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신의 예정을 크게 강조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인간의 모든 운명은 신에 의해(또는 사주팔자에 의해) 모두 예정되었으며, 인간은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하면 인간은 마치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처럼 정해진 운명에 순응해 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크게 강조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운명은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며, 인간의 운명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
1. 운명론은 성경적인가?
운명론은 인간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으며, 인간은 그 운명에 항거할 수 없는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운명론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책임은 자유가 있을 때에 요구되는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인간에게 그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우에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뜻을 따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운명론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며, 스스로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자유의지론은 성경적인가?
성경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주어져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그 형상 안에는 자유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선악과를 먹지 않을 수도 있었고, 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것을 먹을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하나님처럼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만 그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제한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는 요소들
가. 자연법칙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그 만물들이 존재될 수 있는 자연법칙을 부여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은 이러한 자연 법칙을 따라서 운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동시에 육신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역시 자연법칙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자유의지를 자랑하면서 20층 건물에서 아무런 장비 없이 뛰어 내리면 그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거나 죽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처럼 만유인력의 법칙에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지만, 이러한 자연법칙을 따라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제한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큰 재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는 다르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으시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연법칙을 넘어선 창조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자연법칙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나. 양심
인간은 다른 만물과 다른 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다른 만물과는 다른 차원의 삶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위치에 알맞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원리를 우리 마음 안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양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다른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서 함께 돕고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의 법칙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제한합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가 거짓말, 간음, 폭력, 강간, 살인 등 범죄를 행하려고 할 때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양심의 법칙을 좇아서 자유의지를 행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평안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양심은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할 때에 "참 잘했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자유의지가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이러한 양심의 법칙을 벗어나면 크게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양심의 법칙을 좇아 행할 때에 비로소 평화롭고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다. 십계명과 율법
그러나 우리의 양심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손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혀 무뎌졌고, 환경과 문화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편적인 양심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계명과 율법입니다. 이 십계명과 율법은 부분적으로 무뎌지고 손상된 양심의 법을 완전하게 회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평화롭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러한 십계명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십계명과 율법은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할 때에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유의지가 율법의 법칙을 좇아 행할 때에 우리는 가장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라.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일정한 부분에서 미리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거대한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미리 계획하시고 그 뜻을 따라 역사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거대한 강줄기를 바다로 이끄는 댐처럼 인간의 역사를 자신의 뜻에 맞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래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에게 미리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반역과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협력하여 자신의 선한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십니다.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관과 섭리 안에서 살아가며, 따라서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을 기계처럼 만드는 전제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 의지가 가장 바람직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섭리하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노력 100%와 하나님의 섭리 100%가 합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 100%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임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부패해진 자유 의지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을 좇아 행하면 우리의 의지는 선하고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면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온갖 예수님의 모습을 열매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운명론은 우리가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따라서 하나님과 같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운명론은 우리에게 패배감을 주지만, 성령은 우리에게 승리를 줍니다. 운명론은 우리를 기계처럼 만들지만,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만들어 줍니다. 운명론은 우리를 체념하게 만들지만, 성령은 우리를 역사의 개혁자와 선구자가 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운명의 저주를 이미 벗어났으며, 성령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새 역사를 만드는 역사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인생역전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역전의 사건들을 신문이나 tv에서 크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서는 인생역전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일반적인 원리는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부자는 더 부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얼마나 상처를 입었으며 입고 있습니까?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맺힘이 있었습니까? 내 아버지, 내 어머니는 왜 이런 분일까 질문해 보신 적 없습니까?
우리에게는 나의 생각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들이 있습니다. 선천적인 것들, 바로 삶의 환경과 조건이 그러합니다. 내 아버지나 어머니를 내가 택하려고 택한 것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가 부자여서 나도 부자가 되고, 내 아버지가 가난해서 나도 가난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 삶에 이미 주어진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온 인물인 야곱은 자기생각과 상관없이 운명처럼 다가온 이러한 것들에 저항하려 했습니다. 이것을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쩌면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가진 것에 그냥 만족하지 않고 무언가 더 나은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나가서 투쟁도 해보지 않았습니까?
왜입니까? 바로 내 마음속에도 야곱과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방법은 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남이 잘나가는 것, 남이 높아지는 것을 끌어내리는 방법이었습니다. 남의 것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움켜잡았던 야곱의 이름이 움켜잡다는 뜻인 것도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래서 형이 배고파하는 것을 알고, 그 기회를 타서 팥죽을 만들어주고 대신 장자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로 아버지와 형을 속이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냥 꽝이었습니다. 그렇게도 첫째가 되기를 원해서 형의 발꿈치를 잡았지만, 그는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장자권을 차지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 속 그는 계속 차자였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를 장자로 여기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신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까지 받았지만, 오히려 그 순간부터 야곱의 인생에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살기등등한 형의 눈을 피해서 집에서 쫓겨 도망 나오게 됩니다. 장자권을 받았지만 그것은 그에게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의 연속이 된 것입니다.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고난의 역사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내가 그토록 움켜잡으려고 했지만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을 다 차지하리라 생각했지만 인생이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남은 것이 모두 없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인생에 기회를 주십니다. 무너진 현실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막막한 광야에서 외톨이가 된 그에게, 네 가정과 네 삶에 축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삶의 뒤집기를 열어놓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이고, 긍휼의 표시였습니다. 이런 각도에서 예정을 보게 되면, 그것은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고 긍휼의 역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이 믿음의 성도인 고린도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미련한 자를 택하셨다. 하나님이 비천한 자를 택하셨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자를 택하셨다. 그래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아무것도 없는 자를 택하심으로 은혜의 사건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택하셨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의 특권을 주셨기 때문에, 나 같이 못난 사람을 예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은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가지고 있는 감사고,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이 뒤집기를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놀라운 특권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늘 둘째라는 서러움 속에서 고통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삶을 빨리 포기하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우리 인생에 뒤집기의 은혜를 주시는 것을 기다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십시오. 그러다보면, 어느 날 내 속에 있었던 설움과 열등감이 사라질 것입니다. 족쇄처럼 메어 너는 둘째다라고 짓누르는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딸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소중히 여기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이 세상에서 받은 모든 차별과 슬픔, 탄식을 뛰어넘는 기쁨과 감사의 노래가 우리의 영혼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을 한 명 뽑으라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 대언자 중의 대언자 엘리야, 지혜의 왕 솔로몬 또는 모든 현자들의 으뜸인 다니엘, 이러한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뽑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모세를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 구약과 율법을 언급할 때마다 모세를 그 대표로 지정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서도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으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모세라는 사람이 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작지 않습니다. 모세는 성경에서 그의 탄생부터 인생을 마치기까지 모두 기록된 몇 안 되는 사람가운데 한명입니다. 아브람함의 인생은 하란을 떠난 75세부터 기록이 되었고, 다윗의 인생은 소년 시절부터 기록이 되었지만, 이 모세의 인생은 그가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태어났는지부터 시작하여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났고, 어떠한 청년기를 보냈고, 어떠한 삶을 살고 인생을 마쳤는지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자요, 인도자로 예비하신 것같이 모세도 믿음으로 그러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 할지라도 사람에게는 그것을 따라갈 자유도 있고 그렇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칼빈주의나 운명론과 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예정하셔서, 사람의 뜻으로는 좋든지 싫든지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실 지라도 우리의 자유의지가, 우리의 믿음의 결심이 합쳐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경은 모세에 대하여 그가 스스로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했고,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모세의 선택이 합쳐지는 순간입니다. 이제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80세가 되어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이 빠진 모세를 이집트의 사역지로 파송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일까요?
왜 모세가 아직 40세였을 때, 본인도 열정적으로 일해 보려고 하는 그 때에는 침묵하셨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칙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할 수 없을 때까지는 일하시지 않고 가만히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 가운데는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내 바라던 소망 다 허사가 될 때 내 아버지 도움은 시작일세.”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이 99세가 되고 더 이상 아들을 가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걸으며 완전할지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의 탄생과 성장과 일생을 예비하셨고 또한 영원한 영광까지 예비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일상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떨기나무와 같이 볼품없고 평범한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오셔서 영광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또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능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하시려고 모든 능력을 공급하시며 다만 겸손하게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선택하여 따라오도록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또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아래 겸손하며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은 주님의 때에 우리를 높이시고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억울함과 수고와 고생이 너무나 가볍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낄 정도의 무겁고 뛰어난 영광으로 보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위한 영광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일상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를 이러한 영광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전능한 손으로 우리가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영광을 위하여 수고할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분이십니다. 영광으로 보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보다 더욱 넘치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모세와 같이 믿음의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이집트의 보화들을 거절하고, 잠시 누리는 죄의 쾌락들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치욕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대로,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매일 매순간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의 상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주님을 선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