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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 그 후

나는 |2013.10.29 18:33
조회 40,417 |추천 9

25살때 였다. 다니던 학교 휴학하고 서울의 명문대학교(이름은 말 않겠다) 근처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여자가 술집 알바를 하면 추근 거리는 놈이 가끔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첫번째 알바하고 집까지의 동선, 알바 마치는 시간의 버스 운영을 고려하면 최적의 가게라서 선택했다. 그 호프집은 학교 앞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구석에 있고 인테리어도 형편없고 안주도 별거 없어 손님이 정말 없었다. 근데 한 무리의 학생들만은 일주일에 3번 정도씩은 꼭 왔다. 와서는 쥐포 하나시키고 500cc은 20잔정도 먹는 손님들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중 한명이 와서는 나보고 좋덴다. 술취해서.. 이상형이란다. 대꾸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6시 오픈하자 마자 이번엔 혼자 왔다. 정말 좋덴다. 자기 이런적 처음이란다. 워낙 그들의 대화를 많이 들었기에(손님이 이들 뿐인 적이 대부분이었다..) 막돼먹은 놈들은 아닌 것을 알았다. 이 남자는 얼굴이 나보다 더 하얗고 명문대 다니고 옷은 좋은 거 입고 극히 내성적인 성격..좋은 부모 만나 순탄하게 살아온 게 보였다. 남자다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로도 계속 왔다.. 오픈할때 한번 왔다 가고 8시쯤 그 그룹이랑 또 한번 오는 식이었다.

 

한달쯤 되었을때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 만나서 할게 뭐 있나.. 술마셨다.. 이 남자는 26살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여자 사귄적 없덴다. 집은 서초구였다. 정말 내가 이상형이렌다.. 사람은 괜찮은것 같았다. 그런데 어차피 이 사람과는 잘 안될 것 같았다. 부족함 없이 자라 아직 뭘 모르는 거지 그런 집에서 나랑 사귀면 그다음은 뭐..결혼이라도 할라구?

 

호프집이 팔리고 알바도 끝났다. 그런데 계속 만났다. 5개월쯤 됐을때 내 손을 잡더니 결혼하젠다.  어린 것..이 결혼 너네 집에서 뭐라실까 라고 했다. 부모님은 자신을 믿는덴다..그런데 어느날이었다. 전화통화하면서 사실 오늘 만났을때 누나가 나왔더랬다. 멀리서 날 봤단다. 괜찮다고 했덴다. 그리고 자기 부모님 만나젠다. 그제서야 난 내 얘기를 했다. 그동안 난 단 한번도 내 얘기를 한적이 없었다. 그냥 순수하고(그때까지 손만 잡을 정도) 나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을 아니까 만났지 결혼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내 집안은 아버지 누워있고 동생도 대학안가고 돈벌고 있고 난 그동안 등록금내고 학교 다녔던것 후회하고 있다고..이 와중에도 빚이 있다는 말은 안했다. 얘가 이런게 어떤건지 실감을 못하길래 낮에 한번 집에 데려갔다. 동네에 들어설때부터 한마디 못하고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26살이 되었을때 이 남자는 졸업하고 취업을 하였고 난 여전히 매장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취업하자마자 직장 선배 손에 이끌려 술집 여자와 잔 것을 알았다.  출근 3일째였다. 전화가 안되다가 9번째 만에 받았는데 목소리가 달랐다. 그리고 새벽 1시에 집앞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2시에 들어오는 그를 만났다. 평소 술마셨을 때와는 달랐다. 그 시간에 취해있지도 않았고 내 눈도 못쳐다 봤다. 이후 지지고 볶다가 용서하기로 했다. 이후로도 이 얘기는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6개월 후쯤 결혼하젠다..이번엔 반지도 준비해 끼워주었다. 그리고 부모님을 뵈었다. 첫만남에서 나도 모르게 연기를 했다. 난 밝고 명랑한 여자라고..며느리로 괜찮을 거라고.. 그리고 두번째 백화점에서 보기로 한 날 커피 마시며 얘기했다. 저 집안이 많이 어렵다고 하지만 좋은 아내, 엄마, 며느리가 되고 싶다고..너무 사랑한다고 했다. 정말로 사랑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머님은 얘기는 들었다고 했다. 얼마나 힘드냐고 하셨다. 아들이 널 많이 사랑한다. 아들은 날 한번도 실망시킨적 없고 이번에도 그렇다고 했다.

 

동생이 모은 돈과 내가 모은 돈 1,700만원으로 결혼 준비를 했다. 예단과 혼수 리스트라고 만들어서 신랑에게 보여줬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나한테 3,000만원을 주겠단다. 예단은 그걸로 하렌다. 그동안 모은 돈이란다. 신랑 이름으로된 시댁근처의 7억짜리 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재건축 대상이어서 많이 허름했지만 도배와 마루를 하니 신혼집 분위기가 났다. 나는 신혼첫날밤이 정말 첫날밤이었다. 그리고 허니문 베이비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결혼한지 3년째. 둘째를 가졌다. 이번엔 바라던 딸이다. 남편이 예전만큼 날 아끼지는 않지만 선천적으로 가정적인 사람이다. 바람 안피고 알뜰하다. 경제권은 내가 가지고 있고 처남 결혼에 대비해 돈 마련해 두란다. 시부모님은 좋은 분이었다. 살림, 육아 간섭은 있지만 맞는 말씀도 많다. 간간히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신랑한테 투덜거리고는 끝낼 수 있는 수준이다. 빚이 없고 연봉이 9천을 넘어 물질적으로 별로 부족함이 없다. 심지어 아줌마도 쓴다. 엄마 생전에 했던 일이다. 유일한 문제는 술 마시고 온날 가끔 내 머리카락을 쥐고 입으로 해달라, 뒤로 하자며 거칠게 하는 것이지만 내성적 성격의 반작용으로 인정하고 이미 익숙해 졌다. 이마저 요즘은 임신 중이라 안해도 된다.

 

앞으로 내 인생은 두 아이 건강히 키우며 남편 밥차려주며 살면된다. 큰 시련이 닥칠것도 없다. 유전병도 없고 튼튼한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허전하다. 20살 이후부터 내 인생을 정리하면 주구장창 알바하다가 우연히 조건 좋고 착한 남자 만나 결혼해서 아이 키우는게 전부다. 숨쉬는게 관성인거 같다. 너무나도 뻔한 내 앞으로의 인생이 답답하다. 아이와 남편을 위한 삶 말고 이제 내 삶은 영원히 없는 것 같다. 이런게 임신 우울증인가?? 첫째 때는 못느낀 이 공허함은 뭐일까?

추천수9
반대수49
베플ㄴㄴ|2013.10.30 09:32
감정이라곤 느껴지지않는 말투라 더 소름끼치네요 글쓴이 자신을 좀찾아봐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살지말고..그럼 감정도 살아날듯
베플aaa|2013.10.29 19:29
배가 불렀구만. 한국여자들은 해피해도 지 목을 지가 쪼아대는 재주가 있지. 나가서 매장알바나 뛰면서 헝그리정신, 삶으만족에 대해서 생각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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