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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솔선수범 친일 행각, 민족배신

가구다 |2008.08.25 23:30
조회 789 |추천 0

일반적으로 지배국의 식민지 민족에 대한 사상적 세뇌는 토착민의 민족적, 문화적 독자성을 멸시 내지 말살하는 것이 그 공통점이 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통치 정책을 소위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위한 전쟁 정책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 일을 위해 철저한 사상 통합을 진행하였다.

일제가 의도한 사상 통합의 정책을 조직적으로 추진한 사람은 제 7대 조선 총독 미나미(南次郞)였다. 그는 1936년 8월 조선의 총독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관동군 사령관이었었고 일본 정부 내 군국주의자 중의 하나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내선일체>를 강조하였는 바, 1938년 2월 22일 도지사 회의 중 말한 내용에서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한국인의 완전한 황국 신민화에 의한 내선일체를 한반도 지배의 근본으로 하고 그것에 의하여 한반도를 대륙 병점 기지화하여 아시아 침략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일제가 중일 전쟁을 일으킨 후에 그는 더욱 황민화의 실질적 집행을 위하여 광분하였다. 미나미(南次郞) 일명 <조선 통치 5대 지침>의 정강을 발표하였는 바, 이 지침은 국체명징, 내선일여, 교거진작(敎擧振作), 농공병진(農工倂進), 서정별신(庶政刷新) 등으로 일제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을 유도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실천 방법으로 신사 참배, 궁성요배(宮城遙拜), 국가 국기의 존중, 일본어의 보급 등을 요구하였다.

또한 일제는 1938년 7월 <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을 조직하여 황국 정신의 현양(顯陽), 내선일체의 완성, 전시 생활 혁신, 전시 경제 정책에 협력, 근로 보국, 생업 보국, 군인 원호 강화 등을 부르짖게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조직 강요에 1939년 9월 8일 장로교는 신의주 제 2 교회에서 국민 정신 총동원 장로회 연맹 결성식(궁성요배, 국가 봉창, 황국 신민 서사, 황군 장병 및 동양 평화를 위한 기복)을 갖고 선서를 하였다.

대체적으로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는 정부는 종교를 대함에 있어서 정책적 요소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ㄱ. 종교가 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종교로 하여금 기존하는 정부의 기본적 정책을 이론적으로 정당화시킨다.

 

ㄴ. 종교를 통해 그 정권의 정책을 지지하게 하려는 기능적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한다. 일제는 이러한 종교 정책을 통하여 한국의 프로테스탄트교를 교묘하게 이용하였다.

 

 

「활천」(성결교 신앙지) 지는 1939년 12월 <팔굉일우의 대원리>이란 사설에서 "팔굉일우의 대이상은 대일본제국의 건설 정신이요, 이상이다." 라고 정의한 후, 청일 전쟁, 러일 전쟁과 만주 사변을 이 사상을 사실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미나미 조선 총독이 강조하는 내선일체도 바로 이 정신을 고조하는 것으로서 이 정신이 황도 정신이요, 동시에 성경 정신이라고까지 극찬하였다.

1940년 2월 호 <황기(皇紀)이천육백 기념식년에 당하여>란 사설에서는 "우리는 황기이천육백년을 당하여 황조 황가의 성덕을 흠향(歆饗)하며 천황 폐하의 성수무강(聖壽無彊)을 봉축하는 동시에 더욱 조국 정신을 발양하며 황운부익(皇運扶翼)의 실을 거함으로써 국운 무한의 발전에 진할 것을 맹서하자!" 고 하였다.

「청년」(감리교 계통의 신앙지) 지는 윤치호의 <내선일체에 대한 사견>이란 글을 실었다. 이 내용은 "현재의 내선일체는 정치적, 법률적, 경제적으로는 가히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정신적인 내선일체는 아직 미흡한 바, 황국 신민 서사의 2조 '우리들은 합심하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 바친다.' 를 이루는 것이 시급하며 또 하나는 천황 폐하의 적자가 된 형제 의식을 갖고 서로 믿는 일이 필요하다." 라고 강조하였다.

「그리스도 신보」(장로교 신앙지) 지는 1937년 10월 12일 <프로테스탄트교인의 국가 봉사>라는 사설에서 "프로테스탄트교인은 여력이 다하도록 황실을 봉재하며 10,000분의 1이라도 황은에 봉답하며 국운을 유성하게 함이 의무이다." 라며 황운(皇運)을 부익(附益)하자고 했다.

1942년에 접어들면서 각 프로테스탄트 교파에서 발행하던 기관지들을 강제 폐간시키고 일제의 정책을 전시하 지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로서 <프로테스탄트교 신문>을 창간케 하였다. 동년 4월 18일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회의실에서 프로테스탄트교 신문 협의회 창간 제 1회 이사회가 열렸다. 창간 이사회는 총독부 경무국 이사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장, 동과 검열계 주임이 참석한 가운데 장로교에서 3명, 감리교에서 2명, 성결교에서 1명, 구세군(救世軍)에서 1명 등이 참가하여 1942년 4월 29일 창간호를 냈다. 창간된 신문의 강령에서 발행 취지와 목적을 열거하고 있는 바, 황민화적 내용으로 분류될 수 있는 내용들은,

 


1. 한반도 내 프로테스탄트교의 국민 총력 운동의 강화

2. 종교의 국민 정신 진흥과 국민 사상 계도

3. 필승 체제의 확립에 관한 계도

4. 내선일체 완성과 일본어 생활의 철저

 

 

등이다.

 

 

교회의 예배와 행사에서도 황국 신민화적 내용이 포함되어 가는 이질적 현상이 나타난다.

예배에서는 황실 융성을 위한 기복, 전승 기원 예배 등으로 이질적 내용으로, 행사에서는 주로 궁성요배, 황국 신민 서사 제창, 천황 폐하 만세, 그리고 시국 강연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또한 예배와 회의도 단축 또는 간소화 형태로 진행되었는 바, 제 36회 전북로회에서는 성탄절은 대정천황제일이므로 24일로 변경하여 간소한 축하 예배만 드릴 것이며, 매주 3번의 집회는 단축하여 당분간 1회만 할 것을 소속 교회들에게 제시하였다. 감리교회는 '교단 규칙 제 108조와 114조에 의한 상임 위원회는 총회를 대신하고 구성 임원회는 교단 회의로 하고, 금년 2월 개최하려던 정기 교단회 및 금년 4월에 개최할 정기 총회는 무기한 연기한다.' 고 발표하였고 예배 시간 단축 실시에 관한 이유를 "1시간이라도 더 노동 시간을 늘여 생산에 매진하기 위해서" 라고 밝히고 방법론으로 주일 밤에 모이는 예배를 1회로 단축하고 기타 예배는 그 교회의 사정에 따라하고 당국의 요청에 따라 시간을 변경하는 조치를 교회주관자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1907년 6월 20일에 발행된 「찬미가」는 15곡이 수록된 프로테스탄트교의 성가였다. 이 성가 중에는 애국 사상을 고취시킨다는 일제의 생각에 의해 3장의 성가가 있었는데, 1장 4절, 10장 2절, 그리고 14장이었다.

그 후, 1923년에 간행된 「청년 찬송」은 일하러 가세(남궁억), 금주가(임배세) 등이 실려 있었다. 1931년에는 각 교단이 성가 합동 문제를 논의한 결과 장로교, 감리교 두 교단에서 주관하여 「신정 성가」를 만들기로 하고 편집, 발행하였으나 감리교회에서만 사용하고 다른 교단에서는 기존의 성가를 보완하여 사용하였다.

중일 전쟁 이후, 황민화 현상이 시급해진 일제는 성가를 변형시키는 일에 착수하여 먼저 '일하러 가세' 와 '금주가' 를 부르는 것을 금지시켰고 신정 성가도 삭제와 가사를 바꾸게 하였다.

1943년 5월에 조선야소교장노회(朝鮮耶蘇敎長老會) 종교 교육부 주관으로 기존의 프로테스탄트교 성가를 전체적으로 개편하였는 바, 새로 개편하는 이유와 목적을 "복음이 전파된 지 반 세기를 넘어 서면서 대동아 공영권의 획기적 역사의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게 될 때, 본 성가에 대하여도 국체를 중심으로 한 재 검토의 시기에 이르렀다. 이러하기에 당국의 지도 하에 거의 반 년의 세월을 들여 본 성가에 있어도 재삼 검토를 하여 국체에 일치하도록 가사를 수정함은 물론, 특히 권두에 국가(國歌)와 유미유까바, 국경절(國慶節)에 부르는 노래, 국민 서사 등을 실어 특수한 집회 시마다 국민으로서의 필요한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라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은 상식적으로 그저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만 이루워졌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감리교의 황국 신민화를 위한 지도 노선은 「프로테스탄트교 조선 감리회 혁신 조항」에 잘 나타난다.

 


제 1. 사상 지도

① 신동아 건설과 내선일체의 원리를 철저히 인식케 할 일

② 프로테스탄트의 일가주의가 팔굉일우에서 구현됨을 철저히 인식케 할 일

③ 충군애국 정신을 철저히 인식케 할 일


제 2. 교학 진작

 

① 일본어 보급


제 3. 사회 교육

 

② 황도의양(黃道宜揚)

 


통리자(通理者) 정춘주가 각 교회 주관자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도,

 


1. 매월 8일 대동아 전쟁에 관한 봉재식을 거행할 것

2. 예배 시간을 노동 봉공에 지장을 주지 말 것

3. 애국 봉헌금 및 기타 국민의 의무 수행에 성의를 다할 것

 

 

등으로 교단 차원의 일로 협조를 요구했다.

장로교의 지도 노선도 「일본 프로테스탄트교 조선장 노교단 실천 요목」에서 잘 나타나는 바,

 


제 1. 국가에 봉공

① 대동아 전쟁의 목적 완달(完達)을 위하여 사상 완벽을 기할 것

② 전시 체제 하 국가적 요청에 청헌(請獻)할 것

③ 징병 의무 및 정신을 강조할 것

④ 통후봉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실시할 것

   ㄱ) 황군 상병 장병(皇軍傷病將兵) 및 가족 위문

   ㄴ) 군사 지원 사업

   ㄷ) 대대적인 국민 저축 실시

   ㄹ) 귀금속류 헌납

   ㅁ) 전시 노동 봉사

   ㅂ) 매월 일정액 국방 헌금 내기

   ㅅ) 신사 참배 및 하느님께 필승 기원 기도를 드림

 

 

등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지시하였다.

이상과 같이 황국 사상을 고취시켰던 일들은 주로 교단의 집행부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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