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웃대 (못된야옹)님 -
17부. D-day
황금같은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종례시간이 지나고 3교시밖에 없는 짧은 수업을 마친 난 평소처럼 가방을 잽싸게 싸메고 교실문을 나섰다.
익숙한 교실과 복도.. 계단.. 모두 매일같이 봐오던 학교풍경이었으나 난 그 어떤날보다도 의미가 있는듯 교문을 빠져나오는동안 까지도 마치 눈에 담아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시켜두려는듯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치 두번다시 안올사람처럼..
'어지간히 긴장되나보군 평소와 다른걸보면..'
"그래.. 오늘이 녀석이 말한 그날이니까.."
학생들에게는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꿀같은 휴식을 취할수있고, 직장인들에겐 상사의 눈치와 꾸지람을 유일하게 회피할수 있는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걱정과 불안으로 똘똘뭉처
그런여유따윈 전혀 없었다.
그리고보면 이 학교에 전학오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생전처음 또래친구들에게 멸시와 모멸감을 받기도 했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지민이를 알게되기도 했고.. 불가사의한 힘을 얻어 이런 상황에 처하기까지..
참.. 말로는 다 못할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교문앞에 서서 '서울 정학 고등학교' 문패를 살며시 어루만지던 난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이윽고 몸을돌려 집으로 향했다.
"죽을사람처럼 왜이래? 정신차리자 아자아자!"
되도않는 기합을 넣어보인 난 거리의 모든 환경을 만끽이라도 하려는듯 천천히 그렇게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길뿐이었다.
그탓에 십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삼심분이나 소비한 후에야 집에 도착할수있었고 가방을 아무렇게나 책상위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걸터앉은 난 주머니속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할수 있었다.
'5시 20분'
무심하게 주머니에 도로 넣으려다말고 기다렸다는듯 때마침 울리는 진동에, '드디어 올것이온것인가' 순간적으로 극도로 긴장한 난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휴대폰 바탕화면을 확인했다.
'못된년'
"아 난또 누구라고.. 갑자기 왠 전화야 얘는.."
기다리던 연락이 아닌것때문인지 극도로 긴장했던 긴장감이 순간적으로 느슨해지는 바람에 부리는 혼자만의 투정인지 투덜데며 통화버튼을 누른 난 익숙한 수화기너머의 목소리에 괜시리 짜증부터 냈다.
"아나~ 뭐냐"
"빨랑 빨랑 안받을래?"
카랑카랑한 여동생의 목소리에 반가움은 커녕 되려 분노만이 치미는 순간이었다.
"아 됐고 뭔일이냐고"
"니 접때 엄마한테 전화안했다며? 뭔일있는거 아니야?"
"어이구 니가 지금 내걱정 해주는거야? 오랜만에 기특하다야"
"미쳤냐? 엄마가 전화 한번 해보래서 한거거든?"
"아 니가 역시 그렇지. 별일없고 엄마한테 이상한소리나 하지말고 끊는다."
"나 아직 말안끝났..."
'딸깍'
'지이이잉 지이이잉'
딱잘라버리고 끊기가 무섭게 바로 울리는 진동에 짜증이난 난 핸드폰을 귀에 갖다데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고, 이내 카랑카랑한 여동생의 목소리가 아닌 기분나쁜 사내의 음성에 온몸이 굳어지는걸 느낄수 있었다.
"준비는 됐나? 이기준 큭큭"
솨아아아아...
어느순간부터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이 이제는 제법 굵직한 소나기로 바뀌어갔고 그런 빗물을 가르며 하얀색 세단 한대만이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딸각 딸각'
차내에는 빗물이 떨어지는게 매우 거슬렸는지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왔다갔다하는 와이퍼소리만이 적막을 깨고있었고,
이내 핸드폰 폴더를 거세게 닫는 소리를 시작으로 기다렸다는듯 뒷자리에 앉아있던 소녀의 입이 열렸다.
"에이씨 그새 누구랑 통화중이네.. 진짜 뭐야 이인간은.. 어떻게 바로끊어버리냐.. 우리가 누구 걱정되서 이러고 있는건데... 엄마 우리 친남매 맞기는한거야? 어디서 저런게 오빠라고!!"
"지윤아 그래도 오빠잖니.. 말버릇이 그게 뭐니!?"
"으이구 우리딸 인상쓰면 주름생긴다? 얼른 얼굴펴~ 아빠가 따끔하게 혼줄을 내줄테니 허허허"
"여보 운전할땐 뒤에 돌아보지 말랬잖아요!"
"어이쿠 미안~"
지윤의 투덜거림에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맞장구를 치던 그녀의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에게서 들려온 잔소리에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아무리그래도 너무하잖아요.. 갑자기 비까지내리고 그래서 내가 가지말자니까.."
"지윤아, 오빠가 무슨 안좋은일이 있었을수도 있잖니 이제 그만 하자 응?"
"그래그래 엄마말씀 들어~ 아빠가 도착하면 깨워줄테니 눈좀 붙이고~"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쳇"
"참 도착할때쯤에 깨워줄테니 오빠한테 문자하나 보내놓고.. 알겠니?"
"...네..."
지윤은 아직도 화가 덜풀렸는지 못마땅한 얼굴로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아버렸다.
"에휴 참 다른집들 남매들은 사이도 좋은데 쟤들은 누굴닮아서 저렇게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원~"
지윤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옆자리로 시선처리를 하며 중얼거렸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운전에 집중하던 남편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조그맣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당신닮았지..뭐..."
"뭐라구요?"
"아하하 농담이야 농담.. "
"운전이나 똑바로 해요!"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흐흐흐"
그렇게 그는 엑셀을 좀더 힘껏 밟기 시작했고, 차는 빗물을 가르며 고속도로를 힘차게 미끄러지듯 빠른속도로 나아갔다.
'끼이이이익'
택시한대가 급정거를 하는바람에 타이어와 바닥간의 마찰음이 기분나쁜 고음의 소리를 만들어냈고, 주변 사람들은 그 소음에 짜증난다는듯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여기요, 거스름돈은 됐어요"
'쾅'
누가보면 재수없어 보일법도 한 멘트를 가볍게 날린 난 차문을 열기 무섭게 달려가기 시작했고,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괜히 부딪혀봤자 좋을거 없다는듯 자연스럽게 길을비켜주었다.
집에서나올때만 해도 제법 비가 많이 왔었는데 한차례 소나기였는듯 그새 그쳐버린 덕분에 비를 맞으며 달리는 미친놈 소리를 들을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미친듯이 달리던 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기 바빴고 때마침 6시를 알리는 정각음에 나직히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30분전
"준비는 됐나? 큭큭.."
"........"
"이쪽은 말이야 널 위한 특별한 선물까지 준비했단 말이지 큭큭"
"닥치고 어딨는지나 말해 아작을 내줄테니"
녀석의 재수없는 비아냥거림을 듣고있자니 긴장됨과는 별개로 짜증이 솟구쳐오른 난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호오~? 일주일새에 많이컸네? 큭큭큭.."
"피차 시간끄는거 별로지않냐?"
"............"
내말에 녀석은 기분나쁜 웃음을 멈추더니 순식간에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내리깔았고, 전화상의 통화인데도 불구하고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어차피 죽을새끼가 꼴깝떠는꼴이 우습구나. 하나만 분명히 말해주지 니놈이 그렇게 시건방지게 굴수있는것도 지금뿐이다. 6시까지 창천동 바람공원으로 와라."
"뭐?"
"와보면 익숙한 녀석들이 반겨줄거다. 서두르는게 좋을꺼야 네 주변사람 신경도 좀 써야지 안그래?"
'딸깍'
"그게 무슨소리야 이봐.. 이봐 ..박형사 이 개.."
잠시도 쉬지않고 달린덕분인지 저 앞에 '바람공원' 이라는 팻말을 확인할수 있었고 서둘러 입구를 지나 주변을 살폈으나 익숙한 얼굴은 커녕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공원내부는 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법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나무들로 가득한 사이드와는 다르게 중앙엔 어린애들이나 놀법한 그네를 비롯한 미끄럼틀등 놀이기구가 몇개 있었고 그 뒤로 이어져있는 담벼락엔 아이들의 낙서치고는 제법 정교한 바람개비그림만이 날 반겨주는듯 했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아니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마치 이곳에 존재해야 하는것들을 강제로 내쫓아버린듯한.. 지금껏 녀석들과 싸울때마다 느꼈던 이질적인 이 감각..
'결계다'
역시.. 이제서야 조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주변사람을 언급한 녀석의 말에 정신없이 오느라 눈치채지 못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분명 달려오는 동안엔 사람들이 꽤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이 공원입구로
들어오면서부터 아예 보이지 않기 시작한것 같았다.
"이런걸 이제서야 눈치채다니.."
가만.. 그래도 그자식이 괜히 그런말을 한건 아닐텐데..
설마..지방에계신 부모님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이야기인건가..? 서울엔 딱히 내 인맥이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그렇게 까지 생각하니 문득 아까 걸려온 여동생의 전화마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고 난 불길한 생각에 주머니속 휴대폰을 꺼내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010 7744 2.......'
"쐐에에에에에엑"
'타악'
번호를 누르는순간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들린다 싶더니 어느새 날아온 푸르스름한 기운이 정확히 내손을 강타했고 그탓에 들고있던 휴대폰은 저만큼 날아가 나무틈 사이에 쳐박혔다.
그리고 너무도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난 자연스럽게 푸르스름한 기운이 날아온 방향으로 서서히 눈을 돌렸다.
"어디다 전화걸라고 기준아"
"..헛....네가.... 네가 어떻게... 살아있..는거야...."
"별로 죽어도 상관없었는데 말야.. 다시 돌아왔다. 억울한 이야길 들어서 말이지.. "
"강..준..석...."
언제부터 있던건지 미끄럼틀 위에서 날 내려다보며 씨익 웃는 강준석을 본 난 충격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나때문에 죽은 녀석이 어떻게 살아있을수 있는건지..
나이트메어도 죽은인간은 살리는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지금 저건 대체 누구란 말이야.. 말하는 억양도 목소리도 생김새도 완전히 녀석인데 대체 뭐냔말이냐..
"많이 놀랐는가 보네.. 기준아 아니 빵, 지민일 죽여놓고 연기 참 잘하드라? 그런것도 모르고 대신 몸을날려 죽어준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그치?"
"무슨 소리하는거야.. 그보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글쎄? 그리고 듣자하니 네 몸속에 뭔가 있다며? 역시 그럼 그렇지 그 허접한 빵셔틀이 날 어떻게 이겼겠어 역시 이유가 있었구나 ㅋㅋ"
"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박형사 그새끼냐? 내가 지민일 죽였다고 한게?"
순간 준석의 눈이 부릅떠지는가 싶더니 한손을 들어 내게 겨냥한채 뭐라 중얼거렸다. 그순간 아까 날아온것과 비슷한 푸르스름한 기운이 쏜살같이 날아왔고 난 양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날아온 기운을 양옆으로 흘려버렸다.
덕분에 날아오던 기운은 양옆으로 흩어지며 결계의 공간을 세차게 흔들었고 그모습을 본 준석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오~ 우리 빵 역시 싸울맛이 좀 나겠는데?"
"네가 정말 강준석이 맞다면 이러지마 난 너랑 싸우고싶지 않아! 박형사 그새끼가 널 부른거냐고!"
"새꺄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마라. 그새끼? 웃기지마 그분은 억울하게 죽을 내게 새삶을 주신분이야. 너같은 새끼가 함부로 입에 올릴분이 아니란말이다."
말이끝나기가 무섭게 준석은 몸을 날려 내게 접근해왔고 가만히 있다간 김민기와 김동혁때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것을 알고있기에 난 전력을 다해 기운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을지도 모른다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순식간에 내몸에선 검은색 아지랑이들이 어른거리기 시작했고 준석의 공격에 대응하는데는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하압!!"
준석이 내지른 주먹을 몸을숙여 피한 나는 앞으로 굴러 물구나무 서듯 뒷발로 그의 턱을 노렸고 준석은 마치 그럴걸 알았다는듯 가볍게 내 발을 낚아채었다.
갑작스래 한쪽발이 잡힌것에 당황한 난 내발을 잡은 준석의 손을 발판삼아 몸을 날렸고 이내 남은 한쪽발로 정확히 준석의 얼굴을 가격할수 있었다.
'빠각'
'슈우우우우우우우우 콰가강'
온몸을 기운으로 감싼탓에 역시 파괴력은 상상이상이었고 저만치 날아가 나무에 부딪힌 준석은 입가에 흐른 피를 닦으며 매섭게 쏘아보았다.
매서운 눈초리완 달리 입고리는 더더욱 올라간 그 언밸런스한 모습이 괴기스럽기까지 했던 난 다음 공격을 위해 자세를 바로 잡았다.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다말고 땅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들었고 그건 아까전 날라가버렸던 내 휴대폰이었다.
준석은 마치 날 보라는듯 들고있던 휴대폰을 사정없이 바닥에 내리찍어 부숴버렸고 난 여러가지 복잡미묘한 이유로 눈가가 촉촉해질수밖에 없었다.
'시발 할부금 11개월 남았고만....'
애써 티내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은 난 손에 모으고있던 기운을 녀석에게 방출시켰고 난 바람을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그 기운을 준석은 절대로 피할수 없을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준석은 피할생각은 커녕 가만히 서있을뿐 심지어 막으려는 자세조차 잡지않았고,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붉은빛의 기운에 의해 내 공격은 준석의 바로 코끝에서 무위로 돌아가버렸다.
"야 강준석 저자식은 내가 죽인다고 했지!"
알수없는 붉은빛의 기운이 날아온 방향으로 황급히 고갤 돌린 나는 미친듯이 쿵쾅 거리는 심장이 곧터져버릴듯한 감각에 사로잡힌채 그자리에 굳을수밖에 없었다.
"기준아 오랜만이네?"
"..........."
"다시만날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다구.."
".........."
"내손으로 널 죽여버리기 위해"
"..........지민아"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난 떨어지는 눈물로 바닥을 적시는것 외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18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