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쓰고 싶어도 막막해질 뿐 마음은 깊은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설혹 시가 써졌다 해도 이런 시가 나와 독자들의 현실적 삶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어 자괴감에 빠지고 맙니다.
이럴 때 저는 ‘아, 내가 준비가 부족하구나. 내 영혼에 다시 쓸모없는 살이 쪘구나. 좀더 대팻날을 갈아야 하겠구나’ 하고 자성하게 됩니다.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될 필연성이라는 대팻날이 무뎌졌구나’ 하고 자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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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저는 잘 갈아 준비한, 날 선 대패 하나가 제 손에 들려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소 게으르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시의 대패질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대패질을 하는데만 마음을 쏟았지 정작 대패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대팻날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뎌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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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급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좀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대팻날을 제대로 갈지 못해서 대패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팻날을 제대로 갈아서 대패질을 제대로 하는 게 참다운 목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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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당신은 대패질을 할 때가 아니라 대팻날을 갈아야 할 때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우리의 인생 전체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 ‘대패질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 79p~83p)
지난 1년간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없었다.
매번 별 다를 것 없이 되풀이되는 뻔한 내용과 감흥이 없는 글쓰기에 의욕을 잃고 점차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 이유가 반복된 일상에서 오는 타성과 내 사유의 한계 탓이라고 생각했다. 글의 생명인 진정성이 무뎌져 가는 글쓰기를 지속해 나가는 건, 내 기만이자 미련일 뿐이라는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그만 쓰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내가 즐겁지 않고 나 자신이 감동할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읽는 이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제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을 읽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내 대팻날이 무뎌져 있었구나’ 하고.
매일 열심히 대패질에만 열중했지 대팻날이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뎌져 있음을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참고 기다리며 내 영혼의 대팻날을 갈고 다듬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했다. 그것이 설사 더디고 지루한 일이라 할지라도.
무딘 대팻날로는 그 무엇도 제대로 깎을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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