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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 3

니르바나 |2003.12.24 14:27
조회 628 |추천 0

 
본격 오컬트 판타지 소설

니르바나
Nirvana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문장술사(文章術士)



 쿵! 쿵!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우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세게 내려쳤는지 현관문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지금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고 해서 문을 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쿵! 쿵!

 더 이상 현관문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보조 자물쇠는 이미 부서진 지 오래고, 방범체인마저 끊어져버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저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을 부수고 있는데도 이 빌어먹을 이웃들이나 경비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상우는 벽을 짚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 사이에도 문밖의 존재는 계속해서 현관문을 두드리며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상우가 두려움 때문에 잘 움직여지지 않는 발을 바닥에 질질 끌어가며 물러서다가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에 등이 닿는 순간,

 콰직!

 현관문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차디찬 유리창으로 전해지는 서늘한 기운을 느낄 겨를도 없이 상우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아악!”

 그 무언가가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눈을 감은 채, 필사적으로 팔을 휘젓는 상우. 그러나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없었다. 예의 기분 나쁜 서늘한 기운만이
 상우를 휘감은 채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정적이 흐른다.

 “최상우 씨? 괜찮으십니까? 최상우 씨.”

 귀에 익은 목소리다. 상우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눈부신 빛과 함께 인자한 미소로 상우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구의 사내, 마치 후광을 안고 있는 부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당신은…….”

 상우는 손으로 빛을 가리며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 인사를 나눴었죠? 이진우라고. 기억나십니까?”

 지난밤 니르바나란 카페를 찾아갔을 때 카운터 옆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던 KFC 할아버지를 닮은 남자, 바로 그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검정색 개량한복을 걸치고 손에는 의사들이 왕진을 나갈 때나 쓸법한 커다란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살짝 지퍼가 열려진 틈으로 붓이라든가 먹, 벼루 같은 지필묵이 보였다.
 상우는 기억한다는 의미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죠? 워낙 길치라 찾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진우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뻗어 상우를 일으켜주었다.

 “네?”

 상우는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밤에 저희 카페에 오셔서 열반차를 주문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번 의뢰는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제비뽑기를 했더니 제가 걸리더군요. 하하하.”

 “그런데 집안으로 어떻게 들어오셨죠? 분명히 문을…… 아!”

 순간 상우는 자신이 복도에 나와 있음을 깨달았다. 옷도 정장 그대로였고 손에는 현관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놀랍게도 상우는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심하게 우그러졌던 현관문도 멀쩡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꼼꼼히 살펴봤지만 작은 흠집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환각을 보았다는 말인가. 상우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현관문에 몸을 기대었다.

 “이럴 수가…… 전 분명히 조금 전까지 집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문이 부서지고, 아까 주차장에서 올라와서 그러니까…….”

 상우는 적지 않은 충격을 입었는지 넋 나간 얼굴로 횡설수설했다.

 “최상우 씨, 진정하세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놀라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건강했던 사람들도 원기가 쇄약해지면 환시나 환청을 듣는 경우가 생기죠. 그런 경험 없으십니까? 최상우 씨의 경우도 비슷한 겁니다. 흠, 이렇게 바깥에 있지 말고 일단 들어가서 다시 이야기하죠.”

 진우는 상우가 듣건 말건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는 그가 쥐고 있는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서릿발 같은 차가운 기운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어찌나 싸늘한지 입에서 입김이 나오질 지경이었다. 상우는 움찔거리며 진우의 뒤로 몸을 숨겼다.

 “뭐, 뭡니까.”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집안 가득 귀기(鬼氣)가 서려있네요.”

 진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선 상우와 같은 두려움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일에는 익숙한 것인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어조였다.

 “귀기라고요?”

 상우의 물음에 진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우는 진우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집안을 둘러봤다. 정말 진우의 말처럼 귀기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일단 귀기부터 몰아내야겠군요.”

 진우는 말을 마치기가 들고 있던 가방을 열더니 지필묵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벼루와 먹, 붓, 문진을 꺼내고 마지막으로 화선지를 펼쳤다. 상우는 진우의 행동에 호기심이 생겨 두려움도 잊은 채 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조용히 다음 행동을 지켜봤다.

 “우리가 쓰고 읽는 문자에는 신비한 힘이 담겨져 있습니다. 본래 주술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말과 글이죠.”

 진우는 상우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 먹을 갈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문자의 힘으로 귀기를 몰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한번 볼까요? 우선 귀신 귀자를 써보도록 하지요.”

 진우는 조용히 웃더니 붓을 들어 화선지 위에 커다랗게 ‘鬼’라는 한자를 썼다. 그러자 집안 가득 충만해있던 오싹한 기운들이 좀더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희미하게 구슬프게 우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심지어는 거실의 가구들이 요동을 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상우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귀신 귀자지요. 그런데 여기 위에 차츰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닌 점(漸)이라는 한자를 써넣으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죠. 바로 귀신 죽을 참(?)이 됩니다.”

 진우가 화선지 위에 ‘?’이라는 한자를 완성시키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붓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화선지 위에 쓴 ‘참’자가 눈부시게 빛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찢어질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상우 역시 귀를 틀어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거실에 있는 작은 집기들이 날아오르며 이리저리로 내던져지고 형광등이 숨 가쁘게 점멸했다. 베란다 창문이 저절로 열리고 커튼이 심하게 나부꼈다. 그리고 잠시 후, 비명이 멎고 거짓말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조심스럽게 눈을 뜬 상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환각이 아닌지 자신의 뺨을 꼬집어보더니 놀란 눈을 하며 진우를 바라봤다. 상우의 눈에는 진우가 대단한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보였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상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필묵을 다시 가방 안에 집어넣던 진우가 손을 멈추고 상우를 바라보더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말입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이진우라고 합니다. 그냥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서예가이지요. 아, 굳이 차이를 둔다면 문자가 지닌 힘을 다룰 줄 아는 정도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문장술사(文章術士)라고 부를 수도 있겠군요.”

 “문장술사?”

 “자, 그것보다 완전한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는 그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어디 있지요?”

 “공중전화 부스 말입니까? 지금 거길 찾아가겠다는 말씀입니까. 이런 늦은 시각에?”

 “물론이죠. 일단 집안에 서려 있는 귀기를 몰아내기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시 찾아오게 됩니다. 그럼 악순환만 거듭될 뿐이지요.”

 “하지만…….”

 “자자 머뭇거리다가는 시간만 지나갑니다. 어서 가시죠.”

 진우는 머뭇거리는 상우를 이끌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어두컴컴한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상우는 조금 전의 기억 때문인지 한 차례 몸을 떨고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꼭 이 시간에 가야겠습니까? 날이 밝은 후에도 얼마든지…… 어?”

 상우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진우에게 말을 걸다가 진우가 곁에 없음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함께 지하주차장까지 내려왔었는데…… 설마, 이번에도 환각이라는 건가. 상우는 연신 고개를 돌려가며 진우를 찾아봤지만 텅 빈 주차장에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이지 도깨비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강한 빛이 들이치며 빠른 속도로 상우에게 돌진해왔다. 더불어 맹수의 포효와도 같은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상우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 빛은 그대로 상우를 덮쳤다. 상우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낮은 맹수의 울음소리에 상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덮친 빛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것은 거대한 체구를 지닌 4륜 구동의 랜드 쿠루저였다. 상우가 맹수의 울음소리가 생각한 것은 랜드 쿠루저 특유의 거친 엔진소리였다. 사실 차체도 엄청나게 커서 맹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차종이라 그런지 왠지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엔진소리가 낮아지고 상우의 시야를 어지럽히던 서치라이트가 꺼지자 운전석이 보였다.

 “최상우 씨, 빨리 타세요.”

 부처를 닮은 듯한 미소의 소유자, 진우가 운전석에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상우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진우가 계속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진우는 상우가 옆자리에 올라타자 싱긋 웃으며 다시 라이트를 켰다. 강렬한 빛이 어두컴컴한 주차장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차가 꽤 크네요.”

 상우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승차감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어떤 도로든지 구애받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네에…….”

 “그럼 그 공중전화부스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제가 워낙 길눈이 어두워서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안 그러면 밤새도록 서울 시대를 빙빙 돌지도 모르거든요.”

 상우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 기분 나쁜 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진우의 말처럼 완전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끝낼 수만 있다면 지금 확실하게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의 공중전화부스를 찾아가는 일은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됩니까?”

 “네? 아, 네에. 우회전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계속 직진이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랜드 쿠루저는 8차선 도로로 들어서자 특유의 거친 엔진소리를 내며 어둠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냥을 나서는 맹수처럼.



 “하아, 이런 곳에 있었군요. 정말 구석진 곳이네.”

 문제의 공중전화부스는 상우의 이야기처럼 정말 외진 장소에 있었다.
 차에서 내린 진우는 더운지 합죽선으로 부채질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래전에 공사가 중단된 듯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 한 채가 휑하니 서있었고 가로등도 공중전화부스를 밝히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꺼진 상태라 그런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꼭 여기에 와야 하는 겁니까.”

 뒤따라 내린 상우는 재빨리 진우의 뒤로 몸을 숨기며 다소 원망조로 물었다.

 “단순히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으니까요. 저겁니까? 상우 씨가 말한 공중전화부스가.”

 진우가 혼자 덩그러니 서있는 공중전화부스를 가리키자 상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한번 가보죠.”

 “네?”

 상우는 진우의 말에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을 쳤다. 그러나 진우는 상우의 옷깃을 잡아끌며 공중전화부스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잠깐만요. 꼭 가야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저기 제 말은 전 여기서 그냥 기다리면 안 됩니까. 전 말이죠…….”

 상우가 질질 끌려가다 시피하며 하소연을 하자, 문득 고개를 돌린 진우가 하는 말.

 “벌써 다 왔는데요.”

 어느 틈에 공중전화부스 바로 앞까지 걸어온 두 사람. 머쓱해진 상우는 낮게 헛기침을 하며 진우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낡았군요. 공중전화기도 구형이고. 와아, 이게 도대체 몇 년도에 나온 전화기지. 요즘엔 보기 힘든 모델인데요. 어디보자.”

 진우는 연신 감탄을 하며 공중전화를 살펴보다가 수화기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꽤 가까이 접근해있던 상우는 깜짝 놀라며 허둥지둥 뒤로 물러서다가 발이 꼬여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진우는 상우를 일으켜주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일단 걸려온 전화는 받아보는 것이 좋겠지요. 아아, 여보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다만 치직거리는 잡음만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것이 상우의 경우와 비슷했다. 진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상우를 돌아봤다. 그런데 무엇을 본 것일까. 상우는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진우의 등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잔뜩 겁을 먹은 나머지 말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으으’거리며 낮은 신음소리만 냈다.

 “뭡니까? 왜 그러시죠?”

 “으으으…….”

 상우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계속 진우의 등뒤를 가리켰다.

 “제 뒤에 뭐가 있다는 겁니까? 흐음.”

 상우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푸르스름한 음영을 후광처럼 드리운 채 싸늘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여인. 공교롭게도 고개를 돌리자마자 여인과 눈이 마주쳤지만 진우는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분명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반투명하게 보이는 모습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붉게 충혈 된 원망어린 눈초리, 창백한 얼굴이나 푸르게 바래버린 입술은 충분히 공포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였지만 진우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듯했다.

 “당신이었습니까?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무시하고 이승의 사람과 연을 맺으려고 했던 영(靈)이. 다 부질 없는 짓입니다. 어떤 한 맺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당신이 머무를 데가 못됩니다. 그만 미련을 버리시고 떠나세요.”

 진우가 점잖은 말투로 타일렀지만 여인의 영은 힘차게 고개를 저으며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자 진우는 눈을 부릅뜨며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어허, 당신이 머무를 곳이 아니래두요. 이렇게 고집을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진우가 다가서려하자 여인의 영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고 동시에 공중전화부스의 유리창에 균열이 생겨났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공중전화부스가 흔들렸다. 균열이 점점 심해지고 ‘쩍!’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면서 파편들이 날아들었다.

 “이런!”

 진우가 혀를 차며 상우를 낚아채더니 덩치가 무색할 만큼 민첩한 움직임으로 날아드는 파편들로부터 멀찌감치 달아났다. 그러나 상우까지 피신시키느라 빈틈이 생겼는지 몇 개의 유리파편이 팔뚝에 박혔다.

 “난 대화를 하려고 했는데 이거 너무하는걸. 이래서야 원만한 해결을 할 수가 없잖아.”

 단숨에 차가 있는 곳까지 달아난 진우는 상우를 내려놓고는 여인의 영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진우가 돌아보자 여인의 영은 긴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공중전화부스 위로 천천히 상승했다.

 -그아아아아아아!

 고개가 아파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높이 상승한 여인의 영은 싸늘한 눈초리로 진우를 내려다보더니 입을 벌리며 소리 없는 파장을 내쏘았다. 그것은 인간의 가청영역을 넘어선 고주파로 주변의 사물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가로등들이 휘어지고 철제빔으로 이루어진 공중전화부스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졌다. 흉하게 뼈대만 남아있던 건물들도 그 진동에 못 이겨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진우 주변의 보드블록들도 일제히 일어나며 사방으로 날렸다. 육중한 체구를 지닌 랜드 쿠루저마저 들썩거리며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기세였다. 차 뒤로 몸을 순긴 상우의 비명이 들려온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오직 진우만이 꼿꼿하게 서서 여인의 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강렬한 영파(靈波)를 내쏘는 걸 보면 꽤 한이 깊은 모양인걸. 정화를 시키려면 쉽지가 않겠어. 후우, 이거 아무래도 제비뽑기를 잘못 뽑은 거 같은데. 한 맺힌 여귀(女鬼)는 내 전공이 아니잖아.”

 걱정스런 말투와 달리 진우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느긋했다.

 “그렇다고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군. 그래도 조금은 귀찮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진우는 지필묵을 꺼내더니 선우의 아파트에서처럼 화선지를 펼쳤다. 화선지가 여인의 영이 내쏘는 영파에 의해 요동을 치며 나부끼자 용(龍)모양의 문진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러자 미칠 듯이 펄럭거리던 화선지가 영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버렸다.

 “그럼 이 아가씨의 성깔을 좀 눌러볼까.”

 진우는 조용히 웃으며 붓을 들었다.
 처음 진우가 쓴 한자는 입 구(口)였다. 이어 다시 붓을 놀리더니 그 안에 계집 여(女)를 써넣었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음 짓는 진우.

 “입 구자에 계집 여를 넣으면 아이 입(?)이 되지. 아무리 한이 맺힌 영혼이라도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얌전해지는 법.”

 그 순간 여인의 영이 단말마의 비명을 남기며 강한 인력에 이끌리듯 찌그러진 공중전화부스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여인의 영이 다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공중전화부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쓰고 읽고 부르는 말과 글자에는 신기한 힘이 담겨져 있지요. 가장 원초적인 주술이랄까요? 나의 문령술(文靈術)에 봉인된 이상, 당신이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만 포기하세요.”

 진우의 충고를 들은 것일까, 아니면 공중전화부스에 갇힌 형상인 아이 입이란 한자의 의미처럼 온순해진 것인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여인의 영은 더 이상 난동을 부리지 않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슬픈 눈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진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다 끝난 겁니까?”

 차 뒤로 몸을 숨겼던 상우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두려운 요소가 사라지니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제법 용기를 내어 공중전화부스에 가까이 접근했다. 상우가 다가오자 여인은 뭐가를 말하고 싶은지 눈빛이 흔들렸다.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 마무리를 할 단계에 온 거죠. 그 전에 이 아가씨와 대화를 나눠야겠습니다.”

 “귀신과 대화를 하실 수 있습니까?”

 상우의 물음에 진우는 멋쩍게 웃었다.

 “제 능력으로는 직접적인 대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만 매개체가 있으면 가능하지요. 혹시 휴대폰 좀 빌릴 수 있습니까?”

 “휴대폰을요?”

 상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될지…….”

 “두고 보시면 알게 됩니다.”

 진우는 애매모호한 말을 하고는 상우의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그 순간 익숙한 멜로디가 울리며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화면의 발신자 정보는 익명으로 뜨고 있었다. 상우는 놀란 눈을 하며 휴대폰과 공중전화부스의 여인을 번갈아봤다.

 “영매나 트랜스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영적인 존재와 직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런 능력이 없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존재는 때때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를테면 가장 흔한 예로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들 수 있겠군요. 그 외에도 자동서기라든가 위자보드를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휴대폰과 같은 현대과학 문명의 산물도 촉매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죠.”

 진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그러자 수화기에서 희미하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차츰 집중을 하고 있으니 그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가지 마. 함께 있고 싶어. 부탁이야. 가지 말아줘.

 매일 밤. 상우에게 걸려왔던 전화속의 목소리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애매모한 중성적인 느낌의 목소리. 틀림없었다. 상우는 순간 숨을 크게 들이쉬며 긴장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진우가 곁에 있기 때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었다.

 -가지 말아줘. 더 이상 혼자 있는 건 싫어. 부탁이야. 가지 말아줘.

 무섭다기보다는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배어있었다. 상우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진우를 돌아봤다.

 “이 여인, 꽤 외로웠던 모양입니다. 하긴 본래 이승을 떠도는 영들은 다 외로운 존재죠.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기억이 깃든 장소에서 언제까지나 머무르려고 하니까요.”

 “그렇습니까?”

 진우의 설명을 들은 상우는 다시 한번 공중전화부스 안에 갇힌 여자의 영을 봤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두렵지가 않았다. 오히려 여인의 영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가녀린 어깨를 감싸며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신의 두 팔로 보듬어지고 싶다는 충동마저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여인의 영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공중전화부스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나 더 이상 공포감을 자아내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조금은 가냘프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사귀고 싶은 청순한 외모의 여인이 상우에게 걸어왔다.

 “이제 혼자는 싫어. 날 버려두지 마. 부탁이야. 나와 함께 있어 줘.”

 여인의 애원에 상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팔을 벌려 살며시 안았다. 분명 실체를 지니지 않은 영임에도 상우는 그녀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외로움, 기다림, 한 사람을 향한 애절한 마음, 그런 감정들의 편린이었다. 상우는 그 감정들에 동화되어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속삭였다.

 “그래, 알았어. 널 혼자 두지 않을게.”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하고 싶었고 꼭 해줘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우는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몇 번이고 다짐했다.

 “걱정 하지 마. 널 혼자 두지 않을 거야. 두 번 다시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상우의 품에 안겨있던 여인의 영은 환한 미소와 함께 희미해지더니 마치 반디불이와 같은 빛의 입자들로 산화되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 겨울에 내리는 눈이 역행하여 하늘로 되돌아가듯, 여인의 영을 구성하던 빛의 입자들은 한없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점점 위로, 위로…….
 상우의 손에 남은 마지막 빛의 입자가 작별인사라도 하려는 듯, 상우의 주위를 맴돌다가 역시 하늘 높이 올라갔다. 상우는 고개를 들어 그 빛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이것으로 일단락이 지어진 것 같군요. 이젠 두 번 다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여인의 영은 올바르게 천도되었으니까요.”

 “그 여자는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곳에 머물렀을까요? 그리고 밤마다 제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지박령은 어느 특정 장소에 강한 집착을 하거나, 떨쳐버릴 수 없는 추억이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마 그 여인이 살아있을 적에 추억이 많았던 장소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 사연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불행히도 저는 잔류사념을 읽는 능력이 없어서요.”

 진우는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상우 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도 그 추억과 관련된 건지도 모릅니다.”

 “추억이요?”

 “네. 어쩌면 그 여인이 사랑했던 남자와 많이 닮았을 지도 모르지요. 기억이란 그런 거잖습니까. 살아있는 동안 기억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물론 죽어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문득 진우의 목소리에 서글픔이 배어있다고 느낀 상우는 슬쩍 고개를 돌려 진우를 바라봤다. 그러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진우의 얼굴에서 슬픈 기색을 읽을 수가 없었다. 쓸데없는 기우라고 생각한 상우는 다시 고개를 들어 여인이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 걸까요. 내가 과거의 남자와 닮아서…….”

 “그게 아니면 아마 관심을 가져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보통 이런 소문이 나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져도 이런 외진 곳까지 찾아와서 상우 씨처럼 수화기를 들어보는 일은 하지 않거든요. 혹시 모를 일말의 가능성이 두려워서 말입니다.”

 “그럼 제가 그 전화를 받아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줬다고 생각한거란 말입니까.”

 “네. 영들은 외로운 존재들이라 끊임없이 자기를 알리려고 하지만 좀처럼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거든요. 사실 늘 우리들 주위를 배회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주면 그에게 집착을 하게 되죠.”

 “왠지 오싹하면서도 서글픈 이야기군요.”

 “아무튼 이것으로 상우 씨의 의뢰는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진야의 어둠에서 휩싸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조심하는 것은 나쁘지 않죠. 한번 진야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이쪽 세계의 존재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언제 다시 인연을 맺을지도 모르니까요.”

 상우는 진우의 말을 못 들었는지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진우는 그런 상우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움직여 먼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상우가 여인에게 작별인사를 끝마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의뢰인을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야 비로소 진우가 맡은 일이 끝나는 것이므로.

 “꽤 걸릴 것 같은데. 음악이나 들어볼까.”

 무심코 바라본 밤하늘에는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물고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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