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예~? 손님! 다왔거든요? 사천 팔백원입니다."
갑자기 눈이 부셨다. 그리고, 다음으로 눈알을 하나하나 찔러대는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뭐.. 뭐야? 아..씨! 눈아프다...'
박기자는 아직 촛점이 모아지지 않는 흐리멍텅한 눈알두개를 이리저리 굴려보며 현재의 상황판단에
정신을 모았다.
지금의 상황은... 일단, 힘들었지만 가까스로 들어올린 박기자의 눈꺼풀사이로 좀전과는 강도가
다른 강렬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햇살위로 어두운 그림자하나가 덮히는가 싶더니 좀전에 봤던 택시기사의 얼굴이
눈앞에 잡히기 시작하면서 ---낯익은 얼굴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박기자였다.
"후아아아암...... 쩝.. 아저씨. 얼마라구여?"
어제 술이 과했던 모양이다. 박기자는 그순간 친구랍시고 외로움에서 구제해준다고 불러내놓고서는
저희들끼리 여자끼고 양주를 마셔댔던 고등학교 동창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욕을 해댔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찌그러진 지폐몇장을 기사에게 쥐어주고는 힘든 몸을 가까스로 추스린채,
텁텁한 택시안 공기를 시원스레 뒤로 밀어내며 차문을 열고 내렸다.
[덜컥...... 텅!]
"스으으으으읍~~~~~~~ .... 하아아아아아~~~~~~ "
아까까지 지저분하던 기분이 한순간 날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리자마자 박기자를 반겨주는것은 답답하던 코와 가슴팍안으로 호흡한가득 스며들어오는
청량한 느낌의 찬 바람 한줌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도착지가 바닷가에 가까운곳이다보니 공기부터가 시내와는 다른듯 느껴졌다.
게다가 음습하게만 느껴지던 도시의 햇살과는 다른, 강렬하지만 따스하게 피로에 지친온몸을
어루만져주는 햇살의 자애로움은 박기자의 무겁고도 지루한 피로감을 한순간 떨쳐주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런 기분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오랫만에 느껴보는 두가지 자연의 은총들이 마치 판타지게임의 힐(heal:성직자나
마법사가 쓰는 체력회복주문)마법처럼 온몸의 세포하나하나에 대자연의 기운을 불어넣으면서
귀까지 밝아지는 그 순간, 때마침 어디선가 귓속으로 박혀들어오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웅성거림
에서 박기자는 기자특유의 불쾌한 감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여 들어오면 안됩니다. 퍼뜩 나가이소."
말투에서부터 어딘가 신참내기냄새가 물씬 풍기는 순경한명의 떨리는 말한마디가 힘들게
유혹의 정원에서 발길을 돌려선 박기자의 몸뚱이를 막아섰다.
"아~ 최순경님. 저는 새한일보 기자 박이형기자라고 합니다. 취재해도 되져?"
순간...! 그것은 눈썹이 한번 파르르 떨릴정도의 아주 찰나의 시간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순경이 박기자의 얼굴을 보려고 다가서는 그 순간, 박기자의 얼굴은 놀랍게도 어느새 찌푸려졌던
얼굴 가득히 접대용 미소를 한가득 올려붙이고서는 신참순경(이미 박기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의 이름표를 무의식중에 훑어내리고서는 작은 어깨걸이 캐쥬얼가방을 뒤져서 때묻은 기자수첩을 꺼낸후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한것이었다.
(이 모든 일련의 행동은 마치 하나의 행동인양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만약에 이순간을 읽어낸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박기자의 직업을 연기자쯤으로 생각했을정도의 순간적인 연기력이었다.)
"저기, 여기 담당자 되십니까?"
박기자는 경찰들중에서 한명을 얼른 찍고는 재빠르게 다가서서 바로 말을 걸었다.
뭐, 그때문에 박기자의 어깨너머로 입만 벙긋거리던 최순경은 뻘쭘하게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그건 박기자가 신경쓸바가 아니었다. 지금의 박기자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의 눈앞에서 새치가
잔뜩난 뒷통수를 긁적이며 동료형사들과 얘기하는 중년의 형사였다.
"하아~ 진짜, 우째 알고 귀신같이 온다카이... 최순경~! 뭐하노? 이분 안모시고."
검은색 가죽점퍼에 제법 다부지게 생긴 그 중년의 형사가 입을 열었다.
일단 생김새로만 보자면 전체적인 얼굴형은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평이하게 생겼지만
이쪽으로 흘끔흘끔 쳐다보는 저 눈매나 굳게 다문 입술아래로 굵게 튀어나온 아래턱에서는
오랜연륜이 묻어나보이는 형사의 필이 느껴지기에 충분해 보였다.
아마 못해도 이중에서 1순위 아니면 최소 세손가락안에는 드는 직위의 사람이리라.
일단, 박기자는 아까봤었던 최순경에게 떠밀리면서도 다음순간 경찰들사이에서 입을 다문채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저리 지시를 하는 그 검정가죽점퍼의 중년형사를 보며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확인하며 씨익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는 바로 사건현장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저..저기 말입니다. 현장에 접근하시면 안되거든요?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또 그 순경이었다. 신참이라서 그런지 옷도 단정해보이고 경찰관계자중에서 가장 젊어보이는
친구였다. 하지만, 이런사건에는 처음인지 어딘가 당황스러워 보이는 낯빛이 역력했다.
순간, 박기자는 아직 이런사건(아까 오면서부터 아주 친숙한... 비린내가 나는것을 느끼고는 사건의
성질과 종류를 어느정도 예측한 박기자였다.)에 대해서 일처리를 잘 모르는듯한 최순경이라는
이 친구에게 충고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때, 아까 그 검정점퍼의 형사가 나즈막하게 순경에게 말하는 소리가 박기자의 오른쪽 입가를
위쪽으로 약간 들썩이게 했다.
"최순경! 그으 기자분 냅두고 여와서 사람들 통제나 하그라. 저 기자분 현장감식때 방해나
할것 같으면 그때나 내치던가하고... 알긋나? 퍼뜩 여와서 막아라!"
그렇게 충고한마디해주려고 발걸음을 옮겼던 박기자는 머뭇거리며 돌아가는 최순경과 함께,
현장감식을 위해 도착한 감시반과 함께 따라들어가는 그 중년형사를 동시에 바라보며 그제서야
얼굴가득히 붙여두었던 가식을 걷고서 현장주위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흐음... 우째 이렇게 다 죽었을꼬..."
한동안 현장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정신이 없었던 박기자는 이번사건이 15층 아파트옥상에서
일가족 모두가 아래로 뛰어내린 투신사건이라는것을 파악하고나서 생각에 빠졌다가 뒤늦게야 귓가에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까 그 중년형사의 음성이었음을 기억해내고는 허겁지겁 모여든 구경꾼들의 어깨를 밀치면서
사건현장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반장님. 일단 검시를 해봐야 알겠습니다마는 단순히 투신자살사건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아까 그 중년형사를 [반장님]이라고 부르며 다가서는 사람은 아까왔던 감식반중에 한사람이었다.
이에 자신이 찍은 사람이 이중에서 왕고임을 확인한 박기자는 허리춤에서 핸드폰을 꺼내서는
편집장이 보내준다던 이기철사진기자의 단축키를 확인한후 누르기 시작했다.
"그래요? 흠... 요즘에 하도 가족간에 단체자살이나 살인사건이 많다는거는 들어보기는 했지마는
우리구에서 이렇게 사건이 일어나고보니까 섬뜩하네요."
"예. 저도 이런거 요즘에 이상하게 자주보게되는것 같은데 볼때마다 적응이 안됩니다. 어제밤에는
저어기~ 영도구에 화천아파트에서 일가족이 다 투신자살해서 애를 먹이디마는 오늘은 또 여서 이러네요."
"허어... 그라믄 이런일이 자주 일어나나 보네요? 우리구에서는 일가족투신자살건은 첨이라서..."
두사람은 그렇게 감식반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는 현장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동시간에서는 이순간에도 박기자가 감식반 담당자인듯한 사람과 반장과의 이야기가
나누어지는것을 엿들으면서 통화음만 길어지고 있는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서 통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떨컥...!]
<"여보세요? 박기자님? 박기자님이십니까?">
건너편에서 이젠 제법 낯이 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기자? 거기 어딥니까? 지금 시간늦으면 안되는데..."
<"아~ 그기 말입니다. 지금...">
"반장님, 여기 유서같이 보이는 종이쪼가리가 나왔습니다!"
이기자와 통화를 하던 박기자는 갑자기 터져나온 한 형사의 목소리에 이기자의 말도 끊은채,
재빨리 감식반이 모여있는 현장안으로 들어갔다.
상황을 보자면 이런순간이 기자가 뉴스를 건져올릴 절호의 찬스이자 기회란걸 박기자는 5년차
짬밥의 내공으로 자연스레 느끼고 행동으로 옮긴것이었다.
"반장님, 여기 이거..."
"강형사~ 여 장갑하나 퍼뜩 던지그라."
반장은 재빨리 받아든 감식용 장갑을 손에 끼운후, 피로 귀퉁이가 물들어있는 A4용지를 들고서는 읽기 시작했다.
"양명아. 도망가라. 아무 생각말고 도... 흠. 이다음은 다 못썼는가보네. 피로 쓴......"
그순간, 갑자기 반장의 뒷말이 박기자의 귓속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은 유서로 보이는 종이에서 나온글의 단어하나가 박기자의 의식을 순간적으로 마비시켜버린탓이었다.
'야..양명아? 그..그건 ..서..설마!!!!!!!'
박기자의 귓가에서 다시 제기능을 하려던 핸드폰이 미끄러지듯 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다음순간, 제법 큰편에 속하는 박기자의 몸이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마치 100M 단거리선수가
출발스타트를 하듯이 현장을 향해 몸을 날리듯이 달려왔다.
"저... 저 점마뭐꼬?"
"아니.. 저, 저사람. 야! 최순경!! 저기자 안막고 뭐하노? 야 임마!"
이때, 최순경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미처 대처를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고 그순간에 이미
박기자는 감식반인원을 모두다 뿌리치고서는 현장안쪽까지 이미 들어와 버린 상태였다.
그리고는 헐떡이던 박기자의 얼굴이 갑자기 새하얗게 질리는듯 싶더니 눈동자가 커다랗게 치켜져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차례로 형사들의 제지에 끌려나가던 박기자의 돌아보던 눈가에서 굵은눈물이 흐르더니
한순간, 모여든 군중들의 귓가를 멍멍하게 할만큼 커다란 고함소리가 박기자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기형아아아아아아!!!!!! 안돼에!!!!!!!!!!!!"
지금 이순간, 흩어진 감식반인원들사이로 두눈에 보여지기 시작한 사체중에 한구...
옆으로 고개를 땅에 쳐박은채 아주 고통스러운 표정을 인상가득히 담고서는 섬뜩하리만치 무섭게 두눈을
치켜올린채 죽음의 그림자를 뒤집어써버린 죽은남자의 처참한 얼굴...
그것은... 아니, 그 사람은...
박기자의 유일한 혈육인 쌍둥이 동생, 박기형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