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교회는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옳은 행실로써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결혼 10년 만에 얻은 귀한 아이가 산달을 채우지 못하고 7개월 만에 태어났다. 얼마나 작은지 손으로 잡아볼 수조차 없었다. 아이는 곧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다. 출산하느라 많이 힘들고 지쳤지만 한 번 안아주지도 못한 아이에게 미안했던 나는 항상 인큐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아이를 두고 퇴원하던 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한없이 자책하고 있는 나를 남편이 위로했다.
“우리 아기는 건강해져서 돌아올 거야. 우리 아기를 위해 같이 기도하자.”
남편도 나처럼 힘이 들 텐데 나와 아이를 위해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힘을 내야지. 아이가 돌아왔을 때 좋은 환경에서 키울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매일매일 달력에 체크하며 아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퇴원하고 보름이 지났을 때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열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이미 떨고 있었다. 매 초마다 가슴속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제발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선생님, 우리 아기가 왜요? 왜 그런 거예요?”
“열이 40도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중이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보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차라리 내가 병실에 눕고 말지 아이가 아픈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루하루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점차 아이는 건강해져 퇴원하는 날이 됐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을 나서며 반드시 지켜주리라 다짐했다. 남편과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다 해주고 싶어서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해주었다. 그렇게 함께 지낸 지 두 달이 되었을 무렵 아이가 밤새 칭얼대고 열이 올라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또 혼자 아파야 했다. 같이 있지만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이것밖에 없단 말인가. 아이가 못난 엄마를 만나서 아픈 것 같아 또다시 자책감이 밀려왔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남편과 나는 꼬박 하루 동안 잠 한숨 못 잤다.
“아이 혈액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 조그만 아기에게 수술이라니…. 담당 의사는 일단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우선이라며 소견서를 써 줄테니 바로 가보라고 했다. 대학 병원으로 갔더니 수술을 하던지 아니면 아이에게 물만 먹이면서 장이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장이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고 아이도 엄마도 많이 힘들 거라고 했지만, 저 작은 아이에게 수술을 할 순 없었다. 결국 아이와 기약 없는 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물조차 마음껏 못 먹는 아이는 기운이 없어서 크게 울지도 못했다. 그런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을 수 없어 하루 종일 아이를 업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내 등에서 잠시라도 잘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가야. 얼마나 힘드니. 너를 이렇게 태어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내주렴.’
아이의 눈을 보며 항상 가슴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 간절한 바람은 눈물이 되어 흐르곤 했다.
“아기 엄마, 그러다 둘 다 죽겠네. 뭐 좀 먹고 다녀요. 밤낮 애만 업고 다니느라 밥 한 술 못 뜨던데, 내가 아이를 봐 줄 테니 좀 먹어요. 그래야 아기도 돌보지. 그러다 같이 쓰러겠어.”
“아니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업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해요.”
내 아이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힘들어 하는데 내 입으로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매일 저녁 퇴근하고 오는 남편도 이러다 둘 다 죽겠다고 했지만 못 이긴 척 뭔가를 먹고 나면 체하기 일쑤였다. 밤에도 침대에 눕혀 놓으면 한 시간도 못 자고 깨버리는 아이가 안쓰러워 나는 아이를 업은 채 잠을 잤다. 그렇게 두 달이 다 되도록 아이는 잘 버텨주었고 경과도 좋았다.
“어머니께서 아이를 살리셨네요. 검사 결과도 좋으니 이제는 조금씩 미음을 먹여 보세요.”
뭔가를 먹여도 된다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얼마나 간절히 듣고 싶던 이야기였는지….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미음을 한 숟가락 먹여 보았다. 아이는 처음 먹어 보는 것이라 낯설어 하더니 곧잘 받아 먹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말할 수 없이 큰 감동이었다. 아이가 미음을 먹고 잘 견디면 죽을 먹이고 죽도 잘 먹으면 아이와 함께 퇴원하는 것이다.
병실의 아주머니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아무리 그렇게 해줘도 나중에 크면 엄마가 해준 거 하나도 모른다고, 속이나 안 썩이면 다행이라고. 그런 건 상관없었다. 아이가 나의 희생을 몰라줘도 건강하게 자라기만 한다면 더 이상의 바람은 없었다.
석 달 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아이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또래 아기들에 비해 너무나 작은 체구에 바싹 말라버린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나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아이에게 맞추는 생활을 하게 됐다.
누군가 그랬다. 자식은 엄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태어났기에 엄마의 생명을 먹으며 자란다고. 내 생명을 다 주어도 상관없다. 그보다 더 큰 사랑도 줄 수 있다면 주고 또 주고 싶다.

-BY ELOH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