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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물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7년이나 8년 전쯤의 이른 봄이었다. 동글동글한 눈망울과 작은 체구 그리고 새하얀 피부가 유난히 돋보이던 그때의 그의 얼굴. 지금은 그도 나처럼 많이 자랐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변함없는 그의 새하얀 피부,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검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를 무척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철기야, 이놈아 야. 밥 안 처 묵나?”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갈게요.”

“허어, 저 육시랄 놈, 참말로!”

“금방이면 돼요.”

 

철기는 오늘도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중이다.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다. 하지만, 난 내 의사(意思)를 전달할만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우우어, 우어~어.”

“이따가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우우우...”

 

철기처럼 똑바른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니,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내 이 감정을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크, 커억 커어억.” 이 망할 목구멍에서는 역시나 이상하고 굵직한 괴성만 반복될 뿐이다.

천성적인 아자(啞者).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어쩔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철기가 내 곁에 오기라도 하면, 기분이 들떠, 되지도 않는 목소리를 내어보길 반복한다. 그리고 매번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을 괴이한 읊조림을 한 후, 절망한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잘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주는데 만족했다.

이렇게 부족하기만 한 내가 어디가 그렇게도 좋은 건지, 철기는 오늘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더니만, 자기네 집으로 껑충껑충 뛰며 돌아갔다.

 

그의 집과 내가 사는 집은 같은 울타리 내에 있다. 하지만, 지붕이 따로 있는 별채다. 그래도 같은 담 안에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혹은 과거에 철기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과의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었는지 잘은 몰라도, 모양새와 핏줄이 확연하게 다른 가족이지만, 거의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로 살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사정이 사뭇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나의 어머니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진짜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살았었던 거 같다. 적어도 내 어렴풋한 기억엔 그렇다. 어쨌거나 말을 할 수가 없으니, 그때 우리가 어땠는지에 대해 그들에게 물어볼 순 없다.

 

우리 어머니도 나처럼 ‘말’이란 것을 하지 못했다. 부모자식 간에도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게 그건지, 그게 그것이 아닌지를 서로의 눈동자를 보며 느낌으로 깨달았다. 음의 고저만 있는 웅얼거림에 가까운 목소리는 배고프다, 춥다, 졸리다, 미안하다 등의 간단한 의사소통용에 불과했다. 그러니 “철기네와 우린 한 가족인가요?”라는 너무나 간단한 질문도 애초에 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지금보다 더 살갑게 살았었던 거 같았다는 막연한 느낌이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은 꽤 오랫동안 나 홀로 집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셨는지 혹은 떠나셨는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고, 어머니도 그때 철기아버지와 함께 나가신 이후로 소식이 없다. 그날 저녁엔 철기아버지만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오셨다. 철기아버지께 내 어머니는 왜 돌아오시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웅얼거림밖에 할 수 없는 난 철기아버지를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수밖엔 없었다. 보고 싶은데도 보고 싶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이,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그동안 외로운 날 챙겨준 건 오로지 철기의 부모님과 철기뿐이었다.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철기였다. 요즘 들어서 비슷한 장난을 많이 친다. 가끔은 얄밉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철기는 내 놀란 표정을 보고 재미가 있는지, 뒤돌아서서 엉덩이를 흔들며 몇 번을 더 까불어 대더니만, 갑자기 어디 좀 같이 가자면서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개나리가 진 것이 얼마 되지 않은데, 길가에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다. 멀리 잠자리 두세 마리가 계절의 변화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철기와의 행선지는 항상 그렇듯 작은 개울너머 평탄한 들판을 지나간다. 철기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동냥으로 들어본 적이 있는데, 서울서 내려온 어떤 부잣집 사람들이 묏자리를 미리부터 갈아 놓은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선 언제나 지독한 약 냄새가 났다. 철기는 내가 그 들판을 싫어하는 것을 아는지 그곳에서 머문 적은 거의 없다. 그곳을 지나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예쁘고 아담한 숲이 나온다. 그 숲에서 철기와 노닐다보면, 하루해가 정말 짧기만 하다.

적어도 그 여우같은 계집애가 나타나지 않는 날이면 말이다.

 

“어? 철기 왔구나.”

“으응, 수경이도 나와 있었네.”

“응! 오늘은 너 먹으라고 감자를 가지고 왔다.”

“자꾸 이러면 너 혼날 텐데 소쿠리가 비잖아.”

“괜찮아. 지금 집에 감자 아주 많아. 올해 얼마나 풍작인지 몰라.”

“그래? 그럼 달게 받으마. 고마워.”

 

철기는 빙그레 웃으면서 감자를 두어 개 받고는 나한테도 한 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 얄미운 계집아이가 정색을 하며 철기의 손을 ‘탁’ 내리쳤다.

“미쳤니? 쟤한테는 왜 줘?”

“그럼 우리끼리만 먹니? 얘도 먹고 싶을 거 아냐?”

“너 자꾸 그러면, 나 너 안 만난다.”

 

철기는 미안한 얼굴로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내밀었던 감자를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고는 그 얄미운 계집애가 눈치 채지 못하게 내 귀에 “이따 줄게.”라고 속삭였다. 그 계집애가 앙칼진 눈으로 철기를 쳐다보자, 철기는 능청스럽게 둘러댔다.

“이거 아주 참 잘 익었는데, 맛이 아주 좋다. 살살 녹아.”

“좋지? 네가 맛나게 먹으니 좋네. 나중에 또 가져다줄게. 얼마든지 있어.”

“그래도 되나? 내다 팔면 이게 다 돈인데.”

“이게 다 저축이다.”

“저축? 뭔지 몰라도 좋은 말 같네.”

“나 데리고 가려면, 내 말 잘 들어야 한다.”

“그래그래!”

 

이들이 그냥 친구처럼 지내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이 괘씸한 여자아이가 내 앞에서 노골적으로 철기에게 입맞춤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제법 솟아오른 가슴을 철기에게 만져달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철기도 헤헤 웃으면서 그 계집애가 시키는 대로 입도 맞추고 가슴도 만져주곤 했다. 심지어 여자애가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철기가 먼저 그런 못된 짓을 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철기까지도 꼴 보기 싫어졌다. 아무리 내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내가 보는 앞에서 그럴 수가 있는지? 오늘도 마찬가지다.

 

“헤헤. 거기는 하지 마. 간지러워. 호호.”

애써 눈을 돌렸다. 철기와 그 얄미운 계집애는 내가 신경 쓰이는지 손을 잡고 억새가 풍성한 쪽으로 들어갔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풀이 이리저리 꺾이는 ‘푸석, 푸수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간간히 잔풀이 뒤척이는 소리 밖에는 들리지가 않았다. 걱정이 되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몰래 그쪽을 들여다보았다. 그 얄미운 수경이 풀숲에 누워있었고, 철기는 그 위에서 그녀를 안고 있었다. 치마가 거의 들려져서 허벅지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순간 깜짝 놀라 소리를 낼 뻔했지만, 꾹 참고 가만히 그들이 하는 짓을 지켜봤다.

 

“너무도 보드랍다.”

“아이, 이러면 안 되는데. 누가 보면 어떻게 하지?”

“괜찮아. 지금은 쟤랑 우리밖에는 없는데 뭘?”

“그래도!”

그 얄미운 계집아이의 얼굴이 수줍은 듯 붉어지면서, 손으로 철기의 머릿결을 쓱쓱 쓰다듬었다. 한참동안 뭔가에 열중하던 철기가 고개를 잠시 쳐들 때 쯤, 그 얄미운 계집애의 웃옷이 완전히 벗겨있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그것이 못된 짓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어어. 우어어.”

난 무턱대고 그들 사이로 달려갔다. 철기가 깜짝 놀랐는지 벌떡 일어났다.

“이게 왜이래? 썅! 저리 안 가?”

그렇게 독종 같던 얄미운 계집애가 갑자기 연약한 여자라도 된 양, 한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나머지 한손은 철기의 허리를 잡으며 뒤로 숨었다. 철기는 그녀를 가로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미쳤나?”

철기는 매우 무서운 눈매로 나를 쳐다보면서 그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뒤쪽으로 물러서며 한 마디를 더했다.

“콱 죽여 버린다!”

순간 나는 뭔가에 얻어맞은 듯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진담이든 그렇지 않든 그에게 처음으로 들은 심한 욕지거리였다. 그 얄미운 계집애가 철기의 손을 뿌리치더니 뒤로 팩 돌아서며 뒷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에이, 재수 없어! 나 집에 갈래.”

“수경아! 수경아?”

“너도 똑같아. 정말 짜증나. 어떻게 저런 병신 같은 거 하고 같이 돌아다니니?”

잠시 후, 그 얄미운 계집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철기는 그 계집애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며 뒤쫓아 가다가 이내 포기한 듯 되돌아왔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나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발길로 걷어차는 것이었다.

 

“이런 쌍 놈의 것! 그냥 죽어, 죽어버려!”

계속되는 그의 발길질에 모든 신경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난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용서를 빌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여전히 “우어, 우어어” 정상적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매보다도 심장이 몇 배는 더 아팠다. 네가 나를 미워만 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만족해. 네가 어떤 행동을 해도 좋다. 내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도 좋다. 단지, 네가 어느 날 멀리 떠나갈까, 난 그게 두려울 뿐이야. 그래서 용서를 빌고 있지만, “우어어, 우어어” 요상한 음성만 내뱉어질 뿐이었다. 답답했다. 너무도 답답했다. 내 음성은 무엇이고, 내 존재는 뭐란 말인가?

 

철기는 눈을 부라리며 손바닥으로 내 뺨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난 그런 철기에게 하염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하소연을 할 뿐이었다.

“시끄러워! 에이 쌍! 못돼 처먹어가지고!”

 

철기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주머니에서 감자를 꺼내더니 신경질적으로 도랑에 집어던졌다. 나중에 내게 주겠다고 약속했던 그 감자였을 것이다. 늘 내 곁에서 걸어가던 철기였는데, 오늘은 아주 먼발치에서 걸었다. 그 거리만큼 슬픔과 외로움도 컸다. 버려진 감자처럼, 내 심장도 도랑에 내던져졌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이후 철기는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날의 내 행동이 매우 지나친 행동이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선 어떤 판단도 서지 않았지만, 무조건 후회스러웠다. 외딴 섬에 홀로 갇혀있는 기분.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의 벽. 끝도 보이지 않은 장벽. 어떻게 해서든, 그 벽을 깨고 싶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나마도 다행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 곁에서 영영 떠나지만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괜찮다, 다 참을 수 있다고 되뇌었다. 그러다 보면 때는 오겠지, 그렇게 한 가닥 소망을 가지고 아침이고 낮이고 철기의 방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철기가 평소보다 일찍 나오더니,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를 휙 지나쳐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직 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허탈하게 자리에 다시 앉으려는데,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길을 가는 동안 단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은 철기였지만, 그가 다시 나와함께 어디론가 산책을 가고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 뛸 듯 기뻤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는 작은 개울을 건너 평탄한 들판이 있는 쪽으로 날 데리고 갔다. 이제 조금만 가면, 내가 좋아하는 아담한 숲이 나올 것이리라. 그런데, 도중의 들판에서 철기가 걸음을 멈추더니 내게 말했다.

 

“넌 여기서 기다려. 한번만 더 내 말을 거역하면 다신 안 데리고 다닐 테다!”

서울 사람들이 묏자리로 샀다는 지독한 약 냄새가 나는 평지. 심지어 풀벌레들도 거의 없는 곳에 날 홀로 두고 철기는 혼자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리고는 바로 앞 소나무에 걸려있던 해가 그 옆으로 한참이나 떨어진 느티나무가 있는 곳까지 이동할 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해가 그렇게 지루하고 힘든 것인지는 몰랐다. 자꾸만 초조해지는 것이 그가 더 보고 싶었다. 그가 뛰어간 쪽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말을 듣지 않았다며 다시 날 외면이라도 하게 된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게 영영 끝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끔찍했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지칠 무렵, 멀찌감치 붉게 물든 석양의 아름다운 빛을 받으며 걸어오는 철기의 하얀 피부와 그의 얼굴이 보였다. 기뻤다.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잠시 뿐, 그의 옷에 흙과 마른 풀잎이 범벅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도 땀에 젖어있었다.

“자 먹어.”

철기가 감자 두 알을 내밀었다. 예감이 맞았다.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냉큼 받아서 깨물었다. 기분 나쁜 여자애가 준 감자여서 그런지 맛이 썼다. 그래도 철기를 위해서 맛나게 씹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니 실제로 맛있어졌다. 여자애를 만났다는 증표이기에 슬픈 감자지만, 그가 나에게 화해를 요청하는 매개이기에 기쁜 감자였다. 쓰고도 맛있었다. 달고도 텁텁했다. 당장에라도 그에게 대꾸하고 싶었다. 내게 무얼 주어도 좋다.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멀리만 가지 말아줘 라고...

 

그날 이후, 다시 철기와 함께 산책을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작 며칠에 단 한 번 정도였다. 철기는 수시로 혼자 외출을 했고, 가끔씩 감자나 옥수수를 가지고 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게 내밀었는데, 그 맛이 늘 쓸쓸하고 아프고 슬펐다.

하루하루 우람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 짝이 필요할 정도로 그가 많이 자랐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자기의 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거란 것을 얼마 전부터 어렴풋 느끼고 있었다. 단지 그가 떠날 시기가 근접했단 것을 부정하고 싶을 뿐이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성장’이란 것을 한다. 분명 그것은 축복된 것이지만, 이면으로는 날 낳아준 부모님이 늙어 간다는 의미이고, 다들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예고이기도 하다. 성장을 한 존재도 떠나고, 성장을 지켜보던 존재도 떠난다. 그곳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그 어디든지 말이다. 다들 그렇게 헤어지는 거다. 가슴 아프지만, 그것은 왕도 신도 바꿀 수 없는 순리며 운명이다.

태생적으로 비정상이기만 한 나는 ‘성장’이란 것을 못하고 있는데, 모든 것이 정상인 철기는 ‘성장’이란 것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못 떠나는 거고, 그는 언젠가 떠나게 될 것이다. 혹은, 성장하지 못한 내가 먼저 떠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행선지는 그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서글프지만 그게 자신들의 갈 길을 가는 것일 테다.

그러고 보니, 귀여웠던 철기의 얼굴은 어느새 여드름 가득한 사춘기의 소년으로 변해있었다. 더불어 말수도 줄어들었다. 누가 먼저랄 거 없이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는 없었다. 마음은 더욱 깊어지는데, 겉은 서먹해졌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그렇게 아리기만 했던 가을이 지나 초겨울이 되었다. 점점 떨어지는 온도처럼, 며칠에 한 번씩 있었던 그와의 동행도 더욱 뜸해졌다. 어쩌다 함께 외출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그 날은 나한테만 특별한 날이지, 그에겐 아니었다.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처럼 나와의 시간을 무척 지루해하는 거 같았다. 반면에 그 혼자만의 외출은 더욱 잦아졌다. 그런 외출을 한 날이면 평소보다 그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기쁨의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환희의 표현일 것이다. 그 이후로도 그는 종종 하룻밤을 넘겨서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시간이 되자 여느 때처럼 그가 어디론가 외출을 했다. 늘 그랬듯 그가 돌아올 때까지 뜬눈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대략 달이 뜰 때쯤이면 귀가를 했던 그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또 하루를 넘겨서 들어오는가 싶었는데, 아주 깜깜한 한밤중에 돌아왔다. 그가 문 앞에 서 있는 날 보더니 가깝게 다가왔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의 아버지가 가끔 풍기는 그런 시큼한 냄새였다. 그의 눈이 심하게 풀려있었다. 첨보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의 표정은 심각할 정도로 어두웠다. 며칠 전과는 확연하게 대조적이었다. 그가 오래간만에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안 잤구나. 히히, 오늘 고 괘씸한 년과 헤어졌다. 팔려간대. 히히히, 어딘지는 모른대. 고년이 그냥 팔려간대. 그렇지, 열여섯 마지기! 열여섯 마지기에 팔려간대. 걔네 집 이제 부자네. 열여섯 마지기면 매년 쌀이 몇 가마냐. 하하하하.”

철기가 주머니에서 첨보는 풀을 꺼내더니 흔들었다.

“그래서 구해왔다. 천남성(天南星)이라는 거야. 장희빈이 먹었던 거란다. 히히히, 그 유명한 여자가 먹었던 것이 지금 내 손 안에 있다. 권세를 잡으면 뭐하냐? 나 같은 놈도 같은 급이 될 수 있는데! 하하하.”

 

그의 손에 들린 것이 직감적으로 지녀서는 아니 될 풀이었다. 그걸 당장에라도 빼앗아버리고 싶었지만, 오래간만에 내 앞에 서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몸이 굳어 말을 듣지 않았다. 철기는 계속해서 미치광이처럼 웃더니만, 자기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생각해보니 철기아버지도 저 시큼한 냄새를 풍길 때면 이상한 소리를 해대곤 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도 그의 아버지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비몽사몽 선잠을 자며 몇 시간이 흘러갔을까? 밖에서 나는 인기척 소리에 눈을 떴다. 달빛에 비친 철기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이상한 음성이지만 그를 한번 불러볼까 생각했다. 입을 벌리려는 순간에 놀랍게도 철기의 다리 주변에서 어떤 하얀빛의 발광체(發光體)가 서서히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계속 바라봤다. 그 하얀빛의 발광체는 계속해서 스르르 움직이며 철기의 몸 주위를 여러 번 휘몰아치더니, 순식간에 그의 콧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철기의 눈망울이 불그스름한 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그의 입가에 괴이한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그가 허공 속을 걸어가듯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누구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지만, 다시 눈을 감지 못하고 밤을 지새울 수밖에는 없었다. 새벽녘이 돼서야 철기는 빙판 위로 미끄러지듯 집으로 돌아오더니, 방문도 열지 않은 채 문틈으로 연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들어갔다. 간밤에 본 것이 분명 꿈이 아니었다. 그가 걱정되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날 아침, 그의 방으로 들어간 철기어머니가 안절부절 못하더니 큰소리로 철기아버지를 불렀다. 철기아버지가 뒤따라 들어가더니 잠시 후, 철기를 업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철기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요. 들어와서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떡해.”

철기아버지는 그를 평상에 앉힌 채 열심히 등짝을 두들겼다. 난 철기의 부모님들께 그가 ‘어떤 괴상한 풀’을 먹어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목에서는 “우어어어, 커어어어어...” 소리만 터져 나올 뿐이었다.

“시끄러! 저건 왜 이렇게 떠들고 지랄이여!”

내 마음도 모르는 철기아버지는 빗자루를 가져오더니 내 등짝을 ‘짝’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그 소리에 놀란 탓일까? 불행 중 다행인지, 철기가 갑자기 토악질을 하더니, 뭔가를 잔뜩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눈을 뜨더니 내 쪽을 쳐다봤다.

“아부지. 걔한테.. 그러지.. 마요. 불쌍한 애를.. 왜... 왜, 때려요. 하, 하지 마요.”

그의 목소리에 놀란 철기아버지가 황급히 빗자루를 집어던지더니 그쪽으로 뛰어갔다.

“하, 다행이다. 우리 아들. 뭘 잘못 먹었던 게냐?”

하지만 철기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옆에 있던 철기의 어머니는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철기를 부둥켜안았다. 그러자 철기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도 그쪽으로 다가가 위로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철기의 안면이 점점 거무스름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몸도 놀라울 정도로 말라갔다. 그 요상한 풀 때문인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얻어온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철기의 어머니께서는 그러한 철기를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쉬면서 온갖 약재(藥材)를 달여 오셨다. 그러나 어떤 명약도 소용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병은 이 아비가 꼭 고쳐주마.”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 중에 하나가 힘들어하는 자식 앞에 무능력한 부모일 것이다. 덩달아 철기 부모님들의 수심(愁心) 또한 깊어만 갔다. 그 얼마 후부터 각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의원들이 한 번씩은 다녀가기에 이르렀다. 의원들은 저마다 다른 진단을 내렸고, 철기아버지는 치료비를 대기 위해서 세간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나도 뭔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부족하기만 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비참했다. 나와 같은 마음인 건지 철기 어머니의 통곡소리도 그칠 날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 밤이 지났을까? 한밤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았다. 철기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에 몸을 숨기고 그를 쳐다봤다. 그의 얼굴은 시큼한 냄새를 풍겼던 그 날처럼 음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발밑에서 하얀색의 발광체가 피어오르더니, 그의 몸으로 휘몰아 올라가 콧구멍으로 쓱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언제 아프기라도 했냐는 듯 철기의 몸이 기적처럼 생생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삽시간에 그의 몸이 공중에 둥둥 뜬 상태가 되었다. 그곳에서 알 수 없는 바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마치 지면 위를 미끄러지듯 밖으로 향했다.

 

‘잡아야 해!’ 그가 나가자마자 난 내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늘 그렇듯 대문은 열려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문 바로 앞의 완전 반대방향인 두 갈래의 길. 그와 산책하며 걷던 길을 선택하고는 무조건 내달렸다. 모퉁이를 돌자 다행이도 먼발치에 철기의 뒷모습이 보였다. 달리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그쪽으로 무조건 뛰어갔다. 하지만 공중에 세치 정도 떠 있는 철기의 걸음걸이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뛰어가는데도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가끔씩 뒤를 돌아보기는 했지만, 내가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계속해서 어디론가 미끄러져 갈 뿐이었다.

 

‘멈춰, 멈추라고!’ 그를 따라 한참을 뛰어가던 어느 순간, 갑자기 이상한 소리들이 귓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소리는 아닌 듯했다. 마치 영혼이 속삭이는 것 같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신을 잃을 정도로 차가운 것이 등줄기를 따라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마디마디에 활화산처럼 계속해 부풀어 올라 심장고동소리와 함께 다시 간헐적으로 온몸에 쭉쭉 퍼졌다. 뇌와 오장 사이까지 울렁거리는 느낌으로 수없이 차고 올라왔다.

이런 것이 공포(恐怖)란 걸까? 하지만 이미 난 철기의 안위밖에는 없었다. 머릿속에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모든 신경을 자극했다. ‘내가 구해줄게. 목숨 걸고 구해줄게. 구해줄게.’

당장 쓰러질 거 같았지만,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침내 앞서가던 철기가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르던 나도 걸음을 멈추고 일단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밤이라서 그러지 주변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곳이 어디쯤인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철기와 자주 지나다니던 그 길목, 부잣집 양반들이 다져놓은 바로 그 묘(墓)자리였다. 철기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일으키기 위해 다급히 그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발목이 경직되는가 싶더니, 요상하게도 단 한걸음 움직일 수 없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이곳 공기가 다른 곳에 비해서 매우 차갑고 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 공기가 어디서부터 퍼져 나오고 있는지 알게 됐다. 한쪽 풀밭으로 작은 봉우리 몇 개가 보였다. 서울 사람들이 다져놓은 묏자리라고는 하지만, 본디 그곳의 묘 주인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거기서 휘몰아치는 여러 가지 차가운 기운들이 철기 주변에 급속도로 몰려들었다. 그것들은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더욱 안간힘을 썼다. 그 무렵, 철기의 몸이 그 이상한 기운에 점점 휩싸이기 시작했다. 매우 급했으나 계속해 빳빳이 굳어진 채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혼미해질 정도로 몸에 힘을 가했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오히려 다리에 힘이 빠져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눈앞이 점점 흐릿해오기 시작하더니만,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외마디의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그리고 들리는 심장박동소리.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할 정도로 몸이 가뿐해져 있었다. 잠시 후에는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침침함까지도 서서히 사라지면서 주변 사물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시야가 더 밝아지기만을 기다렸다.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뜨는 것을 반복했다. 얼마 후, 겨우 앞을 볼 수 있었다. 철기가 있던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주변에 특이하게 생긴 갓과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낯선 자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일단은 철기에게 이롭지 않은 자들이란 것을 직감하고 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시간이 흐르자 두루마기를 입은 자들이 보다 또렷이 보였다. 그들의 행색은 전반적으로 남루했다. ‘가난’이란 것을 둘러쓰고 있는 듯했다. 놀랍게도 하나같이 눈동자가 없었다. 철기의 몸 주위에 흐르던 그것과도 같이 그들의 사이로도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듯 그들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너무도 강렬하게 뻗어 오르고 있는 이상한 힘. 살짝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몸놀림. 나는 몸을 더욱 움츠렸다.

 

‘저것들이 무엇이든, 내가 구한다!’ 하지만 더 큰 공포가 밀려왔기 때문인지, 미세하게 시야가 흔들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낡은 두루마기를 입은 자들은 무슨 대화라도 나누고 있는 중인 듯 서로 마주보고 입 언저리를 계속해서 꿈쩍거렸다. 그럴 때마다 쉭쉭 바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철기의 몸에 손을 댄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뜯어진 붉은색 갓’을 쓴 두루마기가 나머지 두루마기들에게 어떤 손짓을 했다. 그러자 나머지 두루마기들이 잠시 자기네들끼리 웅얼거리더니, 그를 따라서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심장이 요동쳤지만, 몇 분간 숨을 죽이고 좀 더 기다려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철기가 누워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겨우 생기가 돌아왔던 철기의 얼굴이 다시 검게 변했고 몸도 말라보였다. 그 두루마기들이 철기를 이렇게 만든 걸까? 바로 돕지 못한 내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미안하다, 철기야.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나는 철기의 겨드랑이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겨드랑이를 만질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시도해봤지만 마치 허공 속을 휘젓고 있는 것처럼 그의 몸을 휙 뚫고 지나갔다. 그놈들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의 몸 이곳저곳을 휘젓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뒤를 돌아보았다. 숲속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몸을 낮추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달빛에 비친 나무들의 윤곽과 어둠만 보일 뿐이었다. 혹시 저 어둠속 어딘가에 누군가 숨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숨이 가빠왔다. 수풀들의 뒤쪽으로 아주 컴컴한 구멍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온 몸이 더욱 떨려왔다. 애써 그러한 공포를 피하기 위해 시선을 발밑에 누워있는 철기에게로 옮겼다. 그런데...

그 시선의 주인공은 바로 철기였다. 달빛에 비친 철기의 매서운 눈동자. 순간 마른 나뭇가지처럼 몸 전체가 경직되어 버렸다. 잠시 후 철기는 음침한 미소를 띠기 시작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서서히 일어났다.

철기가 일어나면서 그의 얼굴이 내 얼굴과 부딪힐 것처럼 나의 얼굴을 향해 그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순간 호흡은 멈춰지고, 몸이 굳어졌다. 헌데,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철기의 얼굴이 내 얼굴을 스르르 통과하며 지나가 버린 것이다. 아무런 접촉도 없이 또 어떤 감촉도 없이, 그냥 그렇게 공기처럼 지나쳐버린 것이었다.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철기의 뒤통수가 보였다. 식은땀이 주룩 배어 나왔다. 무엇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할 것인가?

‘착각이겠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를 봤다. 그는 벌써 고갯길 아래 부분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다행이 이곳으로 왔을 때보다는 빠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그를 따라갔다. 이상하게도 무척 가뿐했다. 발이 지면에 닿는지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직되어있던 몸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분명 철기는 날 한참 앞서가고 있는데, 난 시시각각으로 철기의 앞모습과 뒷모습 그리고 옆모습 등, 내가 원하는 곳을 바로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철기에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혼란스러웠다. 잠시 후, 정신이 다시 혼미해지고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작은 빛 하나가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세상이 확 밝아졌다. 눈이 따가워 다시 감았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어디선가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따뜻한 온기가 온 몸을 덮고 있었다. 슬며시 눈을 떴다. 강렬한 빛이 각막을 자극했다. 해는 중천에 떠있었고, 그 밑에 곧게 뻗은 나무들의 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여러 갈래의 작은 빛줄기들이 흩어질듯 내려와 내 머리 위에서 물결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서 다른 쪽을 쳐다봤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소. 다시 그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주 낯익은 곳. 새벽한기가 흐르던 좀 전의 바로 그 ‘묏자리 벌판’이었다.

‘내가 왜 다시 여기로 돌아왔지? 분명히 철기를 따라서 고갯길을 내려갔는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얼마가지 못해 꼬꾸라지듯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이번에는 한쪽다리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며 또 다시 내동댕이쳐지듯 쓰러졌다. 얼굴을 찌푸리며 통증이 느껴지는 쪽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디서 뜯겼는지 검붉은 피딱지와 고름덩어리로 심하게 염증이 난 상처부위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그곳의 관절을 움직여보았다.

“헉!”소리가 날 정도로 아까 보다도 더한 통증,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눈물샘도 말라버렸는지 눈 주위까지 마치 거친 모래를 뿌려놓은 듯 뻑뻑했다. 숨을 쉴 때마다 다친 곳의 신경들이 동시에 아우성을 쳤다. 꼬꾸라진 바로 그 상태로 누워있으려니까 눈앞으로 강한 햇살이 그대로 내리쬈다. 그러나 그 빛을 피할 여력도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아저씨?’

마치 수면 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그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아주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 내 몸이 격하게 흔들렸다.

(“이 녀석, 이유 없이 집을 뛰쳐나가더니만, 왜 여기 자빠져 있는 거야?”)

(“집안에 마가 낀 것이 분명해.”)

흔들림에 간신히 눈을 떴다. 철기 아버지였다.

“일어나지 못해?”

그의 웅얼거리는 입모양이 보였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고요가 흘렀다. 잠시 후 덜컥덜컥하는 나무바퀴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쳐다보니 옆에 철기아버지가 손수레를 붙잡고 있었다.

“어여, 올라타라!”

 

철기 아버지는 나를 곁부축하기가 귀찮은지 야속하게도 빨리 올라타라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힘든 몸을 겨우 일으켜 가까스로 손수레에 올라탔다. 옆에서 물을 한잔 축인 아저씨는 나를 실은 수레를 끌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돌부리가 있을 때마다 덜컹거려 몸이 퉁퉁 퉁겼고, 상처부위에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끙끙’ 거리며 수레를 끌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간신히 참아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철기의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상처를 치료해주고 몸도 씻겨주었다. 철기아버지는 옆에서 눈만 흘길 뿐이었다. 철기어머니는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말했다.

 

“두껍바위 무당말이 맞잖아요. 굿판이라도 벌려 치성이라도 올려야 되겠어요.”

두껍바위라면 철기와 산책을 하는 반대쪽 길에 있는 널찍한 바위의 별칭이었다. 그곳에 ‘무당’이라는 자가 있다는 걸까? 그 무당이란 자가 철기를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인가? 철기아버지는 신경질적으로 수레를 밀쳤다.

“이놈의 여편네가 미쳤나?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아들놈도 이상하고, 저 녀석까지 한밤중에 싸돌아다니다가 저 꼴이 되었는데, 당신은 집안이 걱정되지 않나요?”

“밤이면 발정이 난 마을 노인네들한테 몸이나 파는 사이비 창녀 말을 믿나? 그따위 소리 한번만 더 놀렸다간 그냥 콱 주둥아리를 찢어버릴 테니 알아서 하라고!”

“그렇게라도 안 하면 대체 어떻게 하라고요!”

“닥쳐! 이 __의 여편네야! 돈이 어디 있어? 돈이!”

“돈요? 돈이라고요? 당신 때문에 집안이 이 꼴이 되었는데 왜 오히려 성을 내는 거죠?”

“이 __이, 말이면 다 하는 줄 아나!”

철기아버지가 부엌 앞에 있던 주발 하나를 집어던지자 철기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철기아버지는 그래도 성이 가시지 않은지 식식거리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철기어머니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어떡하면 좋니. 내 아들 불쌍해서 어찌할꼬. 가련한 지고!”

 

철기아버지가 노름으로 가산을 상당부분 탕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주사(酒邪)’이란 괴상한 버릇도 있어서 시끄러운 날도 많았다. 아마도 그 시기 즈음에 우리 어머니가 철기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가산을 탕진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관계있던 걸까? 그래서 어머니가 쫓겨나신 걸까? 다시 오실까? 언제쯤 돌아오실까? 누구의 잘못인가? 이번에는 나 때문에 싸우시는구나.

 

다시 밤은 찾아왔다. 몸이 극도로 피곤했지만, 뼈마디가 끊어지는 고통 때문에, 그리고 철기가 걱정이 되어서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오래간만에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려보았다.

걸음마를 익히던 날 부축해주던 기억

함께 꽃밭을 깡충깡충 거닐던 기억

다친 내 상처를 어루만져주던 기억

품에 기대어 잠을 자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던 그 날... 안타까운 눈으로 날 바라보던 그 기억까지. 그 모든 아련함이 폭포수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때 철기의 방문이 덜컥덜컥 움직였다.

 

눈을 뜨고 그쪽을 쳐다보니 철기의 몸이 마치 연기가 통과하듯 그의 방문 틈으로 스미어 나왔다. 순식간에 그의 몸 전체가 툇마루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더니 마치 구렁이처럼 담장을 넘어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를 따라가기 위해 일어섰는데 내 방 밖으로 누가 걸어놨는지 큼지막한 ‘걸쇠’가 내려가 있는 것이었다. 그걸 풀기 위해 별짓을 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그쪽을 강하게 밀쳤다. 쿵 소리와 함께 오른쪽 어깨와 다친 다리부분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다시 힘차게 부딪쳤다. 잠시 후 ‘우지끈’ 소리와 함께 걸쇠가 부서지려는 찰나, 철기 부모님의 방문이 털컥 열렸다.

“너 이 녀석 왜 또 지랄이냐?”

철기아버지가 웃옷을 여미더니 몽둥이를 들고 내게 달려왔다. 철기어머니는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뭔가 생각이라도 난 듯 철기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철기 아부지! 이리로 오세요. 얘가, 피를.. 피를 토했어요!”

내게 달려오던 철기아버지가 놀란 얼굴을 하고 철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큰소리가 들렸다.

“얘, 철기야, 이놈아야! 정신 좀 차려라. 정신을 차려!”

난 다시 잠겨있는 내 방문을 강하게 밀쳤다. 그러자 나무쪼가리가 사방에 흩어짐과 동시에 문이 경첩 끝까지 벌컥 밀쳐지면서 ‘콰당’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불안한 마음에 철기의 방 앞으로 뛰어갔다. 문이 열린 틈으로 철기아버지가 축 늘어져있는 철기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좀 전에 분명 그가 담장 밖으로 나가는 걸 보았는데, 방안에도 철기가 있었다. 짧은 순간, 좀 전의 그것이 철기의 정기(精氣)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철기 부모님이 붙잡고 있는 건 남은 육신(肉身)일 뿐이리라.

 

‘빨리 찾아야 한다!’ 대문까지 뛰어갈 시간이 없었다. 싸리로 된 벽을 뚫고 그대로 내달렸다. 다리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지금 상황에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속도를 내다보니 오히려 통증도 잦아들었다.

 

얼마 후, 그 묏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철기는 그곳에 와 있었다. 그는 번개에 맞은 사람처럼 몸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의 몸 주위로 전에 보았던 그 파란빛의 발광체(發光體)가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맴돌고 있었다. 철기의 들썩임이 멈추자 그 소용돌이의 속도가 차츰 줄어든다 싶더니, 돌고 있던 불빛들이 서서히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윽고 그것들은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들로 변했다. 그들 몸 사이로 새로운 발광체가 생성됐다. 그것들도 휙휙 돌아갔다. 철기가 가운데 서 있고, 그들이 철기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다.

“우어어, 커어이!”

난 큰소리를 외치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두루마기들이 날 돌아본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난 그들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하지만, 전에 그랬던 것처럼 허공 속을 스치듯 그들을 뚫고 지나갔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몸이라 몸뚱이가 바닥에 회전을 하며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내 몸 따위는 상관없었다. 다시 힘차게 그쪽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그들 몸에 스치지도 못한 채 앞으로만 내달릴 뿐이었다. 가쁜 숨을 쉬며 그쪽을 쳐다봤다. 눈동자가 없는 두루마기들이었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서웠다. 온몸이 경직됐다. 곧바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세상의 것이 아닌 소리, 소름끼치는 쇳소리가 박자에 맞춰 들리면서 두루마기들은 다시 발광체로 변해 철기의 몸 주변을 둥실둥실 돌기 시작했다. 그 행위가 끝이 나면 철기의 육신도 끝일 거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득 철기어머니께서 했던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이 떠올랐다. ‘무당과 두껍바위!’

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림길을 지나쳐 두껍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심하게 망가졌는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곳에서 피도 흘러내렸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절뚝절뚝 한참을 달리고서야 돌무더기와 오색천이 달려있는 커다란 나무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거저거 판단할 시간도 없이 매달려있던 오색의 천 중 한 부분을 잡아 뜯고는 그것을 가지고 다시 집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달리는 동안 몸이 이리저리 휘청거렸지만 계속해서 뛰고 또 뛰었다.

 

집 앞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에는 견딜 수 없는 탈진으로 온몸이 비틀비틀 거렸다. 그래도 억지로 집안에 한 발 한 발 들어가 철기의 방 앞에 풀썩 넘어졌다. 내가 쓰러진 소리를 들었는지 철기어머니가 밖을 내다봤다. 내가 가지고 온 오색 천들이 내가 쓰러진 부분부터 집 앞 대문까지 쭉 널려서 바람에 펄럭였다. 그 광경을 본 철기어머니는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나타난 파란 불빛이 철기의 방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철기아버지의 소리가 들렸다.

 

“철기야! 이제 정신이 드는 거냐?”

이제 된 건가? 안심이 되었다. 임무를 마쳤다고 생각을 하니, 온몸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기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정신을 잃어갔다.

“이제 살았구나, 우리 귀한아들 철기야. 살았구나, 살았어.”

“철기야. 살았구나, 살았어.”

“살았구나, 살았어.”

“살았어.”

“았어.”

“...”

.

.

.

“...”

“딸랑”

“딸랑딸랑”

“훠어이, 딸랑딸랑”

“보살법사 불러다가 딸랑 딸랑”

“영가혼신 봉천하여 조상해원 길을 닦아, 딸랑 딸랑 딸랑”

 

어떤 여자의 외침소리와 함께 종소리 같은 것이 점점 크게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내 방 한쪽에 누워있었고, 마당에는 어떤 여자가 껑충껑충 뜀을 뛰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 철기어머니와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는 철기아버지가 보였다. 그 여자는 한참을 땀을 흘리며 뜀을 뛰더니만 들고 있던 부채로 철기아버지의 머리를 딱 소리가 나게 때렸다. 급작스런 행동에 철기아버지가 눈을 부릅뜨자.

“네 이놈! 네가 못된 짓을 많이 해서 조상신이 화가 났다. 서울 놈들한테 배추골 이씨네 선산 소개시켜줬지? 네 증조부의 은인인 거 모르느냐?”

철기아버지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만연했다. 하지만 금세 인상을 썼다.

“이년이 미쳤나?”

“그거뿐인가? 네가 연결시켜줬지? 조씨네 딸내미를 성주골 윤부자에게.”

철기아버지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러더니 두 손을 내저으며 벌떡 일어났다.

“이 개 같은 년이 시방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집안 말아먹은 것이 부족해서 또 투전판에 손을 댔다가 그거 무마시키려고 소개 시켜줬잖아. 안 그래? 다 늙은 사람한테 어린애를 말이다!”

“이 무당년인지 환향년인지, 죽고 싶나? 난 아니라고!”

철기아버지가 여자의 멱살을 잡으려하자, 여자가 씩 웃으며 철기아버지의 귀에 속삭였다.

“네 아들이 그 계집한테 빠졌던 거 알아?”

“뭐라고?”

“이 오색천이 아녔음, 네 아들은 이미 골로 갔을 거야. 이참에 네 마누라 앞에서 유씨 과부 얘기도 해줄까?”

철기아버지가 철기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철기어머니는 치성을 드리느라 그들의 대화에 정신이 없었다. 철기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이고는 거세게 흔들었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만...”

“공물(供物)을 준비해. 쌀 다섯 가마니면 조상신도 받아 들일거야.”

철기아버지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한 가마니도... 벅차. 없어.”

“그럼 뭐라도 팔아.”

“약값에 쓰기위해 이미 돈 될 만한 세간도 죄다 팔았다. 들어가 봐, 뭐가 있는지... 다 내다 팔았어.”

“아직, 하나 남았잖아.”

여자가 부채를 든 손으로 내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철기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쳤어. 잘 걷지도 못해. 쟨 쓸모가 없어.”

“아예 쓸모가 없는 건 아니지. 그거 있잖아?”

“그건 안 돼! 아무리 그래도...”

“네 아들이 죽는 꼴 보고 싶어?”

“저 녀석은 내 아들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야.”

“이미 한 번 모질게 팔아치웠으면서 ‘친구’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네?”

“그땐 어쩔 수 없었어.”

“맘대로 하시게. 네 아들이 뒤지든 말든!”

철기아버지가 슬픈 눈으로 내 쪽을 바라봤다.

 

달그닥 달그닥 달그다닥. 오늘따라 수레가 굴러가는 소리가 무척이나 컸다. 어디서 왔는지 덩치가 큰 남자 두 명이 우리 수레를 앞뒤에서 끌어주고 있었다. 수레 뒤에는 터벅터벅 따라오는 철기아버지와 철기어머니가, 수레 안에는 상처투성이인 나와 끊임없이 콜록거리고 있는 철기가 타고 있었다. 계속되는 침묵. 수레바퀴가 들어 올리는 먼지만이 여섯 동행의 대화를 대신해주고 있었다. 난 목소리를 낼 수 없어서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철기는 눈물을 흘리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난 그가 울고 있는 이유를 몰랐고, 수레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반나절 이상을 가서야 많은 이들이 웅성거리는 저잣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제야 덩치 큰 사람 중 한 명이 철기아버지에게 말을 꺼냈다.

“오늘은 시장에 사람들이 많네.”

“... 그렇수다.”

“한참을 키웠는데, 서운하지 않소?”

“...!”

“여기 계시오. 한 잔 하고 들어갑시다. 그건 우리가 내리다.”

 

수레를 한쪽 편에 세운 덩치 큰 남자들이 인파속에 사라지자, 철기어머니까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쪽을 쳐다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없던 철기아버지가 철기와 내가 앉아있는 쪽에 다가와 앉았다.

“철기야, 아부지 말 명심하고 있쟈?”

“안 하면, 안 되나요?”

“아니, 해야 돼. 이 아부지 말 안 들으면, 아니 된다.”

“왜, 꼭 그래야만 하죠? 싫어요. 돌아가요, 아버지! 네?”

그러자 철기아버지는 손바닥으로 철기의 뺨을 냅다 때렸다. 그리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어쩔 수 없으니, 이 아부지 말 거역하면 못 쓴다.”

“왜 맘대로 하시는 건데요?”

“조용하라고, 네가 이러면 일이 더 힘들어지잖아.”

“아버지, 한번만 더 생각을...”

“조용해라. 이 아비가 한 번 결정한 일을 번복한 걸 본 적 있느냐? 다 널 위해 이러는 거잖아.”

“아버지!”

“조용하지 못하나! 한 번만 더 주둥이 놀리면, 경을 칠 줄 알아.”

이야기를 마쳤는지 철기아버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한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만지작거리기도 하면서 한동안 내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동안 내가 매를 많이 때렸지? 미안하다.”

“...”

“말도 못하는 네가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을지 말 안 해도 다 안다.”

“...!”

“내 말 잘 들어라. 지금 철기가 몹시 아프단다. 칠년 동안 함께 했으니, 니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왔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그냥 잠시만 참으면 돼.”

철기아버지는 철기어머니를 보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철기어머니는 보따리에서 감자 몇 알과 옥수수를 꺼내더니 내밀었다.

“먹어라.”

순간 그것이 무슨 음식인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철기가 그중에 가장 커다란 감자 한 알을 들었다. 그 감자에 닭똥 같은 철기의 눈물이 두어 방울 떨어졌다. 철기는 그걸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그 감자, 도랑에 던져서 미안해. 진짜 미안해.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그리고는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난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입속에 넣어준 감자를 씹기 시작했다. 그의 눈물 맛이 났다. 짭조름하면서도 달았다. 무척 달았다. 태어나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꿀 같은 맛이었다. 그때처럼 쓴맛도 없었고, 텁텁한 맛도 없었다. 그의 진심이 담긴 것이기에 무조건 맛있었다.

 

잠시 후, 덩치 큰 남자들이 돌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김치접시와 커다란 그릇이 들려있었다. 커다란 그릇 안에는 누런색의 불투명한 액체가 출렁출렁 담겨있었다.

“한 잔씩 합시다.”

그 액체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이 비슷한 냄새가 났을 때, 철기에게 가슴 아픈 일이 있었는데... 오늘도 철기에게 가슴 아픈 일이 생길 모양인지, 철기는 계속해서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천남성’이란 것을 흔들어댔는데, 설마 오늘도 그런 독초를 흔들어 대진 않겠지? 허나 철기와 철기아버지는 그 누런 액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다른 사내들만 들이킬 뿐이었다. 그 액체가 그들의 입속으로 다 사라져버리자, 덩치 큰 사내들이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자 인적이 뜸한 곳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음침하게 생긴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건물의 앞에는 큼지막한 문이 있었는데, 그 문까지 들어가는 나무로 된 길목은 문 크기에 비해 매우 좁아보였다. 덩치 큰 남자들이 수레를 멈추고 철기를 내렸다. 그리고 조금 더 수레를 끌고 가더니만 좁은 길목에서 수레를 힘 있게 툭 치켜 올렸다. 그러자 내 몸이 그쪽으로 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약속이 된 건지, 그 건물에서 또 다른 두 명의 남자들이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작은 주머니가 하나 들려있었다.

“약속한 대금이요. 다섯 가마니 값. 근데, 상태를 보니 네 가마니 값만 줘도 충분할 거 같은데... 요즘 고기 값이 많이 떨어져서...”

철기의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아들자, 주머니를 건네준 자가 내 다리를 살폈다.

“진짜 고칠 수도 없는 골절이군. 어쩌다 이렇게 다쳤을까? 다치지만 않았으면, 농사일이라도 하며 살 수도 있었을 거 인데... 어디보자, 설마 이쪽다리가 곪은 거 아니죠? ‘족’하나를 못 쓰면 곤란한데..”

 

그가 이야기를 하며 내 다리를 만지작거릴 때 난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몸에서 수백 수천의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눈동자를 보니, 살의(殺意)가 가득했다. 난 놀란 나머지 그가 잡고 있던 발을 버둥거렸다. 그러나 좁은 틈 속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덩치 큰 남자들이 다가왔다.

“그래도 힘은 세네. 진짜 다리만 다치지 않았다면...”

“근데 이 놈. 오는 동안은 순둥이 같았는데, 갑자기 날뛰네. 여기가 어디란 걸 눈치 챘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돌려 철기와 그의 부모님을 쳐다봤다. 저마다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철기와 철기어머니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고, 그곳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내 몸을 끌기 시작했다. 다친 다리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고, 고리가 달린 코는 찢어질 거만 같았다. 그래도 난 최대한 버텼다. 그리고 철기를 바라봤다.

“우어어어어어어어 (날 도와줘.)”

그러나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나 홀로 울고 있을 뿐이었다.

“끌어봐. 이 녀석이 안 끌려.”

“다리 부러진 거 맞아?”

“커어어어어어!”

 

그때, 철기가 달려왔다. 그리고는 남자들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몸도 아프다면서, 이것 좀 놔라!”

철기아버지가 철기의 몸을 붙잡았다. 그래도 철기가 울분을 터뜨리며 계속 날 잡고 늘어졌다. 그걸 본 철기아버지가 덩치 큰 사람에게 좀 전의 주머니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무릅시다.”

그러자 덩치 큰 남자는 사나운 눈으로 쏘아붙였다.

“거래는 이미 끝났소. 만약 뒤집고 싶다면, 여기까지 끌고 온 인건비와 부대비용으로 세 가마니 값을 보태서 내시오. 그러면 생각해보리다.”

“세 가마니라니? 그런 법이 어디에 있소?”

“당신, 우리가 준 돈으로 무당에게 공물을 바친다고 하지 않았소? 아들 살리기 싫으냐고?”

 

그 말에 철기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날 위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그의 얼굴에 모든 것을 삼킬 만큼의 슬픔과 처절함이 보였다. 네 명의 남자들이 다시 내 몸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면 죽는 거였다.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였다. 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언제 돌아올 지도 모를 어머니의 얼굴도 아직 보지 못했고,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철기도 바로 저 앞에 있지 않은가? 잡아끌고 있는 그들을 있는 힘껏 밀쳐냈다. 그때 철기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깐 나둬 보소.”

 

철기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철기의 손을 잡고 나한테 다가왔다.

“네가 끌고 가렴. 마지막 가는 길... 저 놈에게 칠년 동안 꼴을 먹이며 가장 친했던 네가 데리고 가.”

침묵을 지키던 철기가 자포자기라도 한 듯 천천히 일어나 내 코에 연결된 고삐를 서서히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의 눈을 보았다. 그는 눈동자로 나에게 연신 ‘미안해’라고 말을 했다. 난 다쳤던 다리에 힘을 주어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눈동자를 통한 무언(無言)의 이야기를 했다.

- 내가 이곳으로 들어가면 ‘공물’이란 것이 생기고, 진짜 네가 살 수 있는 거지?

- 그렇다면 기꺼이 들어갈게.

- 널 위해서라면 난 어디라도 갈 수 있으니까...

 

철기가 문이 있는 쪽으로 날 끌고 갔다. 이윽고 내 눈에서도 ‘눈물’이란 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저들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구나. 나도 저들과 같은 생명체구나.

그 ‘눈물’이 주는 자극일까? 난 죽을 걸 알면서도 걸어갔다. 한발자국, 그리고 두발자국 죽음 앞으로 걸어갔다.

 

저 문 앞에 다다라 문이 열리면, 이별이겠지? 다시 철기를 쳐다봤다. 철기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날 이끌고 있을 뿐이었다.

문 앞에 도착하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하지만 철기는 쥐고 있는 끈을 놓지 않았다. 뒤를 돌아봤다. 철기가 내 ‘눈물’을 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들어가지마, 어디든 달아나! 빨리!”

하지만 난 그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 건강해지면, 꼭 좋은 짝이 생길 거다. 넌 좋은 사람이니까...

- 목소리도 나오지 않은 바보 같은 날 잘 대해줘서 고마워.

- 널 위해서 떠난다고 생각하니, 슬픔보다 행복이 크다.

- 나중에 만나. 영원 속에서...

- 사랑한다. 내 친구.

 

난 그가 잡고 있는 고삐를 힘껏 잡아당겼다. 살이 찢기면서 콧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고통을 참고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겨우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놀란 철기가 다급하게 끈을 다시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에게 고삐를 잡히지 않게 다리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고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덜컹. 문밖에서 철기의 찢어질 거 같은 절규가 들렸지만 애써 귀를 닫았다. 잊어야 아프지 않으니까... 그래야 헤어질 수 있으니까...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엔 나와 똑같이 생긴 것들이 껍질이 벗겨진 채로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거기에서 피가 똑똑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엄청난 공포와 슬픔이 밀려왔다. 시골구석에서 지내던 나로서는 실로 상상조차 못하던 세상이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그대로 멈춰 서서 눈을 감았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무서웠다. 후회스러웠다.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철기가 보고 싶었다.

그때, 어디선가 아련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건 지난 오랜 세월동안 잊지 못했던 그 냄새였다. 아주 미세하게 남았다고 해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엄마의 냄새라는 것을...

‘엄마도 여기서 떠나갔나요? 그래서 돌아오지 못한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구나. 엄마 곁으로 가는 거구나. 그토록 그리웠던 엄마의 품에 들어가는 거구나. 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내딛었다.

한 발 두 발...

불과 세 길 정도 앞, 검은색 천이 내려진 곳이 마지막인가보다. 내 생명의 끝.

‘후회 없다. 그를 위해서라면...’

그 천 안쪽으로 목을 집어넣었다. 그 안에는 피가 강처럼 흐르고 있었고, 멀리 떨어진 쪽에 나랑 똑같이 생긴 것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해체되고 있었다.

‘정말 끝이구나.’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날아온 거대한 칼날이 목을 친다고 느꼈을 때, 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몸이 붕 떠올라 어머니의 자궁(子宮) 속으로 회귀(回歸)하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죽은 거지만 죽지 않았다. 나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 수 있기 때문이고, 또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곁으로 가는 것이니까...

난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만남을 시작하면서 곧 있을 이별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이별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면 억겁이 지난 후에도 다시 만날 수 있다.

나는 그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내 사랑.

꼭 병이 꼭 낫길 바라며...

 

 

 

 

THE END -

 

 

댓글에 스포 조심해 주세요. ^^;

 

 

(제가 쓴 글 입니다. 불펌 및 무단으로 도용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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