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 재주가 없어서, 제가봐도 소설처럼 쓰고있네요.
억울한 마음은 없습니다.
소설이라면, 누군가 그냥 소설이구나 하고 봐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마음이 편할 것 같네요.
다시 이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꿈이 간절하지 않았던건지 어린 나이에 엄마의 뜻을 거스르는게 자신이 없었던 건지,
금방 적응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하는 기계가 되었죠.
생각보다 공부에 재능이 없지 않아서 꽤나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했습니다. 모든 나날들이...
M이 학교를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는요.
4월은 아이들이 그래도 아직까진 친하지 않은 때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선생님 눈치보고, 선배들 눈치보고.......
같은 중학교 다닌 아이들은 여전히 저를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었고,
저는 그런 시선들을 또 모른척하고 평범한 친구들과 친해졌습니다.
M이 찾아온 4월은 그런 달이기도 했지만 제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했습니다.
학교마치고 버스를 타러 가기 전까진 조금 걸어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날도 친구들과 같이 버스를 타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낯선 교복무리가 보이더군요. (주변 고등학교 교복이아닌)
M과 친구들이었습니다.
몇 달 못 본것 뿐인데 키가 아주 훌쩍 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멀리서 서서히 다가가다 보니 문득 M이 참 잘생긴 얼굴이더라구요.
키도크고, 특히 무표정이었다가 웃을때는 꽤 귀여웠어요. (어렸을때 별생각을 다했네요.)
"니 친구들이가?" -M
"어. 왠일인데?" -나
"오늘 케익 묵었나?" -M
막 친해진 친구들인데 제 생일을 알리가 없죠.
친구들도 당황, 저도 당황....
"나는 생일 음력으로 친다. 몰랏나." -나
"아 맞나. 난 또 생각나서 왔다. 야들도 니 보러가자 카고. " -M
다들 키도 훤칠하고, 얼굴들도 모난곳이 없어서 딱 날티나는 얼굴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사는 동네가 좀 공부를 못하는데 돈이 좀 있는 땅부자 동네)
어렵게 사귄친구들에게 또 오해를 살까봐 얼른 인사를 하고 M과 그 친구들을 데리고 시장쪽에
떡볶이집을 갔습니다.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하는 M을 보면서
그냥 나는 이 아이의 수많은 친구중에 그냥 하나였구나,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는지, 이 곱게 자라온 아이는 알 리가 없지 했었습니다.
저도 굳이 말할 필요 없을거고 이 순간이 지나면 또 끝일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똑같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마냥 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친구들이 눈치를 살살 보며 하나둘씩 자리를 뜨더군요.
그제서야 이 친구들이 나와 M을 화해시키려고 왔다는걸 눈치챘습니다.
사실 싸운것도 아니고 일방적인 제 회피인데 뭘 어ᄄᅠᇂ게 풀겠다는건지..
“니 아직 무용하고싶나?” -M
“아니. 이제 생각없다. 왜” -나
“안 아깝나? 니 그래도 꽤 잘했잖아.” -M
“생각해보니까 시간낭비더라. 무용 그거 돈도 안되잖아.” -나
“니.......내 대신 무용할래?” -M
“뭐라카노 내가 니대신 뭘 무용을 어떻게 하는데?” -나
“내가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 내 무용하는거 대신 니 시켜달라 하면 된다.” -M
“니 멍청이가? 어느 부모가 지 자식이 말한다고 그렇게 해준다카는데.” -나
“우리엄마는 내가 말하면 다 된다칸다. 대신 내가 공부하면 된다.” -M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알 수 없는 이기심. 그럴리는 없지만 말도 안되지만 M의 말을 믿어보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안된다는거 왜 몰랐겠습니까.
그당시 전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꽉막힌 아이였기에 그러자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M이 철없는 생각을 하고있는거다. M의 부모님이 어린 M의 말을 들을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니 자존심 뭐 그런거 때문에 그카나?” -M
“내 자존심없다. 그래 없는김에 다 말하자. 우리집 니네집처럼 잘 살지도 못하고 내 우리 엄마 아빠랑 사이도 안좋다. 우리 엄마는 우리 오빠야밖에 모르고 우리 아빠는 세상물정모르고 아무도 내 신경쓰는 사람없다. 살면서 자존심 그런거 다챙기고 살았으면 내 이렇게까지 살지도 못했다. 근데 이제와서 니 앞에서 챙길 필요없잖아. 니는 니네 부모님이랑 잘 지내고 부모님 돈 잘벌어오셔서 좋겠네. 그거하나는 부럽네 나는 그런거 가져보지도 못해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M이랑 동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제 집안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M이 제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자마자 그동안 생각했던 제 못난 모습이 소세지 엮이듯이 줄줄 나오더군요.
“내 아부지 없다.” -M
편부, 편모가정 있을 수 있죠. 제 주위에도 한명 있었으니까요. 이걸 믿어야할지, 나보다 더 불쌍해보이려고 하는 말인지 갑자기 있던 아버지가 왜 없어졌는지. M의 표정을 살피면서 아무말않고 듣고 있었습니다.
“근데 니 말도 맞다. 아부지 판사였고, 내 중1때 돌아가셨다. 아부지 돌아가셔도 우리집 잘사는거 맞다. 우리 아부지 남겨주신 재산도 있고 우리 엄마도 잘 사는 집 딸이고 엄마도 돈 잘 번다. 내만 잘하면 된다. ” -M
그때 왜 제가 울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M의 아무렇지 않은 표정에서 슬펐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것만 못하는 내 부모랑 사는 내가 더 불쌍하다는 생각에 억울해서였는지.
그런데 그것만은 확실해졌습니다. 그 순간 M이 나와 아주 멀리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다른 사람이긴 하지만 예전만큼 멀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전히 M에 비하면 초라한데, 내가 느끼는 집안에 대한 열들감이나 부모님에 대한 분노를 M에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전 M과 미성년자이지만 맥주 한 캔씩 사서 (그때는 부모님께서 사오라 하셨다고 하면 동네 조그만 가게에서는 팔았습니다. 구멍가게같은...) 월드컵경기장에서 늦은 밤까지 얘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M과 어떤 남녀간의 감정은 없었습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친구기도 했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는 그 사이에 서로의 여자친구, 남자친구들을 계속 봐왔기 때문입니다. 그냥 서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점점 이야기가 끝이 보이네요.
고 2때였습니다. 문과, 이과를 정하고 진짜 수능에 대한 압박을 서서히 느끼는 시간.
잠깐 곁들여 이야기하자면 전 국어, 영어를 잘했지만 역시 부모님에게 이기지 못해서
이과를 선택했습니다.(취직등의 이유로) M은 원래 수학만 잘했기 때문에
(다른 문과 과목은 완전히 바닥)
M도 이과에 가게 되었고 우린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재능없는 친구들은 문과에 많이 갔고 그 중에 이과를 간 사람은 M과 저밖에 없었죠. (그당시 노는 친구들은 수학이 싫어서 대부분 문과가는 추세...)
저는 수학을 못해서 M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주말마다 M이 저희 동네에 와서 독서실에서 같이 공부하고 수학을 가르쳐줫으니까요.
그리고 대학 이야기를 할 때 전 서울에 갈거라고 했습니다.
서울에 갈 성적이 되니까 난 당연히 부모님 품을 벗어나서 서울에 갈거라고.
또 성적도 꽤 잘나오는 편이어서 서울의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편이었습니다.
“유학갈거다.” -M
“있는거나 잘해라 멍청아. 유학같은 소리하고 있네.” -나
처음 M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미쳤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여기서도 못하는데 거기서 잘될 리가 없으니까.
“니 내혼자 서울간다캐서 배아파서 그카나? 야, 돈있으니까 돈 발라서 서울가라. 그러면 되겠네. 이화여대 어ᄄᅠᇂ노 이화여대” -나
“캐나다 간다. 엄마랑 얘기 다 끝냈다. 딱 1년만 공부하고 와서 수능칠거다. 그때 니랑같이 서울갈거다.” -M
들고있던 담배가 다 타는 줄 모르고 벙쪄있었습니다.(담배를 습관적으로 피는건 아니고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할때면 피는 척만 했습니다. 어린게 담배의 분위기를 탔던건지 어쨌는지)
“그래. 니 인생 니 알아서 살아야지. 갔다온다고 뭐 달라지겠나.” -나
“니 괜찮나. 니 내없으면 얘기할 사람 없다 아이가.” -M
“내가 친구가 없나? 니 앞길이나 잘해라. 공부도 못하는기. 언제 가는데?” -나
“한 달 좀 덜 남았다.” -M
“니 진짜 공부 할라고 가는거 맞나. 갔다와서 학력 위조, 세탁 뭐 이런거 할라고가는거 아이가.” -나
“서울 갈 수 있으면 할 만한 건 다 해봐야지” -M
“야 서울 그거 뭐안가면되지. 취직잘해서 돈 많이 벌어봤자 니네집 만큼 못번다.
뭐하러 서울가서 아등바등 살라카는데?“ -나
“뭐 어쨌든 뭐든 하겠지. 내가 니한테는 안질라고”-M
“두고 보면 알겠지. 공부 열심히 해라. 가서 외국인여자들이랑 시시덕거리지 말고.” -나
“그리고 우리도 끝이다.” -M
“무슨 말인데?” -나
“모르겠다. 니 말대로 갔다오면 여자친구가 생겨있을지, 어떨지. 이 말 던져놓고 가는게 니한테 무슨 생각을 시킬지. 근데 니 성격상 내가 이런말 해도 잠시 듣고 잊어버릴수도 있고. 니는 다른 새끼들은 다 니 좋아하고 그카는거 알면서 왜 나는 눈치도 못채노.” -M
“갈라면 곱게 가라, 이 새끼야. 사람 흔들어놓고 가지 말고.” -나
당황하면...지금도 가끔 욕이 나옵니다. 그때 꽤나 화를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걸 눈치챈건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M이 씁쓸하게 웃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M과 많은 추억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하나씩 잊혀져 가고 있는데 이 때 저에게 처음으로 절교를 선언했을 때 그 시원한 웃음은 항상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그리고 나서 M은 정말 캐나다로 갔고 M이 보내온 편지(전화로 해도 되는데, 편지라니.)에 답장은 딱 한번 해줬네요.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M도 캐나다에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사진까지 동봉해서...(진짜 금발의 외국인 여자친구더군요) 답장을 했습니다.
그 때 사귄 남자친구와는 약 1년을 갔는데 결국 제 안 좋은 소문이 그 아이 귀에까지 들어갔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고3.....M은 캐나다에서 돌아왔습니다. 갑작스럽게.
그냥 다 잊고 이 집에서 벗어날 생각, 오직 서울에 갈 생각만 하고 살고 있었는데
M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M이 한국으로 다시 왔다고.
1년을 못채우고 돌아왔길래 역시 공부가 안 맞았나보다...생각했습니다.
우린 재회를 했습니다.
M의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M의 어머니는 제게 잘해주셨습니다.
어려운 제 집 사정을 듣고 저에게 정말 무용을 시켜주려 하셨으니까요.
그리고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제 모습이 어렸을 때 본인 같으셨다면서,
M과 친구들과 제게 맛있는 것도 종종 사주시곤 했습니다.
M의 어머니는 자동차 회사의 지점장이셨는데 여자의 몸으로 거기까지 가셨을 정도로 굉장히 호탕하고 여장부 성격이셨습니다.
사인은 자살이었습니다.
죽은지 3일정도 지나 다용도실에서 발견되셨답니다.
M도 유학을 가고 없었고,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셨답니다.
세상에 그렇게 밝아보이는데 우울증이라니. 그땐 이해가 안됐는데 제가 겪으니알겠더군요.
저도 밖에선 철없이 밝아 보이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