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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 1

니르바나 |2003.12.24 14:25
조회 2,283 |추천 0


본격 오컬트 판타지 소설

니르바나
Nirvana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프롤로그


 “그렇군요. 어쩐지 당신에게서 진야(眞夜)의 체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했습니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넘어서면 안 되는 경계에 발을 들여놓은 모양이군요.”

 정말이지 묘한 사내다.
 상우는 자신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절모의 사내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카페 허쉬(Hush)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받았던 첫 인상 그대로였다.
 시대착오적인 코디라고도 할 수 있는 중절모를 무난하게 소화하는 30대 중반의 사내.
 빛이 바랜 듯한 회색 정장 역시 모던한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고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회중시계나 상의 주머니에 꽂혀있는 하얀 손수건도 복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옷차림만으로는 굉장히 고리타분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상대의 의중을 꿰뚫어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흔히 카이저수염이라고 불리는 멋들어진 콧수염 역시 그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 일조했다.
 늘 그래왔듯 상우가 바에 자리를 잡고 일전에 키핑 해두었던 위스키를 거의 비었을 때쯤, 마치 호러 영화에서 봤을 법한 익숙한 장면처럼 그가 뇌성벽력을 동반한 폭우를 등에 업고 카페에 들어섰다. 덕분에 카페 안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확실히 등장부터 남다른 인상을 심어준 그였다.
 비록 우산을 썼다고는 하지만 사방팔방으로 들이치는 빗속에서 옷깃 하나 젖지 않은 채로 들어서는 그에게서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는지 카페 안의 다른 손님들은 일순 침묵을 유지했다. 그것은 상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번들거리는 시선을 뿌리며 한 차례 카페를 둘러보더니 곧장 상우의 옆자리로 걸어갔다. 그의 접근에 상우가 위축된 모습을 보인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불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듣기에 따라선 거만하게 느낄 수도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상우는 내색하지 않고 잠자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감사합니다.”

 그가 양해도 구하지 않고 상우의 옆자리에 앉더니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상당히 무례한 태도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상우는 미간을 좁히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담배연기가 흔들리며 메마른 웃음이 들려왔다.
 상우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조소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거북함을 느끼고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서는 상우에게 건넨 말이,

 “그렇군요. 어쩐지 당신에게서 진야(眞夜)의 체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했습니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넘어서면 안 되는 경계에 발을 들여놓은 모양이군요.”

 그 순간 상우는 멈칫거리며 사내를 돌아봤다.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다음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이상한 사내다.
 상우는 다시 자리에 앉고는 위스키가 채워진 스트레이트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그에게 잔을 돌리며 물었다.

 “지금 한 말, 무슨 뜻입니까? 진야? 진야라고 했습니까?”

 그는 상우가 따라주는 잔을 비우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2개의 밤이 존재하고 있지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지금 머물러 있는 밤은 진정한 밤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장막이랄까요? 대개의 경우는 그 뒤에 숨겨진 진정한 밤의 실체를 모르고 지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은 그 진정한 밤을 가리켜 진야(眞夜)라고 부르지요.”

 “밤에 가려진 또 다른 밤? 그것이 진야라고?”

 상우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진야의 실재를 부정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군요. 하지만 이미 당신도 경험했을 거라 여겨지는데요. 아닙니까?”

 과음을 한 탓일까? 갑자기 그의 눈동자 속에서 시퍼런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무슨…… 난 그런 건 모릅니다. 그 무슨 황당한 소리를…….”

 상우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옹색한 태도를 취하며 말끝을 흐렸다.

 “하기는 누구나 처음에는 부정하려고 들지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다. 상우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바텐더를 겸하고 있는 카페의 오너를 바라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둘의 대화를 전혀 못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두 사람의 존재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놀라실 거 없습니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 제가 잠시 장난을 쳤으니까요.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대화는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존재감마저 느끼지 못할 겁니다. 도가에서 흔히 장신(藏身)이라고 불리는 술법이죠. 그리 내세울 것은 못되지만 나름대로 쓸만한 잔재주라 할 수 있지요. 특히 지금처럼 다른 사람이 들으면 곤란한 대화를 나눌 때면 말입니다.”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그가 이유를 설명해줬다.

 “자……장신이라니. 도대체 당신은 누굽니까?”

 상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모수라고 합니다. 진야의 세계에선 모수선생(毛手先生)이라 불리지요.”

 그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보였다.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등은 ‘모수’라는 이름처럼 거뭇한 털로 뒤덮여 있었다. 왠지 손등 이외의 신체 다른 부위에도 그렇게 털이 잔뜩 나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저는 일종의 브로커인 셈이죠. 선생처럼 원치 않게 진야의 발에 들여 놓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적당한 해결사를 붙여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랄까요. 우연히 지나는 길에 진야의 기운을 느끼고 곧장 이리로 들어왔더니 선생이 있더군요.”

 “도무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이런 농담에는 별로 익숙하지 않으니까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군요.”

 상우는 짐짓 화난 목소리로 말해봤지만 모수선생이란 사내는 빙긋 웃기만 했다.

 “아직도 전화가 오지 않습니까? 얼마 전부터 걸려오는 그 전화 말입니다.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이 두려워서 이렇게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 누구야!”

 모수선생의 말에 상우는 자리를 박차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큰 목소리였는데도 모수선생의 말처럼 장신의 술법이 걸려 있는 탓인지 아무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후후후.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역시 선생께서 진야의 존재를 믿고 있다는 뜻이겠죠.”

 “너, 뭐하는 새끼야! 오호라, 네놈이 그 장난전화를 건 새끼지? 맞지?”

 상우는 필요이상으로 흥분하며 모수선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모수선생에게 비웃음만 살 뿐이다.

 “좀더 현명하게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선생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저를 만났으니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진야의 어둠에 휘말려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모수선생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상우는 멱살을 쥔 손을 풀며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이지 뭐가 뭔지 모르겠군. 일주일 내내 괴상한 전화에 시달리지 않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여놓지를 않나…….”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선생께서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대로 저를 무시하고 끝내 진야의 어둠에 삼켜지던지, 아니면 저를 통해서 해결사를 만나 진야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던지 말입니다. 아주 간단한 겁니다.”

 상우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 제가 가려던 곳이 진야의 세계에선 가장 솜씨 좋은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이죠.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카페 니르바나라고…….”

 “니르바나?”



 분명, 자연적인 바람은 아니었다.
 계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삭풍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인사동의 밤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음울한 잔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그 궤적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다.
 바람은 아무렇게나 부는 것이 아니라 거뭇한 그림자 같은 기운을 쫓고 있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희미한 영체(靈體)였다. 바람의 기세는 먹이를 노리는 맹금처럼 사나웠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영체가 어느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바람은 당황한 사람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골목 끝에는 ‘니르바나’라는 간판이 걸린 카페가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외관은 통나무집처럼 꾸며진 3층짜리 건물로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매우 친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복합적인 느낌이었다.
 번쩍! 시퍼런 전광이 천둥을 이끌며 골목 안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바람을 피해 숨 가쁘게 달아나던 영체가 카페의 입구에 이르러서야 도주를 멈췄다. 동시에 사냥개처럼 집요하게 추적을 하던 바람이 갑자기 머뭇거리는 눈치였다. 마치 카페에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는 눈치였다. 바람은 그렇게 잠시 주춤하더니 눈에 보일 정도로 검붉은 기운을 머금더니 다시 맹렬하게 쇄도했다. 그것을 신호로 영체 역시 바람을 피해 달아났다. 그러나 바람 쪽이 더 빠르다.

 -쿠오오오오오

 검붉은 바람이 영체를 삼키려는 찰나, 별안간 카페로부터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양강(陽鋼)의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나와 바람을 분쇄시켰다. 그것은 소리 없는 고함 같기도 했고, 형체가 없는 철퇴처럼 바람을 짓이겨 놓았다.
 바람은 누군가 들었다면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비명을 남기며 산산이 흩어졌다.
 위기를 넘긴 영체는 어그러지더니 서서히 40대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마도 살아생전의 모습인 듯싶었다. 완전하게 모습을 갖춘 그는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카페를 향해 정중히 목례를 하고는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굳게 닫혀 있던 카페 문이 열리면서 캐주얼한 스타일의 세미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합죽선을 휘적거리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연령대로 보이는 특이한 외모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짙은 눈썹은 한번 보면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밤인데도 불구하고 렌즈에 옅은 갈색이 들어간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도 별로 어색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그리 크지 않은 중키에, 근육질도, 마른 편도 아닌 적당히 균형 잡힌 체구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여느 사람과는 다른 비범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불가사의한 분위기를 지닌 남자의 이름은 이수한, 바로 카페 니르바나의 오너였다.
 그러나 수한에게는 진야의 세계에서 불리는 또 다른 이름이 존재했다.
 운사(雲師).
 그 이름은 어떤 이들에게는 공포를, 어떤 이들에게는 구원으로 생각되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공포를 느끼는 쪽이지만.

 “후후후. 오늘도 어김없이 진야의 어둠이 기승을 부리는군. 슬슬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는걸. 그나저나 오늘밤은 열반차를 주문하는 손님이 몇이나 될까…….”

 조용히 골목 입구를 응시하던 수한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카페 니르바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진야의 어둠 속에서 길 잃은 그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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