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놀잇거리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 어떤 것이든 남에게 뒤쳐진 적이 없었을 뿐더러, 내 성격상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뛰어난 신체와 명석한 두뇌 그리고 엄청난 노력으로 정말이지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최고로 살아왔다고 당당히 자부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공부는 물론이고, 국내 최고의 교수진을 빼와서 배웠던 철학과 인문학, 수학, 화학, 물리 등을 체계적이면서도 심도 있게 익힌 것은 물론이고, 각종 외국어와 세계사, 지리, 문화... 심지어 피아노 섹소폰 미술 골프 승마 등의 예체능까지도 남들보다 잘했고 열심히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뭐가 되었든 내가 시작하면 1등이 아닌 적이 없었다.
(예체능은 취미일 뿐, 일부러 대회 따위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런 쪽으로 유명해지면 평민의 길에 들어설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물론, 훌륭한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뛰어난 재능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타고난 운동신경의 도움을 아주 조금 받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가 상당한 ‘노력형’이라 당당히 자부할 수 있다.
나 같은 걸출(傑出)한 인물을 배출한 집안이야 말 안 해도 불 보듯 당연하겠지만, 굳이 소개를 해보자면...
서울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역임하고 대법관을 거쳐 본격적으로 정계로 진출하려 준비하는 아버지와 부업개념으로 고급 화장품회사와 몇 개의 의류회사를 경영하는 어머니, 그리고 남들이 ‘총수’라고 부르는 할아버지와 그리고 나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무엇이든 해주시는 너무도 인자하신 최고 명문가 적통 출신의 할머니...
(아버지께서 법조계에 계신 이유는 할아버지의 사업 지원 때문이다. 덕분에 할아버지의 경영권을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밖에는 없다.)
그 밑에서 삼대독자 외동아들로 태어난 나는 고생이 뭔지, 배고픔이 뭔지, 서민의 생활이 뭔지 정말 눈곱만큼도 모르면서 지금껏 살아왔다.
막말로 15세가 될 때까지 땅을 직접 밟아본 적도 없을 정도다.
이토록 집안, 환경, 인맥, 두뇌, 마인드, 성품, 노력 그중에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으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알아주는 대학교, 그중에서도 최고 학부를 조기에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사상 유래 없이 초단기간에 석사학위까지 받았고 그 어렵다는 국비유학생까지 되어서 하버드대 박사를 받고 돌아왔다.
외모? 흠... 스스로 이런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사실대로 말하겠다. 키는 훤칠하고 얼굴도 꽤나 수려하다. 주위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연예인 뺨치는 귀공자풍의 미남형이라고 한다. 목소리도 좋아서 한번 대화를 나눈 사람이 금방 나에게 빠져들곤 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꼬이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말수를 줄이고 있다.)
군대는 아버지의 사랑이 너무도 깊은 나머지 사회생활로 대체했고, 현재는 부동산개발컨설팅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물론 그 회사는 내가 차린 회사다. 허나 사정상 바지사장을 앉혀놓고 난 간부사원 정도로 직책을 낮춰놓았다.
왜 부동산 관련 회사냐고?
보통 부를 대물림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증여세나 상속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상위 0.01%의 사람들은 그렇게 어벙하게 부를 대물림하지 않는다. 부는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티가 나지 않게 만들게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아주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나의 예를 간단히 들어보자면...
수도권이면서 개발 가능한 부지(경치가 좋은 곳, 그러나 교통은 나빠서 땅값이 현저하게 싼 곳) 인근에 먼저 몇 억 정도 들여 수만 평 정도를 ‘내 명의’로 매입한다. 법적인 절차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다.
5년 정도 흐른 다음 그 근방에 할아버지가 세운 기업 돈으로 개발을 한다는 발표를 한다. 더불어 산도 깎고 도로도 바둑판 모양으로 뚫어서 맹지(盲地)를 없앤다.
개발 도중, 관공서 등 여러 까다로운 허가 건은 법조계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담당한다.
투자자들이 적당히 모이면, 할아버지는 대부분의 지분을 개발 당시 시세보다 몇 배 비싸게 그들에게 팔고 빠진다.
그런 일련의 작업이 끝나면, 할아버지가 개발한 지역 인근의 ‘내 명의의 땅값’은 자동으로 크게 상승을 하고, 난 그 장소에 아파트나 상가 같은 것을 지어서 분양을 한다.
그러면 최초에 내가 투자한 금액의 10배 20배는 손쉽게 거두어들일 수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땅에 2차 작업을 하는 식이다.
(뭐 요즘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이것도 예전에 비하면 신통찮지만... 그래도 월급쟁이들에 비하면 많이 벌고 있다.)
말이 부동산 회사지, 할아버지 회사의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한 자금출처 및 모종의 작업을 하는 용도로 쓰는 일회성의 회사라 볼 수 있다.
이정도니 남에게 손 안 벌리고도 순수하게 내가 직접 번 돈만 써도 차고 넘칠 수밖에는 없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의 옷장에 걸려있는 정장의 수보다도 내가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 개수가 많을 거라 자신한다.
아주 능력자이지 않은가?
***
내 나이 서른 하고도 여덟...
이제 3개월 후면, 현재 각 공중파방송과 CF에서 최고의 몸값으로 주목받고 있는 23살짜리 여자와 결혼을 한다.
주변사람들이 신부가 너무 어린것이 아니냐며 나에게 도둑놈이라는 칭호를 쓴다. 나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신붓감은 내가 대학원에서 석사를 준비하던 해에 이미 결정지어졌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당시 내 신붓감의 나이는 겨우 10살이었다.
일반 서민들의 기준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뻥 같을 게다. 허나 우리 세계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행태 중에 하나란 것 먼저 알린다. 특히, 우리 집안은 결혼도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가풍(家風)이 아주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것이 ‘상류층의 피’를 이어가기 위한 수칙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피’가 섞이면 귀족의 피가 희석되어버려 어긋난 삶을 살게 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니, 우리가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잣대를 잘 지켜나가고 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는 얼굴도 단 한번 보지 못한 채, 어머니와 이미 약혼이 하셨다고 하니, 내 때에서 좀 더 개방적이 된 거라 할 수 있을까?
(나와 약혼녀는 15살차이. 왜들 나한테 도둑놈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영계 킬러인 내 친구 놈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짜증이 밀려온다. 물론, 이 사실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이 알고 있을 뿐, 그녀가 약혼녀라는 것은 결혼할 때까지 극비사항이다. 쉿!)
잠시 삼천포로 빠져서 그녀와 나의 예전 이야기를 해보자면...
처음으로 그녀와 관계를 갖게 된 시기는 내가 32살 때의 일이니까, 아마도 그녀의 나이가 17살 나던 해일 것이다.
당시 약혼녀의 나이가 많이 어렸지만, 내 나이는 무려 32살이었다. 혈기 왕성한 나이... 무조건 해야 되는 나이...
맘만 먹으면 클럽에서 같은 곳에 가서 딱 10분이면 그곳에서 최고로 예쁜 애를 데리고 호텔로 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지만, 한눈 안 팔고 신붓감에게만 애정을 갖기 위한 나름의 깊은 생각으로 그녀와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어쨌거나 약혼녀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성년의 날이 지난 후에 결혼을 하려고 했었다. 허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대학교 졸업까지만 기다려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해왔다. 급하긴 했지만, 나름 배려심도 깊은 나는 약혼녀가 졸업을 하는 23살이 되는 해.. 그러니까 내 나이가 38세가 되는 해까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미뤘던 것이다.
대신에 그녀를 엄격하게 통제했다.
먼저 그녀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주소록을 검색해서 주소록에 있는 친구.. 특히, 중학교나 고등학교 대학동기 등의 연락처를 지웠다. 어차피 졸업만 하면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정리한 거였다. 잘 되어봐야 대기업 부장 정도 해먹을 거고, 못되면 돈이나 꿔달라고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닐지 모를 그들을 단절시킨 것이었다.
생각이 어리기만 한 약혼녀는 자기를 위한 내 순수한 뜻을 잘 모르는 건지, 무척 우울해했다. 그런 그녀와 매일 만나주고 싶었지만, 난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았다.
하긴, 모든 걸 정리했으니 내 피앙세가 심심하게도 하겠지.
그래서 곰곰이 생각했다.
방법이 뭐가 좋을지...
고민 끝에 그녀를 후배 녀석이 운영하는 연예기획사로 보냈다. 우월유전자로 월등한 외모를 갖고 태어난 그녀는 짧은 시간동안 스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광고회사를 하는 친구와 방송국 CP를 하는 친구들에게 부탁해 조용히 조력한 이유도 있긴 하지만...
그녀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내 목적은 달성되었다.
연예인이 된 그녀는 심심할 틈도 없었고, 평범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사라졌으며, 또한 충분히 도도해졌다.
무엇보다도 남자의 접근을 원천차단 할 수 있었다. ‘공인’이 되었으니 남자를 함부로 만날 수도 없거니와 기획사 사장인 후배에게 잘 보호해달라고 초강력 요청을 해놨기 때문이다.
***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는 전혀 새로운 세상 이야기다.
결혼을 3개월 앞둔 지금 이 시점..
뜻하기 않게 내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놀잇거리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결혼을 앞두고 약간의 짬을 통해 즐기기 시작한 놀이인데, 점점 그 맛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내 경험담을 듣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몇 분 있을지 모른다.
내가 이 놀이를 즐기게 된 까닭은 바로 인터넷이란 요상한 놈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슬슬 내가 이 은밀하고 재밌는 놀이를 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하겠다.
그 놀이가 뭐냐면...
***
그동안 나에게 인터넷이란 것은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난 완전 컴맹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컴퓨터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컴퓨터가 없어도 말 한마디면 내게 부족한 지식을 채워줄 것들이 무궁무진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그 귀찮은 기계를 책상위에 놓고 전원을 올렸다 내렸다는 하는 것은 평민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동안은 골프 치랴, 라운지에서 수영을 하랴, 안마 받으랴, 해외여행을 다니랴, 바이어들을 만나랴, 약혼녀 만나랴... 그런 걸 할 시간조차 아예 없었지만...)
그런데 세상이 변해가면서 컴퓨터의 활용가치가 점점 높아지니 컴퓨터가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심지어 들고 다니는 핸드폰까지 컴퓨터 기능이 있으니, 일부러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게 되었기도 하고...
게다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무슨 일이든 남들보다 항상 앞서고 뛰어났던 내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막힘’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소셜 네트워크’라는 주제로 대화가 오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었다는 것에 강한 수치심을 느꼈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 떠나서 별거 아닌 걸로 내 품위와 집안의 명예까지 꺾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고민 끝에 책상 위에 놓인 신문을 뒤지다가 한 인터넷 SNS커뮤니티의 광고를 보고 무작정 그걸 해보기로 결정했다. 마침 그 사이트 광고는 ‘네티즌 모두를 위한 커뮤니티. 이곳을 모르면 인터넷을 모르는 것이다.’라는... 내 ‘자존심’을 엄청나게 건드리는 문구까지 적혀있었다.
신문을 덮자마자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켜고 이것저것을 만지며 시행착오 끝에 인터넷이란 곳에 접속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신문에 나온 광고대로 주소를 쳤다. 주소를 어디에 기입하는지는 각종 매체를 통해 전부터 대충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잠시 후, 사이트에 접속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사이트 접속을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본 메뉴’에는 들어가 지지가 않았다.
비서를 불러서 물어본 결과, ‘가입’이라는 것을 해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순간 비서에게 매우 창피했다. 비서가 ‘저 병신은 왜 저런 것도 모를까?’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비서의 얼굴과 뒤통수를 몇 대 갈긴 후, 돈을 몇 푼 쥐어 주었다.
나의 ‘무식함’이 비서의 입을 통해 남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내 자존심과 권위에 커다란 손상이 가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서는 내가 휘두른 재떨이에 광대뼈 일부가 함몰되고, 정수리가 찢어지고, 치아가 몇 개 빠졌다. 그에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신 지 월급에 30배에 가까운 보상을 하지 않았던가?
겁도 먹고, 돈도 먹은 사람이 다른 곳에서 내 이야기를 함부로 말 하진 못할 것이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으니까...
(지금까지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했다.)
참!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지니 그 이야기는 여기서 대충 넘어가기로 하고...
어찌되었든 비서를 밖으로 내쫓고 그곳에 가입을 하려는데, ‘아이디’라는 것을 지정해야 한다고 화면에 떴다. 아무 생각 없이 신붓감의 이름과 그녀의 이미지를 따서 ‘NAN1004’라고 기입했다. 그 밑에는 주민번호 등의 신상명세를 기입하는 곳이 있었다. 내 신분에 이런 짓을 한다고 알려질지도 몰라 서류뭉치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수습여사원의 신상명세를 발견하고는 그 주민번호를 기입하고 주소와 이름은 거짓으로 기입했다. 나머지도 설명대로 따라했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더니 사이트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나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이까짓 인터넷 활용하는 것도 1등을 할 수 있으리라!’
***
그 이후로 며칠간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 소셜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글도 읽고 자료라는 것도 받아보았다.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맨 처음에는 그것을 공부처럼 시작했지만, 날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익혀나갔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지 힘든 것은 없었다.
‘까짓 거 별거 아니네.’
그렇게 이곳저곳을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느 날부턴가 난데없이 자꾸만 ‘쪽지’라고 써진 작은 창이 뜨는 것이었다.
[ 25변남 : ㅈㄱ? 빠른 답장. ]
[ 도라에몽 : 사진 교환할 사람 찾아요. ]
[ 건국캡짱 : 난 건국중학교 캡짱이다. 컴섹 할래? ]
내용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글들이었다. 그 화면 옆에는 1:1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지읒 기역? 사진교환? 컴섹? 이게 도대체 다 뭐야? 이것도 메뉴의 일종인가?’
그런 쪽지들이 계속 반복해서 나타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메뉴를 잘못 사용해서 이상한 것이 뜨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4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내 언어 실력에 모르는 단어란 있을 수가 없었다. 또한, 궁금하면 도저히 못 참는 성격인지라 궁리 끝에 창피한 것을 무릅쓰고 전에 그 비서에게 다시 전화해서 물어봤다.
(어차피 비서는 내가 인터넷 사용에 대해 무식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전에 한 조치로 소문도 나지 않을 것이니...)
***
비서의 설명을 대충 듣고 나자 기분이 묘했다. 사람들이 내 아이디만 보고서는 나를 여자로 인식하고 쪽지라는 것을 보냈던 것이었다. 비서는 이가 빠져 어물거리는 목소리로 내가 가입한 곳이 여타와는 달리 익명성이 확실히 보장되는 사이트이다 보니 늑대들이 노골적으로 엔조이할 여자를 찾으려고 그런 쪽지를 보냈을 것이라는 보충 설명도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쓰는 여러 가지 은어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비서는 동호회라는 곳의 가입방법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곳에서는 비교적 정상적인 사람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덧붙임과 함께...
난 ‘NAN1004’라는 아이디로 이용해 동호회라는 곳에도 가입했다.
프로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까?
역시 동호회란 곳에서도 사람들은 나를 여자로 착각했다. 처음에는 그냥 '나는 남자다'라고 말해 버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나는 그것을 슬슬 즐기기 시작했다.
내 평생 수도 없는 모든 것을 죄다 해볼 수 있지만, 정작 여자가 되지는 못할 거 않은가? 내가 앞서 말했던 ‘아주 은밀하고 재밌는 놀이’는 바로 인터넷 속에서 여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 놀이에 재미를 느끼다보니, 컴퓨터 앞에 앉으면 습관적으로 그 동호회에 들어가 글을 쓰기도 하고 읽기도 했다.
내가 쓴 글을 예로 들자면...
[ 여대라서 그런지 학교 다니는 게 너무도 따분하다. 획기적인 일이 없을까? ]
[ 남자친구와 싸워서 기분이 우울하다. 이번 기회에 확 정리하고 새로 시작할까? ]
[ 나름 비키니가 어울리는 몸매라 생각하는데, 아빠가 야하다면서 사주지 않는다. ]
등등... 잘은 모르지만, ‘여자’ 입장에서 가장 일상적인 것이 무얼까 궁리를 하면서 하루하루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곳이 유독 여자가 귀한 동호회이다 보니 나의 글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은 매우 빨랐다.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가 된 나의 글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은 매우 민감했다.
[ 여대 다녀요? 우와~ 미팅! ]
[ 남자친구, 확 갈아버리세요. 저도 솔로인데? ]
[ 수영장가서 아빠 몰래 입으세요. 나중에 걸리면 속옷이라고 우기세요. 대신 수영장 갈 때 저 부르기. ]
어느새 그 동호회에서 나란 존재(정확히 말하자면, 내 분신)가 많이 알려졌고, 나름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다른 게시물에서 내 이야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관심이 점점 폭주할 때쯤 처음으로 대화방이라는 곳에도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예상했던 대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해댔다.
미리 종이에 써놓은 ‘난천사’에 대한 여러 가지 준비된 가상의 이야기들을 보며 하나하나 대꾸를 해줬다. 진짜 여자라도 되는양 가끔 퉁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들과의 대화가 반복되면서 나의 거짓말은 그 농도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나이, 키, 학교... 심지어는 가상의 애인이 다니는 학교에 이르기까지...
적어놓지 않은 것은 거짓말로 둘러댔고, 완벽하게 그들을 속이기 위해서 메모지에 그들에게 했던 거짓말을 쭉 적어놓아 나중에 그들이 그 부분에 대해 다시 물어볼 때 들키지 않기 위한 대비책도 마련했다. 금방 들킬만한 질문에 대해서는 “비밀~” 이라고 말하며 회피했다.
***
그렇게 혼자만의 은밀한 즐거움을 즐긴 시간이 2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대화방에서는 자주 모습을 드러냈으나 실제로의(이들은 그것을 ‘정모’나 ‘번개’라고 한다.) 모습은 드러낼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싶어 안달했다.
[ 난천사야.. 이번에도 못나오니? ]
[ 천사 얼굴 한번보고 싶은데 ]
[ 이번에도 정모에도 안 나오면 네 학교로 쳐들어간다. ]
오프라인모임이 유난히 많은 동호회이다보니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내 입지는 점점 곤란해졌다. 처음에는 시험이다, 어머니 생신이다 별별 이야기로 둘러대며 그 자리를 피했는데, 나중에는 거절한 거리도 없었다.
그냥 이 은밀한 놀이를 그만두어 버릴까 라고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그 놀이에 강한 중독성을 가지게 된 나는 습관적으로 다시 그 동호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나에게 더욱 재촉을 했다.
그런데 유독 내가 오프모임에 나오는 것에 대해 재촉을 하지 않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가입한 'R-JI'라는 아이디의 어떤 오빠(?)가 있었다. 그는 채팅방에서 나에게 재촉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때마다 대신 대꾸해주었다.
[ 너희들 자꾸 그러지 마라. 같은 동호회라고 꼭 얼굴을 봐야 되는 것은 아니잖아. 니들이 너무 재촉하니까 난천사가 더욱 부담되어서 못 나오잖아. ]
[ 시간 없으면 못 나오는 거지. 천사가 알아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
곤경에 빠진 나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말들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접속시간까지 알려주며 R-JI 오빠(?)와 붙어있기 시작했다.
그와 있으면 정모 불참에 따른 곤란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이트에서는 항상 그가 접속하기를 기다렸으며, 나중에는 그 오빠(?) 외에는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그 오빠와 나는 서로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내가 털어놓은 고민은 내가 즐기면서 꾸며놓은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상당히 친해졌다.
그는 나에게 솔직히 모든 것을 털어놓는 거 같았다. 그의 오래된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 여자의 현실상 그녀에게 다가서기가 매우 힘들다고... 그때마다 나는 그에게 말해주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사랑 앞에 걸림돌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리고 그 여자를 영원토록 사랑하라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들은 내가 그 오빠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의 분신은, 아니 실제로 나는 그를 상당히 좋아하고 있었다. 어느 샌가 사람들은 나를 ‘형수’라고 불렀다. 기분이 이상했다. 진짜 그 사람의 여자라도 된 것처럼, 그 오빠가 좋아한다는 여자에게 질투심까지 생겼다. 심지어 그 오빠에게 다음과 같은 쪽지를 날리기도 했다.
[ 오빠... 이제 오빠를 힘들게 하는 그 여자는 잊으세요. 제가 있잖아요? ]
그런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누군가가 나를 의심하면서 여러 장의 쪽지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다.
쪽지1
[ 너 XX여대 XX과 정말 맞아? 내 친구의 여자친구가 그 과에 다닌다고 해서 너에 대해 물어봤는데 널 전혀 모른다고 하던데? ]
쪽지2
[ 아주 가끔씩, 네가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네 말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그러고 보니 넌 그 누구하고도 전화조차 안 해봤지? ]
쪽지3
[ 정확한 답변 안 해주면, 채팅방에서 네 정체에 대해 떠들 거야. ]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녀석이었다. 궁리 끝에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술집 여자애를 시켜서 그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녀석은 잘 속아줬다.
이왕이면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그 녀석이 참가하고, R-JI오빠가 참석하지 않은 4~5인 소규모 번개모임에 그 여자애를 수고비조로 무려 200만원이나 줘가며 나가게 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길 줄이야...
***
그 번개모임이 끝난 며칠 후, 한창 대화방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다. 나를 의심하던 그 녀석이 들어왔다. 그 녀석은 인사도 없이 화면에 [ 하하하하 ]라는 글만 쳤다.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차에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 “당신이 난천사라는 아이디로 여자 행세하는 사람이지?” ]
“전화 어디다 거셨어요?”
[ “시치미 때지마.” ]
“무슨 소리입니까? 전 그런 사람이 아닙...”
[ “이봐, 늙은 아저씨! 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하필이면 내 단골 술집종업원을 번개모임에 내보내면 어떻게 해? 당신 사이코 아냐?” ]
“....!”
[ “여자 얼굴이 어째 낯익다 싶어서, 한참 생각하다 예전에 종종 갔던 술집에 가서 의심 가는 여자애를 불러달라고 했지. 그리고 캐물었어. 울면서 다 불더군! 그 여자애도 번개 때 나를 알아보고 꽤 긴장했었던 모양이야. 후후후 당신 전화번호는 그 계집애가 알려 줬어.” ]
“난 모르는 사실입니다. 전화 끊어주세요.”
끊자마자 전화기 배터리를 뽑아버렸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가상의 일일뿐인데도 머리가 상당히 아파 오기 시작했다.
***
역시 인터넷으로는 못하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청부 살인업자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주 손쉽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던 그 녀석을 깨끗이 처리해버렸다. 생각보다 돈도 얼마 들지 않았다.
감히 나를 의심하려 들다니...
내가 앞에서 설명하지 않았던가? 나는 어디서든지 최고이며, 완벽해야 한다고...
이제 동호회에서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그 사이트로 접속했다. 동호회에는 ‘R-JI’ 혼자 접속해 있었다. 나는 쪽지를 보냈다.
[ 오빠 들어 오셨네요. 대화방으로 오세요 ]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그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 난천사야. 이제 오빠 잊어. 나 그 여자와 잘될 것 같아. ]
[ 네? 그게 무슨 말씀? 오빠 왜 그러세요? ]
[ 미안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그녀를 얻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생겼거든... 너도 무척 좋아하지만 내겐 그녀가 우선이야.]
내 분신이 사랑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사람과 인터넷상에서 좋은 오빠 동생으로 계속 만나기 위해 사람까지 죽였는데... 그래도 그 사람이 잘된다니 그럭저럭 위안은 되었다. 하지만 허탈한 기분은 막을 길이 없었다.
잠시 후,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분신을 키우는 일도 여기서 마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너무도 즐거웠는데....
‘결혼 날짜도 다음 주로 다가왔군. 이제 현실에서의 내 일과 내 여자에게 충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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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의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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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복학을 한 후, 사랑에 빠진 후배가 있다. 그녀와 결혼까지 꿈꿨는데, 어느 날 부턴가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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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그녀가 나왔다. 접근할 수도 없다.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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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에서 기다리다가 내 사랑을 만나는데 성공했다. 함께 술을 마셨다. 그날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17살에 그런 일을? 17살이면 미성년에 불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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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의 정체를 알았다. 녀석의 회사를 수소문 끝에 알아내서 그 회사에 입사하는데 성공했다. 내 여자를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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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에게 신임을 얻었다. 이런 류의 잘난 척 하는 인간들은 뻔하다. 치켜세워주면 그것이 올가미인줄도 모르고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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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비서를 하란다. 직원 임용도 제멋대로 하는 모양이다. 알고 보니 이 회사의 실제 주인이 그 녀석이었다. 슬슬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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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 회사는 숨겨진 금고도 많고 허술한 구석이 없다. 200만원을 주고 스파이카메라와 도청기까지 샀는데, 쓸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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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의 재떨이에 얼굴을 맞았다. 얼굴뼈가 함몰되고 이빨이 몇 개 부러졌다. 인터넷을 모르는 것이 그렇게나 창피했나? 병신 같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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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때문에 회사를 쉬고 있는데, 그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여전히 놈은 내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해댔다.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인터넷에 대해 녀석은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그 녀석이 내게 물어보는 것으로 봐서 그 녀석만큼이나 변태 같은 놈들이 쪽지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그 녀석에 대한 화는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그 녀석이 물어보는 것은 다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 녀석에게 동호회에 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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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실 병동에 누워있으려니 눈물이 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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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만류를 했지만, 회사에 억지로 출근하기로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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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다가 그 녀석이 요즘 흥미를 느낀다는 사이트의 주소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 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다. 아이디 쓰는 란에 저장을 해 놓았는지 NAN1004라는 아이디가 보였다. 녀석의 아이디인가보다. 변태 같은 놈... 1004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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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그 녀석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갔다. 그리고 그 녀석의 아이디를 해킹해 그 녀석이 가입한 동호회가 어디인지를 알아냈다. 나도 아이디를 하나 만들었다. 흐흐흐.. 무슨 변태 짓을 하고 다니는지 한번 확인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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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한테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약혼자가 인터넷에서 변태 짓하고 있다고...
그 녀석은 내 한마디에 난이에게서 그나마 있었던 작은 신뢰성마저 잃었을 것이다.
저녁엔 아주 오랜만에 난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난이는 흐느낌으로 대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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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미친 놈이다. 나한테 쪽지를 보냈다.
- 오빠... 이제 오빠를 힘들게 하는 그 여자는 잊으세요. 제가 있잖아요? -
뭐지? 이 황당함은? 그냥 여자 행세하면서 즐기는 줄로만 알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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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녀석을 씹어대던 어떤 놈 하나가 안 보인다. 촉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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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그 녀석이 없는 틈을 타, 그 녀석의 컴퓨터를 부팅 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익스플로러의 주소창에 이상한 주소가 찍힌 것을 보았다. 평소에 인터넷은 그 포털 사이트가 다 인줄 아는 녀석이었다. 혹시나 해서 그 주소를 클릭해보니 청부살인을 해준다는 사이트였다. 이상한 기분에 그 녀석의 편지함과 문서파일 등을 전부 찾아보았다. 그리고 찾아냈다.
드디어 녀석을 파멸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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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다녀오는 길이다.
살인청부에 대한 신고를 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 그 녀석과 그 녀석 집안의 불법이나 비리, 탈세한 각종 내역과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경로, 차명계좌, 연결된 정치인, 법조인 등의 정황 등이 발견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의 신상명세로 아이디를 만든 정보통신법 위반행위까지 녀석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완벽한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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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동호회에 접속해 녀석과 마지막으로 대화했다. 녀석은 내가 자기 정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여전히 변태처럼 여자흉내를 내고 있다.
[ 난천사야. 이제 오빠 잊어. 나 그 여자와 잘될 것 같아. ]
[ 네? 그게 무슨 말씀? 오빠 왜 그러세요? ]
[ 미안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그녀를 얻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생겼거든... 너도 무척 좋아하지만 내겐 그녀가 우선이야.]
녀석에게 모든 복수는 끝났다.
녀석은 이제 곧 살인교사 청부 혐의로 구속될 것이다. 그 녀석이 끌려가면, 내가 흘린 정보가 있으니 그 집안에 대한 수사도 진행될 것이다. 결국엔 모두 몰락할 것이다. 이게 다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다. 상류층 좋아하시네?
나는 마지막으로 난이에게 전화했다.
“난이니? 이제 걱정 마. 벽이 사라졌어. 17살 때부터 어쩔 수 없이 당했던 너의 그 치욕스러운 수모... 그리고 하기 싫은 연예인을 억지로 시작하게된 것... 과거의 그런 기억들까지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 너에 대한 그 죗값으로 이제 한동안 어디 좀 다녀올 거야. 아니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나온다 치더라도 아마 병신이 되겠지. 평소에 품위, 최고 그런 거 막 따지는 사람이잖아. 다녀오면 아마 창피해서 자살할지도 몰라. 후후.. 어찌되었든 넌 나랑 결혼할 수 있게 될 거야. 인터넷으로는 정말 불가능한 것이 없구나.”
***
그리고 며칠이 흐른 후...
‘R-JI’란 아이디를 쓰던 자는 TV를 보고 인상을 구부렸다.
‘삼일이나 지났는데, 뉴스에서 그 녀석이 잡혔다는 소식이 없네. 집안 자체가 상류고위층이라 비밀 수사라도 하는 건가? 난이도 어제부터 통 연락이 안 되고...’
초조한 마음에 그는 담배 한 개를 물고는 창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열린 창문으로 갑자기 복면을 쓴 남자 한명이 불쑥 들어와 근육질의 팔뚝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연이어 두 명의 복면 남자가 그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한명은 창문을 닫았고, 나머지 한명은 TV의 볼륨을 올렸다.
“경찰에 신고하면 다 될 줄 알았지? 흐흐”
입을 틀어막고 있던 복면 남자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숙련된 솜씨로 R-JI의 목을 그었다. R-JI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버둥거렸다. 그의 피가 물줄기처럼 방안 구석구석에 퍼지자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제야 그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복면은 그의 죽어가는 얼굴을 짓밟으며 한마디 했다.
“주제파악도 못하는 놈. 상류층이 괜히 상류층인 줄 알아? 네 놈 뒤진 것도 아마 뉴스에 안 나올 거다.”
“자, 우린 수고비나 또 챙기러 가세나. 이번에는 억을 준다고 했으니... 키키키”
“상류층에 잘만 비비대면, 우리처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왜 그들에게 도전을 하려고 할까?”
“그러게 말일세. 그냥 그들에게 수긍하고 살면 되는데... 흐흐흐”
복면을 쓴 세 명의 남자가 시체를 쳐다보며 킬킬대고 웃고 있는 동안 옆에 있는 TV에서는 연예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 뉴스에는 스타 ‘난’씨가 재벌가와 바로 내일 결혼식을 올린다는 특종이 보도되고 있었다. 화면 속의 ‘난’은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며 사랑스럽게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포터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난’은 그 남자를 만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며, 남자는 하버드대학 박사 출신으로 직업은 전도유망한 부동산컨설턴트이고, 아버지는 법조인이며, 할아버지는 굴지의 기업 총수라고 설명했다. 잠시 그걸 보던 복면이 혀를 찼다.
“거 보게나. 돈이면 다 되잖아? 저 여자도 결국 돈을 택했어.”
“쉿! 이 비밀은 우리만 알고 있는 거야. 다른데 알려지면 우리도 큰일 나.”
“그래, 돈이 최고여. 돈이!”
- THE END -
< YURI의 메시지 >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하는 현실은 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제목을 바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