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민주화의 추억이 있다. 매운 최루가스의 기억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아련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상황은 민주화를 추억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절박하게 찾도록 만들고 있다. 서울광장에서는 지난 주말 2만5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4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청계광장에선 6월21일 이래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이 외치는 것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규탄과 철저한 국정조사다. 사태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식한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공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 등으로 정국이 어지럽더니 마침내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본격화했다. 민주당은 어제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국정원 개혁을 위한 의원총회를 열었다.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운동본부'도 만들었다. 1987년 6월항쟁 때 민주세력의 구심점이 된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를 연상시킨다. 김한길 대표는 이날 "원내외 투쟁을 병행할 것"이라고 했으나 아무래도 방점은 원외에 찍힐 것 같다.
국회 밖을 투쟁의 장으로 삼는 데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로 '민주주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야당의 상황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것을 '민주화'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왜 그런가. 외견상 한국의 민주화 수준은 민주화 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듯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가령 국정원이 댓글공작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건은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과거엔 상상조차 어려웠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를 축소·은폐했다. 국정원은 국가기밀인 회의록을 무단 공개했다. 명백히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린 국기문란 행위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는 세상이라면 설사 그런 일이 저질러지더라도 투명한 사후 처리가 취해져야 한다. 그렇게라도 된다면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국정원 국정조사는 새누리당의 무력화 전술로 파탄에 이르렀다. 국조특위 민주당 위원 자격 시비, 국정원 기관보고 비공개 문제 등으로 3주를 허송하더니 원세훈, 김용판 등 핵심 증인을 출석시키는 것마저 막으려 했다. 김 대표가 "국민은 분노하고, 민주당의 인내력은 바닥이 났다. 국조를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참을 만큼 참았다"고 한 장외투쟁의 변을 수긍할 만하다.
6월 말 촛불집회가 시작될 무렵 우리는 이 집회를 2008년 '쇠고기 촛불'과 비교해 예사롭지 않은 유사성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원인 제공을 국가·정부가 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정부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가 더욱 분명해졌다. 여권이 드러내는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 장외투쟁의 진짜 의도는 국정조사를 의도적으로 파행시키려는 데 있다"고 했다. 국조를 대선 불복의 정치공세장으로 만들려다 안되니까 그런다는 것이다. 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도 "민주당은 2008년 대선에 불복해 촛불집회를 일으켜 나라를 어지럽힌 전례가 있다"며 대선 불복 심리를 거론했다.
이것은 사실관계의 명백한 왜곡이다. 민주당은 2008년 촛불집회를 일으키기는커녕 환영받지도 못했다. 이번 장외투쟁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촛불민심을 대선 불복으로 간주하는 이런 단순 논리가 촛불을 도리어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집권당이 대선에 불복하도록 부추기는 형국이다.
대선 불복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이렇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것은 불법이고 민주주의에 어긋난 일이었다. 민주국가의 국민이 화를 내고 저항할 만하다. 즉 불복할 수 있다. 그게 민주주의다. 이번 촛불의 원인은 집권세력의 반민주성과 무능력, 오만이 겹친 결과다. 그 점부터 인정하지 않고 뭉개려고만 해서는 문제만 덧들일 뿐이다.
☞ 경향신문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