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뭔가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뉴스가 될만큼 장애인을 보는 시각은 편견적이다. 8일 오후 8시55분 방송된 SBS TV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통해 본 장애인 김민규씨의 스토리는 감동적이었다.
15세가 될 때까지는 걷지도 못했고 손가락을 쫙 펴지 못하고 물건을 잘 집지 못한 그는 158㎝에 57㎏의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다. 가장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그가 가장 비장애를 요구하는 보디빌더를 꿈꾼다.
화제의 주인공은 28세의 청년 김민규 씨. 경북 경산에 살고 있는 그는 극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주5일동안 매일 아령과 역기를 들어 올리고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김씨는 "장애인도 꿈을 갖고 노력을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나에게 뭐하러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렸던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 미래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때 사회복지사를 꿈꿨다.
사회복지를 위해서는 발로 뛰어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그가 그런 생활을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일단 몸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3년 전 처음으로 동네 헬스장에 가입했다.
1년을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헬스장 주인이 바뀌면서 그는 더이상 헬스장에 다닐 수 없었다.
헬스장에서 그의 등록을 받아주지 않았다.
사정은 다른 헬스장도 마찬가지. 안전 사고 보다 헬스장 이미지때문이었다.
김씨는 "화도 나고 오기도 생겼다"면서 "헬스장에서 운동을 못한다면 집에서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등을 뒤지며 헬스의 자세와 방법을 스스로 익혔고 집에 헬스기구를 비치해 홀로 1년여 운동을 해왔다.
물론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도 많았다.
뼈 마디마디, 근육 하나하나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일반인도 힘든 운동을 장애인인 그가 해내기란 결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운동과 함께 저지방 고단백의 규칙적인 식단으로 탄탄한 근육 만들기에 오늘도 매진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그의 건강 상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김씨는 "보디빌더 대회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158cm, 57kg의 뇌병변 1급 장애인 민규 씨다.
그는 7년째 보디빌더가 되기 위해 도전 중이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민규 씨는 몸이 불편하단 이유로 사회복지사 꿈까지 포기했다.
하지만 강해지기 위해 걷는 연습과 운동을 시작한 그는 장애인 최초 보디빌더로 세계대회에 출전하고자 하는 꿈을 위해 근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며 하루하루 무모한 도전을 계속한다.
<보디빌더를 꿈꾸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의 따끈한 감동일기>
몸 튼튼! 마음도 튼튼! 백만돌이 민규씨의 몸짱되기 프로젝트 시작!
몸짱 열풍, 웰빙 열풍이 휘몰아치는 대한민국!
이 모든 바람을 감싸 안을 훈훈한 바람이 분다~
그 주인공은 바로 보디빌더를 꿈꾸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 28살의 청년 김민규씨.
장애에도 불구하고 아령과 역기를 들어 올리고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를 한다는데...
근육과 뼈의 작은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한 1급 장애인인 그에게 가능한 일일까?
엄청난 고통, 이를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와 뜨거운 열정으로 빛나는 주인공.
그러나 그의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다는데...
하지만 불가능은 없다. 뇌성마비 장애인 최초의 보디빌더를 향한 외로운 도전!
집 안에 헬스기구를 마련하고 저지방-고단백의 규칙적인 식사로 탄탄한 근육 만들기에 돌입했다고..
장하다! 대한의 건아~ 민규씨의 꿈을 향한 옹골찬 도전~
158cm 에 57kg 의 뇌병변 1급 장애인 김민규 씨. ( 29세/ 뇌병변 1급) 그는 15세가 될 때까지 혼자 걷지도 못 했던 뇌병변 장애인이다.
그는 지금 보디빌더 대회 출전을 위해 매일같이 운동을 하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던 그는 한 때 사회복지사로 활동했었지만 불편한 신체 때문에 사회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그러던 그가 체력을 기르기 위해 4년 전 처음으로 헬스장에 가입했다.
1년을 열심히 다니던 그가 운동에 매력을 느끼고, 보디빌더를 꿈 꾸던 중 헬스장 주인이 바뀌면서 더 이상 헬스장에 다닐 수 없었다.
헬스장에서는 안전사고 등의 우려로 그의 등록을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보디빌더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인터넷 등을 뒤지며 헬스의 자세와 방법을 스스로 익히며 홀로 1년 여 동안 운동을 해왔다.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도 많았고, 뼈 마디 마디 근육 하나 하나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비장애인들도 힘든 운동을 장애인인 그가 해내기란 결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해온 그를 본 한 보디빌더 현역 선수로부터 그가 보디빌더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선수등록을 해주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이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지금까지처럼 집에서만 운동을 해서 얼마나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국내 최초의 뇌병변 장애 보디빌더를 꿈꾸며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있는 김민규 씨다
매일 자신의 운동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는 한 남자가 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담는 민규씨.
뇌병변 장애 1급인 그는 7년째 보디빌더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인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는 노력한 만큼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 민규씨의 스승이자, 형처럼 친하게 지내는 트레이너 배승수씨가 민규씨가 닮고 싶어하는 숀리씨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숀리씨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민규씨,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꿈으로 빚은 몸이 아름다운 민규씨! 그의 꿈을 향한 열정을 담아본다.
그는 7년 째 보디빌더가 되기 위해 도전 중인데...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15세까지 걷지 못했지만 강해지기 위해 걷는 연습과 운동을 시작한 그!
그의 꿈은 장애인 최초 보디빌더로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것!
근육을 만들기 위해 보통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민규씨에게 포기란 없다!
많은 네티즌과 주위 사람들의 응원에 힘 입어 하루하루 무모한 도전을 계속 하는데.. 우연한 기회로 나간 2011 미스터 충남 선발대회! 그의 눈물나는 도전기가 시작된다!
뇌성마비 장애인, 김민규씨
뇌성마비 1급 장애인 보디빌더 김민규(33)씨! 사회복지사가 꿈이었던 그는 약한 체력 때문에 1년만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고 그 때부터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헬스장에서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운동하다 다칠 수 있다며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민규씨!
독학으로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최악의 상황에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 2011년도에는 보디빌딩 대회에도 출전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어려운 환경을 넘어 세계 최초 뇌성마비 장애인 보디빌더를 꿈꾸는 김민규씨의 이야기를 지금 함께~
위 사진이 2007년 1월에 찍은 이두 사진입니다
2007년 1월에 삼두 근육
2013년도 사진입니다
이두 근육..
삼두 근육입니다.
제가 올리는 이유는 세계적인 장애인 보디빌더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것..
꿈을 잃어린 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의 대해 다시 1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꿈입니다
Mr. Olympia 무대에 나가는 것이 최종 꿈입니다.
일단 IFBB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IFBB프로가 되기 위해서는...여러가지 길이 있는데....쉽게 말하면 해당년도 각체급 세계1위는 되어야 합니다.
"Mr. Olympia" 출전자격을 얻는 시합은
1. 세계 보디빌딩선수권(미스터 유니버스) 우승
2. NPC USA 전체우승(전체우승이란 각체급별 1위가 모여 또 1위를 가림)
3. NPC 내셔널 각 체급우승(NPC USA는 미국전국대회이고 내셔널은 그보다 큰 대회임)
4. 팀유니버스대회 전체우승
5. 그 이외에 캐나다 독일 영국 호주같은 보디빌딩 강국에서 대회우승자에게 심판들의 상의하에 프로자격을 주고 있음.
이렇게 해서 IFBB프로가 되면...
보통 미들급이하의 선수들은 프로자격을 포기하거나 개인트레이너로 직종을 바꾸구요
라이트 헤비급 헤비급 슈퍼헤비급 통과선수들이 대부분 프로무대로 뛰어올라옵니다.
그 선수들도 체중을 엄청 불려야 합니다. 90키로정도로 헤비급선수로 뛰었지만 프로무대는 시즌체중이 110이상이 즐비하니까요
또 아이언맨초대전 헝가리초대전 샌프란시스코초대전 잉글랜드그랜드프릭스 등의 프로시합에서 3위안에 들거나, 아놀드클래식과 나이트 오브 챔피언 5위 이내에 선수 또는 마스터스 올림피아 1위(40세이상 프로선수들만이 참가할수 있는 대회)만이 올림피아 출전자격을 획득하게 됩니다
또 "스패셜초대" 로 출전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2002년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군터 슐리어캠프가 그런 예죠
또한 올림피아 출전인원수가 20명이상일 경우 해당년도 미스터 올림피아 10위이내 선수들은 그 다음년도 올림피아 자동출전자격이 주어지구요(그래서 숀레이나 로니콜먼 등은 다른시합에 안나오는 것임)
인원수가 적을때는 6위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노릴수 있는 것은 "스페셜초대" 이것뿐입니다
진정한 나의 꿈을 바꾸자 "Mr. Olympia" 본부에서 스페셜 초대 선수로 출전하는 것으로..
자력으로 출전 할려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왜냐 110kg때까지 늘려야 하니.. 이것은 꿈 깨고 스페셜 초대 선수로 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면 안 이루어 지겠나 싶습니다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노력 거듭한 노력 뿐입니다.
나는 이제 꿈이 하나 더 생겼다 "Mr. Olympia" 에서 선수로 오라고 할때까지 노력하는 것..
보디빌더 김민규 입니다.
세계적인 장애인 보디빌더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으로 기역
되었으면서 해서 랍니다
여러 사람들은 말 했죠.. "불가능한 꿈이니 포기하라" 고..
하지만 저는 제 꿈을 믿었습니다.
물론 어렵다는 것... 해서 운동 기간을 길게 잡고 있기에 일반인이
1~2년 만하면 된다고 하면 저는 10~20년 정도로 길게 잡고 있습니다.
근데 왜 저를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몸이 아직은 안 좋으니..
문제는 제 부모님까지 욕하는지 그러는 님은 몸이 저보다 좋으시냐 저보다는 좋겠죠 몸만 좋으면 뭐 합니까?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어야죠.
뇌성마비 1급 즉 뇌병변 장애일 경우는 1kg짜리 아령을 못 들어요
헬스장에서 덤벨로 8kg, 10kg 운동합니다. (발등은 몇번 찍었음)
그 만큼에 피나는 노력 통해 이루어낸 결과라고 보시는게 맞습니다.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장애인 보디빌더.. 의족을 찬 보디빌더와 휠체어를 탄 보디빌더 그 선수들처럼 제 꿈을 믿고 운동에만 매달리고 또 매달릴 것입니다.
색안경 제발 벗어주세요 다시 1번 부탁드립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초,중,고 애들은 애자라고 놀린다고 합니다
장애자에서 "장"자만 빼고 장애자에서 "자" 자가 무엇을 나타내는지아신다면 애자 라고 할 수 있을지.. 놈 (자)者를 사용했다네요 장애를 가진 놈.. 왜 우리에게만 놈이라고 부르냐고 해서 1988년 패널 올림픽 이후 장애인으로 바꿨습니다.
제가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된 이유는 저희 어머니께서 저를 임신하시고 얼마 안 되어서 집에 조그만한 화재가 났을때 저희 어머니께서 놀라셔서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경산시 서상동에서 어릴때 자라면서 땅끄지로 생활 했습니다.
어릴때부터 자전거를 탔던 것을 기역해요 세발 자전거.. 그 때만 해도 장애인의 대한 인식이 안 좋을 때라서 제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동네 꼬마들이 "야 저기 빙신 간다." "니 빙시제?" 이런 얘기를 했었고 어떤 애는 제 자전거를 밀어 넘어뜨리고 웃는 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남들 눈치를 보게 되는게 이 때부터였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3년을 늦게 입학한 이유가 제가 못 걸어서 였습니다
11살에 대구로 이사해서 (대명동 대구대) 부설 보건학교에 입학,
당시에는 어머니 손 잡고 겨우 걸을 정도 였으니..
제 장애도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악화 되는 형과 저처럼 진보하는 진보형이 있습니다
악화가 되면 결국 .. 제 초등학교 다닐때 동창과 선배의 임종을 보았습니다.
저도 나중에는 ... 그때는 그 때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저희 학교는 초 중 고까지 과정을 한 학교에서 다 배우는 특수학교였습니다.
초등부때는 반장을 많이 해서 통솔력도 있고 어디 나가서는 모범생 적인 모습(?) 이라고 하죠
문제는 4학년 때부터 왔습니다, 4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하면서 저희 어머니 속을 많이 아프게 했었습니다 이때부터 문제아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학부때부터 야구에 눈을 뜯게 되어서 야구 인생 제 인생의 2막을 열었습니다 이때 어깨랑 팔 운동을 하게 되면서 보디빌더 김민규의 탄생을 알리게 되었답니다. 변화구로 인정 받으면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고등부때는 보치아라는 뇌병변 장애인들만 경기로 전국무대 8강까지 올라갔었습니다.
(구슬치기랑 비슷한데 흰공 1개 파란색공 6개 빨강색공 6개데 흰공 가까이 붙이면 거리로 점수를 계산하는 방법인데 처내기 바리케이트 치기 공 수 방법)
중학부 2학년때강 3학년까지는 커브 한 구질만.. 그러던 중 3이였던 여름 방학때 삼성라이온즈 연습구장에 가서 투수 코치님께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서 투심 싱커랑 휭으로 휘는 슬라이더를 전수 받게 되면서 새로 태어나게 되었답니다
전수 받고 혼자 알아낸 구질이 직구 (1가지 포심; 고 2때 라이징; 고3; 체인지 업 3가지), 슬라이더 (종으로 떨어지는), 포크볼, 싱커, (너클볼이랑 너클 커브만 빼고 다 던짐)
그러다가 고3 1학기에는 양호실에서 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앉아서 공을 던지다가 보니 허리와 어깨 팔로만 공을 던지다가 보니 허리를 삐긋해서 너무 아프고 반장으로써도 힘들고 해서 울었습니다
대학은 미래대 사회복지과에서 저 없으면 웃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일화 교수님과 과 친구들 웃기는 사고를 쳤으니 말 다 했죠?
개그 콘서트에서 했던 생활 사투리 라는 코너에서 했는 것으로 웃겼습니다.
그 만큼 유머감각은 알아줘야 할 정도 였으니.. 대학 졸업할때쯤에 경기도 연천에서 일하러 오라고 했는데 못 갔습니다
3 8선 근처라서 위험해서
2004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몸만들기 시작.. 그리고 재탄생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장애인 시설 짓는다고 (그곳에서 나중에 먹고 일하자) 하셔서, 운동으로 체력을 먼저 만들자 라는 일념하에 헬스를 시작했었죠.
2년 정도 정말 열심히 몸 만들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2년을 운동하고 2007년 그 해 겨울 유난히 추워서 봄에 새로 다니자 이러고 있었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 헬스장 관장이 바꿔버리면서 안 받아주겠다는 것이였습니다.
안전사고 우려 때문이라고 하던데 자기 헬스장 이미지 나빠지는 게
겁나겠죠..?
이 보디빌딩이라는 게 묘한 재미가 있더라고요 헬스를 하면서 몸이 좋아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 재미에 빠져서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들은 좋은 소식이라고 해야겠죠..? 외국에 장애인 보디빌더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나두 해보자.." 이렇게 되어서 지금에 보디빌더 김민규가 있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보디빌더 김민규는 운동한지 7년만에 첫 대회인 2011 Mr. 충남 선발 대회에서 출전을 해서 특별상이지만 상도 받았습니다.
이 보디빌딩이 힘든 이유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시즌기와 비 시즌에 먹는 것들
시즌기에는 고구마와 닭가슴살과 보충제만으로 3~4개월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예를 들어 식단을 짜보겠습니다
다이어트 식으로 아침 고구마 2개 점심 고구마 1개 닭가슴살 1쪽 저녁 고구마 2개.. 이런식으로 가고 보충제 단백질만 든 보충제 운동후 잠들기전 2번 마시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면 일반 사람들은 하루면 물린다고 하실꺼예요 닭가슴살은 무염분..
비시즌기는 벌크업이라고 해서 근육량 늘리기(체중 늘리기)를 최대한 해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서 저 같은 경우는 소식으로 8끼 이상 먹고 운동은 무게 위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나 무릎에 무리가 갑니다.
2. 재정적
보충제 값이 장난 아니고 또 닭가슴이랑 고구마도..
(머니머니해도 머니가 최고..) 이말이 무슨 말인지는 아실꺼예요
3. 부상경력
장애를 떠나 허리 디스크 치료를 위해서 운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 3가지가 보디빌딩을 접하게 되면서 겪는 어려움 입니다
저와 같은 경우, 보디빌딩이라는 운동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 하기 위해서 시작은 그렇게 했던 것이 이제는 보디빌더가 되었고 세계적인 장애인 보디빌더가 될려고 노력중에 있습니다.
운동하는 시간은 모든 잡념 다 잊을 수 있어서 좋죠 장애인이라는 것도..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저의 도전은.. 이 도전에 끝무대(?)가 있죠 올림피아드(세계보디빌딩대회 1등한 선수들만 모아서 최고에 몸짱 가리는 대회) 우승.. <= 꿈을 이루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한 몸이니 해봐야죠
제가 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이룰 수 있다." 말대로 저는 죽기를 각오하고 운동에만 매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