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일수도 있지만, 보는 사람이 더 많은 이곳에 글을 씁니다.
저는 19살 여고생입니다.
그리고 저희 아빠는 요양병원 알콜병동에서 일하고 계시고,
본인만 모르고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알콜 중독자이십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술에 병든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이 술에 병든 환자라니.
저희 엄마께서 아빠와 연애시절 썼던 일기장을 읽어보면,
아빠는 그 때부터 이미 알콜 중독자셨습니다.
엄마가 결혼을 망설이실정도로요.
근데 정말 바보같이 엄마는 첫 연애상대이던 아빠를 버릴 수 없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가 생겨버렸습니다.
엄마는 연애시절이야 그러려니해도, 아이가 생겼고, 결혼도 하는데,
아빠의 술병이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지금 엄마아빠는 별거중이십니다.
저는 아빠가 할머니집으로 가셨던 날, 무척 행복했어요.
더이상 제가 독서실에 간 사이에 엄마가 아빠한테 맞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제가 기억하는 아빠의 최초의 폭행은 제가 4살때입니다.
어린 나이에 일어난 일이지만, 잊을수가 없어요.
티비가 넘어가고, 전화기가 박살났죠.
그리고 전화기에 맞은 엄마는 쓰러지셔서 옆집에서 부른 엠뷸런스에 실려가셨습니다.
크고 난 뒤에 알았는데, 그 날 저희 친할머니께선
"니 팔자려니 해라. 애들도 있는데 어쩌겠니." 하셨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때까지 저희 아빠는 직업이 없으셨습니다.
막노동꾼이셨죠. 일을 나가는 날보다 쉬는 날이 많으셨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 때는, 술을 먹지 않으면 저희와 놀아주셨고,
엄마한테 혼이 나면 와서 달래주시는 좋은 아빠셨습니다.
물론, 술에 취해 외박을 하시고 다음날 아침에 들어오는 날이 무척 잦으셨지만요.
아마 이때 바람도 피셨던 걸로 알고있습니다.
초등학생때였지만, 아빠의 외박과 친할머니의 성화, 엄마의 눈물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니까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 저희 엄마는 이름만 들으면 알 큰 보험회사 팀장직을 맡게되셨고,
아빠께서는 지금의 직장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스펙에 비한 아빠의 열등감에 폭력은 더 심해지셨습니다.
저희는 학원에 있다가, 독서실에 있다가도 엄마의 문자에 집에 달려가야했습니다.
아빠를 말리려는 동생이 아빠에게 목이 졸리는 일도 있었고,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반지낀 아빠의 주먹에 맞아 볼, 목, 가슴등에 상처를 입기도했습니다.
신고하려고, 신고하려고,
사진을 찍고, 아빠가 욕하는 모습을 녹음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보같은 엄마의
'그래도 너희 아빠다. 아빠가 그래도 너희한테 얼마나 잘하셨니."
하는 눈물만류에 그럴수도 없었습니다.
아빠를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딸인 저 뿐입니다.
남동생들의 말에는 주먹부터 휘두르는 분이 그래도 저는 예뻐하십니다.
원래 몸이 약하게 자란 아픈 손가락이어서 그런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그것마저 비참합니다.
엄마와 동생들은 맞고있는데 저만 멀쩡하다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밖에 있을 때 일이 터지는 날에는 마음이 찢어지는것 같아요.
동생들 대신 맞고싶은데, 그렇게 해주지도 않습니다.
누나가 되서는 할 수 있는게, 동생들을 향해 날아가는 주먹에 매달리는 것 밖에 없어요.
큰동생이 맞은 그 날. 엄마는 결심을 하셨습니다.
아빠와 이혼을 하시기로요.
그리고 그 날, 아빠는 엄마 앞에서 목을 매셨습니다.
동생들은 모르고 저만 아는 얘기에요.
쇼였죠. 엄마도 쇼라는 걸 아시지만,
저희가 받을 상처를 생각해서 아빠를 버릴수가 없으셨답니다.
잘하겠다는 아빠의 약속은 한달도 가지않았고,
엄마는 집을 나가셨습니다.
아빠는 집에 번개탄을 피우신채 또 자살시도를 하였고,
제가 발견해 불상사를 피했습니다.
그 날 집에 일찍 들어간 제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아빠께서도 동생들과 저를 버리는 것처럼 집을 나가셨고,
저와 동생들은 집에 쌀이 떨어져서, 담임선생님께 손을 벌려가며,
한달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고3, 고1, 중3 학생들에게 쥐어졌던건, 한달 생활비라는 명목의 20만원 뿐.
제가 학교를 다닌데 필요한 버스비만 해도 5만원.
학교 교재비만 해도 6만원이었습니다.
고3이라 방학때도 수업을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저는 등교를 포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고싶어도, 집을 나가고싶어도,
"누나 없었으면 난 진작 죽었을거야."
라고 말하는 동생들을 두고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달 조금 덜 되서 저는 스트레스성 위염과 간수치이상으로 응급실에 가고,
그 사실을 안 엄마가 저를 껴안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우셨습니다.
엄마는 독하게 마음을 먹으시고 할머니를 만나셨습니다.
애들 아빠를 아버님 어머님이 떠안으셨으면 한다고.
애들에게 상처주고싶지 않다고.
애들 아빠가 집에 없어야만 내가 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아빠도 그 의견에 동의했었고, 또 얼마간 행복했습니다.
근데 아빠가 시도때도 없이 집에 찾아옵니다.
술을 먹고 와서 엄마를 쫓아내기도 하고,
할머니가 오셔서 데려가기도 하고.
오늘은 저희 막내동생만 있는 시간에 집에와서
냉동실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 싱크대에 엎어놨습니다.
놀란 동생의 전화에 오늘도 야자를 빼고 집에 올 수 밖에 없었죠.
이제 너무 힘듭니다.
정말 힘든건 엄마란 걸 알지만,
그냥 제가 죽고싶습니다.
제가 죽음면 아빠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요?
제가 죽으면, 동생들을 더 귀하게 여기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