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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껌 2

작두 |2013.11.07 16:51
조회 1,630 |추천 5

껌 [Ⅱ]






달다. 달다. 달다.

씹을수록 단 맛이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단 맛이 강해진다.

껌이 아니라 사탕을 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탕과는 달리 그 부피가 줄어들지 않는다.

실로 놀라운 껌이었다.

일터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 신기한 껌을 음미하느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언젠간 단물이 빠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각자의 턱만 바쁘게 움직였다.

대체 무엇으로 이런 껌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연신 감탄만을 내 뱉을 뿐이었다.

우리가 그나마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한 것은 일터에 도착해서 부터였다.



“아, 아. 와. 이거 정말. 미치겠네요, 이 껌. 대박이네.”



오주임이 말했다.

황홀감에 빠져있는 목소리였다.



“질겅, 질겅, 응. 이건 진짜. 질겅, 질겅, 와, 말을 못 하겠네. 질겅, 질겅.”



정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내 턱이 그것을 허락 하지 않는다.

내 몸 자체가 이미 껌에 푹 빠져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단물이 씹는 족족 흘러나온다.

미식가라고 자부하던 내가, 구멍가게에서 우연찮게 얻은 조그만 껌 따위에 매료될 줄이야.

괜한 위화감 때문에 이 껌을 끝내 거절했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대리님, 음, 음, 몇 개에요? 저는 열 두 개인데.”



아까 받은 껌의 개수를 묻는 모양이었다.

쥐고 있던 손을 펴 껌의 개수를 헤아린다.



“음, 열 두 개. 나도 열 두 개네.”



내 말과 동시에 오주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또 다시 서로가 침묵을 지켰다.

단지 일정한 리듬의 껌 씹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단 맛에 취하며 우리는 각자의 업무를 시작했다.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찌나 껌을 씹었는지 턱이 아파올 정도였다.

잠시 기지개를 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이라도 갔는지 오주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불현듯 껌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퉤!”



손바닥에 껌을 뱉었다.

그런데 뱉자마자, 껌을 달라고 아우성치듯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조금 있으니 현기증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가 점점 몸 전체에 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오한에, 발열 증상까지 오는 것 같았다.

결국 살펴보는 것을 포기하고, 황급히 뱉었던 껌을 다시 입에 넣었다.

이쯤 되자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혹시 마약이라도 들어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에는 오주임도 있었다.

내가 느낀 불안감을 오주임에게도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아 오주임, 이 껌....”



하지만 끝까지 말을 잇지는 못했다.

오주임과 함께 들어온 두 명도 뭔가 씹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주임, 너 설마... 껌 줬어?”



내 말에 오주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줬어요. 아까 전에 오부장님이랑, 박대리님한테도 줬답니다. 다 들 난리가 났어요. 하하.”



오주임과 함께 들어온 두 명은, 오주임의 입사 동기인 양주임과, 이주임이었다.

셋이서 자주 뭉쳐 다니는 편이었다.



“와, 이거 진짜 끝내줘요. 어떻게 이런 껌이 있을 수 있죠?”



방금 내게 말을 꺼낸 사람은 양주임이었다.

덩치가 아주 컸고,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오주임. 이 껌 혹시 뱉어봤어?”



내가 물었다.

나와 같은 증상을 겪었다면 그렇게까지 낙천적일 수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뇨. 아직 뱉은 적은 없었어요. 아, 삼킨 적은 있어요. 곧바로 새 껌을 입에 넣었지만.”



오주임이 말했다.

순간,

그 구멍가게에서 주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명심해야 돼. 절대 삼키면 안 된다.



“오주임! 아까 그 주인이 삼키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오주임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아~ 맞다. 그랬었죠, 하하. 뭐 그런데 별 일 있겠어요? 그래봐야 껌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왠지 심각하게 생각한 내가 바보인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거는 있어요. 씹다 보면 진짜 미친 듯이 삼켜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거 말이에요. 식도
를 넘어갈 때는 어떤 느낌일지, 위 안에서도 계속 단 맛이 생겨날지, 괜히 막 느껴보고 싶더라고요.”



마치 신앙 간증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오주임은 이 껌에 깊이 빠진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도 삼키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그 때 나를 막아준 것은 다름 아닌 미식가로서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니까 음식의 요구사항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라면은 절대 생 라면으로 먹지 않고, 게 요리의 껍질은 반드시 벗겨서 먹어야 한다.

그런 것처럼 껌은 씹어서 단물을 즐기는 음식일 뿐,

절대 삼켜서는 안 된다는 게 내 법칙이었다.



“그럼 몇 개나 남은거야?”



오주임에게 물었다.

여기 저기 뿌리고 다녔으니 이제 많이 줄어들었겠지.



“여섯 개 남았어요. 이건 다른 사람 안 주고 저만 먹으려고요. 히히.”



“어? 그런 게 어디 있어. 적어도 우리한테는 하나씩 더 줘야지!”



이주임이 말 했다.

비교적 덩치가 작고, 피부가 검은 친구였다.



“하는 거 봐서 줄게. 크큭.”



“알았어. 잘 할 테니까 하나만 줘. 나 방금 삼켰단 말이야!”



양주임이 애원하듯 말한다.

그러자 오주임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껌 하나를 그에게 건 낸다.



“아아아, 고마워 으읍, 질겅, 질겅, 질겅.”



껌을 받자마자 양주임이 게걸스럽게 씹기 시작한다.

산만한 덩치가 껌 하나에 집착하니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여전히 마음속에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지만 별 일 없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껌을 삼킬 마음은 없지만 말이다.



......



......



퇴근시간.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시계를 확인한다.



“아, 오주임. 먼저 올라갈 테니까, 이부장님 말 잘 듣고, 마무리 잘 해. 다음 주에 보자고.”



당일치기 출장이었기 때문에 저녁 기차를 타고 바로 서울로 가야했다.

같이 내려온 사람들 중 나만 그런 거였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3일이나 더 있다가 올라온다.

이것은 순전히 가위 바위 보에서 내가 진 까닭이었다.



“헤헤헤, 대리님 피곤하시겠어요. 내일 오전에 바로 출근 하셔야 할 텐데.”



오주임이 웃으며 얘기한다.



“얄밉기는, 하여튼 난 간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 대리님 잠깐만요.”



오주임이 나를 부른다.



“저, 껌 하나만 주고 가시면 안 돼요? 어느새 바닥이 나 버려서...”



“응? 그 많은 걸 벌써 다 씹었다고?”



“아 뭐, 제가 네 개 쯤 삼키고... 사람들 나눠주고 하니까 벌써 바닥 나 버렸어요. 지금 입 안에 있는 게
마지막이에요.”



나는 처음 씹었던 껌을 여태 씹고 있었는데 오주임은 벌써 껌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역시 미식가와 일반인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가볍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주머니에서 껌 한 개를 꺼냈다.



“혹시 말이야. 껌이 다 떨어진다고 새벽에 전화하거나 하지는 마. 나 오늘 엄청 피곤할 것 같으니까.”



말을 마치고 오주임에게 껌을 휙 던졌다.

오주임이 활짝 웃으며 그 껌을 받는다.



“예, 그럼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히히. 대리님 수고하셨슴다!”



껌 한 개에 저렇게 천진난만한 모습이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빨리 도착해도 밤 10시는 훌쩍 넘길 것 같았다.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주임과, 양주임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가을 공기가 물씬 느껴진다.

그리고 껌을 씹는 턱은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



......



“여보세요? 어 나야. 그래 지금 차 기다리고 있어. 은비는? 숙제는 다 했대? 그래, 어 바꿔줘.
음... 어, 은비니? 그래 아빠야. 숙제는 다 했니? 그래. 착하다 우리 딸.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치킨?
밤중에 기름진 거 먹으면 별로 안 좋은데. 아, 그래, 그래 알았다. 아빠가 치킨 사 갈게, 대신에 아빠
조금 늦게 들어가도 엄마랑 같이 기다리고 있어야 해. 그래그래, 우리 딸 아빠가 최고로 사랑한다.
아, 은비야 지금 기차왔다. 아빠 끊을게. 이따가 봐요~”



......



......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내다보는 창밖의 야경이 아름답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몸이 축 쳐지는 느낌이 든다.

아마 곧 잠이 들겠지.

서서히 눈꺼풀이 감겨온다.

그 순간,

불현듯 오늘 오후의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아줌마는 왜 자기의 팔을 껌이라고 한 걸까?’



‘그 할아버지는 왜 껌을 삼키지 말라고 한 걸까?’


......



'BBQ를 사 갈까, 교촌을 사 갈까.'



하지만 이내 내 마음은 딸에게 사 줄 치킨을 생각하고 있었다.

 

 

 

 

-출처 웃긴대학 건방진똥덩어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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