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아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며, 마냥...정훈과 함께 다녀 올때가 있다며, 집을 나선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이라 밤인데도 낮의 열기는 가시지 않은채 후끈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도시와는 다르게 산에서부터 내려오는 바람이 쉬원했다.
마당 가운데 피어놓은 모기불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올라,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반쯤 가리고 있다...
"야..왠지 기분이 이상해, 지금 산에서..수없이 많은 무언가가 수군거리는것 같아..뭔가 보이는거 없어?"
"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하지만 뭔가 느껴져...모두가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야,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존재들도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느낌은 그래......"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여름밤인데도 불구하고, 늘상 있어야 하는 풀벌레 울음소리도, 산새들의 밤잠 이루지 못한 울음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다. 다만, 무심히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들만 숨죽여 조용히 떨듯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모두가 무엇인가의 느낌을 가지고 있지만, 정확하게 아무것도 일어나지도 나타나지도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밖으로 나갔던 정훈과 어머니가 들어 왔다, 들어오자 마자 어머니는 서울에서 함께 내려온 무당과 방으로 들어 가셨다, 상의 할게 있다면서...들어가시며 영진도 불렀다...영진은 약간의 두려운듯한 낯 빛을 하고 뒤 따라 방으로 들어갔고,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정훈은 꼼짝도 하지 않은채 하늘 위의 달을 무심히 바라 보고만 있었다....
"정훈아....!!"
"................................................."
"왜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어머니랑 어딜 다녀 온거야?...., 왜 이렇게 안색이 안좋아...너 혹 울었어?.........."
"아니......!"
정훈은 여전히 하늘만 응시한채 짧은 대답을 하곤, 잠시 다녀올때가 있다며, 밖으로 쏜살같이 나가버렸다..
방에서는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은 내가 들어 갈 수 없다는걸 알뿐이다, 뭔가 내게는 하지 못할 말이 있어 나만 따로 부르지 않은것일꺼라 생각하며, 정훈이 나가버린 대문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대문 아래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것 같았다. 그래서 대문으로 나가 밖을 둘러 보았지만, 그 어디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언덕 위쪽 저수지 부근에서 스산한 바람만 불어 올뿐이었다...
바람이 그리 많이 부는것도 아닌데, 저수지의 물은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하얗게 부서지며, 지금이라도 덮칠듯 말이다...
저수지 한부근에서 물고기가 튀어 올랐는지 풍덩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일었다...물에 비친 달이 세상을 온통 밝히듯 영롱하기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머니가 말씀 하신 때는 언제인지, 그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것인지 좀처럼 알수가 없었다...
순간 누군가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갈대숲 안쪽에서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자를 본듯하다...
"거기 누구세요? 누가 있는건가요??"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점점 가까이로 다가 갔다. 거의 그 사람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있는 위치만큼 오자...갑자기....하늘에 떠 있던 달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서서히 어두워져 가더니 이내 달빛은 사라지고, 사방은 어두컴컴하게 변해버렸다....바로 앞에 있는 사물조차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누군가가..나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아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느낌은 낯설지가 않았다...어디론가 나를 끌고 가는듯 했다. 난 낯설지 않은 느낌이라 반항하지 않은채, 끄는대로 이끌려 갔다. 그리 많이 자리를 옮긴것 같지 않았다......
사방이 밝아왔다,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눈이 부셔서.....눈을 감고 있는 나에게 나직하게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물소리였다, 수도꼭지에서 졸졸졸....새는듯한 물소리가 아니라....파도의 거친 숨소리를 머금은듯.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의 소리였다...눈을 뜨자....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파도는 나를 집어 삼켰다.....
눈을 꼭..감았다...팔과다리를 허우적대기 시작했다...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지금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것인지, 아님 맴돌고만 있는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몸에 힘을 빼자'
그러면 수면위로 떠 오를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몸에 힘을 빼자 서서히 몸이 수면위로 떠 오를는듯했다..안도의 한숨이 나올려는찰나..무엇인가가 내 발목을 잡았다. 아니 발목을 잡은것이 아니라 이미 내 발목을 휘어감고 있다가, 내 몸이 떠오르자 더 이상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것 같았다...
눈을 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눈이 떠지지가 않았다, 마치 눈에 무거운 쇠고랑을 차고있기라도 한듯 좀처럼 눈꺼플이 벌어지지가 않았다...그러는 순간에도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무엇인가는 날 놓아주지 않았다..
얼마나 허우적였을까? 파도도 잔잔해진것 같고, 점점 내 몸의 힘도 빠지는듯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 눈이 떠졌다....
.......................................................................................................................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정말일까? 정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것일까? 이 모든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하는것일까?'
정훈은 집을 빠져나와 사찰로 올라가며,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다.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 상태라 그랬는지, 아니면, 무엇엔가 홀린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사찰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길은 정훈이 기도를 했던 토굴로 가는것 같았다...아니다, 그 길도 아니었다. 난생처음 와보는 길이었다...왠마해선 이곳의 지리를 파악하고 있는 정훈에게도 너무도 낯선 길이었다...
얼마 정도 그 길을 따라 걷다보니 아담한 마을이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였다..여느 마을들과 다르지 않게 작은 마을이긴 했으나, 풍겨져 나오는 기운이 좋은곳이었다...
발길을 돌려 다시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 온 길을 돌아 서는 순간, 정훈은 몸은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큼 떨어지는것일까. 무엇엔가 걸려 넘어졌다. 일어나려 하는데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 쓸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일까? 겨우 정신을 추스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그리고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정훈이 떨어진듯한 언덕은 보이지 않았다. 정훈이 서 있는곳은 마을의 초입인것 같았다.
"저리 비켜요...좀 지나가게....."
초입을 지나 마을을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들을 뒤로 하고 마을로 들어선 정훈의 눈에는 마을의 처참한 모습이 들어왔다..
여기 저기 세간살이들이 널려져 있고, 급하게 마을을 빠져나가는듯 서두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그 중에 정훈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을 불러 세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정훈을 이상하다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조금 있음 여기는 저수지로 바뀐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했지만, 나라에서 정한 일이라 어쩔 수 없으니 다들 이주하라고 했다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갔고, 남은 사람들은 오늘에서야 이주를 하는데 왜 이 마을로 들어 온거요..혹 나라에서 나온 사람이요?"
"아...네...그런건 아니고...알겠습니다..."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운 정훈은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 일단 돌아왔던 곳으로 발을 돌렸다...발을 돌리자마자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환한 대낮이었는데 순간 어두운 밤이되어 버렸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리고 언덕위에서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린 우리 마을을 절대포기 하지 못해, 차라리 이곳에 묻힐테야..."
"안돼요..안돼...어서 나와요!!, 곧 물이 들이 닥칠텐데 어쩌나..어서들 나와요...."
언덕 위에서 이미 마을을 빠져 나간 사람들이 애타게 아직 마을을 빠져나가지 않은 사람들을 외쳐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을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각오를 한듯 마을 어귀에 모여 서서 손에는 횃불을 치켜들고, 굳은 자세로 서 있었다...그 사람들 틈바구니에는 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보이는 젊은 사람도 몇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 볼 겨를도 없이, 세찬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마을 한쪽 구석에서부터 거센 바람의 소리가 이내 거센 파도 소리로 바뀌면서 몰아치기 시작했다, 비명 한번 지를 시간도 없이 거센 파도는 정훈을 덮쳐왔고, 마지막으로 정훈에 눈에 들어 온 사람들의 모습은 끈에 묶여 파도를 헤쳐 나오지 못한채...점점...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