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웃대 (못된야옹)님 -
"길은 막고 서서 뭐하는거야 시발"
신경질적으로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술취한 남자에 의해 멍하니 서있던 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다.
'여기는..'
내가 얼마나 잠들었던건지 도통 모르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도심의 공기가 코끝을 자극함도 잠시, 뻐근한 통증에 머리를 움켜잡는순간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든다. 감촉이 뭔가 이상하다. 마치 여자의 머릿결처럼 부드럽달까?
그리고보니 은은한 향기까지 나는것 같다. 문득 의아해진 난 내손을 바라봤다.
우윳빛 피부의 가녀란 손목.. 아기같이 작은 손.....
고개를 숙여 하반신부터 찬찬히 훑어본다. 얼핏봐도 230이 될까말까한 아담한 신발사이즈에 가늘디 가는 다리, 그리고.. 좀더 위로 올라가자 뭔가 허전한 느낌마저 든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애써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러나 눈빛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하다. 마치 열면안되는 판도라의 상자에 다가가듯 내 손은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향한다. 눈을 질끈 감고 손에 힘을 살짝 주어본다.
"..........."
당연히 있어야할 부위가 잡히지 않는다....아니 단순히 작아서 잡히지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 없다.... 없다..? 없다고!?!?
"뭐야 신발!!"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는순간에도 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손을 바지속에 넣어본다. 아뿔사.. 이건 내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남의몸에 들어와놓고 니꺼 내꺼가 어딨냐 그런말이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되는 그것이
다른 그것이 되어있었다. 쓸어올리는 손은 점점 상반신으로 올라와 무언가 물컹한 물체에 맞닿는다. 이 감촉.. 이 몸의 주인이 수박을 옷속에 넣어뒀을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망치로 얻어맞은듯 머릿속이 멍~ 하다. 텅 빈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나다니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신호가 바뀌며 차들이 멈춰섬에 따라 차유리로 비치는 내 얼굴의 윤곽이 점점 드러난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이상한 눈초리로 힐끔힐끔 쳐다본다.
하긴 한손은 그곳에 또 다른 한손은 가슴에 올려둔채 멍하니 서있는 내가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일리 만무하게 보였겠지만.. 문제는 그런 하찮은게 아니었다.
문제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내가...내가.....'
윤곽이 또렷해짐에 따라 난 두가지를 확실하게 알수 있었다. 내가 여자의 몸속에 들어와 있다는것과 그녀는 내가 익히 너무도 잘 알고있는 사람이라는것...
그리고 그 두번째 명확한 진실앞에서 내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진채.. 눈가는 본이아니게 점점 촉촉하게 젖어들어간다.
'하필이면...'
[볼을타고 흐르는 은하수를 느낀다.]
'왜..'
[은하수는 곧 작은 하나의 별이 되어 턱끝으로 흘러내린다.]
'왜 너인거야..'
[난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채 흐느낄뿐 아무말도 할수없었다. 차가운 바람만이 그런 나를 위로하듯 내 머릿결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간다.]
'흐윽........'
그녀는 다름아닌 내 하나뿐인 여동생
지윤이었으니까..
NIGHT MARE 2 - Dark Shadow
나이트메어 그 두번째 이야기 : 다크섀도우
2화. 활시위를 떠난 살.
"소개팅은 잘 한거양?!"
"........"
"지윤찡?"
"........"
"지윤찌이이잉!!!!!!!!!!!!!!!!!!!!!!!!!!!!"
"어..어?..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던 난 갑자기 귀가 찢어져라 소리치는 그녀로 인해 반사적으로 입을열었다.
"너 갑자기 왜그래 얼빠진 표정을 하고서는.. 내말 듣고있는거야?"
"어.."
"잘되가나 싶어서 전화했더니 갑자기 당장 데릴러 오라질 않나, 기껏 왔더니 정신줄 놓고서는 멍하니.. 대체 뭔데? 무슨일 있던거야? 그오빠가 너 맘에 안든데?"
"아냐.. 그런거"
"아니면 그오빠가 마음에 안들어? 나한테만 털어놔방! 뭔데 그래 대체!"
"아 미안한데 아무래도 좀 쉬어야될것같다."
"뭐야 진짜.. 얘오늘 왜이러니.. 말투도 이상하게 더 딱딱해지고선.."
"미안한데 집까지좀 데려다주면 안될까..? 몸이 좀안좋아서.."
"집? 지금 이시간에 집엘 내려가겠다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그녀의 얼굴에 난 뭔가 실수를 했다싶어 재빨리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지윤이는 집에서 생활하는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 아니 농..농담이야.. 하하.."
"너 지금 룸메이트 없다고 외로워서 이러는거야?"
룸메이트라.. 그럼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건가..? 고등학교? 아니 지금이 2014년이니 지윤이는 스무살이다, 그럼 이 근방의 대학교에 재학중인것이 틀림없겠지?
"어?..어.. 맞아 룸메이트가 없어서.. 외로워서 그런가봐.."
"기집애 내가 정말 못산다 못살앙, 이 언니가 함께 있어주고 싶지만 우리집 통금시간 철저한거 알잖아.. 외박은 어림도 없다구.."
"괘..괜찮아.."
"대신 기숙사까진 데려다 줄께, 너 오늘 많이 아퍼보이기도 하니까.. 내가 마음이 아프다 이기지배양"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긴것 같았다. 빨리 기숙사에 들어가서 꿈을통해 나이트메어부터 명확한 해답을 듣는것이 급선무다. 왜 하필 지윤인건지.. 왜 지금에서야 내가 깨어났는지 말이다.
기억이 돌아오는 기간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 그렇다고 3년이나 잠들어있을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낮선 기숙사 건물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들어가서 약먹고 푹자'라는 말을 끝으로 저만치 멀어져 갔고,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또하나의 심각한 위험고비를 맞이해야만 했다.
'내방번호를 모른다는것'
미칠노릇이었다. 그생각을 못하다니.. 그렇다고 이건물의 모든 방을 뒤질수도 없는노릇이거니와 그럴 명분조차 없으니 말이다. 발만 동동구른채 심각한 고민에 빠진 나는 어쩔수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날 대하는 행동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지윤이와 꽤 친한 사이임이 분명했다. 그럼 방번호쯤은 당연히 알고있겠지?
휴대폰 수신기록에 찍혀있는 지혜라는 이름을 가볍게 터치하자 요즘 유행인듯한 노랫말이 흘러나왔고 얼마안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새 내가 또 보고싶었쪄여~? 지윤찡!"
"아.. 응..응.."
"정말 많이 아픈것 같네.. 약은 먹었어?"
"아.. 그보다.. 그 있잖아 그거.."
"응? 뭐가말이양?"
"내 방번호가 몇번이~~~게?"
"........."
"........."
아 말해놓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뭔가 자연스럽게 물어봤어야 되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전화해서 자기 집 주소를 물어보다니.. 대놓고 기억을 잃었다고 광고하는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순간적으로 싸~해진 수화기너머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며 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윤찡 너무하는거 아냐!! 내가 지윤찡 방번호도 모를정도로 무관심한 못된 친구라고 생각하는거야? 흑흑흑.."
"아..아니 그게 아니라.."
"1109호잖아 1109호!! 내가 한번도 안놀러갔다고 어쩜 나한테 이럴수가 흐어어어엉.. 몰라 끊어!!"
'띠리링'
"........."
지혜가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기억상실의 대한 의심을 받을일은 없어보였기에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서둘러 기숙사 건물로 들어간 나는 1109호를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었고, 망설임 없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지혜 말대로라면 룸메이트는 지금 없는게 분명했으니까.
여자들만 사는공간이라 그런지 좋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고, 그탓에 묘한 설레임마저 들었다. 마치 여탕을 몰래 훔쳐보는듯한 죄책감도 함께 말이다.
양쪽으로 나란히 놓여있는 핑크색 침대중 어느쪽이 지윤이가 사용하는 쪽인지 알리없던 나는 그냥 좀더 가까운 곳을 택해 쓰러지듯 벌러덩 드러누웠다. 금방이라도 잠이쏟아질듯 몸이 무겁다. 오늘하루 나에겐
그어떤날보다 충격적이었고 혼란스러웠으니까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몰랐다.
문득 아까전 베어버렸던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목을 베어버릴때의 그 감촉까지 생생하다. 근데 어디서 본것같은 얼굴이다. 대체 놈은 누구고 어디서 나타난거지? 역시 그놈도 그 존재와 관련이 있는거겠지?
일단 나이트메어와 빨리 접촉을 해봐야겠다.
쏟아지는 졸음으로 인해 난 이런저런 의문을 뒤로한채 천천히 눈을 감는다..
ㅡ
몽롱한 의식속에서 난 감겼던 눈을 떴다. 나이트메어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곳은 기숙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바로 낮익은 그의 목소리가 공간을 짖이기며 내 귓가에 들려왔다.
[3년만에 드디어 눈을 떴군? 기다리다 죽는줄 알았다.]
"나이트메어.."
[물어볼게 어마어마하게 많을것 같다만? 큭큭]
"왜 하필 지윤인거지..?"
[뭐?]
"왜 하필 내동생 몸속에 들어간거냐고 내가!!"
[큭큭.. 그말은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아니면 다른 누군가는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말로 들리는데?]
"말돌리지마, 그런말이 아니잖아! 넌 매번 이런식이었어 언제나! 마치 날 가지고 노는것처럼 말야!"
[왜 네 동생이었냐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중에서 네가 들어가기 가장 적합했던건 그 몸 뿐이었어. 거기에 네가 처음 날 받아들이고 멀쩡했듯이, 너와 같은 핏줄이라면
당연히 소멸하지않고 가능할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나때완 달리 이미 지윤이는 소멸해버렸잖아!! 네말이 맞다면 왜 지윤이의 기억을 공유할수 없는거지? 난 지금 몸안에서 지윤이의 흔적을 전혀 찾을수가 없다고!!"
[이기준, 니가 남들보다 특별하다곤 하나 한낱 인간, 신이 아닌데 당연한것 아닌가? 그리고 네 동생은 깊은 내면에 잠들어있을뿐 사라지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큭큭]
"사라진게.. 아니..었어..?"
아까전 충격에서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사라진건 아니라는 나이트메어의 말에 어느정도 슬픔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약간은 맥이 빠지는 순간이기도 했고.
[그래, 3년간 네 동생이 널 못느꼇듯이 지금의 너 역시 못느끼는것 뿐이야. 두 혼의 위치가 바뀌었을뿐이지. 그리고 네 혼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혼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정도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만한데.. 바보냐? 하긴.. 3년전 죽었을때 너와 내가 나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공유했던 지식도 빠져나갔을테니.. 어쩌면 당연한건가..]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조금만 생각했어도 알수있는 결과였는데,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한심스러웠다. 너무 오랜만에 정신을 차린 이유에서일까? 충격으로 적잖히 이성을 잃을뻔한건 사실이었으니까.
"지금 나 욕하는거....?"
나이트메어는 내 말은 안중에도 없는지 깔끔하게 무시한채 쉴새없이 입을 놀린다.
[그건 그렇고 안좋은 소식이 있다.]
"잠깐, 지민이는.. 사람들은 어디에있지? 3년전 헤어질때 분명 꿈을 통해서라면 언제건 만날수 있다그랬잖아?"
[사념체로써 지금은 잠들어있다.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만나게 해줄수 있다만.. 불러줄까?]
"아.. 아냐, 지금 이모습을 보이면 그들역시 당황스럽기만 할텐데 뭐.. 그냥 생각난김에 물어본거야"
[큭큭.. 그럴줄 알았다.]
왠지 그들을 보면 그냥 나도 그들틈에 끼어 사념체로써라도 같이있고 싶어질 것 같은 약한 마음이 들었던 난 고개를 저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 내모습에 나이트메어는 그럴줄 알았다는듯한
음흉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열었다. 아무래도 놈에게 흡수되버린탓에 두번다시 그의 모습을 눈으로 보는건 무리인것 같았다. 뭐 본다고 해봐야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해가지고선 온몸에 닭살을 돋게
만들것임이 분명했지만, 왠지모르게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새삼 나만 힘든게 아니었다는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럼 하던이야기를 이어 하도록 하지. 안좋은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
"다름이 아니라..?"
[차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지..]
"균열..?"
[그래, 이곳 망각의세계와 현실의 경계선이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네가 과거에 경험했던 그 존재들이 모든 인간들을 덮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야. 현실이 이곳이되고 이곳이 현실이 되는
즉 하나가 되버리는것이지.]
"그게 무슨.."
[아까 놈을 베어버릴때 뭔가 의아함이 들지않았나?]
"글쎄.. 과거랑 딱히 다를건 없었는데.."
난 놈의 팔과 목을 베어버렸을때의 그 감촉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박선우들과 전투에서 많이 경험했던 감각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난 늦은 의아함이 망치가되어 뒤통수를 후려치는것 같은 착각을 받었다.
[어지간히 둔하구나 너란놈은.. 곰곰히 생각해봐라, 과거엔 내가 '네 몸속에 들어가 있었기에 능력을 사용할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넌? 혼자서 어떻게 힘을 쓸수 있었지?]
"...그리고 보니...."
[그건 이미 이곳세계와 현실이 융합되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계에서 일정 이상의 힘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결계가 쳐지는건 수없이 봐와서 알꺼야. 결계안에서 죽임을 당하는 방식에따라 표면적으론 가장 자연스러운 사고사로 바뀌어
노출된다는것도, 물론 그대로 드러나버리는 예외도 있지만, 여하튼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타나게되는 이유는 결계의 원천이 꿈이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인간이 생각할때 가장 자연스럽게 나타나는것이고. 그러나
과거의 넌 결계 안에서조차 나 없인 힘을 쓸수가 없었어. 아니 너뿐만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마찬가지야. 그런 네가 나없이도 힘을 사용했다면 그건 이곳 세계의 기운이 결계로 유입되고 있다고밖에 설명할수 없는 일이지. ]
"결계의 원천이 꿈이라고..?"
[그래, 그러나 꿈의공간은 단순히 이곳 망각의 세계로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할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냐. 네가 과거 힘을 사용할수 있었던 이유는 나였지만 지금은 내가 지배하는 이 세계의 기운이 결계를 통해 유입되기에 가능한것이지.
그말은 곧 불가능한 일이 균열로 인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이야.]
"흠......"
[죽은인간의 혼이든 잠든인간의 정신이든 모두 꿈의공간을 거처서 이곳세계로 유입되는데, 꿈의 공간은 일종의 정거장인 셈이지. 이곳에서 죽은인간의 혼은 사후세계로, 살아있는 인간의 정신은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자고 일어났을때 꿈의 기억이 생생하지 못한 이유도 다 망각의 세계인 이곳이 종착점이기 때문에 기억을 잃는것이고, 그러나 지금은 그 균형이 흐트러지고 있어. 현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결계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거지.]
"...흠...."
[어이 제대로 듣고있는거 맞나?]
"아마도...?"
[............아무튼, 살아있는자의 정신이 이곳에 오래 머물게되면 일전에 말했듯 사념체로써 이곳을 벗어날수가 없게된다. 일종의 지박령과 같은 맥락이라 보면 되겠지. 이런 이곳이 결계를 통해 계속 유입된다면 현실세계와 하나가 되는건
시간문제야 즉, 모든 살아있는것들이 사념체가 되버린다는것이지.]
'결계가 열림으로 이곳의 기운이 유입된다... 그러나 나와 나이트메어가 현실에 있을 당시엔 균열이 생기지않았다. 즉 균형이 어느정도는 맞아떨어졌다는것.
그러나 지금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렇다는건 과거에 비해서 결계가 확연하게 자주 열렸다는것? 거기에 과거완 달리 나이트메어가 사념체로써 이곳에 봉인되다시피 해버렸으니.. 힘의균형이 깨지는건 당연한건가..'
"네가 없어지자마자 보란듯이 놈이 결계를 이용한건가..."
[그래, 네가 생각하는대로다.]
"........"
[네가 잠들어있던 3년동안 그놈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은자들의 혼으로 인해 살아있는 자의 혼이 소멸되는일이 삽시간에 엄청난 속도로 늘어갔어. 놈은 곽거의 박선우, 이상호 처럼 죽은자들에게 강한힘을 쥐어주진 않았지만
그때완 비교할수 없을만큼 숫자를 늘려갔지. 덕분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표면적으로 세상에 드러나버렸어, 그러나 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 죽은이들의 혼이 모자라다고 생각된건지 살아있는자의 몸이 목적이아닌
단순한 학살마저 서슴치 않으며 죽은이들의 혼을 닥치는대로 가둬들이기 시작했지.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사람들은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의 개입을 믿어의심치 않았고, 지금은 그존재를 다크섀도우라 부르더군..]
"다크섀도우라... 그놈을 칭하는 말인가... 뭔가 거창해보이는데?"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놈의 목적은 처음부터 차원의 균열을 이용한 세상의 단일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난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하면 되는거지?"
[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 존재를 찾아내서 소멸시켜 버리는것.]
"..... 장난해? 대책없이 이럴래? 너도 못이기는걸 나보고 가서 또 죽으라고?"
[일전에 내가 너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줬을때 네가 죽어버리겠다고 했던것 기억하나?]
"그건왜? 어..기억나, 그땐 정말 앞뒤 가릴게 없었으니까"
[그때 넌 현실에 존재하는 커터칼 하나를 이곳으로 소환했었지.. 그때 난 어렴풋이 너에게 재능이 있다는걸 알수있었어. 그때 감각을 되살려라. 그래서 그 존재를 이곳으로 소환하기만 하면 돼. 그럼 뒷일은
내가 책임지고 마무리 짓도록 하지, 내가 지배하는 이곳 공간이라면 그놈이라 할지라도 내가 창조한것은 변함없으니까 분명 힘을 쓸수 없을거다.]
"........"
말이 쉽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닌것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태연한 모습의 나이트메어의 목소리에서 울화가 치미는 순간이었다.
"소환이라...."
[이번에야 말로 승산이 있다, 지난번처럼 정면 대결로 그놈을 이기는건 무리라는것 너나 나나 알고있잖아?. 또다시 죽임을 당할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전에 결계가 쳐지는 순간 그때가 기회다. 그때를 노려.]
"후우.....정말.. 말이쉽지..."
[내가 놈에게 흡수되지만 않았어도 내가 충분히 할수있는 일이었다만.. 지금으로썬 모든 사실을 알고있는 너밖에는 희망이 없다. 늘 부담만 안겨줘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만...]
안어울리게 사과까지 하는 그의 음성에 난처해진 난 더 따져볼것도 없이 그의 제안을 승낙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러기위해 이렇게 돌아온거니까.
사실 무엇보다 이렇게 침울한 그의 목소리는 듣고싶지 않았다. 좀 재수없긴 해도 본래의 그 모습이 나이트메어에겐 어울리니 말이다.
"에효, 알았다 알았어. 어차피 놈을 박살내려고 온건데 그까짓거 못하겠어?!"
[그래야 네놈 답지! 안그래? 큭큭]
순식간에 본래의 캐릭터로 돌아온 그가 좀 얄미워 살짝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근데.. 문제가 하나있는데.. 말이야.."
[뭐지..?]
"나 있잖아.. 앞으로 여자로 살아가야 되잖아.. 어떻게 생각해..?"
생각해보니 가장 중요한건 이쪽이었다. 갑자기 바뀐 성별로 어떻게 이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끝낼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얼굴까지 붉히며 안절부절 못하는 내게 나이트메어는 한참동안을 뜸을들이더니 이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런말하긴 뭐하지만.. ]
"...어... 뭐하지만..?"
[너.. 은근히 좋아하는거 아니냐]
"..........."
[아님 말고... 복받은놈. 큭큭]
"야!! 이런식으로 나올래?!! 아오!!!!!!"
ㅡ
"나이트메어!!"
감겼던 눈꺼플이 번쩍 떠지며, 기숙사의 회색빛 천정이 동공에 맺힌다.
'하여튼 자기 할말만 하는 녀석이라니까'
난 툴툴거리며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가 내 움직임에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춘다.
왼편구석에 자리잡고있는 책상위에 작은 아날로그 시계가 불빛을 반짝이며 현재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4시 50분'
밤 10시가 넘어서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뻗었으니 대충 6시간은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아침까지 시간이 꽤 남았기에 도로 드러누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의해
그런 나약한 생각은 저만치 지구반대편으로 날려버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검은 생머리에 봉긋한 가슴 그리고 잘록한 허리라인과 그곳을 거쳐 내려가는 늘씬한 다리.. 그랬다. 앞으로 지윤이로 살아가야하는 내겐 숙지해야 할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으니까.
너무 조용한 적막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예전의 습관탓인지 난 침대머리맡에 놓여잇는 작은 리모컨을 집어 티비를 켠다. 이윽고 1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SM전자의 구식 텔레비전에서 '파지직' 소리와 함께 불빛이 뿜어져 나온다.
점차 화면이 선명해지자,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송으로 보이는 드라마가 한창 방영중인걸 알수있었다. 순간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당시 한창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비밀의정원' 드라마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 거기서도 남자주인공의 영혼이 여자주인공의 몸에 들어갔었지.. 나도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도 그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난 친오빠 동생 사이니.. 기분부터 전혀 다른건 분명했다. 뭐 그렇다고 사랑하는 여자의 몸속에 들어가고 싶다는건 절~대 아니고.. 믿거나말거나.
[눈이안보이는 난 이렇게 쉬운데 오빠 너는...]
[........]
[뭐? 동물들 안락사 시키는약? 왜? 대체 날 왜 안죽였어? 왜!!]
[영이야.. 사실 그건 내꺼였어..]
[오빠 니가 대체 어떻게.. 참 쉬웠겠다..]
[그래!! 마음만 먹으면 너같은건!!!.... 참 쉬운데... 내가 왜 안죽였을까..?]
[유언장 때문이겠지..안그래?]
[그럴수도 있겠지, 그게아니면 널 많이 사랑하거나..]
[........]
'하얀 눈꽃 처럼~~~♪ 우 워우워어~ 어~~ '
[그동안 '그 여름, 태풍은 불까?' 를 시청해주신 시청자여러분께 다시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난 티비를 껐다.
'지금 드라마 최종회따위 보고있을때가 아냐!!'
손으로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던 난 화장실로 달려가 세안을 하기 시작했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화끈거리던 얼굴을 식혀주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한번 찬찬히 훑어보았다. 물방울이 볼을타고 턱끝에 맺히며 마치 떨어지기 싫다는듯 데롱데롱 메달린채 바둥거린다. 오랜만에 이렇게 가까이서 지윤의 모습을 보고있으니
새삼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울로 오기전만해도 정말 초등학생 몸이였던 녀석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늘씬한 여자가 된건지, 놀라울 뿐이었다. 딸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이
이런것일까? 뚫어져라 가슴만 보고있던 내모습에 난 화들짝 놀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내가 무슨 너한테 이성적인 감정을 느꼈다거나, 그런거 절대 아니거든!? 내가 무슨 변태도 아니고..!!"
그래봤자 혼자만의 독백이란것을 잘 알면서도 내심 지윤이가 나중에라도 혹시 기억하게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앞섰기에.. 내가 생각해도 참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나였다.
"...뭐 그래도 이것만은 말해둬야 할것 같네"
난 거울을 똑바로 응시하며 최대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씻고, 옷갈아 입을땐 최대한 눈감고 하도록 할께.. 그러니까.. 오빠 너무 미워하지마 지윤아.."
마치 마음속의 있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는것 처럼 조금이나마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물건을 빌려쓸때 허락을 받는것처럼 이것도 일종의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난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화장실 불을 껐다.
'알았어 이인간아'
'흠칫'
난 급히 불을 켜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거울속엔 놀란 표정의 내 모습만이 나와 마주하고 있을뿐이었다.
"잘못들었나.."
순간적으로 귓가에 지윤이의 목소리가 들린것만 같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착각이 아냐. 분명, 넌 내안에 있어.'
미약하지만 목소리를 들었을때 몸속에서 지윤이의 혼을 잠깐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그때문일까? 나이트메어의 말만 들었을때 보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 졌다. 막혀있던 속이 뻥 뚫린것 처럼 시원하다.
3년만에 눈을 뜨고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따뜻한 감각에 왠지 모를 자신감마저 넘쳐흐른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놈을 뭉개버릴수 있을것만 같았다.
어두웠던 방안을 언제부턴가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어와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