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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우울한 크리스마스 이브

스팟 |2003.12.25 00:32
조회 468 |추천 0

내 나이 서른 둘.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몇일 있으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덧셈을 해야한다.
참... 최근 몽롱해진 내 머리속을 수없이 많은 생각으로 가득하게 해준 오늘에 굳이 감사한다.
난 이제껏, 누구 백일기념이다 발렌타인이다 빼빼로데이다 뭐다 다 아무렇지않게 지내왔다.
마지막...솔직히 세번째 애인과 헤어진지 만 삼년 넘었다. 당연 오늘 같은 날을 홀로 꿋꿋이 세 번씩이나 보냈다. 별 생각없이 더 당당하게 말이다.
당연한건가... 오늘 난 약속이 없어서 평소 잘 가던 동네 당구장에 갔다.
원래 할 일 없는 동네 아저씨하고 당구도 치고 티비도 보구 신문도 봤다.
밤 열시쯤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일부러 누구 만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잘 한짓인지는 모르겠다. 술 한잔 하자고 전화했을터인데 말이다.
누구누구는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좋은 일들이 많았겠지만 난 감정이 애매하다.
지금 막 시계를 보니 그 유명한 날 크리스마스 삼십분 전이다. 일년을 놀다가 오늘 첫 출근한 날이기도 하고 또 집에서 처음으로 혼자 술을 먹는 날이기도 하다. 차라리 비나 와라.ㅋㅋㅋ
정말 사발면이 먹고 싶었다. 아까 배가 고팠는데 당구장에서 누가 사발면을 너무 맛있게 먹는거 아닌가...
주머닐 보니 구깃거리는 오천원짜리 달랑 한장에 잔돈 몇개가 손에 집혔다. 집에 오면서 사발면 세개, 소주 한병 디스 두갑을 집고 오천원을 내니까 오백팔십원을 거슬러 주었다.
싸다 생각이 들거다.ㅋㅋㅋ 그래도, 준비성 확실하지 않은가? 낼도 먹을 수 있게 사발면 하구 담배 두개 더 샀으니까 말이다.
근데, 하필 그 아줌마 허연 봉다리에 그걸 넣어주는건지... 지나치던 여고생들의 눈길이 내가 든 봉다리에 한참 머물다 간다. 왠지 지들끼리 날 비웃는 것 같았지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음.. 일년의 공백이 오늘 너무 비참하리 와 닿았다.
지금 십분지 일 정도 남겨진 국물과 소주 한잔 반 정도 남았다.
솔직히 가늠이 가지 않는다. 소주를 물컵에 따랐기 때문이다.
남았던 국물하고 같이 지금 마저 다 먹었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계속 되뇌이며 말이다. 집에서 혼자 먹어서인지...취한다.
최근 삼년동안에 이런적 없었다. 난 여자가 아니기에 생리를 해 본적 없지만 매년 오늘처럼 그랬다면 정말 못견뎠을 것 같다.
날 등신같은 놈이라고 욕해도 할 말없다. 사실이니까 말이다. ㅋㅋㅋ
핸드폰을 열어보니 내가 예전에 바탕화면에 써놓았던 '희망을 가져라!' 란 글귀가 눈에 띈다.
내가 썼지만 정말 이럴때 보라고 써놓았나보다.

오늘 난 행복하진 않지만 그리 기분 나쁘진 않다.
왜냐면 사발면의 충만함과 소주 한 병의 그리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앞으로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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