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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오늘의반성 |2013.09.16 06:02
조회 485 |추천 3

흔히들 '교회 나오세요' 하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은 '너무나 행복하고 평화롭고 기쁘기 때문에'라고 쉽게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전도에 나선 이들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내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보라'는 듯이 자신의 인간적인 면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매우 합당하고 좋은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듯 하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굳이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그들이 믿는 대로 따라할 필요가 없다.

인간을 그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들은 세상에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신앙은 단순히 감정적인 만족감과는 별개의 문제다.

인간적으로, 인생에서 괴롭고 힘들기 때문에 혹은 더 단순히 지금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냉정히 볼때 완벽한 모순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행복하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그들이 경멸해마지않는 악마의 수단과도 다르지 않으며, 인간적인 쾌락으로 유혹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혹은 반대의 경우도 많은데, 인간적인 두려움을 역이용하여 믿지 않으면 인간의 부정적 감각 즉, 고통과 공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압박감을 일으켜 억지로 믿게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위의 경우보다 더 수준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믿음이란 것은 순수한 당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조차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이성 이전의 감각적 단계에서부터 시작하는 매우 단순하고도 확실한 인지의 수준인 것이며, 빛과 어둠을 구분하고 발을 디딜 공간이 있고 없음을 아는 매우 원시적인 지각의 단계와 다르지 않다.

 

이미 수천년을 거쳐 인간의 손으로 수정되고 다시 쓰여진 글귀들과, 인간 이성으로 걸러서 다듬어진 여러가지 형태의 난잡한 교회들을 보라.

이것이 어떻게 진리이며 반드시 믿어야 할 가치인가.

 

그들이 꿈꾸는 것은 단지 현세와 차원이 다른 완전무결한 추상적인 지향점에 불과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삶과 죽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냄새나는 유기체의 차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그 이후의 개념이며, 인간적 차원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단순명확한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싸우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실체는 인간이며, 당신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쉽게 말해서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인간적인 신이 아니다.

인간과는 아무런 관련조차 없을수도 있으며, 당신이 죽든 살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단지 이 거대한 시스템의 설계자라고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신이 그토록 인간을 사랑하며 밀착된 존재라면 결코 인간이 불행해지도록, 죽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로 신을 경외한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한가지 확실한 죽음이란 시스템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끊임없이 죽음을 비난하고 경멸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신의 뜻에 부합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지 않아야 한다. 영생이란 것은 단지 살고싶은 인간의 욕망을 신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신이 끊임없이 공격받고 모독당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전지전능한 신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라면 그 즉시 죽음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능력자이기 때문에...

 

현대의 기독교는 모순점과 허점이 많은 원시신앙을 그대로 각색하고 수없이 고쳐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신을 들여다보면 교묘한 속임수를 설치해놓고 이것을 통과한 극소수자에게만 완벽한 보상을 주는 권모술수에 능한 악덕상인같은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불필요하게 이 케케묵은 인간적인 욕망의 투영체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신앙을 가짐으로써 현재의 '인간적' 생활이 더 건전해지고 정신적인 안정감과 평화를 얻고 치유가 된다면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이유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 자신의 인간적인 인지능력과 손바닥을 벗어난 무언가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갈망이 목표라면 집어치우는 것이 현명하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의 한도내에서 최대한 바람직하게 살아갈 방법부터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은 식사를 할 때마다 '다른 존재의 생명을 빼앗아' 죽음에 이르게 한 대신 자신의 생명을 얻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해 본 적이 있는가?

정말로 믿음이란게 있다면, 단순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인지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썩어 없어질 게 분명한 하찮은 존재주제에 감히 영원한 생명, 불멸의 신의 경지를 논하고 마음대로 믿고 진리라며 떠드는 것은 정말로 우스운 일임에 분명하다.

추천수3
반대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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