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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화분에 옮겨져 죽어가는 그것이 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

Yuri |2013.08.01 11:14
조회 2,305 |추천 17

누군가의 화분에 옮겨져 죽어가는 그것이

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

 

 

“얘들아, 정상을 밟았으니, 이제 그만 내려가면 안 될까?”

절규와 같은 별이의 외침에 선영과 수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별이가 더위를 잔뜩 먹은 강아지처럼 혀를 한 치나 내밀고 서있었다. 더는 올라가지 말자는 투덜거림이 그녀의 얼굴에 잔뜩 묻어났다. 수정이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별아, 정상은 한참 더 올라가야 해. 아직 반도 못 올라갔어.”

그러자 별이가 손가락으로 성곽 너머를 가리켰다.

“저쪽 봐봐. 시내가 다 보이잖아. 전망만 좋으면 정상 아니니? 태어나서 산에 이렇게 많이 오른 건 처음이란 말이야.”

별이의 터무니없는 둘러댐에 선영이가 미소를 지었다.

“야야, 저기 중턱까지는 버스타고 올라왔거든? 실제로 걸은 건 얼마 안 돼.”

하지만 별이는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반쯤 누워있는 나무줄기에 걸터앉았다. 저 친구를 데리고 정상까지 오르기란 천지가 개벽이 난다해도 절대 무리였다. 선영과 수정이 어떡해야하나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별이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더니 고민의 종지부를 찍듯 말했다.

 

“이쯤에서 어서 사진 찍고 내려가자. 너희도 배고프잖아.”

수정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픽 웃었다.

“파전에 막걸리가 널 부르는 게 아니고?”

“무슨 소리!”

 

선영이가 별이를 내려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로 앞 바위 위에 배낭을 풀어놨다.

“정상에서 먹으려고 김밥을 말아가지고 왔는데... 그냥 여기서 먹고 내려가자.”

“오, 진짜? 우리 예쁜 선영이 준비성하나는!”

금방까지 단 10센티미터도 못 움직일 거 같았던 별이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배낭이 놓인 바위까지 한달음에 뛰어왔다. 선영이가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워워. 중전들, 최대한 배들이 잘록할 때, 인증샷부터 찍으시와요. 제 생각엔 저쪽이 좋겠습나이다. 그 담에 퍼먹타임이 있으시겠습니다.”

“그래, 저기 좋네. 하여튼 배경은 끝내주게 잘 잡아요.”

“당연하지! 전망이 중요한데...”

 

세 사람은 준비해온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잘 고정시킨 다음에 각각 포즈를 취했다. 사진이 찍히자 잘 나왔는지 확인을 한 후, 몇 번을 거푸 찍었다. 수정이가 성곽 뒤쪽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티 나지 않을까? 그 괴짜교수님, 보통이 아닌 거 같던데...”

그러자 별이가 수정의 어깨를 다독였다.

“누가 봐도 딱 ‘산 정상’이네 뭐! 교수님이 직접 와서 확인할 것도 아니고...”

수정이가 음료수 뚜껑을 열며 별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 뭔 교양과목 교수가 그래? 학기도 다 끝났는데, 남의 과 학생들을 이렇게 마구 고생시켜도 되냐고?”

“그러게 말이야. 방학동안 어떤 산이라도 좋으니, 그 정상까지 올라가서 무조건 ‘인증샷’을 찍어서 바로 SNS에 올리라는 황당한 미션을 주다니...”

별이가 김밥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설마, 타과 여학생들과 페친하고 싶어 수작부리는 건 아닐까? 블랑카교수?”

“모르지. 일단은 잘생겼으니 참자. 총각이었나? 옷차림새나 나이로 봐서는...”

“어머, 너도 노리고 있었어? 이 참에 단체로 지교과 복수전공을?”

선영이가 손뼉을 마주쳤다.

“경쟁자가 대체 몇이야? 이러다 우리끼리 막장드라마 찍겠다. 훗.”

“처음부터 주인공이 죽고... 복수할거야! 막 이래.”

“후훗”

 

장난스런 수다를 떨면서 김밥과 음료수 등 간식을 다 먹은 세 사람은 그 근처에서 그럴듯해 보일만한 사진을 몇 차례 더 찍은 후에야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중턱에 이르렀을 때 즈음이었다. 별이가 갑자기 깊은 숨을 푹 쉬더니,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 것이었다. 뒤따르던 수정이가 별이의 팔을 잡았다.

“얘 또 퍼졌네. 다 왔어. 조금만 더 내려가서 쉬자.”

힘들어서 그 자리에 앉았던 별이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손가락으로 괜히 아무 풀이나 가리키며 둘러댔다.

“아냐, 저 꽃구경하려고 잠시 쭈그리고 앉은 거야.”

“어디?”

“저기 봐. 저기 있네, 저기 저 작은 꽃.”

 

별이가 가리킨 곳에는 실제로 주황색 꽃 몇 송이가 피어있었다. 수정의 입이 벌어졌다.

“어머, 진짜네? 귀엽고 예쁘다. 처음 봐. 이름이 뭐지?”

십여 걸음 아래까지 내려갔던 선영이가 다시 올라오면서 대답했다.

“그거 아기범부채꽃이네. 프리지아락사(Freesia laxa).”

“아기범부채꽃?”

“그런 거 같아. 보통의 범부채꽃은 이파리가 저것처럼 쫙 펴진 부채모양으로 생겼고 호피 같은 점박이 무늬가 있어. 그래서 ‘범’과 ‘부채’를 합쳐서 ‘범부채’라고 부르는데, 아기범부채는 호피무늬가 없대. 전체적으로 이파리는 비슷하고, 꽃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약간은 사람처럼...”

“오, 김선영! 너 꽃에 대해 왜 이렇게 잘 알아?”

“얘는, 내가 꽃알못이면 되겠니? 같은 종족인데!”

“허, 선영이 꽃처럼 예쁜 거 인정!”

“후후, 농담이고, 실은 예전부터 키우고 싶었던 식물 중에 하나거든”

“근데, 선영! 너만 꽃 할래? 다들 꽃 합시다.”

“그래그래, 다들 꽃. 후훗, 여긴 꽃밭.”

 

활짝 웃으며 아기범부채꽃 무리를 둘러보던 선영의 눈에 시들어 있는 녀석 하나가 들어왔다. 선영은 측은한 표정으로 그 꽃잎사귀를 만지작거리더니 친구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걸로 캐어가야겠다.”

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야, 그건 볼품이 없잖아. 기왕 가려갈 거면, 생생한 걸로 가져가.”

“아니, 내가 살려보고 싶어서 그래.”

“살린다고?”

“응, 집에서 보호해주고 싶어. 험한 야산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수정이가 별이의 어깨를 주물렀다.

“힘들어서 지친 당신 친구나 좀 보호해주셔.”

“친구님은 일단 다이어트부터 하라고 전달해주세요.”

선영은 일회용 생수병의 아랫부분을 잘라 흙을 가득 채우고는 배낭에서 시에라컵을 꺼내 그것을 조심스럽게 캐내기 시작했다.

 

선영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꽂이에서 ‘식물도감’부터 찾아보고는 아끼던 꼬맹이 화분에 흙을 잘 개어 시든 아기범부채꽃을 정성스럽게 심었다. 그리고 그걸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로 옮겨놓았다. 그녀가 ‘식물마니아’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베란다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가득했다. 선영은 마른수건으로 화초들의 이파리를 정성껏 닦아주다가 누렇게 변한 ‘알로카시아’의 이파리를 보고는 울상을 지었다.

 

“어제보다 더 누렇게 떴네. 내가 그렇게 정성들여 보살펴 주는데도 넌 왜 죽어가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 공기가 잘 통하는 곳으로 자리를 바꿔줄까?”

선영은 알로카시아가 심어져 있는 화분의 흙을 떠내 손으로 잘 정돈한 다음에 깨끗한 수건으로 줄기까지 깨끗하게 닦아냈다. 그리고 그 옆에 아기범부채꽃 화분을 가지런히 가져다놨다. 선영은 아기범부채꽃 화분과 알로카시아 화분 두 개를 번갈아보며 마치 사람한테 이야기하듯 말했다.

 

“너랑 너, 잘 들어! 너희 둘은 이 엄마가 특별히 정성껏 보호해서 반드시 살려줄 거야. 빨리 기운 차려서 생기 있는 모습 보여줘야 해. 알았지?”

그러자 마치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이파리가 살짝 흔들렸다. 선영은 원예가위로 알로카시아의 이파리 하나와 아기범부채꽃의 시들어버린 몇 개의 이파리를 정리하고는 화분의 위치를 가장 좋은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옆으로 다른 화분들도 보기 좋게 늘어놓았다.

 

“모두 모였으니, 이제 곧 기운을 차릴 거야.”

선영은 그제야 맘에 들었는지 일어나 허리를 폈다. 냉방이 되지 않는 베란다에서 한동안 작업을 해서인지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선영은 욕실에 들어가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욕조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 허브내음이 그윽한 거품입욕제를 풀고 들어가 누웠다. 뒤풀이로 막걸리까지 마셔서 그런지 몸 전체가 나른한 것이 자동으로 눈꺼풀이 감겨왔다. 스파욕조가 뿜어내는 물줄기가 초록빛 물을 기분 좋게 찰랑거리며 피부를 자극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선영은 알 수 없는 웅얼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욕실 전체에 수증기가 뿌옇게 서려있기도 하고 어둡기도 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밖에 누구지? 불은 또 왜 꺼져있어?’

그때처럼 엄마가 욕실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조명스위치를 내렸을 것이리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으려고 하는데, 어둠 속에서 매우 낯설고 이상한 괴음이 또 들려오는 것이었다.

 

‘티브이소리인가? 일어나기 귀찮네. 암 것도 아니겠지. 나중에...’

그때였다.

천장에서 갑자기 따뜻한 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영은 갑자기 샤워기가 고장이라도 났나싶어 한 손은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나머지 한 손은 욕조 옆 손잡이를 짚고 일어나기 위해 양쪽 팔을 함께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양쪽 팔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양쪽 모두 뭉뚝해진 느낌이랄까?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손과 팔이 있어야 할 곳이... 허전한 것이었다. 그것들이 마땅히 달려있어야 하는 그 부분에 ‘뭔가’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목도 허리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리와 발가락, 심지어 입술까지도 목석처럼 굳어버렸다. 그 부위들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와 수의근들 모두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고나 할까? 그것들이 처음부터 온전히 선영의 몸에 달려있던 것들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아예 없었던 것들인지... 완전 제로상태로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게다가 선영의 인지능력까지도 그것들과 비슷하게 소멸된 듯했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인 사람이 붉은색과 푸른색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움직임’이라는 단어가 ‘어떤 것’을 설명하는 단어인지, 그게 무엇을 위해 왜 생긴 건지 머릿속에서 완전히 빠져나가 버린 것이었다. 더 희한한 것은 지금의 이 상태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선영이 움직일 수 있는 신체부위란, 단지 한군데. 양쪽의 눈동자뿐이었다.

 

잠시 후, 쏟아지던 물줄기가 멈추었다. 그제야 선영은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몇 번이나 깜빡여 두 눈동자가 어둠속에 익숙해질 무렵, 겨우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아래쪽을 보니 욕조 속의 물이 온통 하얀빛을 띠고 있었다.

‘비누거품인가?’

 

하지만, 그것은 비눗물이 아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진한 백색의 물질이었다. 수면 밖으로 튀어나와있는 자주색 욕조부분에 맺힌 물방울들도 온통 그것과 같은 것들로 보였다. 우리가 흔히 ‘물’이라고 부르는 액체가 아닌, 석고덩어리와 같은 원색 그대로의 매우 탁한 빛깔의 동글동글한 덩어리들이었다. 욕조 윗부분을 올려다보니 그 작은 덩어리들이 우주에 떠 있는 별처럼 사방에 흩어져있었다. 그것들이 맺혀있는 위치로 눈의 초점을 바꿔보니, 수증기로 가리어진 투명한 막이 보였다. 분명 ‘없던 것’이었다. 욕조 테두리로 지금까지 없던 유리벽이 나타나 길쭉하게 씌어져 있었다. 뒤쪽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느낌상으로 커다란 유리부스 속에 인형처럼 갇혀있는 꼴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나자 그 유리벽에 서려있던 뿌연 수증기가 서서히 거쳤다. 그리고...

 

‘저건 뭐지?’

거대한 그림자라고나 할까? 초록빛의 시커먼 무언가가 유리벽 앞을 스치듯 지나가더니만, 잠시 후 덜컥 소리와 함께 욕조 전체가 공중으로 휙 들려지는 것이었다. 거의 동시에 사방이 환하게 밝아졌다.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부스 밖에서 끈적끈적한 느낌의 중저음의 거대한 음성이 울리듯 들려왔다.

 

[“영양분을 다 줬는가? 줬는가?”]

[“충분히... 줬다. 줬다. 더 이상 빨아들이지 않아. 않아.”]

[“많이 시들었어. 시들었어.”]

[“방법을 찾아봐. 찾아봐.”]

 

‘쿵쿵’소리와 함께 욕조 전체가 어떤 일정한 템포에 따라 들썩들썩 움직였다. 잠시 후, 공중에 떠있던 선영의 욕조가 딱딱한 어딘가에 ‘텅’ 소리를 내며 내려졌다. 그 충격으로 선영의 온몸이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거의 동시에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굳어버린 몸뚱이가 더욱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눈을 깜박였다. 희미하던 밖의 사물들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선영의 부스 앞으로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유리부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디자인이 조금씩 다른 여러 개의 비슷비슷한 투명한 부스들이 도미노처럼 나열되어 있었다. 그 각각의 유리부스들 내부엔 여러 가지 형태의 욕조가 있었다. 선영은 바로 앞의 유리부스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부스 안 욕조에는 뚱뚱한 여자 모양의 어떤 물체가 들어있었다. 선영의 부스와 그 물체가 들어있는 부스는 대략 3미터 정도 사이를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놓여있었다. 그 부스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물체라고 표현한 것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괴상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네킹처럼 굳어있는 그것은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 물체의 팔, 그걸 팔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원래 팔이 있어야 할 부분에 나무뿌리 같은 두 개의 줄기가 뻗어 나와 하얀색의 액체 속에 파묻혀있었다. 커다란 몸뚱이까지 더하면 흡사 세 개의 줄기가 백색 액체에 식물처럼 심어져있다고나 할까? 또한 몹시 흉하게 뚱뚱한 그녀(물체)의 벌거벗은 맨살은 일반적인 여성의 보드라운 느낌의 피부가 아닌, 살 속의 오만가지 것들이 희미하게 들여다보이는 반투명의 끈끈한 점액질(粘液質)처럼 보였다. 그 피부 속으로 징그러운 붉은색 반점 같은 것이 군데군데 비쳤는데, 그 반점들은 각각 숨이라도 쉬고 있는 것처럼 꾸물꾸물 커졌다 작아지는 움직임을 반복했다. 더욱이 그 여자의 머리에는 기괴하게 생긴 꽃 하나가 활짝 펴 있었다. 그 옆의 이파리에서 하얀색의 액체가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떨어진 하얀 방울은 다시 돋지 않고 그냥 그것이 떨어진 액체 사이로 스몄다. 그러고 보니 욕조 속의 하얀 그것은 액체가 아닌 것도 같았다. 입자가 고운 흙이랄까? 어쨌든 하얀색의 물방울이 그 흙으로 떨어지면, 그 안에 심어져있는 뚱뚱한 여자의 몸이 그 물방울을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그 기괴한 광경을 천천히 살펴보던 선영이 깜짝 놀랐다. 마네킹처럼 굳어있다고 생각했던 그것의 눈동자가 갑자기 확 떠졌기 때문이었다. 뚱뚱한 여자 형상의 눈동자와 선영의 눈동자가 순간 마주쳤다. 뚱뚱한 여자형상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선영을 잡아먹을 기세로 선영을 노려봤다. 그것을 본 선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별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었지만, 그건 분명 친구 별이의 모습이었다. 선영은 눈동자를 돌려 그 옆의 부스를 바라봤다. 그 옆의 부스에는 생판 모르는 어떤 남자 형태의 물체가 들어있었다. 그 뒤쪽의 부스에는 선영의 또 다른 친구인 수정이 형태의 물체가 들어있었다. 수정의 피부도 그렇고, 남자도 피부도 ‘일반적인 사람’의 피부는 아니었다. 둘 다 별이의 그것처럼 괴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남자의 머리에는 뾰족한 가시 같은 돌기들이 돋아있었고, 수정이의 머리 위에는 넝쿨 같은 것이 자라서 욕조부스 끝으로 삐죽 삐져나와 있었다. 각각의 부스에는 지붕이나 뚜껑이 없었다.

각각의 공통점이 있다면, 동물적인 느낌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선영처럼 다른 그것들도 눈동자는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남자의 눈동자와 선영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는 선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내리더니 선영의 가슴부위를 쳐다봤다. 하지만 선영은 그에게 ‘수치심’이란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자기 몸을 쳐다보는 그 남자가 어딘가 모르게 상당히 아파 보인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머리에 돋아있는 가시돌기들의 상당수가 누렇게 시들어있었다.

그때, 쿵쿵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급히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웅웅... 꽃잎을 닦아주자. 닦아주자.”]

[“정성스럽게 해야 해. 해야 해.”]

 

그 소리와 함께 갑자기 검은색의 거대한 그림자가 선영의 부스를 확 비집고 들어왔다. 그것은 ‘인간의 손’과 비슷한 형태의 엄청나게 큰 진갈색의 물체였다. 선영이가 그것이 들어온 방향으로 눈동자를 돌리자 족히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나무가, 아니 마치 나무처럼 생긴 괴물 두 마리가 보였다. 그 중 한 놈의 거대한 손이 욕조 속에 들어와 선영의 머리 위 어떤 부분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그 소름끼치는 것이 부스 안에 들어와 있는데도 선영은 어떠한 공포심도 느끼지 않았다.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더 줘야해. 영양분을. 죽어가. 죽어가.”]

[“이걸 뿌려봐. 뿌려봐.”]

[“그럴까? 그럴까?”]

 

몇 초 정도 지나자 하얀색의 액체가 선영의 머리위로 소나기처럼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처음에 선영의 욕조에 쏟아진 그것과 같았다. 선영은 눈을 깜빡거리며 최대한 시선을 내려 아랫부분을 바라보았다. 하얀색 흙 밖으로 나와 있는 선영의 볼록한 가슴부위가 위에서 쏟아지는 하얀색의 액체를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이고 있었다. 선영의 피부 또한 별이의 그것처럼 반투명의 징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피부 속에 수천의 단세포생물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면서 하얀 액체를 실타래 같은 핏줄조직으로 열심히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그 액체가 들어오자 몸이 뜨거워지면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선영에게 백색 액체를 뿌리던 괴물이 뿌리개 도구를 내려놓더니 남자를 가리켰다.

 

[“봐봐. 저건 시들었어. 잘라야 살아. 잘라야 살아.”]

[“내가 자르지. 자르지.”]

[“단 번에. 단 번에.”]

 

선영의 뒤에 있어서 보이지 않던 괴물이 선영의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놈의 손에는 족히 2미터는 될 거 같은 거대한 가위 하나가 들려있었다. 괴물은 가위를 쳐들더니, 그 끄트머리를 남자의 부스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그 가위의 날을 벌리더니 남자의 목에 가져다댔다. 남자는 두 눈동자를 내려 가위의 한쪽 날을 바라봤다. 남자의 눈동자에는 공포나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눈동자를 올리더니 다시 선영을 바라봤다. 선영 또한 그것이 일상에 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무표정함 속에 가위가 싹둑...

 

순식간에 남자의 목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더니, 공처럼 퉁퉁 퉁겨 데굴데굴 굴러갔다. 괴물은 남자의 잘린 머리를 치켜들더니, 옆에 있던 커다란 통속에 쓰레기처럼 내동댕이쳤다.

 

[“이제 됐어. 됐어.”]

[“다시 영양분을 주면 돼. 주면 돼”]

[“많이 뿌려. 뿌려.”]

 

괴물이 물뿌리개 같이 생긴 도구를 집어 들었다. 열기가 있는 것이 들어있는지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괴물은 그것의 주둥이를 금방까지 남자의 머리가 올려있던 잘린 목 부분 위쪽에 가져가 기울였다. 뿌리개 도구에서 하얀색의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잘린 부분이 그 액체를 삼키는 것처럼 쭉쭉 빨아들였다. 잠시 후, 그 잘린 목 부분에서 투명한 젤리 같은 것이 삐죽삐죽 풍선처럼 자라나더니만, 그 젤리 속에서 작은 머리가 꿈틀꿈틀 생성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갓 태어난 신생아의 머리쯤으로 보이는 것이 젤리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것이 눈을 껌벅껌벅 거리는가싶더니, 남자의 목 잘린 부분 위에 순식간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후, 신생아 머리를 싸고 있던 젤리가 톡 터졌다. 분비물이 신생아 머리에 지저분하게 흘러내렸다. 괴물은 하얀색 액체로 분비물을 닦아냈다.

그렇게 생성된 갓난아이 머리에 성인의 몸. 매우 불균형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자리 잡자...

 

[“거봐, 금방 자라지. 자라지.”]

[“그러네. 그러네.”]

[“다른 것도 할까? 할까?”]

 

머리 만드는 법을 학습한 괴물은 액체뿌리개 도구를 내려놓고 다시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선영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것도 자르자. 자르자.”]

[“아니, 저건 좀 기다려보자. 기다려보자. 다른 걸 잘라. 잘라.”]

[“아냐, 신선한 게 좋아. 좋아. 저걸 자르자. 자르자.”]

[“그럼 알아서 해. 알아서 해.”]

 

가위를 든 괴물이 선영의 부스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가위의 끝부분을 선영의 부스 속에 쓱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위의 날을 선영의 목 사이에 걸쳐두고 자세를 잡았다. 날이 목에 닿자 섬뜩한 느낌이 차고 올라왔으나, 선영의 머릿속에는 ‘별 거 아니다, 모든 게 순리다’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싹둑...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통증과 함께 어디론가 데굴데굴 곤두박질치는 치는데...

 

선영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목 부분이 따가웠다. 스파욕조의 물살이 차고 올라와 선영의 목 부분까지 자극하고 있었다. 선영은 물 위로 상체를 들어 올린 후, 욕조의 스파 버튼을 꾹 눌렀다. 쉬익 소리와 함께 모터가 멈추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사방을 살펴봤다. 보통의 욕실, 그냥 예전의 그 공간이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괴물도 없었고, 욕조를 둘러싼 유리벽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심어져있는 욕조부스 따위도 없었다. 욕실의 조명도 꺼지지 않았고, 샤워기도 예전 그대로였다. 살결을 만져봤다. 보드라웠다. 이 역시 예전 그대로였다.

 

‘꿈이었나?’

그래도 너무나 생생했던 탓인 건지, 따뜻한 물속에 앉아있는데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있었다. 선영은 구역질나는 그 투명피부가 떠올라서 몸을 비눗물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씻었다. 그리고 다시 따뜻한 물에 한참동안 샤워를 하고 난 후에서야 욕실 문을 열 수 있었다.

선영은 밖에 나오자마자 식물들을 진열해 놓은 베란다를 바라봤다. 베란다 옆으로 좀 전에 썼던 원예가위가 보였다. 괴물이 들고 있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끔찍했다. 어디든 빨리 치워버리고 싶었다. 선영은 몸의 물기도 닦지 않은 채, 그쪽으로 잰걸음에 걸어가 원예가위를 집어 보관서랍에 넣었다. 그 다음 원예가위로 잘랐던 ‘알로카시아’의 커다란 잎사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현관 앞 종량제 봉투에 넣기 위해 거실로 가지고 나오는 도중, 뭔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 잎사귀에 깨알 같은 글씨가 마치 원래 있던 무늬처럼 희한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생명체의 시각을 위해

다른 생명체의 후각을 위해

다른 생명체의 촉각을 위해...

 

더 나아가

다른 생명체 마음의 안정을 위해

다른 생명체 집의 아름다움을 위해

다른 생명체 취미의 고상함을 더 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 여유시간의 무료함을 없애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받을 빛이 많아도

흡수할 양분이 많아도

시원하고 맑은 물이 샘처럼 흘러도

핑크나 그린, 블루로 포장된.

혹은, 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다이아몬드’라는 투명한 돌이 천 개쯤 박힌 분(盆)에 심어진다고 해도...

 

내가 행복할까?

 

나와 다른 생명체들이여...

 

그토록 정성을 들이고

그토록 아끼고

그토록 보살펴주었는데

우리가 왜 죽어 가는지... 더 이상의 의문을 갖지 마라.

 

내가 살고픈 공간은 그대들이 원하는 곳이 아니다.

 

 

선영이 그 글을 다 읽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글씨들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이파리는 더욱 시들어버리더니 뜨거운 물에 푹 삶은 것처럼 축 늘어져버렸다. 선영은 그 잎사귀를 뒤집어보기도 하고, 밝은 빛에 비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손이 떨려왔다. 잠시 눈을 감았던 선영은 다시 베란다 쪽을 쳐다봤다. ‘아기범부채꽃’이 아까보다도 더욱 시들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영은 그쪽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 그것에게 말을 했다.

 

“돌아가고 싶니?”

선영의 얘기를 들은 건지, 아기범부채꽃의 잎사귀 하나가 살짝 흔들렸다. 선영도 그에 고개를 끄떡여주었다.

 

그 다음 날.

방학이라 기상시간이 많이 느려진 별이는 8시도 되지 않는 아침부터 울리는 핸드폰 진동소리에 짜증이 나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겨우 핸드폰에 손을 가져다댔다. 선영이었다. 평소 톡만 자주했지, 전화를 자주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뜬금없이 전화질이라니... 별이가 스피커폰에 대고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휴, 선영. 왜에?”

(“별아, 오늘 약속 없니?”)

“남친은커녕 남사친도 없는 사람 약 올리려고 일부러 전화했구나?”

(“그럼 산에 가자.”)

그 소리에 잠이 확 깬 별이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산? 아침부터 무슨 뚱딴지야.”

(“어제 갔던 그 산 말이야.”)

“다른 산도 아니고, 거길 왜 또 가?”

(“급하게 그럴 일이 생겼어.”)

 

별이가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다시 몸을 눕혔다.

 

“눈이 안 떠져서, 미안. 방학 땐 내가 네 끼에 십 수면 하잖아. 좀 이따 전화해.”

별이가 종료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에 선영이가 조금 큰소리로 말했다.

(“꼭 가야 해. 수정이도 나오기로 했어.”)

“에구, 너희님들끼리 가도 뭐라 안 할게요. 나는 그저 잠자는 숲속의...”

(“그게, 그 잘생긴 총각교수님 교양수업 땜에 말이야.”)

 

별이가 다시 벌떡 일어나 앉으며, 핸드폰의 스피커폰을 끄고 귀에 댔다.

 

“교양? 우리 바로 과제 냈잖아. 카톡으로...”

선영이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실은 교수님께 양심선언을 했어. 그 사진은 중턱에서 찍은 거라고... 그랬더니, 즉시 다시 다녀오라는 답톡이 바로 날아와서.”)

“뭐라고? 진심이야? 그러면 어떡해!”

(“거기에 다시 가져다놔야 할 것도 있고. 겸사겸사.”)

 

별이가 짜증나는 말투로 대답했다.

 

“뭔 소리야? 대체 뭘?”

(“산에 가면, 살도 빠지고 좋잖아. 내가 속살을 봤는데, 너는 진짜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야! 뭐래는 거니? 같이 수영장도 간 적 없는데...”

(“농담이고, 두 시간 후에 그때 그 역 앞에서 봐. 꼭 나와.”)

“참, 오늘 안 되겠다. 수족관 물 갈아줘야 해. 사람 불렀단 말이야.”

(“집에 수족관이 있었어? 누구 거야?”)

“당연히 내 거지, 내가 금붕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세 마리 있어.”

(“오! 잘 됐다. 예약 취소하고, 걔들도 물통에 넣어서 들고 나올 수 있어?”)

“허얼, 걔들은 왜?”

(“올라가는 길에 강가에 풀어주자.”)

“미쳤니? 안 돼! 저거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데...”

(“네가 좋아하는 막파 쏠게. 아니면, 치맥? 1차 2차 다?”)

“흠, 근데 강에 풀어놓으면, 쟤들 다 잡아먹혀. 어린애들이란 말이야. 불쌍하게..”

(“갇혀 있는 게 더 불쌍하지 않아?”)

“갑자기 이 여인이 왜 이렇게 맛이 갔지? 불교에 귀의라고 하셨나?”

(“네가 걔들을 진짜 사랑한다면, 자기가 원래 살아야 할 세상이 어딘지는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니? 단, 1분을 산다고 해도 그 세상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잖아.”)

“1분이라도?”

(“그래 잠시만이라도... 살았어야 할 곳. 살아가야 할 세상.”)

 

 

 

 

- THE END -

 

 

<YURI의 마지막 메시지>

 

인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삶과 당신이 지배하는 삶을...

 

 

 

(제가 쓴 글 입니다. 불펌 및 무단으로 도용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시면 안 됩니다.)

 

 

 

1화: 말하는 거울

2화: 포스터를 그리면서

3화: 하얀 원피스

4화: 딸을 위한 선물 (19)

5화: 천재 작가 (19)

6화: 소름끼치는 목소리

7화: 뫼비우스의 운명

8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을 때...

9화: 최고의 상품

10화: 과거로 돌아간 남자 (운명의 새해)

11화: 사이버 세계로 떠난 웹툰작가 上

12화: 사이버 세계로 떠난 웹툰작가 下

13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14화: 내 잘못이 아니야

15화: 파우스트의 진실

16화: 그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는...

17화: 상류층의 놀이거리

18화: 피 흘리는 산행

19화: 누군가의 화분에 옮겨져 죽어가는 그것이 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

20화: 눈 물

추천수17
반대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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