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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 (24화)

윙윙 |2013.05.24 16:15
조회 2,241 |추천 11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감식반에서 맡는 문제 아니야?”


“글쎄다... 중요한 증거로 취급을 안하는데, 보여주질 않아. 넌 뭐 들은거 없냐?”


“아니? 나도 몇 번 궁금하긴 했는데... 반장님도 입을 꼭 닫고 있든데?”


“중요 증거 품목이 아닌 게 이상해... 쓰러진 상황에서 꼭 쥐고 있었다며? 안젖게...”



그들은 그대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야길 조금 더 들었던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꽤 중요한 정보를 들은 나는 그것들을 종합하기 위해서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고시원엔 서주희가 헤드셋을 착용하고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뭘 적냐?”


“들리는 내용이에요. 그냥 듣고만 있기는 심심해서 적고 있어요.”


“으음.......”



서주희가 적은 내용은 별로 쓸데없는 내용들 뿐 이었다.

 

 

전선기가 통화는 목소리가 어떻다는 둥, 오늘 먹는 점심은 볶음밥이라는 둥, 도움 안 되는 내용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단은 성훈이의 핸드폰에 있는 정보를 컴퓨터로 모두 옮겼다.

 

 

성훈이가 저지경이 된 이상 이 핸드폰도 더 이상 쓸 수 없다.

 

 

혹여나 추적을 당할까봐 옮기는 즉시 폐기시켜 버렸다. 그리고 오늘 들었던 일을 정리해 놓았다.



“음.......”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성훈이의 수첩.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아까 정식이가 하는 말이 영 맘에 걸렸다.

 

 

별로 중요한 증거품목이 아닌데도 공개를 안 한다고 한다. 심지어 같은 경찰끼리도 말이다.

 

 

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그 수첩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했다.


처음엔 경찰청에 숨어들어갈까 했지만 그건 정말 미친 짓이다.

 

 

경찰청 건물은 교묘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마땅히 숨을 곳도 없고 숨어들어갈 곳도 없다.

 

 

그렇다고 정문으로 들어가자니 너무 뻔뻔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참을 어떻게 잠입할지 생각을 해봤는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잠입하면 안 되는 이유만 산더미처럼 나왔다.



“뭐해요?”



내가 계속 한 가지 일에 매달려있자, 서주희가 심심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녀를 한번 슥 쳐다보고 귀찮다는 듯 말했다.



“일.”


“에?”



그녀는 내 짧은 대답에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몇 번 짓고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그리곤 단단히 삐진 표정으로 다시 헤드셋을 끼고 아까 적던 한심한 것들을 계속 적어나갔다.

 

 

정리를 대충 마친 나는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창문을 열고 보니 아직 밝긴 했지만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다.

 

 

이번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간단하게 챙기고, 마지막으로 시계를 한번 확인했다. 5시 30분이었다.



“또 나가요?”


“어, 이번엔 못 돌아올지도 몰라.”


“예? 그럼 전 어떻게 하라고...”


“그건 니가 알아서 해. 니가 날 돕겠다고 했지 내가 너 책임져준다고 했냐?”


“이런 무책임한...!!”



나는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나왔다. 듣진 않았지만 분명 욕의 종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길로 다시 경찰청으로 향했다. 그렇다고 경찰청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경찰청 주변을 살피다가 구석에 새워진 흰색 소나x를 발견했다.

 

 

나는 평소에 잡혀온 양아치들에게서 배운 차 문 따는 법을 해봤다.

 

 

운 좋게도 이 차는 꽤 오래된 차라 무리없이 차문이 열렸다.



“흐유... 더워라...”



차 내부는 엄청 더웠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 매번 차를 새워두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뒷좌석의 틈새로 들어가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몸을 구겨 넣었다.

 

 

갑갑하게 있으려니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가끔씩 쇠 부분에 살이 닿을라치면, 엄청 뜨거워 화상입은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20분의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나서야, 차에 반응이왔다.



-철컥.


“.......”



더위에 호흡이 점점 턱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 드디어 차문이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신발, 오늘도 역시나 덥군... 간만에 일찍 퇴근하는데 찝찝하게...”



목소리의 주인은 가방을 아무렇게나 조수석에 던져넣고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숨을 참으면서 까지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때 운전석의 자리를 조절하려는지 운전석 의자가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 몸에 걸려 상당히 부자연스런 움직임이었다.



“어...? 이게 왜이래?”


“.......”


숨이 나도 모르게 꼴깍 넘어갔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소리는 못들은 것 같았고, 불평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젠장, 이놈의 빌어먹을 차를 빨리 바꿔야 하는데...”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시동을 걸었다. 시동소리가 차를 울리자 그제서야 나도 엔진소리에 묻혀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차는 확실히 문제있는 소리를 내며 굴러갔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온 뒤에서야 조금씩 속도를 냈다.

 

 

나는 큰길에서 속도가 올라가는 타이밍에 맞춰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아까 챙겼던 칼을 운전자의 목에 가져다 댔다.



“계속 운전하세요.”


“뭐, 뭐야...!”



운전자가 곁눈질로 백미러를 통해 나를 봤다. 그는 상당히 충격 받은 듯 말을 더듬었다.



“박선후...! 너 이자식 이런짓을!!”


“반장님, 저도 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차하면 정말로 반장님 목을 그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협조 좀 해주시죠.”


“쳇, 네놈이 나타나니까 오히려 안심이 되는구만. 알았다. 어디로 가냐?”


“인적이 없는 골목으로 가주시죠.”



이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곤 적당한 장소를 찾아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그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고, 이 반장은 예상대로 상당히 안정이 된 모습이었다.

 

 

적절한 위치에 이르자, 이 반장이 시동을 끄고 머리를 손 위로 올렸다.



“자, 이제 용건이 뭐지?”


“먼저 사과부터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범인 새끼가 무르긴, 빨리 말이나 해.”


“예, 성훈이의 수첩 아시죠.”


“어, 안다.”


“내용이 뭡니까? 생각 같아선 복사본을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복사본 줄게.”


“음......?!”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 반장의 대답에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 믿어요? 조작해서 줄 수도 있고, 풀어줬다가 받지도 못할 수도 있는데.”


“새끼, 나를 못 믿는 다는 거냐?”


“반장님이 말했듯 전 지금 현행범입니다.”


“하핫, 알겠다. 알겠어. 그럼 일단 내용을 말해주지.”



반장은 여전히 앞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만 움직였다.



“서주희가 범인이 아니라는 점. 검찰이 서주희를 범인으로 몰고 가려는 점이 상세하게 적혀져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닐 것 같은데요?”


“그래 지금부터 중요한 거지. 전선기가 범인이라는 심증이 나타났어.”


“그게 뭐 공개하면 안될 이유라도 되나요?”


“그래 충분히 이유가 되지. 이건 나도 최근에 알았던 사실인데 말이야.......”




이 반장이 뜸을 들였다. 나도 그 내용이 궁금하여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잠깐 생각하던 이 반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전선기 그 새끼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전부석 서울 중앙지방 검찰청장이시다.”


“.......?!”



그야말로 뒷통수를 갈겨버리는 사실이었다.

 

 

서주희 사건에 전선기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사건을 빨리 끝내버리려는 이유였다.

 

 

이 반장의 말에 팔에 힘이 스르르 풀리며 칼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반장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말했다.



“성훈이 수첩의 내용이 신빙성이 무척 많아. 하지만 그대로 수사를 공개한다고 하면 더 나아질게 있냐? 니 생각도 아마 아닐거다.”


“어이가 없는 현실이군요.”



괜히 공개를 해서 쓸데없는 검찰의 방해를 받느니 차라리 조용히 수사를 하다가 결정적 증거가 나오면 그때 공개를 하자는 게 경찰측 입장이었다.

 

 

이 반장도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조만간 복사본을 주마. 아니, 내일이라도 이메일로 보내주도록 하지 수첩에는 이것 외에도 많은 게 적혀 있긴 해. 평소에 그가 생각한 거라든가 정말 쓸데없는 것도 적혀있지. 하지만 그게 도움이 될지 모르니 니가 보고 잘 생각해봐라.”


“....... 그렇게 하죠.”



나는 했던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이 반장은 내가 안심하고 가길 바랬는지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움직이질 않았다.

 

 

난 속으로 무한한 감동을 느끼고 고시원 근처로 발을 돌렸다.

 

 

가는 도중에 편의점에 들려 담배 2갑을 샀다.

 

 

그리고 고시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 있는 허름한 피씨방으로 들어갔다.


모처럼 손님이 왔는데 카운터엔 자릴 지키는 알바생도 없었다.

 

 

난 조금의 섭섭함을 느끼고 화장실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메일 먼저 켜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메일이 오는 동안 할게 없어서 담배를 입에 물고 오래전에 접었었던 게임을 켰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버린 것일까? 게임은 망하기 직전인 것 같았다.

 

 

시작할 때만 해도 분명 최고의 기대작이란 광고를 내며 시작했던 게임인데 말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사냥터에서 거대한 창을 휘두르며 혼자 몬스터들을 잡고 있었다.

 

 

이 던전은 레벨 제한이 꽤 높아서 특유의 으스스한 음악과 분위기가 났다.

 

 

아무도 없는 피씨방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한결 더 좋은 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응?”



혼자 나름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데 가녀린 여자 캐릭터가 나타났다.

 

 

딱 보기만 해도 낮은 레벨처럼 보이는 캐릭터는, 이리저리 몬스터한테 쫓기는 모양이었다.

 

 

나는 무시하려다가 내 주변에서 얼쩡 거리는게 짜증이 나서 캐릭터를 쫓는 몬스터를 다 잡아버렸다.

 

 

그 순간 여자 캐릭터가 나에게 오더니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새끼?”



대비도 못하고 공격을 받아서 내 캐릭터가 순식간에 땅에 누워버렸다.

 

 

나는 열이 받아 죽은채로 욕을 날려댔지만 여자 캐릭터는 내 캐릭터가 누워있는 곳에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나는 복수를 다짐하며 마을에서 다시 태어났다.



-띵동.



하지만 하필 그때 메일이 도착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다시 그 던전으로 가서 여자 캐릭터를 아작내고 싶지만 지금은 성훈이의 수첩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서둘러서 게임을 끄고 이 반장의 압축파일을 받은 뒤, 누나의 아이디로 파일을 보냈다.

 

 

혹시나 위치 추적을 받을 상황에 대비한 행동이었다. 일을 마치고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임을 은근히 오래해서 그런지 비용이 꽤 나왔다.


나는 수첩의 내용이 너무나 궁금해서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고시원을 향했다.

 

 

어떻게 이동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내 머릿속은 수첩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창문을 통해 고시원에 들어가자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서주희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로 컴퓨터를 켜서 파일을 다운 받았다.


파일엔 성훈이의 수첩이 스캔이 되어 있었다.

 

 

비에 젖어 상태가 좋진 않지만 글씨를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살펴보니 조작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새끼, 글씨좀 똑바로 쓰지.”



평소에 글씨좀 잘 쓰라고 말해둘걸 후회가 되었다. 나는 한 장씩 천천히 그의 수첩을 살펴보았다.

 

 

첫장과 두 번째 장은 그가 순찰하면서 생긴 일과 순찰 루트가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3번째 장부터 전선기 추적에 대한 글이 적혀져 있었다.

 

 

첫머리에 있는 글을 읽으니 소름이 오싹 돋았다.



-내 자신이 혐오스러운 적이 2번 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내가 해왔던 인간 그 이하의 짓거리를 지적해 줬던 일이다.

 

 

두 번째는 그 어떤 사람이 눈앞에서 처참히 죽어 가는데 구하지 못한 것이다.



성훈이의 심경을 알 것 같았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해왔지만 역시 김수철씨의 죽음은 성훈이에게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이며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으엑...”



평소에 장난스럽게 그림을 자주 그렸던 성훈이가 그린 그림이 있었다.

 

 

하지만 장난스럽게 그린 것 같진 않았다.

 

 

아마도 현장 사진을 보고 그려놓은 것 같은데,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 그리고 시신을 현실감 있게 재현해놨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된 증거까지 세밀하게 표시를 해놨다.


나는 그 그림을 자세하게 관찰했다. 물론 아는 내용이었지만 조금 유의 깊게 관찰을 하자 성훈이가 따로 발견한 증거도 있었다.

 

 

나중엔 나의 이름이 거론되진 않았지만, 나와 함께 이야기 했던 것들도 적혀져 있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말한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무슨 추리 소설을 보는 것처럼 그의 수첩을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결국 그가 낸 결론은 전선기가 범인이라는 것이었다.



“휴.......”



수첩을 다 보긴 했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사에 대한 내용은 여기까지이고 맨 뒷장 쪽에는 성훈이가 장난처럼 쓰여진 낙서가 있었다.

 

 

그가 좋아하던 서태지 노래의 제목도 있었고, 요즘 새로 데뷔한 걸그룹 이름도 쓰여져 있었다.

 

 

확실히 많은 내용이 꽤 설득력 있게 적혀져 있었지만 아까 이 반장이 말한대로 심증이었다.

 

 

뭔가를 뒤집을 수 있는 물증은 있지 않았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너무 집중해서 수첩을 보다보니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몰랐다.

 

 

대신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파왔다.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스럽게도 미리 사온 음식들이 남아있었다.

 

 

음식이라 해봐야 편의점에서 사온 빵이나, 삼각김밥 같은 인스턴트 식품이다.

 

 

나는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매운김치참치를 골라서 우걱우걱 먹었다.

 

 

밥알이 다소 퍽퍽하긴 했지만 그나마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음....... 왔어요.......?”



내가 너무 쩝쩝거리며 먹었는지 서주희가 잠에서 깼다.

 

 

가만히 서주희 상태를 보자니 얼굴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게 얼마 전 철창에서 보던 서주희가 아니었다.

 

 

나는 문득 내 피부를 스윽 만져보니 상태가 말이 아니다.



“참 팔자 좋다? 먹을 거 다주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예...?”


“살도 조금 찐 것 같은데? 좀 자제 하지?”


“아이 씨, 아침부터 짜증나게 왜이래요?”


“내가 뭘!? 사실만 말하는데, 아주 살판 나셨어.”


“으이씨!”



서주희가 분을 못 참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난 내가 말하다가 짜증이 치밀어 더 이상 말하는 걸 관뒀다.

 

 

서주희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날 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러든 말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수첩을 쳐다보는 척 했다.



“무슨일 있었어요? 어디서 뺨맞고 나한테?!”


“그런거 아냐.”


“아니긴 무슨 얼굴에 써 있구만.”


“아니라고 신발!”


“허, 이제 욕까지 해요? 정말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아...... 미안.......”



나도 욕을 질러놓고 후회감이 밀려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머리를 손으로 싸매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모르겠지만 서주희도 더 이상 따지는 걸 그만두었다.

 

 

나는 긴장 좀 풀기 위해서 음악을 들으려고 했다.

 

 

근데 마땅히 들을게 없어서 성훈이가 수첩에 써놓은 음악중에 하나를 듣기로 했다.


성훈이는 좋아하는 음악 순위대로 별을 그려 놨다. 아무래도 선호하는 음악일수록 별표가 많은 것 같았다.

 

 

나는 별표가 많은 순서대로 훓어 보았다.



“응.......? 이게 뭐지...?”



모니터에 얼룩 같은 게 있어서 손으로 슥슥 닦아 봤지만 닦이질 않았다.

 

 

자세히 보니 얼룩은 모니터에 있는 게 아니라 수첩에 있는 것이었다.

 

 

비 때문에 번져 있었지만 이건 분명.......


피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핏자국에 지문이 묻어져 있는걸 봐서 성훈이가 정신을 잃기 직전에 표시한 것 같았다.

 

 

성훈이가 표시한 음악은...










“서태지와 아이들 3집 6번 트랙...?”

 

 

 

 

 

나는 얼른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은 발해를 꿈꾸며 라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스크롤을 내렸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즉시 음원을 다운받고 음악을 수십번 들어봤지만 딱히 뭐가 걸리는 것도 없고 쓰러져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가사까지 고려하여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고 보기엔 좀 그렇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가사를 파헤쳤지만 나의 능력으론 부족하다.



“끙.......”



일이 제대로 풀리질 않자 내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서주희는 빵과 우유로 아침을 깔끔하게 먹다가 같은 음악소리가 계속 들려서 그런지 빵을 오물오물 씹으며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였다.



“무슨 음악이에요? 꽤나 시끄러운데.......”


“글쎄다... 중요한 메시지 같은데 뭔지 모르겠네.”


“가사는 봤어요?”


“진작 봤지.”


“멤버이름에 뭔가 있나?”


“그것도 봤어.”



역시 서주희에게 물어본건 쓸데없는 일이었나 싶었다.

 

 

난 서주희가 옆에서 떠드는걸 무시한 채 계속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겨우 성훈이가 말하고자 하는 걸 찾았는데 이렇게 쉬운거 하나 해석을 못해서야 형사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음악이 참 신기하네요.”


“뭐가?”


“처음엔 밝았다가 나중엔 어두웠다가... 제목 탓인가?”


“제목?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뭔데?”


“허, 그것도 몰라요?”



서주희가 또 다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언제나 느끼지만 저 눈빛을 대할때마다 짜증이 치솟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재촉했다.



“엉뚱한 타박주지 말고 말이나 해.”



내가 재촉을 하자 서주희는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알고 있는 양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마치 어린 아이를 가르키는 어투로 말을 했다.



“소설이에요. 뮤지컬로도 많은 공연이 있었구요. 이중인격에 관한 이야기에요.”


“이중인격?”


“네, 뭔 약을 먹고 착한 지킬박사가 나쁜 하이드로 변한다는 내용인데요.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쳇, 잘 아는 척 하더니만.”


“이정도면 잘 아는 거지 뭐.”



서주희가 혼잣말로 툴툴거렸다. 이중인격이라... 성훈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거였던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보류해 두기로 했다.

 

 

나는 조금 더 생각을 하다가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서 잠깐 쉬기로 했다.

 

 

간만에 침대에 누워 기지개를 쫙 펴니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
.
.
.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분명 눈을 한번 깜빡했을 뿐인데 그대로 곯아 떨어져 버렸다.

 

 

벌써 저녁이 다 되었다. 하기야 어젠 잠도 못 잤고 요즘엔 특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몸이 피곤할 만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피로를 깔끔하게 풀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몸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서주희는 밥을 먹으며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

 

 

역시나 계속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질리지도 않냐?”


“.......”



아무래도 서주희는 전선기의 목소리에 푹 빠져버린 것 같았다.

 

 

전선기의 숨소리만 들려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정신없이 필기를 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있자니 심심하기도 했고 할 것도 없어서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게요?”


“하던 일이나 하셔.”


“언제와요?”


“오고 싶을 때.”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창문을 뛰어 내렸다.

 

 

몇 번 떨어지다 보니 익숙해져 이젠 아프지 않게 뛰어내릴 수 있었다.

 

 

나는 멀리 가지 않고 주변에서 잠복을 하였다.

 

 

당장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전선기 미행이다.

 

 

성훈이도 미행을 하다가 당했기 때문에 미행을 하면 뭔가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전선기는 오랫동안 카운터에 있다가 주변이 깜깜해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곧장 서주희의 원래 집 방향으로 향했다.

 

 

나는 그 뒤를 아슬아슬하게 미행을 하였다. 혹시나 버스를 타고 갈까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히 지하철을 타고 가서 미행이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그가 집에 들어갈 때 까지 수상한 점은 발견하질 못했다. 전선기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발랄한 걸음으로 집에 들어가 버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오늘은 체념 하기로 하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 지하철에 왔다.



“....... 늬미럴.......”



그 사이에 지하철은 끊겨 있었다. 여기서 고시원까지는 꽤 멀다.

 

 

하지만 택시비를 따로 챙겨 온 건 아니었다. 지금은 아는 사람도 없으니 누구한테 연락할 사람도 없다.

 

 

나는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지하철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바닥이 차갑긴 했지만 겨울이 아닌 사실을 하늘에 감사하며 조금이나마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곧 누군가 나를 툭툭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여보슈.”


“....... 무슨 일입니까...?”



나는 단잠을 방해받아서 약간은 짜증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앞에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는 노숙자가 신문지와 박스 하나를 들고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거긴 내 자리요.”


“.......”



노숙자끼리의 자리 텃세가 심하다더니 이런데서 느끼게 될 진 몰랐다.

 

 

나는 쓸데없이 시비붙고 싶지 않아서 오만상을 찡그리긴 했지만 고분고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게 됐수다.”


“최근에 저쪽에 자리가 났으니 저쪽으로 가슈.”



노숙자가 가르킨 곳은 자판기 옆자리였다.

 

 

나름 아늑한 공간인데 이런 명당이 자리가 비었다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급한대로 자리에 앉았다.

 

 

날 깨운 노숙자는 내가 좀 안돼 보였는지 박스를 하나 던져 주었고 나는 그걸로 바닥을 깔고 누웠다.


한번 깨고 나자 잠이 잘 오질 않았다. 나는 심심해서 그 노숙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 자리는 누구자리였어요?”


“어떤 젊은 거지새끼 자리였수. 약간 모자란........ 지금은 누구 따라 가버렸어. 팔자는 폈으려나?”


“허, 누가 일 시켜 준데요?”


“자세히는 모르겠고, 몇 마디 하더니 따라가더이다. 난 분명 봤는데 돈뭉치가 왔다갔다 했어.”


“허.......”



노숙자 세계도 참 별일이 다 있구나 싶었다.

 

 

그 거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내 앞의 노숙자는 열이 받았는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 내가 불쌍해서 그렇게 챙겨줬는데, 여길 자주 드나들어.”


“왜요?”


“몰라 집 가는 길인가 보지. 얼굴이 좀 바뀌었는데, 성형했나? 그래도 내 눈을 속일 순 없지 걸을 때 그놈 특유의 걸음걸이가 조금 보이거든.”


“근데 왜 당신이 화를 내요?”


“여길 왔다 갔다 하는 건 문제가 안돼. 근데 나를 완전 개무시 하더라고 신발. 저번엔 동전도 던져줬어.”


“그럼 좋은 거 아니오?”


“쳇, 내가 거지라고 아무 돈이나 다 받는 줄 알아? 그건 날 개무시 하는 거지 뭐야. 하여튼 한번만 더 오기만 해.”



노숙자가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물론 소리는 안 났지만 그의 표정에서 진정한 분노가 뭔지 보이고 있었다.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눈이라 그런지 살짝 보기만 해도 살의가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신경쓸 바가 아닌 것 같아 몸을 돌아눕고 잠을 청했다.

 

 

열대야 현상인가? 밤은 그렇게 춥지만은 않았다.


막상 누우면 곯아떨어질 줄 알았는데, 잠이 정말 안 왔다.

 

 

정확히 말하면 잠에 들었다 깼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원래 자는 동안 좀 예민한 편이었는데, 누군가 왔다갔다 하면 여지없이 깼던 것 같다.

 

 

그게 반복이 되자 나는 차라리 뜬눈으로 있기로 했다. 전선기가 분명 고시원에 가기 위해 올 것이다.

 

 

어제 그렇게 화를 내던 노숙자는 코까지 골면서 잘 자고 있었다.

 

 

나는 그의 곁으로 가서 그를 툭툭 건드렸다.



“음......? 음.......”



잠깐 반응이 있나 싶더니 다시 자버렸다.

 

 

나는 좀 더 강한 충격을 주기 위해서 그의 겨드랑이를 손가락으로 풀 찔렀다.



“으악!”


“일어났어요?”


“뭐야. 신발.”



노숙자는 불쾌한지 겨드랑이를 슥슥 문지르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일부러 실실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심심해서요. 일어날 시간도 된 것 같은데?”


“몇 신데?”


“시계가.......”


“이런럴. 우리가 움직이는 시간은 첫차가 올 때야. 그전엔 사람도 없어서 돈벌이도 안돼.”



그는 계속 짜증을 부렸지만 나도 계속 실실거리며 엉겨 붙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대화상대를 해 주었다.

 

 

나 혼자 떨어져 있으면 전선기가 눈치 챌 것 같아서 이렇게 노숙자와 붙어 있기로 한 것이었다.

 

 

신문을 뒤집어쓰고 이렇게 있으니 내가 봐도 난 그럴 듯 했다.


하지만 역시 잠을 못자서 그런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노숙자는 혀를 끌끌차며 나를 타박했지만 크게 뭐라고 하진 않은 것 같다.

 

 

한참을 병든 닭처럼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데, 노숙자가 나를 툭 치더니 말했다.



“저 새끼야.”


“네.......?”


“내가 말했던 놈. 저 새끼라고.”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숙자가 가르킨 사람을 보았다.



“.......!”



덕분에 잠이 확 깼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전선....!”


“응? 아는 사람인가?”


“아, 아뇨... 잘못 봤네요... 하하 저는 이제 가봐야 겠어요.”


“응? 그래. 이런데서 자지 말고 잘 살아봐.”


“예 감사합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를 다시 추격했다. 그는 평소처럼 아무 의심가는 행동 없이 고시원을 향해 갔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전선기가 그럼 노숙자였던가? 아니, 그건 아니다.

 

 

목격자 신원을 파악할 때 그는 그 동네에 오래 거주해 있었다.

 

 

그럼 저 노숙자는 어떻게 된 일인가?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한참 머리를 푹 숙이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박 형사님? 오랜만이네요.”


“.......”



전선기.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그때 주운 방수 핸드폰에서.

 

 

 

 

처음엔 당황했지만 난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안부 인사를 지극히 평범한 대답으로 맞받아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핸드폰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받을 때까지 계속 울릴 모양이었다.

 

 

핸드폰이 계속 신경 쓰이긴 했지만 전선기와 헤어지기 전까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드디어 목적지인 역에 도착을 했고 나는 그에게 인사를 했다.



“전 이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네.”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가는 전선기를 바라보며 나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전선기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


--뭐야 신발.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일이 있었다.”


--지랄 하네. 백수 새끼가 일?


“잡설을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해.”


--새끼가 입만 살아가지고. 서주희 어딨냐?


“....... 그게 할말이냐?”


--왜, 안돼?


-뚝.



난 전화를 끊어버렸다. 더 이상 대화를 할 가치를 못 느낀다. 이 전화가 온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건 전선기가 범인이 아니니 헛짓거리는 그만하고 집에 가서 발이나 씻고 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역시 공범이 있다.


난 그대로 전선기를 다시 쫓았다. 밖에 나와보니 아침에 이슬비가 내렸는지 바닥이 촉촉했다.

 

 

이번엔 절대 들키지 않게 신중의 신중을 기했다.

 

 

혹시 공범자가 내 뒤를 캐고 있을지도 몰라서 주변 상황까지 철저하게 살피며 미행을 했다.

 

 

이것저것 다 신경 쓰려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이번에도 역시 전선기는 아무 일도 없이 고시원에 들어갔다.


나는 오기가 생겨서 전선기에게 누가 접촉할 때까지 대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적당한 차 사이에 자리를 잡고 고시원이 입구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만 계속 흐를 뿐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해가 저물어 있었다. 인내심에 바닥이 드러나 버렸다.


나는 어차피 당분간 나오지 않을 거 집에 식량을 축적해 두려고 편의점에 들렸다.

 

 

온 김에 담배도 사재기를 하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왔어요? 외박만 하네요.”


“어, 뭔일 없지?”


“네, 선기오빠 카운터에.....”


“알아.”



서주희는 내가 던져놓은 비닐을 뒤지더니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차며 온 김에 수첩을 한번 더 보기 위해서 컴퓨터를 봤다.

 

 

평소에 컴퓨터를 끄지 않는 버릇이 있어서 모니터를 켜자 수첩 이미지 파일이 바로 드러났다.



“응?”



문득 작업 표시줄을 보니 메일이 켜져 있었다. 깜박하고 로그아웃을 안했나 싶어 켜봤는데, 내 이메일이었다.



“어?”



누나 메일을 들어간다는 게 습관처럼 내 계정을 입력해 버렸나보다.

 

 

나는 아차 하며 메일을 끄려 했는데, 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어차피 노출되어 버린 거 메일을 열어보았다.

 

 

이 반장에게 온 메일이었다.



-잘 숨어있냐? 성훈이 깨어났다니까 가려면 오늘 가 봐 우린 내일 저녁에 가기로 했어.



이 이상 기분 좋을 수 없었다. 이제 성훈이 에게 가서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사건이 해결 될 것이다.

 

 

나는 로그아웃을 잊지 않고 서둘러 창밖으로 나갔다.



“또 나가요?”


“집 잘 지켜.”



나는 짧게 한마디 남기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젖은 바닥 때문에 몇 번 넘어질 뻔 했지만 지금은 그 상황마저 즐길 수 있다.

 

 

전선기를 잡고, 누나를 찾아 낼 것이다. 병원은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간호사들도 별로 없고 돌아다니는 환자들도 얼마 없었다.

 

 

카운터에 성훈이의 면회가 가능한지 물었다.

 

 

간호사는 졸릴 시간이라 짜증나는지 조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저녁에 깨어나셨는데 지금은 쉬고 있으니 조용히 하도록 하세요. 그 사이에 들어간 사람이 없으니 푹 자고 있을 거예요.”



나는 병원에서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한 번 더 듣고 빠른 걸음으로 410호실로 올라갔다.

 

 

문고리를 잡아 여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다. 오늘 안으로 전선기놈을 철창에 쳐 박아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입원실 문을 열었다.



“성후.......!”



이것은 꿈인가? 꿈일 것이다. 꿈이어야 한다.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런 일이 있을 순 없다 꿈이다.


나는 떨리는 몸을 천천히 성훈이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을 그렇게 걷기 싫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손을 내 볼로 가져가서 힘껏 꼬집었다.

 

 

피멍이 들 만한 고통이었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 안은 어둠에 싸여져 있었지만,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신발........ 신발........신발....신발..신발!!!!!!!!!!!!!!!!!!!!”



성훈이의 얼굴부위는 알 수 없는 형체로 뭉개져 있었고, 피는 이미 하얀 침대 시트를 붉게 물들이고도 땅을 끈적끈적하게 흐르고 있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도 시트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난 그 핏물 위에 털썩 주저 않았다.

 

 

응고가 시작되어서 그런지 끈적끈적한 피가 무릎을 적셔 오는 게 느껴졌다. 약간의 온기도 느껴진다.

 

 

그 위에 내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일어날 힘이 나질 않았다. 빌어먹을 전선기 놈이 날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니, 이쯤 되자 전선기가 정말 범인인지 의심이 가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소리....... 꺄아아아아악!!!”



간호사가 내 목소릴 듣고 들어왔는지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갔다. 하지만 도망칠 생각은 나질 않았다.

 

 

간호사의 비명소리가 머릿속을 붕붕 돌아다녔다. 짜증이 치밀었다. 머릿속의 비명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시끄러워...”



점점 가슴 깊숙한 곳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시끄럽다고...”



짜증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분명 나는 아무 무리 없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꽤나 인정받는 형사였고, 인간관계도 퇴근하면 술잔을 기울일 동료도 있었다.

 

 

 

그리고 가족은 없더라도 집에 가면 누나가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하지만 모두 바뀌었다.



“신발새끼!!”



전선기. 전선기놈 때문이다.


나는 병원 창문을 내려다보았다. 높이는 4층이고 바로 아래 엠뷸런스가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엔 뵈는게 없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엠뷸런스 위로 뛰어내렸다.



-쾅!


“으아아아아악!!”



무릎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엠뷸런스 천장이 찌그러지면서 완충작용을 했는지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얼마동안 고통에 허우적거리다가, 앞 유리 쪽으로 굴러서 바닥에 떨어졌다.

 

 

범퍼 정도의 높이였지만 꽤나 충격이 왔다. 나는 발을 절뚝거리며 앰뷸런스에 올랐다.

 

 

긴급 출동 대기 때문에 키가 꽂혀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지만 차를 몰고 그대로 고시원으로 향했다.



“신발새끼.”



범인이든 아니든 지금은 오직 전선기 놈을 죽이고 싶었다. 멀리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 나는 방향을 피해서 운전을 했다. 고시원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다.

 

 

오는 동안 고통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발목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때 뒤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











-빵빵.













저 차는 본 기억이 있다. 유독 투명한 뒷 유리에 하얀색 SUV.













그놈이다.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내가 차에 오르기를 기다린 것처럼 흰색 차량도 출발을 했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내가 병원에서 나올 때부터 날 이미 추격하고 있었다고 생각이 되었다.

 

 

이런 미행도 눈치를 못 채다니, 자신이 한심해졌다. 나는 운전대를 꾹 움켜잡고 흰색 차를 따라갔다.

 

 

그 차의 운전 실력은 수준급이라 쉽게 차이를 줄이기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애매한 거리로 추격할 수 있게끔 거리 조절을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화가 났다. 입에서 침이 흘러 슥 닦으니 침이 아니었다.

 

 

입술을 너무 꽉 깨물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혀로 입술을 스윽 훑자 피비린내가 쌉쌀하게 느껴졌다.



“음?”



한참을 도망가던 흰색 차량은 오래전에 폐교한 학교에 들어갔다. 주변에 인가도 없어서 상당히 어두웠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지 않고 따라 들어갔다.



“.......”



운동장 한 가운데에 흰색 차를 댄 그놈은, 차에서 내리더니 헤드라이트를 뒤에 두고 차에서 내렸다.

 

 

검은색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는데, 헤드라이트 때문에 얼굴에 그림자가 생겨서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나도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하하하핫.”



그놈은 내가 내리자마자 웃음을 날렸다. 나는 열이 받아 그를 향해 달렸다.



“워, 워 잠깐만. 아주 혹할만한 선물을 가지고 왔다구.”



걸걸한 목소리의 후드가 손을 저으며 말을 했다.

 

 

나는 주변을 삥 둘러보고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고 판단되어 감정을 추슬렀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에 내가 말했다.



“신발 새끼. 너 전선기지? 내가 모를 줄 알아?”


“하하핫, 넌 니 말에 확신할 수 있나?”


“뭔 소리야?”


“내가 전... 뭐? 전선기? 하여튼 그놈이라고 확신 할 수 있냐고.”


“어설픈 연기는 집어 쳐 다 티나.”



나는 이놈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하면 바로 달려들 수 있게 온 신경을 발에 집중했다.

 

 

아까 좀 다친 것 같긴 하지만 순간적으로 달려들면 할 만 하다.

 

 

이것저것 계산을 하고 있는데, 흥미롭다는 어투로 후드가 말했다.



“내가 줄 선물이 있는데 말이야.”


“선물? 근데 이를 어쩌나, 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데...”



성훈이까지 죽어버린 마당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미련도 없었다.

 

 

지금 내가 가진 건 이 몸과 앰뷸런스뿐이다. 하지만 후드는 내 말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말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살지 마러~.”


“너 따위가 날 훈계하려 하지 마.”


“아니? 진짜야 넌 아직 잃을게 있어.”


“.......?”



이상한 후드의 말에 내가 의아해 하자 후드가 재미있다는 듯 호쾌하게 웃어재꼈다.

 

 

난 놀리는 듯한 그의 비웃음에 빈정 상해서 차갑게 말했다.



“도발하려 하지 마, 난 이상하게 그럴수록 더 침착해 지거든.”


“하하하핫........ 어, 그건 맞는 것 같아. 인정 해 주지.”


-짝짝짝.



후드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아까의 이성을 잃었던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나는 점점 냉정하고 침착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후드와 대화를 나누는 것 뿐만 아니라, 주변상황을 끝없이 체크하며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박수를 마친 후드가 조금 낮은 어조로 말을 했다.



“하지만 선물이 있다는 건 사실이야.”


“뭐야?”



나는 별로 믿지 않았지만 후드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기 위하여 대답했다.

 

 

후드는 한숨을 크게 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용히 말했다.



“니 누나.”


“.......?!”


“냉정하다며? 왜 그렇게 놀래?”



후드는 재미있다는 듯 큭큭 웃었다. 하지만 나는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차갑게 내려 앉았던 분위기가, 커피스푼으로 휘휘 저은 듯 출렁거렸다.

 

 

누나 이야기가 나오자 더 이상 냉정할 순 없었다. 나는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



“역시 네놈이...”


“그래 니 누나 박지혜는 내가 가지고 있고 잘 살아있다. 먹는 것도 거르지 않고 잘 먹고 졸리면 잠도 잘 자.”


“신발 새끼야, 누나 어딨어?”


“크큭...”


“어디 있냐고 강아지야!!”




후드는 내가 언성이 높이는 게 기분 좋은지 내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후드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의 목구멍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웃어대던 후드가 나에게 종이 쪼가리 하나를 던졌다.



“이건.......?”


“니 누나가 있는 약도다.”



종이 쪼가리가 바람 때문에 여기저기 굴렀지만 나는 함부로 그걸 잡을 생각을 하질 못했다.

 

 

지금은 바로 눈 앞에 있는 후드가 신경쓰였다.

 

 

저 종이가 진짜 약도라고 확신 할 수도 없고 약도라고 해도 누나가 거기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계속 후드를 쏘아보자 후드는 이제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말했다.



“한가지를 뺏은 댓가로 한가지를 선물하는 것 뿐이니까 그렇게 알라고.”


“뭐야.......?”


“다음엔 이런 자비는 없어.”



후드는 차에 올라탔고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갔다.

 

 

나는 그 차의 헤드라이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없어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굴러다니는 종이 쪼가리를 주웠다.

 

 

종이엔 확실히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서 앰뷸런스에 올라 약도에 그려진 대로 이동을 했다.

 

 

약도에 그려진 위치는 원룸촌에 있는 한 원룸이었다.



“여기는.......?”



그리고 난 여기 와 본 기억이 있었다. 전에 김수철씨가 살해당했을 때 왔었던 곳이었다.

 

 

조사를 위해서 들린 곳이었는데, 그땐 비어있는 방이었다. 김수철씨 소유로 되어있는 원룸이었다.



“.......”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확 느껴졌다. 뭔가 똥, 오줌 냄새였다.

 

 

나는 인상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원룸을 뺑 둘러봤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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