분들은 어머니를
항상 칭찬하시고 아버지에게 아내가 천사같다며 항상칭찬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셨거든요...
결국 아버지는 살림이 되지 않자 다시 어머니가 계신 외가댁으로 가셔서
할아버지께 무릅꿇고 빌면서 어머니에게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또한 어머니가 옆에 계시는게 좋기때문에 할아버지를 설득했었죠...
어머니를 저를 보시고는 울음을 터트리셨고 할머니는
어린 네가 무슨죄가 있니... 하시면서 저를 일으켜 세우시고는 안아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오셨고
한달도 되지않아 아버지는 또 술먹고 어머니를 죽이네 살리네
집에서 나가라 눈에서 보이지 말아라 하시며 술만드시면 뭐든지 어머니께 집어 던지셨습니다...
이런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저는 어머니를 다시 외가로 가시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또 찾아올까봐 대전에 친구분집으로 가셔서
친구분의 친절로 근처에 집을 하나 구해서 대전에서 일을 하셨어요..
근 두달간이셨죠... 주말마다 대전에서 익산을 오가시며
누나와 저에게 용돈과 먹을것을 사주시고 다시 눈물의 이별을 반복했습니다..
물론 아버지 모르게 이루어졌지요....
제가 고3이 되어 실업계라 취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집은 익산이고 회사는 군산에 있는 대우자동차 였습니다. 회사까지 거리가 멀기에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아버지가 저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집에서 어머니와 어버지가 싸우는건 볼수 없었습니다 제가 없을때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폭언과 폭력 그리고 생명까지 위협했던 겁니다.
주말에 집에가면 어머니얼굴엔 핏기가 없었습니다. 살을 살대로 다 빠지셔서 야윈 몸을 갖고
또 돈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나가셨죠... 각종 장사며 배달 마늘까기 밤까기 등 닥치는데로
일을 하셔서 저와 누나를 뒷바라지 하셨습니다. 이때도 아버지는 술과 노름 그리고 여자와 함께 사셨죠...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놔두고 항상 다른여자와 연락하며
어머니눈에 띄지않게 외도를 많이 했습니다.
전 시간나는데로 택시타고 아버지를 쫒아다녔구요...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억정이 무너지더군요....
어머니는 저희 가족을 위해 닥치는데로 일을 하셨지만 아버지는 돈이 없으면
어머니를 때려서라도 돈을 빌려오라고 했고 갚지는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돈을 갚기 위해 또 일을 하셨구요... 이같은 일이
수십년동안 반복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성할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에 항상 불안에 떨며 사셔야 했고
병원을 많이 다니셨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어마어마한 병을 진단받고 마셨습니다...
간에 물이차서 활동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움직이지 못하셨고
병원 의사분은 어머니께 시한부 2년을 선고하셨죠...
오래살아야 2년이다... 라며...
하지만 어머니는 병원치료를 하시며 간에 물이찬걸
쌩 몸뚱아리에 구멍을 뚤어 빼시고 또 일을 하셨습니다...
온갖 스트레스에 야윌대로 야윈 몸이지만
저희를 위해 항상 아픈몸을 이끌고 닥치는데로 일을 하셨습니다...
철모르는 어린시절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용돈을 달라고 때쓰며
어머니를 아프게 했던겁니다...
누나가 사립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집안 사정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어머니는 아픈데도 병원도 못가고 일을 하셨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어머니는 이제 두달에 한번씩
병원에 꼭 가셔서 물을 빼야만 했습니다..
저또한 그런 어머니께 짐을 덜어드리고자 국립전문대에 입학해서
근로장학생으로 활동하며 등록금과 수업료를 조금이라도 덜었으며
군장학생에 지원해서 나온 돈으로 누나의 등록금과 집안 생활자금으로
쓰기위해 어머니께 돈을 덜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도 아들아 미안하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전 이런 어머니의 눈물을 안고 대학 졸옵후 곧바로 육군에 하사로
군에가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집에 없고 누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만 집에서 생활을 하셨는데
어머니는 울면서 저한테 전화하신일이 수도 없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만로를 견딜수 없다며
저에게 항상 애원을 하셨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간이식을 받아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었구요....
아버지는 술먹고 여자만나고 노름하느라 돈이 항상 없었구요....
그리고 어머니를 병원에 대려가기는 커녕 돈먹는 기계라며 학대하셨습니다..
누나가 결혼할때도 아버지는 누나결혼식에 10원한분 보태지 않았으며
축의금으로 들어온 돈까지 모조리 가져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술을 드셨고 결혼식을 축하하기위해 모인 사람들과
또 술판을 벌인겁니다.... 아....
그후 누나는 첫째를 임신하여 출산하였고 집으로 갔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또 싸우셨고
그런 아버지를 누나가 말리자 상욕을 하시며 갓난아이에게까지 상욕을 하셨고
대리고 꺼지라며 누나를 밀쳤습니다... 결국 누난 그 겨울 저녁 12시가 지난 시점에서
인천에 있는 매형에게 울면서 대릴러와달라고 해서 그 새벽 누나와 어머니를 대리고
인천으로 도망가셨습니다....
병들고 늙자 어머니는 부부관계를 못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점점 밖으로 돌았고
두집살림을 하시며 돈은 벌어서 다른집에 가따주며 그집에 돈을 쓰셨습니다
어머니에겐 집나가라며 항상 구박을 하셨고... 하지만 어머니는 제가 결혼할때
어머니없이 결혼식을 시킬수 없다며 모든걸 참고 제가 결혼하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제가 군에서 전역하고 안산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께 전화가 오더군요... 술먹고 들어온 아버지를 피해 집 보일러실로 숨어들어간겁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에 없는걸 알고 외도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년 꼭 집에서 나가게 한다며 그뒤에 행복하게 살자 보고싶다는 둥
이런말을 그 외도녀에게 하는 통화내용자체를 어머니가 듣고 말았습니다..
그날 보일러실에서 어머니가 그내용을 듣고 저에게 곧바로 전화를 하셨고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때어놓기 위해 연차를 내고 익산으로 내려가
집에서 모든 살림살이를 들고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희에게 보도블럭을 던지셨고 망치를 갖어와 살림을 부수었습니다
저는 이런아버지를 밀치고 도망가다 싶이해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안전한곳에 모신후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좀 시간이 오래 걸릴것 같다며 회사에 연차를 크게 내고
다시 내려와 어머니를 임시거처에서 다른곳으로 모셨습니다...
아버지와 멀리 떨어진곳으로 모셨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주변사람들에게 이년 바람나서 집나갔다고
소문을 퍼트리고 아버지의 외도녀를 집까지 들이셨습니다..
동네사람들은 그걸 보고 아버지를 모두 손가락질 하셨고
어머니와 연락이 닿는 동네분들이 그소식을 어머니께 알려주셨고
어머니는 아주 이혼하기위해 절차를 밟는데...
세상에... 이미 호적에서 제외되어 있던 상황인겁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돈을 주지 않기 위해
제가 어릴적 어머니가 힘들어 할때 이혼도장을 받아놓으신 겁니다........
이렇게해서 위자료하나 없이 혼자가 되신 우리 어머니 입니다.
어머니는 큰고모에게 전화하셔서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이야기 하자
큰고모는 어머니에게 눈물을 흘리시며 자기가 미안하다며 어머니를 감싸안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큰고모에게 어머니가 바람나서 집을 나가셨다 했고
큰고모는 그말을 믿고 어머니에게 갖은 욕설을 퍼부으셨습니다...
그렇게 큰고모가 개입되고 친가쪽 식구들은 모두 어머니를 나쁜사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온갖 상욕을 하며 경조사때 제가 참석한 자리에서 어머니를 항상 욕하곤 했습니다.
저는 참았습니다.... 정말 마음속으로 엄청난 아픔을 참았습니다...
제가 집안에 장손이라며 너는 니 애미처럼 그리되면 안된다고
저를 친가쪽으로 가깝게 엮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살아오면서 어머니에게 했던 갖은 모진 일들을
다 겪고 느끼고 보았기 때문에 친가쪽 사람들과는
살갑게 지낼 수 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큰고모에게 집을 하나 해주던지 기존 살던 집을 팔고 반이라도 달라며 사정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설득에 큰고모는 경남 창원에서 전북 익산으로 오셨고 익산에서 저희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창원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돈한푼 받지 못하고 혼자가 된것입니다...
몇일전 입니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전 경남 창원으로 내려갔습니다 큰고모는 아버지와 연락이 안된다며
어머니를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집에서도 아버지와 담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엔 아버지가 와계셨고 저와 눈이 마두치자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또한 아버지라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기 싫어 피했습니다
이제와서 이 친가쪽 사람들이 저보고 장남노릇을 하라 하더군요
이사람들은 저희 어머니가 아픈줄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아프다고만 했지 어머니의 큰병까진 이야길 않한겁니다
결국 그자리에서 저는 울고 말았습니다..
큰고모는 어머니와 일전에 병원에 가셔서 어머니의 병환을 확인하셧던 적이 있었지만
집안 식구들에겐 이야길 하지 않고 어머니를 식구들이 나쁘게 바라보게끔 조작을 하신겁니다
때문에 그집 식구들에겐 어머니는 항상 나쁜년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그집식구들에게 나쁜년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전 그걸 바로 잡고자 어머니에 대한 일을 큰고모부와 고모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분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군요 그저 큰고모가 말하면 법으로 알고
어머니와 저를 원망만 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장례식장인데 거기서 제가 큰소리 칠 수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아무말도 못하고 전 바보처럼 울기만 했습니다.....
조사를 치르고 어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전화가 오더군요 번호를 알려준게 화근이었습니다...
고모아들이 한다는 말이 너는 그러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여기서부터 언성이 높아져서 제가 뭘 잘못했으며 우리어머니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당신들에게 이런소리를 들어야 하냐며
제가 따지자 저희어머니가 바람핀건 알고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내참 어이가 없어서 어떤 새끼가 그따위 말을 지껄이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그냥 전화를 끊더군요....
그리고 다시 전화가 와서 지 할말만 하고 또 끈더군요
너무나도 화가났습니다
어머니가 저와 누나 그리고 가족을 위해 30년간 일궈논게
아버지라는 남자때문에 이런식으로 물거품이 되고
그 아버지쪽 사람들에게 욕까지 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눈물이 날정도로 힘이 듭니다....
지금도 아버지란 남자는 익산의 집에서 다른 여자와 그여자의 애들까지
키우고 있으며 번돈을 그여자에게 주고 용돈까지 받아쓴다 합니다....
생전 저희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그렇게 하며 살고 있다니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다시는 이사람들 보지도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을 것이며
저희 어머니에게 접근시 보호요청하여 접근을 막아버릴겁니다...
이제 남은 인생 어머니는 편하게 보내셔야 합니다...
아프신 몸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물좋고 공기좋은 곳에서
식이요법으로 지금까지 잘 견디고 버티셨습니다
앞으로 어머니께 좋은 추억만 남겨드리고 싶고
좋은것은 다 드시게끔 할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전북 익산 모현동 명일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지금도 술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친가쪽 분들을 법적으로 처리가 가능한가요..
그리고 아버지를 법에 심판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