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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 (25화)

윙윙 |2013.05.25 10:16
조회 2,666 |추천 9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가 내 목소리에 반응을 했다. 나는 긴장 속에서 조심스럽게 전등을 켰다.



“누나!”



누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고, 나도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누나를 봤다.

 

 

누나는 날 보자마자 눈물이 수도꼭지 틀 듯 눈에서 쏟아졌다.

 

 

나는 신발채로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누나를 끌어 안았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누나 대체 이게...... 흑.......”



누나는 조금 헤진 반팔 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희한하게 목에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누나는 정말 서럽게 울었지만 이상하게 울음소리는 나질 않았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누나.......?”



내가 누나를 부르자 누나는 눈물에 맺히고 충혈이 된 눈으로 날 올려다 볼 뿐 아무 말도 아질 않았다.

 

 

아니 분명 입은 움직이고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이게...!!”



나는 누나의 목을 감싸는 목도리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



누나의 목, 정확히는 성대가 있는 부분에 꿰멘 상처가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누나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누나! 어떻게 된 거야. 말이 안나오는 거야? 그런거야?”



누나는 계속해서 입을 놀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질 않았다.

 

 

그냥 거칠게 숨소리만 들릴 뿐 목소리는 나오질 않았다. 나는 손을 떨며 주머니에서 펜과 수첩을 꺼냈다.

 

 

누나는 눈물을 계속 흘리며 펜을 잡아들었다. 펜을 든 누나의 손도 덜덜 떨렸다.

 

 

누나는 손아귀에 힘이 없는지 삐뚤빼뚤하게 글씨를 적어 나갔다.



-납치 당해써. 성대 적출, 엄지발가락 절단.



나는 경악하며 누나의 발가락을 보았다. 쓰여진 대로 엄지발가락이 있어야 할 곳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속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일단 나는 누나를 업고 앰뷸런스로 이동했다. 그리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누나 잠깐만 있어.”



나의 말에 누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는 고시원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에는 전선기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머리통을 박살내고 싶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 의심이 갔다.

 

 

나는 그를 조금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음.......아! 박 형사님?”


“방을 하나 더 잡을 겁니다.”


“방을 또요? 왜요?”


“짐이 너무 많기도 하고, 하나 더 있으면 다용도실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작업실이 없거든요.”


“뭐 정 그러하시면....... 돈은........”


“다 알고 있으니 안내나 해줘요.”


“그러죠.”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흔들며 일어났다. 방은 입구 바로 앞에 있는 202호실로 했다.

 

 

전과는 다르게 인수인계는 금방 끝났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왔네요? 웬일로 문으로...”


“이사다.”


“네?”


“이사라고. 방 하나 더 잡았어. 넌 거기로 옮겨.”


“그게 무슨.......”


“쓸데없는 말 그만하자. 이미 방 잡았으니까 먹을 거 가지고 옮겨줘.”


“....... 네.”



내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서주희는 쭈뼛쭈뼛 짐을 싸서 그 방으로 갔다.

 

 

그녀가 가자마자 나는 다시 앰뷸런스로 와서 누나를 업었다.

 

 

카운터를 보니 전선기는 다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외투로 누나를 가린 채 빠르게 방으로 들어왔다.

 

 

누나는 아직도 진정이 안 되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나 이제 됐어. 일단은 좀 쉬어.”



내 말에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누나를 침대에 올바르게 눕혔다.

 

 

누나는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 흘렀다.

 

 

그 눈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누나가 잠든 걸 확인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앰뷸런스를 좀 떨어진 곳에 세우고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앰뷸런스 때문에 쓸데없이 꼬리를 잡힐 순 없었다.


어느덧 깊은 새벽이 되어 있었고 나도 잠이 왔다. 나는 남는 이불을 깔고 누웠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막상 잠이 오자 버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
.
.
.



일어났을 때는 대낮이었다.

 

 

문단속을 철저하게 하느라 방문은 말할 것도 없고 창문도 꽉 닫아 놔 버려서 방안의 공기가 쾌쾌했다.

 

 

눈을 떠보니 먼저 일어난 누나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얼굴이 깨끗한걸 보아서 씻고 온 것 같았다.

 

 

누나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자기가 써 놓은 걸 나에게 보여줬다.


그렇게 길지 않은 편지였지만, 누나는 자기가 당해온 것을 적기 보다는 자신은 이제 괜찮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나는 누나에게 억지로 물어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한 장본인이 가장 괴로울 텐데, 일부러 그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진 않았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언제 돈이 바닥날지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되면 거리로 나앉게 되는 수밖에 없다.

 

 

전선기가 범인이 아니라는 게 점점 머릿속을 지배해 가자, 냉정하게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일단은 가장 의심이 드는 지하철 노숙자의 말을 다시 들어보기로 했다.


지하철의 그때 그 역으로 갔지만 노숙자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찾아보다가 한쪽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노숙자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옆에 앉았다.

 

 

인기척에 그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을 했다.



“뭐야, 또 어쩐 일이래?”


“밥 한끼 사려고 왔어요.”


“쳇, 어줍지 않은 동정은 받지 않으니 저리 가시게. 나는 거지새끼지만 꼴에 자존심은 있어.”


“그런 게 아닙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왔죠.”


“?”



그제서야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씨익 웃어주며 말했다.



“일단 식당에서 이야기 하시죠.”


“...좋아...”



나는 노숙자가 안내를 해주는 곳으로 갔다.

 

 

다른데서 가면 초라한 행색 때문에 오히려 민폐를 끼친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갔다.

 

 

골목 한켠에 위치한 한 백반 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욕부터 날아왔다.



“이놈의 거지새끼가 또 왔네?”


“이크, 이모. 오늘은 손님도 있으니 자제 좀 하쇼.”


“손님있으면 넌 거지가 아니랴?”


“하핫, 그건 그렇구만.”


“뭐 먹을 거야?”


“늘 먹던 걸로 먹겠수.”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먼저 정색을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할 말이 뭐야?”

 

 

 

 

 

 

“아저씨가 저번에 말해줬던 사람이요.”




“그 싸가지 없는 새끼 이야기를 왜?”



노숙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또 있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알아야 할 건 전선기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나는 노숙자의 짜증을 각오하며 한번 더 물었다.



“제가 할 말이 그거예요. 저한텐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요.”


“쳇 밥 맛 떨어지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안드시고 나가시게요?”



나는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는 식당 주인아주머니를 흘끗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음식을 취소한다 말하고 그냥 나가버리면 지구 끝까지 쫓아와서 김치찌개를 목구멍에 부어버릴 태세였다.

 

 

노숙자도 그 생각을 하고 있는지 주인아주머니 눈치를 흘끗 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해 주실거죠? 나중에 자주 와서 밥 같이 먹어 드리겠습니다.”


“쳇, 그딴건 바라지도 않는다구.”



노숙자는 물을 한 컵 원샷으로 들이키더니 말을 시작했다.



“언제 만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군. 6개월은 됐던 것 같은데. 약간 모자란 애였어. 정신지체가 있었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찾아가던 사람도 없었지. 그나마 이 역에서 나 혼자 그놈을 챙겨줬었어.”


“그냥 혼자 였다구요?”


“어, 아무래도 누가 버린 것처럼 보였지. 지능은 영락없이 초, 중딩 정도 밖에 안됐으니까.”



6개월을 알고 지냈다면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는 걸음걸이를 알 수 있을 정도의 기간이다.

 

 

나는 그의 말을 보채지 않고 기다렸다. 그 사이에 김치찌개가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으며 나왔다.



“오, 맛있겠는데요?”


“그럼! 난 여기서 이것만 먹어!”



그는 아직 뜨거운 김치찌개를 마시다시피 먹어댔다.

 

 

자존심이다 뭐다 했지만 일단 배가 고프니 눈앞의 음식은 잘 먹는 것 같았다. 나도 같이 먹으며 계속 물었다.



“근데 얼굴이 바뀌었다뇨?”


“글쎄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얼굴이 많이 바뀌었어. 다른 사람 같이 말이야. 나 정도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질 못할 정도로? 기본적인 분위기는 남아있지만.”


“성형인가요?”


“어, 맞아. 초반에는 얼굴 바뀌는 게 하루하루 보였을 정도니까.”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성형을 대체 뭐 하러 한 걸까?

 

 

과거를 숨기고 싶다는 허울좋은 핑계가 있긴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여기 있는 노숙자뿐이고 다른 사람은 없다고 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계속해서 관자놀이를 찌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기에 물고 늘어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맨날 오던가요?”



나는 질문을 뱉으면서도 아차 싶었다. 당연한 질문을 해버렸다.

 

 

어떻게든 질문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의식적으로 나와 버린 말이었다.

 

 

노숙자는 밥을 먹다 말고 잠시 생각을 했지만 난 별 기대를 하진 않았다.



“사실 이건 확실하지 않아서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


“가끔 그놈이 아닌 적이 몇 번 있었어.”


“그게 대체 무슨.......”


“그러니까, 얼굴은 같은데 분명 내가 알던 그놈이 아니었다니까.”


“허, 그러니까 아저씨 말은.......”


“같은 얼굴이 두 사람이라니까.”


“.......!”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오싹한 전율이 흘렀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같은 얼굴이 두명이라니, 쌍둥이라는 것인가? 하지만 얼굴이 성형하는 것처럼 점차 바뀌었다면 쌍둥이라는 말도 되질 않는다.


인위적으로, 고의적으로 얼굴을 같게 만들었단 말이 되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입을 열었다. 이미 김치찌개는 입에 들어가지지 않았다.



“언제... 그걸 느끼셨어요...?”


“그걸 느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 음.....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구만.”


“그럼 최근에는 언제.......”


“최근? 오늘! 오늘이 그랬어. 오늘은 한방 쥐어박아주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더라고! 괜히 다른 사람한테 까지 피해를 줄 순 없잖아.”


“오늘이요?”


“그래, 오늘.”


“오늘이면 오늘아침?”


“그래 오늘 아침.”



나는 벌떡 일어나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숙자를 내려다보았다.

 

 

노숙자는 깜짝 놀랬는지 숟가락을 입에 넣은 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거칠게 가게 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뒤에서 노숙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 신발새끼야!!! 돈은 내고 가야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뛰고있는 내 발소리와 심장소리만이 내 귀에 음파를 보냈다.

 

 

심장이 발끝까지 덜컥 내려앉는 기분. 이번에는 욕조차 입에서 흘러나오질 않았다.

 

 

운이 좋게도 지하철은 이제 막 도착하고 있었고 나는 뛰는 속도를 유지하며 지하철에 탔다.


초조했다. 초조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어렸을 때의 버릇이던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빨이 덜덜 떨려 그것마저 되질 않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자꾸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이 나에게 꽂혔지만 나는 여전히 한 가지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범인은 전선기다. 이건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 놈은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미숙한 노숙자를 돈으로 유혹한 후에, 그를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성형을 하였다.

 

 

그리고 고시원에 두어 알리바이를 만들고 뒤에선 여기저기서 끔찍한 살인 행각을 벌여왔던 것이다.


서주희가 잡혀온 날, 신고를 했던 놈은 전선기 자신이고, 다음날 도시락을 싸온 건 다른 전선기이다.

 

 

그리고 가끔 교대로 고시원으로 오면서 나를 감독했던 것이다. 이것은 나의 불찰이었다.

 

 

전선기가 운영하는 고시원을 거점으로 삼으면 그를 감시하기가 훨씬 쉬울 거라고 판단했던 나였다.


하지만 거꾸로 되어버렸다. 감시하기 좋았던 건 내가 아니라 전선기였다.

 

 

어쩌면 전선기의 꾀임에 내가 쉽게 넘어가 버린 걸지도 모른다.



“헉, 헉, .....”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고시원을 향해서 달렸다. 도저히 불안해서 차분하게 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초조하게 달리는 이유는 범인인 전선기를 족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시원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서주희 두 번째는 우리 누나 박지혜.



“제발... 제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다리가 따로 움직이는 양 스스로 속도를 내고 있었다.

 

 

고시원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전선기가 눈치 채질 못하기만을 바랬을 뿐이었다.



고시원이 가까워지자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띠용~띠용~띠용~띠용~



형사생활 하면서 사이렌 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이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소방차 사이렌 소리다.

 

 

그리고 점점 고시원에 다가갈수록 이상한 냄새는 짙어져 갔고, 그 냄새가 타는 냄새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코너를 돌았을 때,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빗겨나가질 않았다.



“이를 어째.......”


“사람들은 다 나왔데요?”


“피신은 다 한 것 같은데.......”


“이렇게나 타버렸네요...어쩜...”



사실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이미 고시원은 전소 상태였다.

 

 

불길은 하늘 끝까지 차올라 구름마저 삼킬 기세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잃고 건물로 뛰어들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나를 잡아끌고 골목 벽으로 밀쳐냈다.



“미친 새끼, 지금 나가믄 잡혀, 알어? 이미 경찰도 출동해서 상황을 보고있어!”


“놔!! 신발, 저기 우리 누나가 있어! 우리 누나가... 넌.......?”


“그래. 나여 형식이! 진정 좀 혀!”


“형식... 형식아... 저기.. 저기 우리 누나가 있어... 우리 누나... 발가락이 잘려서 걷지도 못하고... 성대도 적출당해서 소리도 못질러... 우리 누나...”



내 말에 형식이도 충격을 받았는지 순간적으로 멍 해졌다.

 

 

하지만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지금 저게 언제부터 타고 있었는지 알어? 2시간 전부터여. 아직도 나오지 못했으면 이미...”


“놔줘. 제발 놔줘... 응....? 제발...흑흑...”



나를 잡고 있던 형식이의 손에 힘이 스르륵 풀렸지만 나도 다리에 힘이 풀려 형식이를 부여잡은 채로 무너져 내렸다.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4층짜리 건물은 이미 내려 앉을 만큼 불타버리고 있었고, 저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만났는데, 어떻게...



“형식아....... 흑흑... 우리 누나좀... 우리 누나좀 살려줘...”


“....... 미안하다.......”


“아흐흑... 아... 아....... 으.............”



그 이후로 기억나는 건 없었다.

 

 

눈을 떴을 때는 담백한 고기스프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고 이 상황에서도 허기가 느껴지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킨 채로 멍하게 허공을 바라만 보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정신 차려 임마.”



형식이가 쇠고기 스프가 들은 냄비를 내 앞에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형식이가 사는 집이었다. 18평짜리 작은 집인데, 술 먹고 뻣을 땐 항상 오던 곳이었다.

 

 

쇠고기 스프의 냄새가 내 코를 파고들자,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형식이는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고는 숟가락을 건네주었다.


나는 멍하게 숟가락을 한참동안 쳐다만 보다가 개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슥삭, 슥삭.



냄비를 긁는 숟가락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리자 형식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나는 그런 소리를 신경 쓸 틈도 없이 냄비를 깔끔하게 비워냈다.

 

 

나는 배가 차자 형식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형식이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고시원은 전소됐고, 피해자는 신분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여성 한명. 나머진 안전하게 탈출 했다더군.......”


“그래.......”



그 여성이 누군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눈물이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하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형식이는 대화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나에게 말했다.



“난 니가 거기 있는걸 알고 있었어.”


“어떻게...?”


“내가 니 메일을 추적하고 있었거든. 물론 오늘 추적해 내서 위치를 알아냈지만, 일단은 보고를 하지 않고 나만 알고 있었제.”


“...고시원은...?”


“그때 출동 명령을 받고 현장으로 갔제. 근데 이게 뭐여, 니네 고시원인 거여.”


“.......”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자 형식이가 조금 망설이더니 조금 난처하게 내게 물었다.



“근디... 누나라니... 누나를 찾은거여...?”


“어....... 누나는 내가 있던 그 고시원 방에 있었어... 하지만 성대 적출당하고 발가락도 잘려서 걷질 못해... 아마...죽은 여성한명은 우리 누나였을 거야... 내가 좀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비통함에 목소리가 떨려왔다. 목구멍 끝까지 공기가 차오른 듯 속이 답답했다.

 

 

소리를 크게 지르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풀리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여력이 없었다.

 

 

겨우, 겨우 누나를 꺼냈는데, 불에 타서 죽어버렸다. 근데 번뜩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서주희는?”


“응? 웬 서주희?”


“탈출자 중에서 서주희 없었어? 그 내가 탈취한 여자 말이야.”


“글쎄? 없었는디... 있었다면 바로 알아 차렸겠제.”


“몰래 도망친 건가.......”


“근데 니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여?”



형식이가 큰맘먹고 물어본 듯 조금 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어디에서부터 말을 해야할지 잠시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전선기가 범인이야.”


“그게 끝?”


“더 이상 말할 순 없어. 내가 너한테 까지 말하면 너에게도 피해가 올거야.”



형식이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도 단호하게 쏘아보자 더 이상 묻질 않았다.

 

 

나는 나가기 전에 잠시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빌리기로 했다.



“프린터도 있냐?”


“있제, 전원만 누르면 될거여.”


“고맙다.”



나는 성훈이의 수첩 복사본을 뽑고, 그 동안 나름대로 정리를 해 두었던 자료에, 이번에 어든 새로운 데이터를 추가해서 문서로 남겨두었다.

 

 

이렇게 보니 양이 꽤 많았지만 이젠 들어갈 집도 없었고 전선기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곳에 지나치게 많이 머무르는 건 위험했다.

 

 

앞으로의 노숙 생활을 위해서라도 직접 가지고 다니는게 훨씬 편할 것 같았다.



게다가 고시원에 현금을 다 박어놨었는데, 홀라당 불에 타버렸으니 지금 있는 돈은 지갑의 4만원 뿐이었다.

 

 

나는 지갑을 닫으며 한숨을 푹 쉬고 형식이에게 말했다.




“이제 갈란다.”


“벌써? 여기에서 생활해도 되는디... 갈데는 있어...?”


“없어. 없어도 갈 수밖에 없어.”



나는 다소 비참하게 말했다.

 

 

형식이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나왔다. 형식이는 그걸 내 손에 꾹 쥐어주었다.



“뭐야.......?”



“돈 몇 푼하고, 핸드폰이여. 혹시 곤란한 점이 있으면 연락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한도에서는 최대한 도와 줄텡께.”


“쳇, 너 경찰이잖아? 경찰이 그래도 돼?”


“뭐 어때서? 신경쓰지 말고 꼭 연락해.”



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 번 두드리고는 현관을 나섰다.




이젠 가진게 없다.




잃을 것도 없다.




가진건 목숨 뿐이다.

 

 

 

 

 

나는 어제 노숙자가 머물렀던 지하철로 갔다. 가는 동안 형식이가 준 검정비닐봉투를 살펴보았다.

 

 

조금 구형의 스마트폰과 현금 50만원이 들어있었다.

 

 

꽤 묵직하다 싶어서 핸드폰 무게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50만원이라니,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엄청 미안하기도 했다.

 

 

평소에 경찰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던 형식이였다.

 

 

형식이는 몇차례나 떨어지고 나서 겨우겨우 경찰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평소에 우리가 장난삼아 하던 농담이 있다. 서로 불가피하게 범행을 저지르면 어떻게 할거냐고.

 

 

그때마다 형식이는 순진하게 웃으면서 감방에 쳐넣어 준다고 말했었다.



“휴.......”



지하철에 타자 평소처럼 약간 쌀쌀한 기운과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다.

 

 

왠지 주변이 좀 산만해서 왜 그런가 싶었더니 한 어르신이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뉴스인 것 같았다.



-어제 2시경에 QQ동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1명이 사망하였고.......



다시금 이 이야기를 들으니 꽤나 씁쓸했다.

 

 

아직도 무거운 돌이 가슴에 뉘여져 있는 듯 한 답답함이 들었다.

 

 

쇠고기 스프를 먹었을 뿐인데, 그나마도 소화가 되질 않았다. 라디오는 계속 혼자 떠들어 댔다.



-화재의 원인은 방화에 의한 화재로 추정이 되며, 용의자는 현재 지명수배 중에 있습니다.


“.......?”



용의자를 지명수배 한다고? 그렇다면 전선기가 꼬리를 잡혔다는 소리인가?

 

 

나는 자세하게 라디오를 듣기 위해서 노인쪽으로 살짝 몸을 튼 후에 조용히 아나운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용의자는 전 강력계 형사였던 박선후 이며 나이는......


“?!”



어이가 없는 방송이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용의자가 됐단 말인가?

 

 

분명 내가 서주희를 탈취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방화 따위는 전혀 저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뉴스에서는 내가 탈취범이라는 소리는 단 한마디도 나오질 않았다.


이쯤 생각하자 웃음이 또 흘러나왔다. 이것도 검찰의 짓거리다. 아니, 민창수놈의 짓거리일 것이다.

 

 

이번 사건을 빌미로 귀찮은 존재였던 나를 제거하려는 것 같았다.



-고시원의 주인인 전 씨에 말에 의하면 방을 2개 잡고 일을 하는 괴짜였으며, 이번에 사망한 박 씨는 박선후의 누나라고 합니다. 박 씨의 시신은 박선후가 머물던 방에서 끔찍한 시체로 발견이 되었으며.......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진짜 방화범이고 연쇄살인범은 저 새끼인데 저놈은 당당하게 인터뷰까지 하면서 나를 농락하고 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머릿가죽이 뒤집힐 정도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하철의 손잡이를 꾹 움켜잡는 일 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노숙자가 머무는 역에 도착을 하였고, 여지없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보니 아직도 어제일의 타격이 큰지 꽤나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만원짜리 한 장을 그의 깡통에 집어넣을 뻔 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 누구........ 너 이 새끼?!!”



그는 나를 보자마자 빠르게 일어나 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일어나면서 깡통을 발로 차버려 동전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굴렀지만 노숙자는 그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엿멕여? 강아지. 너 때문에 내가 어떤 수난을 당했는 지 알아?”


“으윽, 죄송해요. 급한 일이 있었어요.”


“급한 일?! 이 신발놈아 돈만 내고 가면 되는 거였잖아!”


“그래서 이렇게 사과하러 온 거 아닙니까.”


“개놈아 난 그게 더 어이없어, 무슨 염치로 여길 나타난 거냐?”


“켁, 켁... 일단, 일단 놓고 말해요 놓고.”



내가 숨쉬기가 곤란해져 기침을 하자 노숙자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 손에 힘을 슬그머니 풀었다.

 

 

하지만 멱살을 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내가 뭘 믿고 널 놓아줘? 시끄럽고, 왜 왔는 지만 말해.”


“진짜 사과하러 왔다니까요.”


“이런럴 놈아, 사과하면 장땡이야? 장땡이냐고, 너 때문에 2주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날렸는데, 그게 끝이야?”


“아유... 밥 살게요 사면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놓고 또 도망가려고? 안 되지... 안돼...”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비닐봉지 안에 있는 만원짜리중 하나를 그에게 건냈다. 그는 눈이 번쩍 커지더니 게 눈 감추듯 내 손의 만원짜리를 뺏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야 멱살을 놓고 아까 떨어진 동전들은 하나하나 줍기 시작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도와 동전을 주워 주었다. 노숙자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도와준다고 내가 뭐 좋아할줄 아냐? 허튼짓이야.”


“다 줍고 밥이나 먹으러 가죠.”


“..... 이번에도 그냥 가면 가만 안둘테다.”



이번에는 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갔다.

 

 

노숙자가 다른 곳은 별로 가기 싫다고 좀 꺼려했지만 얻어먹는 처지라 곧 수긍하고 내 말을 따랐다.

 

 

내가 가자고 한 곳은 인근의 막걸리 집이었다.



“뭐야, 대낮부터 술이라도 먹게?”


“밥만 먹기는 섭하지 않아요? 간단하게 한 병만 먹죠.”


“음....... 그래 좋아.”



노숙자도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가게 주인은 처음에 우리의 행색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동냥하러 온게 아닌 걸 알자 친절하게 음식을 가져왔다.

 

 

우리는 약속대로 막걸리 한 병에 백반을 시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반쯤 먹었을까? 빠른 속도로 우걱우걱 먹던 노숙자가 날 슥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맨입으로 사주는 건 아닐텐데?”



그의 말에 난 그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의 밥그릇은 벌써 거의 다 비워져 있었다.

 

 

나는 이정도면 말을 해도 되겠다 싶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눈치가 역시 있으시군요. 밥을 다 먹어 놓구.”


“쳇, 배고픈건 어쩔 수 없다고. 뭐냐?”


“저도 아저씨 옆에서 노숙생활을 하게 해 주세요.”


“뭐?”



노숙자의 눈빛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눈빛이었다.

 

 

아무래도 이번엔 노숙자가 생각지도 못한 요구를 내가 한 것 같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말뚝을박듯 말했다.



“저도 노숙자 하게 옆자리 좀 내어 주시라구요.”


“....... 내가 음식 토하면 없던 걸로 할 텐가?”


“아뇨.”


“쳇... 그래 이유라도 듣자. 왜?”


“잡아야 할 사람이 있어요.”


“.......?”


“어쩌면 같은 사람을 쫓고 있는지도 모르죠.”



난 노숙자가 욕하던 두 번째 전선기를 생각해 냈다.

 

 

노숙자는 잠시 생각을 했지만 모르겠다는 듯, 욕을 뱉고는 남은 밥을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물을 한잔 들이킨 뒤에 포효하며 말했다.



“후....! 요즘엔 배부르게 먹고사는구만, 좋지. 좋아.”



그는 조금은 불룩해진 배를 쓸어내리며 나에게 말했다.



“뭔 말인진 잘 모르겠다만. 얻어먹었으니 도와줘야겠지...”



나도 마지막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고 딱 소리가 나게 숟가락을 내렸다.

 

 

돈은 당연히 내가 계산했고 노숙자는 기분이 꽤 좋은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는 바닥에 나뒹굴던 종이를 주워 십자가 모양으로 찢더니 나에게 주었다.




“이게 뭐죠.......?”




내가 약간 인상을 쓰며 종이를 받아 들자, 노숙자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노숙자가 된 걸 환영하네.”

 

 

 

 

 

“뭐야 이게. 장난쳐요?”


“장난?”



꽤나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하던 노숙자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충 길가에 돌아다니는 찢어진 종이 쪼가리 가지고 뭘 한다는 말인가?

 

 

나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노숙자는 약간 빈정이 상했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이 근처에선 나한테 그거 못 받아서 울고 가는 새끼가 한둘이 아닌데.......”


“겨우 이거? 나도 주겠네.”


“임마! 이게 뭔지 알아?!”


“뭔데요.”


“가장 많은 수금을 할 수 있다는 2호선 라인의 노숙자 연합의 표식이다.”


“.......”



다시 한번 노숙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는 계속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노숙자 입장에서는 꽤나 자랑거리 인가 보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갑에 아무렇게나 넣어놨다.

 

 

괜히 버렸다가는 저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아저씨가 왕초에요? 거지 왕?”


“쓰읍...! 거지라니! 엄연한 노숙자라는 직업이야. 수익도 있다고.”


“이해 할 수 없구만.......”


“차차 알게 될 거다.”



살다살다 노숙자의 어깨가 저렇게 힘이 들어가 있는 건 처음 봤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노숙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와서 물어보기가 좀 무안하긴 했지만 편한 호칭을 위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요?”


“나?”


“여기 아저씨 말고 더 있나?”


“알아서 뭐하게.”


“으윽...!”



열이 올라오려고 했다. 세상에서 이런 족속들이 제일 싫었다.

 

 

쓸데없는 것 가지고 한번 더 장난치고 싶어서 질질 그는 족속들. 성질 급한 형사들의 세계에선 적이었다.

 

 

그리고 경찰들은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도 잘 하질 않는다.


나는 겨우겨우 화를 억누르고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부르기 불편하잖아요....?”



노숙자는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잠시 생각을 했다. 나는 인내심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안 그래도 하루 빨리 여기에 정착을 해서 전선기를 부셔버려야 하는데, 시간이 끌리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곧 전선기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김두송. 김두송 이라고 한다.”


“아~ 저는 박선후.......”


“박선후! 거 참 거지같은 이름이구만, 아주 노숙자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야.”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두송은 호쾌하게 웃으며 나의 이름을 칭찬했다.

 

 

아니, 칭찬? 칭찬이지만 기분 좋지 않은 칭찬이다.

 

 

나는 머릿속에 혼란이 일어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김두송은 그런 내 표정을 보고 하하 웃더니 나를 자리로 끌고 갔다.

 

 

내가 얼 빠진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자, 그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뭐해, 자세 취해.”


“예? 뭔 자세요?”


“구걸을 해야 할 거 아냐. 거지 본 적 없어?”


“.......”



나는 드디어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다. 난 이제 노숙자이다.

 

 

노숙자면 노숙자에 맞는 행동을 해야겠지. 나는 최대한 굴욕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여름이지만 바닥이 꽤나 차가웠다. 이 자세로 대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새삼 노숙자들이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고, 역시 돈을 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치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 뭐하냐?”



한참 감상에 빠져 있는데, 힘이 한껏 빠진 김두송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만 살짝 들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순간 기분이 팍 상했다. 웃음이 터질 듯 말 듯한 그의 얼굴을 보고 화가 나서 일어났다.



“대체 또 뭐가 잘못 됐다고?”


“그.. 그 자세는 푸흣... 대체 뭐냐...?”


“자세 잡으라면서요? 잘못 됐어요?”


“그렇게 불편하게 몇시간 동안 있으려고? 그냥 앉아 있어도 돼.”


“몇 시간.......?”



나는 기껏해야 한시간 정도면 될 줄 알았다. 몇 시간 이라니, 대체 얼마나 동냥을 한단 말인가? 나는 짜증나서 그에게 물었다.



“얼마나 하는데요?”


“저녁 밥 먹을 때까지 하고. 저녁 먹고는 잘 때까지 하고.”


“그런.......! 저는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빨리 그 새끼를 잡아야 돼요.”


“미친놈. 난 자세한 내막도 몰라. 뭘 알아야 도와줄 거 아니냐?”


“에........?”


“여기에 있으면서 니 이야기나 좀 해봐라. 내가 납득이 되면, 도와줄 수 있을 만큼 도와주지. 그러고 보니까, 내가 데리고 있던 녀석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예....... 맞아요...”



나는 잠자코 노숙자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저녁 먹을 때까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났을 때부터, 고시원이 불타서 누나가 살해당할 때 까지, 그리고 지금은 용의자로 몰린 것 까지 말을 했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노숙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는 적지 않게 놀랬다.



“의외로 담담하시네요?”


“담담? 그렇게 보이나?”


“네, 침통한 표정도 아니고, ‘인생이 다 그렇지 뭐...’ 그 표정인데요?”


“그래? 하긴 그렇기도 하지.”


“무슨 말이에요?”


“너도 물론 많이 안된 경우긴 하지만 너만큼 깊고 슬픈 사연을 품고 있는 놈들이 많은 곳이야.”


“.......”


“가스 폭발로 3대가 무너진 놈도 있고, 자신이 잘못 점검한 차를 타서 일가족이 몽땅 죽어버린 놈도 있어. 뭐, 이런 상황에서 행복 운운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너는 너의 잘못으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고, 아직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한 놈이지.”



분명 발끈할만한 말이었지만 나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을 나는 항상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 더 이상 가진 게 없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난 아직 가진 게 많았다.


내가 침울에 빠져서 바닥을 쳐다 보고만 있자 진지하게 말하던 김두송 씨가 내 등짝을 세게 때리며 말했다.



“시간 됐다. 밥 먹으러 가자!”



그는 앞에 놓인 깡통을 신나게 흔들며 먼저 일어났다.

 

 

몰랐었는데 어느새 깡통엔 동전이랴 지폐랑 심지어 군것질거리 까지 꽤 모여 있었다.

 

 

나도 고개를 흔들며 기운을 차리고 그를 따라갔다.

추천수9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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