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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걷다 Day7 에스떼야 ~ 로스 아르꼬스 (2012.01.01)

진형록 |2013.01.20 16:22
조회 144 |추천 0
다른 사람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런데 내 옆 침대에서 자던 혜정이누나가 벌써 떠날 채비를 마쳤다. 심히 어안이 벙벙한 상황. 곧 이어 태수형도 깻고, 형도 혜정이누나를 보고는 놀란 눈치다. 지난 4일동안 항상 출발은 혜정이누나와 태수형과 함께 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속도를 비교했을땐 태수형과 내가 누나보다 한시간은 일찍 도착했다. 그래서 혜정이누나가 오늘 우리보다 한시간 일찍 출발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나와 태수형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어제 산 상당히 많은 양의 식량은 모두 태수형 배낭에 넣기로 했다. 에스떼야로 부터 2시간 가량 걸으면 나오는 중간 마을에서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한 후에 혜정이누나가 먼저 떠났다. 혜정이누나가 먼저 떠나고 나니, 이거 뭔가...나도 혼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태수형보다 훨씬 먼저 갈 준비를 다하고 형한테 아까 누나가 말한 그 마을에서 보자고 하고는 나도 바로 알베르게를 나와버렸다. 
어제가 한 해의 마지막이긴 마지막이었나보다. 길 거리 곳곳에 술취한 사람들이 보인다. 에스떼야가 작은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마을 밖으로 나가는데만 해도 한참이 걸린다. 시골길에서 길찾기와 도시에서의 길찾기는 사뭇 다르다. 시골길에 보이는 거의 모든 표지만은 카미노에 관련된 것지만, 도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한 스페인이 계속 나랑 같은 방향으로 걷길레 말 좀 걸어봤더니, 다행히 영어가 된다. 축구얘기좀 했는데 자기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힘들다고 이제 말걸지 말렌다. 
에스떼야에서 나오니 또 다시 한적한 시골길이다. 출발할때는 아직 어둑어둑했었는데, 

 


어느새 올한해의 첫 해가 뜨고 있다. 


이 길위에서의 즐거움 중 하나는 매일매일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미노의 길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있어서, 아침에 해가 등뒤에서 뜨기 때문에 따뜻한 햇살을 맞으면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 그리고 해가 질때쯤이면 일몰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1시간쯤 걷다 보니 저 앞에 커다란 수도원이 보인다. 카미노의 명소 이라체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


 


포도주가 나오는 수돗꼭지 때문이다. 왼쪽 수돗꼭지를 열면 포도주가 나오고 오른쪽 수돗꼭지를 열면 물이 나오는데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위한 시설이다. 안쪽에 있는 포도주 창고로 부터 나오는 포도주는 지나가다 마시는데는 제한이 없지만, 병에 담아가지는 못하도록 뒷쪽에 cctv가 설치되있다. 문제는 겨울철이라 안에 저장된 포도주가 다 떨어졌는지, 두 방울 나오고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마 앞서간 혜정이누나는 나보다는 많이 마셨을 것이다.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니 조그마한 산이 하나 나타났다. 산에는 갈림길이 더 많이 나오곤 한다. 그래도 걱정할 것이 없는게


 

노란색 화살표들이 저렇게 눈에 띄에 칠해져 있다. 혼자 산길을 걸으면 별의 별 소리들이 다 들린다. 소리의 근원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레도 거슬린다. 좁은 산길을 지나니 다시 탁 트인 길이 나왔다. 양쪽을 둘러보면 상당히 장관이다.


 

이정표하나를 발견했는데, 갈림길 표시가 되어있었다. 다행히 혜정이누나랑 만나기로한 마을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서 바로 오른쪽길로 들어섰다. 누나랑 만나기로 한 마을은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간대도 시간대여서 마을까지 올라가는게 상당히 힘들었다. 


상당히 고요한 마을이었다. 하긴 카미노의 대부분의 마을이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매우 조용하다. 어쩌다가 개 짖는 소리만 들릴뿐, 집을 많지만 인기척은 없다. 그 때 마을 교회에서 누가 나오는게 보였다. 혜정이누나였다. 이제 태수형만 오면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제일 따뜻해 보이는 벤치에 짐을 풀고 각자 휴식을 취한다.


 


누나 발에 물집이 잡혔다. 순례자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것은 발에 생기는 물집이다. 발가락들이 서로 마찰을 하게되면 그 자리에 물집이 생기는데 이게 상당히 고통스럽다고 한다. 예방책으로 바셀린을 바르는 사람도 있고, 나같은 경우는 발가락끼리의 마찰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발가락양말을 신고 그 위에 등산양말을 신은 후 발가락이 안움직이게 등산화를 최대한 조여 맨다.(등산화 끈이 끊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늘로 물집을 터뜨리는건, 보기만 해도 그 고통이 상상이 간다. 


햇빛도 나른나른하니 상당히 졸립다.


 

마을의 고양이. 주인 없는 고양이들을 상당히 많이 만나게 되는데 하루 왠종일 종종종 따라오기도 한다. 


 


점점 배는 고파오는데, 태수형이 안온다. 태수형 정도의 속도면 분명 올시간인데도 그림자조차 안보인다. 무슨 부스럭 소리가 날때마다 태수형인가 하고 돌아보지만, 태수형은 나타나지 않는다. 혜정이누나랑 짐풀고 기다린지가 1시간이 넘었다. 지금까지 태수형이 안오는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 분명 좀전에 있었던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택한게 틀림없다. 내가 택한 오른쪽길은 이 마을을 통과해서 가는 길이고 왼쪽길은 마을을 지나지 않고 곧바로 가는 길이니, 표지판에 써있는 마을 이름을 주의깊게 보지 않았더라면, 누구나 더 빠른 왼쪽길로 갔을 것이다. 태수형이 우리를 지나쳐 가버린건 혜정이누나와 나에게 큰 문제가 된다. 어제 사논 모든 식량이 태수형한테 있기 때문이다. 좀전까지만 해도 식량을 기다리는 처지였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나니 식량을 잡으러 가야되는 마당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햇살이 뜨겁다. 게다가 길도 언덕 비스무리한 평지가 끝없이 이어져서 햇빛을 고스란히 다 받아가면서 걸어야한다. 여태껏 카미노 위에서의 날씨중에서 가장 더웠다. 겉옷도 하나 벗고 바지까지 걷은체로 걸어야했다. 


 

햇빛을 막아줄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걷는 속도를 올려서 가보면, 


 

똑같은 풍경이 나온다. 일종의 희망고문이랄까...혜정이누나한테 먼저가서 태수형 찾겠다고 하고는 속도를 올렸다. 아까와는 달리 그늘진 부분들이 나왔는데 땀이 나고 식고를 반복하다보니 몸이 어째 으슬으슬하다. 이런 길위에서 몸살이라도 낫다가는 낭패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을 때에 쉬어줘야 한다.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목적지인 로스 아르꼬스. 그런데도 눈앞에 나타나질 않는다. 더위에 지쳐서 헥헥거리며 겨우겨우 걷고 있는데 옆으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스윽 지나간다.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말한마디 건내지 않고 그냥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지나가신다. 그래도 마을에 다 오긴 왔나보다.


 


드디어 로스 아르꼬스에 도착했다. 표지판을 보면 알베르게도 있고, 병원도 있고, 식당도 있고, 호텔도 있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첫 번째 알베르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상당히 이국적으로 꾸며진 그 알베르게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안에서 스페인 커플인 쥬디와 라몬이 나왔다. 알베르게에 주인이 없덴다... 이 무슨...그래도 저 마을 끝자락에 알베르게가 하나 더 있으니 거길로 가보젠다. 이 마을은 집들이 다닥다닥붙어있어서 알베르게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때 익숙한 마크


 

찾았다. 알베르게. 근데 여기에도 사람이 없다. 더 중요한건 태수형도 없다. 혜정이누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쥬디와 라몬은 다음마을까지 5km밖에 안되니 거기까지 가겠덴다. 난 일단 혜정이누나랑 상의를 해봐야했기때문에 이 알베르게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가 나타났다. 태수형한테 문자가 왔다(전화는 안되지만, 핸드폰끼리 문자는 가능하다). 걷다보니 약속장소는 나타나지도 않고 로스 아르꼬스에 도착해버렸는데 알베르게가 닫혀있어서 다음마을까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이 5km나 멀리 있다. 


근데 도저히 몸상태가 5km를 더 걸을 상태가 아니었다. 분명 알베르게의 창고문은 사진에서 처럼 열려있었고, 주인만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창문으로 보니 안에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다. 이 알베르게. 문을 열어야만했다. 문 틈 사이로 전화번호하나가 꽂혀있었다. 스페인어로 쓰여있었으나, 딱 봐도 부재중시 연락달라는 거였다. 전화를 걸어보니, 왠 스페인 안내원이 전화를 받고는 뭐라고 쏼라거린다.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으니, 무턱대고 알베르게 알베르게만 반복한다. 전화를 끊어버리고 일단은 좀 쉬려고 알베르게 앞에서 혜정이누나와 짐을 풀고 먹을게 없으니 물 한통이라도 다 마셔버렸다. 


그때 한 택시가 알베르게 문앞에 섰고. 심히 마귀처럼 생긴 거대한 아줌마가 내렸다. 알베르게 주인인가보다. 스페인어로 뭐라 계속 말했지만, 내가 알아들을리가 없고, 알베르게 가격을 요구했는데, 내부 시설에 비해 가겪이 비쌌다. 난 그래도 오늘 여기서 잘 작정을 했기에, 바로 지불했는데, 혜정이누난 그게 아닌가보다. 누난 5km를 더 가기로 했다. 그래도 날 여기 혼자두고 가시는게 걱정스러웠는지 계속 혼자 여기서 괜찮겠냐고를 물어봤다. 아예 헤어지는게 아니라 내일 내가 5km를 더가서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너무 걱정말라고 하고는 누나와 헤어졌다.


일단은 급한 빨레를 하고 침대에 침낭을 피고나니, 할게 없다. 아직 시간은 4시밖에 안됫고 해가 떨어질 시간도 2시간이나 남았다. 그리고 막상 생각해보니, 이 알베르게에서 혼자자는거...별로 바람직 하지 않다. 안에 있던 의자하나를 밖에 갖고 나와서는 햇빛을 쐬며 앉아있었다. 분명 집들은 많은데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때 두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중 하나는 상당히 컸다. 그저께 내 옆에서 자고 어제는 연말이라고 호텔에서 잔 이탈리안 부부다. 아직 서로 이름도 모르고 그냥 알 수 없는 눈 인사만 나눴는데도 심히 반가웠다. 그쪽에서 요구하지도 않은 알베르게 설명을 내가 다 해주고는 오늘 여기서 자라고, 다음 마을을 5km나 떨어져있다고 설명했다(이 부부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매우 다행이었다) 결국 이 알베르게에서 자기로 하고는 짐을 풀었는데, 참...불편한 침묵들이 오갔다. 그나마 아저씨가 재밌는 사람이어서 먼저 자기소개도 하고 말도 걸었다. 부인은 이탈리아 사진 작가고 아저씨는 사업가인데, 사업일로 한국에도 몇번 왔었다고 했다. 근데 그 몇번중 제일 최근에 온게 97년 이렌다. 내 얘기를 하다가 전공 얘기가 나왔다. 철학과라고 하니, 온갖 철학자 이름을 데면서 누가 제일 좋냐고 묻는다. 난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했는데 말이다. 아직 안배워서 모른다고 대답해주기도 참 민망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크리스티나와 바티, 그리고 카르멘이었다. 나보고 혜정이누나와 태수형은 어딧냐고 물어서 대강 설명을 해줬다. 그나마 분위기 메이커들이 와서 다행스러웠다. 크리스티나의 순례목적은 이 길의 원래의 순수 목적처럼 종교적인 이유다. 천주교 신자인 크리스티나는 1년전에 아버지에게 카미노에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버스로 완주를 하고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왜 벌써오냐고 물어셨단다. 그래서 1년후인 지금 순례자로서 이 길 위에 서게 된것이다. 한국어를 굉장히 잘한다고 크리스티나한테 칭찬해줬더니, 이제 자기한테 말할때는 영어로 하렌다. 자기가 교정해준다고... 그래서 아직 까지도 크리스티나한테 메일을 쓰거나 Facebook상에서 얘기할때는 영어를 쓴다.


오늘 밤은 혼자 이 알베르게에서 지낼 줄 알았는데, 어쩌다보니 반가운 5명이 와준 덕에 전혀 외롭지 않은 밤이었다. 

잠에 들 찰나에 혜정이누나한테 문자가 왔다. 혼자 괜찮냐는 문자여서 이틀 동안 같이 지낸 이 사람들이 와줘서 괜찮다고 하니, 누나한테 뜻밖의 답장이 왔다.


5km를 더 걸어서 갔는데, 태수형이 없덴다. 어디냐고 물어보니, 시간이 남아서 다음 마을까지 갔다는 것이다. 결국, 혜정이누나는 처음 보는 외국인 둘과 함께 알베르게에서 잤다고 한다. 빨리 내일이 되어 다시 보자면서 둘다 잠이 든다. 그래도 맨날 보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서로 각자 떨어져서 자니, 기분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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