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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걷다 Day10 부르고스 ~ 온따나스 (2012.01.04)

진형록 |2013.01.27 10:02
조회 153 |추천 0
부르고스의 알베르게가 너무 좋다보니 간만에 따뜻하게 침낭밖에로 다리하나까지 내어놓으며 잠도 잘잤고, 일어나서 샤워도 한 번 더했다. 앞으로 언제 또 누릴지 모르는 소소한 호화다. 규모가 큰 알베르게다보니 1층의 단체 조식 테이블로 매우 크다. 각자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끼리 두 세명씩 앉아 아침을 해결한다. 역시나 오늘도 나와 태수형은 바게트 1/4조각에 칼집을내어 치즈를 껴넣어 먹는다. 이거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게 무리인건 맞지만, 그래도 몇번 안씹고 삼킨후 물을 한잔먹으면 뱃속에서 빵이 부풀어준다.
오늘부터 이어질 메세타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순례자들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분명 외국어이긴해도 여기 저기에서 메세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알 수 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길이고, 그 수위가 어느정도일지를 모르니 일단 해가 아직 뜨지 않았음에도 빠른 출발을 하기로 한다. 

 


대도시다 보니, 평소 다른 마을에서 볼 수 없는 이런 놀이터 시설도 볼 수 있다. 날씨가 썩 좋지가 않다. 해가 뜬 것 같긴 해도 보이질 않으니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 될 것 같다. 어제 저녁에 부르고스 알베르게에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자 두분이 오셨는데, 오늘 길을 걷다가 만나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역시 모녀지간이었다. 어머님 되시는 분이 상당히 활발하셨는데, 태수형과 나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보였다. 아침인데다가 날씨도 썩 좋지 않고해서 나랑 태수형은 걸음을 더 빨리 하여 그분들과는 오랜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메세타가 언제나올까...만을 생각하면서 마을 끝자락을 나서자마자 무섭게 누가봐도 알아챌 수 있을 메세타가 등장했다.


 

안개까지 진하게 끼어주신 덕분에 안그래도 고독한 길이 아예 처참한 길이 되어버렸다. 다 녹슬어가는 카미노 안내 화살표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있다. 이 메세타 구간에선 주위에 나무 한 그루 볼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이 드넓은 평원에서 바람을 맞는건 나뿐인거다. 원래 여름과 가을에는 길 양쪽으로 끝없는 황금빛 밀밭이 펼쳐진다. 아무리 덥고 고독한 길이어도 양쪽으로 황금밀밭이 펼쳐지면 걷는 맛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 혹독한 겨울에는


 

생명체가 없다. 그냥 죽음의 땅이 되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보기에는 그냥 흙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간간히 엄청난 진흙밭이 나온다. 어차피 오고 가는길은 단 하나기 때문에 물러서거나 나아가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그 진흙밭을 열심히 기어나가다보면 어느새 등산화 놓이 만큼의 두께로 발에 진흘기 붙어있다. 그렇다 보니 힘은 2배로 든다.


메세타는 생각의 길, 고뇌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이 끝없이 뻗어있는 길을 혼자 걷게 되면 온갖 생각이 다 들면서 하나 둘씩 정리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 일행이 있더라도 이 길에서는 서로 합의 하에 혼자 걷기도 한다. 나와 태수형은 서로 합의를 한 건 아니지만, 속도 차이가 점차 나다 보니 어느새 서로의 목소리는 소리치지 않는 이상 들리지 않게 되고, 발소리만 들으면서 묵묵히 걷기를 계속했다. 


 

500m만 더 가면 알베르게가 있다고 저렇게 광고판이 서있는데도, 그닥 썩 반갑지가 않다. 광고판 상태만 봐도 알베르게가 어떨지는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에게 앞으로 얼마나 더 가면 되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은 일종의 희망고문과도 같다. 저기 써있는만큼 실제로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500m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 기껏 갔더니 1km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오는 것만큼 힘빠지는 일도 없다.


메세타의 특징 중 하나는 지도 상에 존재하는 마을에 도달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마을 또는 편의 시설을 만날 수 없다. 다시 말해,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선 '중간에 나오는 마을에서 사먹어야지.'따위의 마음을 먹는다면 매우 후회스러운 하루가 될 것임을 장담한다. 식량확보가 최우선시 되야 하는 곳이 바로 메세타다. 태수형과 나의 문제라면 문제랄 것 중 하나는 너무 돈을 아낀다는 것이다. 아침식사가 바게트 1/4조각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점심즈음에 마을이 나오더라도 참고 더 빨리 걸어가서 저녁을 든든하게 먹자는 식이다. 오늘 역시 점심은 없고, 어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왔다. 온따나스. 일단 목적지에 도착을 하니 안도감이 들긴 하지만, 온따나스를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응? 이게 마을?'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규모가 너무 작다. 온따나스의 총 주민을 다 합치면 40명이다. 중학교 한 학급이 모여 사는 급이다. 안그래도 사람없는 마을이 너무 고요하다. 


 

40명밖에 안사는 마을에 알베르게가 있다는게 신기하다. 메세타는 주위에 갈 마을도 없으니, 오히려 다른 때보다도 많은 순례자들이 모인다. 어제 함께 묵은 거대한 외국인 두명, 한명은 대머리에 안경을 쓰고 한명은 짧은 금발이었는데 둘다 체격이 워낙커서 군인느낌이 낫다. 아직 말은 걸어보지 못한 상태다. 그리곤 진정 순례자의 모습을 갖춘 한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아직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보행 속도를 지닌 이탈리아 커플이 오늘 함께 묵을 사람들이다. 온따나스의 알베르게로 말하자면...춥다. 매우 춥다. 물로 냉수에다가 알베르게에도 어떠한 난방시설도 없다. 추워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저녁을 먹으러 마을에 딱 한게 있는 바에 들어갔다. 식당이 여기 하나이다보니, 마을사람들의 1/3에다가 오늘 묵는 순례자들이 모두 여기에 모였다. 나랑 태수형은 그 사람들보다 좀 먼저 식사를 끝내서 먼저 쉬러 나왔다.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메세타 위의 이 작은 마을. 40명 뿐인 이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가 궁금하다. 모두들 문닫고 집안에 있는 듯 하다. 하루종일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걸어왔는데 알베르게가 이렇게 추우니...배낭에서 래깅스를 꺼낸다. 혹시 몰라서 2개를 챙겨왔는데, 역시 혹시 모를일은 닥치기 마련이다. 


메세타를 이제 하루 걸었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과연 생각을 하면서 걷기는 했을까? 주위 살필것도 없고, 화살표를 찾는 일도 필요없고 그저 앞으로만 걸으면 되니 걷다가 멍때리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아직까지는 어떠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온갖 잡념이 다 쏟아져 나오는 단계다. 물로 앞으로4~5일은 더 메세타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내가 무엇을 얻고 배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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