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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추적자 1

작두 |2013.11.25 11:04
조회 2,173 |추천 5
해가 어스름히 지는 초저녁 무럽, 아까부터 계속 아파트 주위를 서성거리던 한 남자가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땅에다 비벼 끈 후에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음침해보이는 뒷모습에 비해, 얼굴 표정은 금방이라도 선물을 받은 듯한 어린아이의 들뜬 표정을 짓던
그 남자는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춰서자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 남자는 연신 701호를 중얼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그 남자는 701호의 문 앞에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초인종을 눌렀다.


정적...


고개를 갸우뚱한 그 남자는 다시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지속되는 정적..


남자는 이내 작은 욕지거리를 입으로 내뱉은 후에 문고리에 걸려있는 우유함을 열어보았다.
마치 701호가 자기의 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열쇠가 거기에 있으리라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순간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남자는 우유함을 거칠게 빼내고서는 아래위로 탈탈 털어보기도 하고
고개를 내밀어 우유함 안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고는 우유함을 바닥에 내팽겨치고는 씩씩거리는 숨을 쉬어보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참 701호를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철커덕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서는 남자.


문은 열려있었다.


남자는 문 앞으로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의 후각을 자극하는 역한 피비린내..
그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진다.
남자는 주위를 다시 한번 살피고는 조심스레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방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거실은 온통 피칠갑을 한 시체들의 향연이었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집에는 가장을 비롯한
아내와 아들, 그리고 딸 두명,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고있었다. 물론 지금은 '살아있는' 식구는 없는 듯 했다.

남자는 설마 또 당한건가, 라고 중얼거리며 양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는 자신의 가슴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어둑어둑해지는 거실 사이로 한줄기 섬광이 눈부시게 빛났다.

남자는 자신이 꺼낸 날카로운 무언가를 가장 가까이에 널부러져있는 남자의 시체에 푹 꽂아 넣었다.


-이거 완전 쓰레기자식 아니야..?


남자의 귀에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 자신을 현장에서 검거한 경찰이 남자에게 내뱉었던 말이었다.


그 당시 남자의 나이는 9살이었다.


좋지 않은 추억이 떠오른 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저은 후에 시체에 꽂았던 칼을 거칠게 쑥 빼들고는
널부러져 있던 남자의 시체를 발로 세게 차버렸다.
발에 닿는 딱딱한 시체의 느낌이 여간 기분나쁜게 아니었다.

남자는 조금 뒤에서 공포에 찌든 눈으로 무언가를 응시하며 죽어간 여자의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남자는 아까와 같은 모션으로 그 여자의 배에 칼을 꽂아넣었지만, 또다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거칠게 침을 퉤! 뱉고는 칼을 뽑아들었다.


-이거 완전 쓰레기 자식 아니야?


그가 12살이 될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였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형사 미성년자였기때문에 소년원에 송치되는 것으로 살인사건의 죄형을 마무리지었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아내로 보이는 시체의 다리 쪽에 널부러져있던 두 딸의 시체로 고개를 돌렸다.
두 딸의 시체는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었는데 속옷과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고1과 고3...발육이 모두 끝난 숫처녀들의 시체에서는 아직까지도 색기가 품어져나왔다.

남자는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 살인도 허탕으로 돌아갔다는 한심함과
자신의 작품이 아닌 거실의 상황, 그리고 비릿한 피비린내때문에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여기저기 칼을 쑤셔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이거 완전 쓰레기 자식 아니야?


그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동네 처녀들을 협박하여 수차례 강간 절도를 하다가 걸렸을 때,
그를 취조하던 경찰이 그에게 던진 말이었다.

남자는 죽은 시체따위가 산 사람의 감촉을 느끼게 해줄리가 없잖아.라고 뇌까리며 시체의 배를 휙
긋고 자리를 나섰다.

거실을 나서려던 남자의 발치에 핸드폰이 차였다. 남자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는 핸드폰을 열더니 통화목록 버튼을 눌렀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
통화시간 : 5시간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자는 핸드폰과 널부러져있던 가장으로 보이는 남성의 시체를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가장으로 보이는 남성은 자신의 배에 칼을 꽂은 채로 쓰러져있었다. 칼을 쥔 손의 반대쪽 손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는지 둥글게 말린 모양이었다. 남자는 슬그머니 다가가 핸드폰을 시체의 손에 쥐어주었다.
맞춤양복을 한 것 처럼 딱 들어 맞았다.

남자는 자신이 들쑤시고 다녔던 아내와 두 딸, 그리고 건드리지 않은 아들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모두 목 언저리에 길다란 칼자국이 나 있었다. 남자는 다시한번 가장으로 보이는 남성의 손에 쥐어진 칼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무언가가 기분이 나쁜 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더니 이내 거실에 있던 TV를 켰다.

마침 TV에서는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달 전 서울시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행각이 이번엔 화성시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가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자신의 가족을 차례로 살해한 후에 자살을 했다고 하

는데요. 삼엄한 경찰의 방어와 멀리서도 보이는 붉은 빛 벽지는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남자는 TV를 거칠게 끄고는 브라운관을 주먹으로 쳤다. 무언가가 맘에 안드는지 연신 한숨질이다.
남자는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와 가족으로 추정되는 시체들...

남자는 벌써 3번째 자신의 사냥감이 누군가에 의해 빼았겼다는 느낌에 치를 떨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서 아까 자신이 쥐어주었던 핸드폰을 거칠게 빼들고는 다시한번 통화목록을 쳐다보았다.









"이거 완전 쓰레기자식 아니야..?"


남자는 핸드폰을 향해 이죽거리고는 핸드폰을 바닥에 거칠게 집어던지고 문을 나섰다.




"으음.....아침인가..."

발코니를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남자의 얼굴에 쏟아진다.
아침의 상쾌한 기운이 그의 방 안 곳곳에 퍼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저녁이다.
내리쬐는 햇살에 일어날 법도 하건만 남자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만 했다.

"지겨운 하루의 시작이군.."

이윽고 남자는 주섬주섬 이불을 모으더니 옆으로 내팽개친다. 몇달을 빨지 않았는지 이불에서는
뽀얗게 먼지가 일어난다. 햇살을 받은 먼지들이 여간 흩뿌연게 아니었다.

남자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향하는 내내 그는 깎지않은 손톱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긁어대었다.

"하암~"

그가 길게 하품을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냄새가 역겨웠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코를 싸쥔다.


화장실에 도착한 그는 수도꼭지를 돌려서 물을 세차게 틀어놓는다.
그 후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물을 받고, 얼굴에 뿌린다.

"아, 미친!"

차가운 물이 그의 얼굴에 닿자마자 그는 불쾌하단 듯이 수도꼭지를 거칠게 돌린다.
수도꼭지를 최대한 왼쪽으로 틀었으니 따듯한 물이 나올법도 하지만 수도꼭지는 요실금에 걸린 마냥
쪼르르 몇개의 물방울이 흐를 뿐이다.

"또 끊겼나..이 놈의 아파트는 걸핏하면 수도세를 걷어 가는거 같아..젠장.."

남자는 어쩔수 없이 차가운 물을 틀고 세수를 한다. 손 끝에 살짝 물을 뭍혀서 얼굴을 비벼대는 것이
고양이 세수가 따로 없다.

간단히 세수를 마친 남자는 칫솔을 꺼내든다. 칫솔의 솔은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졌고, 색깔은 누렇다.
이쯤되면 칫솔을 하나 바꿀법도 한데 그는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벌써 2년 째 같은 칫솔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치약을 길게 쭈욱 뽑는다. 그리고 양치를 시작한다.


위로 한번, 아래로 한번, 양 옆으로 한번. 혀를 앞뒤로 문지른 후에 전체적으로 한번 휙 훑는다.
그리고는 다시 차가운 물을 틀고 입안 가득 물을 머금는다.

"퉤!"


정말 간단한 세면이 아닐수 없다.


세면을 마친 남자는 수건을 목에 두른 후에 거실로 향한다. 거실에는 어제 먹은 피자조각이 널부러져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피자 조각을 집어든 후 TV를 켠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벌어졌던 일가족 연쇄 자살사건이 또다시 벌어졌습니다.
두달 째 벌써 세번째 의문의 사건이 벌어지자 경찰들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가해자이자 가장인 정 모씨는 자신의 아내와 두 딸, 아들을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저번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의 가해자인 정 모씨의 핸드폰에는 알 수 없는 번호와의 통화 목록이
남겨져 있어서 의문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경찰 측에서는...』



남자는 거칠게 TV를 끈 후에 리모콘을 내동댕이 쳤다.

"빌어먹을 쓰레기같은 새끼."

남자는 욕지거리를 크게 내뱉은 후에 피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나 피자가 딱딱한 것을 알아 챘는지
입에 물었던 피자를 제와한 조각을 피자판에 던져놓았다.

남자는 싱크대에 놓여있던 큼지막한 식칼을 바라보았다. 이내 남자는 식칼을 향해 걸어갔다. 남자의 입은
연신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이렇게, 요렇게, 휙휙!"

식칼을 집어든 남자는 허공에 식칼을 휘둘러대며 실없이 웃어제꼈다. 그러나 곧장 뭐가 심통이 났는지
식칼을 싱크대에 거칠게 던진 후에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쾅 닫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드르렁 드르렁"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코고는 소리가 온 집안에 메아리쳤다.




#




남자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저녁 11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그는 주섬주섬 일어나 머리를 매만지고는
덥수룩한 코트를 집어들고 집 밖을 나섰다. 4월이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꽤 쌀쌀했다.

남자는 연신 자신의 팔을 비비적대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다름아닌 편의점.

코를 훌쩍대며 남자가 편의점으로 들어서자마자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를 향해 호통을 친다.
귀를 후비며 듣는 둥 마는 둥하는 남자.
그를 보며 사장은 혀를 끌끌 차며 남자의 유니폼과 이름표를 던져주고는 편의점을 나섰다.

"돼지새끼가 시끄럽게.."

편의점을 나서는 사장의 뒷통수에 살짝 감자를 먹인 그는 유니폼을 착용하고 이름표를 가슴팍에 달았다.

『이 은호』

남자는 카운터에 앉아서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온통 '일가족 연쇄 자살 사건'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남자는 또다시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인터넷 창을 거칠게 끄고 노래를 틀어놓았다.

시간은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쯤 올때도 됐는데..."

남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연신 편의점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12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라 바깥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지만 남자는 마치 누가 곧장이라도 들어올 것 처럼 목을 빼고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잠시 후 파리한 여인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남자의 우렁찬 인사를 들은체도 하지않고 물건을 고르러 가버리는 여자.
남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여자의 안색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딘가가 아파보였다. 짙은 다크서클에 홀쭉한 볼. 하얗게 질린 안색에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매..

하지만 그녀를 가장 구슬프게 만드는 것은 삶의 의욕을 찾아볼 수 없는 표정.

이윽고 여자는 '코카콜라'를 집어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얼만가요."

"400원이요~"

"저기 앞에 편의점은 1200원이던데.."

"세일입니다~하핫."

여자는 이내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400원을 두고는 편의점을 나섰다.
남자는 뭐가그리 좋은지 그녀의 뒤꽁무니를 쳐다보고있었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자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800원을 꺼내 그녀가 준 400원과 함께 계산대에 넣었다.

잠시 뒤, 편의점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남자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안녕하십니까."

음산한 목소리가 인사를 건네자 남자는 '역시나 또 왔구만.'하는 눈치로 인사를 대충 받았다.
아까와는 태도가 전혀 딴판이었다.

이내 편의점으로 건장한 사내 3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하나같이 목에는 두꺼운 펜던트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십자가에 뱀이 또아리를 틀고있는 형상을 한 그 펜던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음산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얼만가요?"

"1200원이요."

건장한 사내 3명은 '코카콜라'를 집어들고는 계산을 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은호라는 이름의 남자는 아까와는 딴판으로 그들에게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긴 정적이 흐르자 은호의 고개는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고도 또 졸음이 쏟아지는 은호였다.

"역시..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도무지 버틸수가 없다니까.."

소름끼치는 말을 표정하나 안바꾸고 내뱉는 은호.
이내 그의 고개는 실이 끊어진 병정인형처럼 힘없이 늘어졌다.

그의 고개를 지탱하던 카운터의 앞 쪽 바닥에 떨어져있던 전단지가 바람에 휘날렸다.

『지옥 불에 떨어져야 하는 악마는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
사탄과 그의 12사도를 영접하라! -사도 진리회- 』

바람에 흩날리던 그 전단지는 편의점의 문이 열리는 기세에 못이겨 바깥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흐아암~ 어서오십시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은호가 엉겁결에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이마에 찍혀있는, 카운터에 눌린 자국이 방금 흘러나온 피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암~어서오십시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은호의 눈은 손님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제대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가슴팍에서
흔들리고 있는 무언가 뿐이었다.

은호는 눈을 비비적대며 거나하게 하품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입을 쓰윽 닦는다. 옷소매에 침이 흥건하게
묻어나오자 은호는 살짝 놀라며 자신의 얼굴을 지탱하고 있던 카운터를 바라본다.

"이런..또 침을 흘렸네.."

주위를 살피던 은호는 슬그머니 옷소매로 침을 닦는다.

"여기요."

화들짝 놀라는 은호.

손님은 거무튀튀한 장갑을 낀 손으로 '코카콜라'를 내밀었다. 은호는 실례라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허겁지겁 계산을 해준다. 손님의 목에 걸려있던 무언가를 확인할 여력조차 없었다.

"감사합니다."

손님은 계산된 '코카콜라'를 받아들고는 휑하니 걸음을 옮긴다. 은호는 뭐 저리 기분나쁜 사람이 다있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날씨가 춥다지만 거무튀튀한 장갑과 얼굴을 다가리는 목도리가 여간 기분이 나쁜게 아니었다.

손님의 뒷모습을 째려보던 은호가 다시한번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은호의 후각이 그의 대뇌피질을 각성시킨다.

'피냄새다.'

순간 은호는 시야가 돌아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은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님도 없을 뿐더러 지나가는 보행자도 적은 안성맞춤의 시간.
은호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간다. 아까까지만해도 기분나빠보이던 손님의 체취가 향기롭게 느껴진다.

'손가락이라도 다친건가.'

은호는 손님에게서 풍겼던 혈향의 근원지를 찾으려 잠시 머리를 갸웃했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생각으로 이내 자신의 기억 속에서 손님의 체취를 지워버린다.
은호는 나올 때 가져나왔던 두꺼운 코트를 몸에 걸친 후에 편의점 문에 딱 붙어서 주위를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말 안성맞춤이다.

"자...파티를 즐겨볼까..?"

은호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의 두꺼운 코트의 안쪽에선 길쭉한 무언가가 형광등을 받아 반짝였다.
은호는 오늘하루 자신이 일어나서 한 행동 중, 가장 민첩하고 영민한 동작으로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편의점 장사 따위야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편의점을 나온 은호는 이내 몇 번이나 탐색한 듯한 걸음걸이로
아파트 사이사이를 헤쳐나갔다.

은호의 걸음이 멈춘 그 곳에는 왠 허름한 빌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주위는 고요했다. 짙게 깔린 어둠과
허물어질 듯한 빌라의 모습은 은호의 충동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었다.

"Party Time!"

은호는 빠른 발걸음으로 빌라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의 행동에 비추어본다면 5층 계단을
오르는 일은 에베레스트 등정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지금의 은호는 히말라야 14좌마저도
완등해버릴 만큼 박력있었다.



5층의 복도에 올라선 은호의 표정이 순간 싸늘해진다. 불길한 생각이 은호의 뇌리를 스쳤는지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코를 킁킁댄다. 은호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입술이 실룩실룩댄다. 혀를 날름거린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은호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슴팍에 숨겨놓았던 길쭉한 무언가를 꺼내든다.
달의 그림자를 받아 반짝이는 식칼이 어둠마저 가를만큼 시리다.
은호는 빠르게, 그러나 소리없이 5층의 복도 끝으로 이동한다.

은호는 5층 복도 끝에 위치한 집의 문 앞에 가만히 귀를 대어본다. 그러나 이내 귀를 떼고 말았다.
코 끝을 자극하는 혈향이 은호의 신경을 더욱 건드렸다.

"신발"

은호는 문을 확 열어제낀다.
풍겨오는 피의 음습함.

은호는 주위를 살필 새도 없이 문을 닫고는 거실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고요한 대기 속에서 은호의 숨소리만이 요란하다.

거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3명의 가족들에게서 흘러나온 피는 거실을 홍해로 만들어버린지 오래였다.
커튼마다 튀어있는 피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에 실려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은호는 가장으로 보이는 남성의 시체를 거칠게 돌렸다.
남성의 배에는 큼지막한 식칼이 꽂혀있었는데 칼날과 손잡이의 방향으로 보아 자신이 찌른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그런 것을 모두 제외하더라도 웃고 있는 남성의 표정이 모든 것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은호는 남성의 시체를 거칠게 밀친 후에 근처에 있는 아내와 아들의 시체로 향했다.
역시나 그들은 무언가를 째려보는 자세로 고통에 울부짖던 모습 그대로 잠들어있다.

"신발."

은호는 가지고 있던 식칼을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벌써 네번째.
은호의 파티는 왠지모르게 틀어지고 있었다.
은호는 자신의 먹잇감을 가로챔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배아픈 것은 '예술성의 차이'.
은호는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자신의 파티를 방해하는 누군가는 사람을 '죽게 만든다'.
타의에 의한 살해는 아무리 예술적이고 아무리 역동적이라도 찝찝함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먹잇감을 빼앗는 녀석의 살해방식에는 찝찝함이 없다. 오히려 포근함마저 느껴진다.

9살 때 처음 사람을 죽인 이후, 그 누구보다 천재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의 예술 활동이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처참히 짓이겨지고 있다는 사실에 은호는 치를 떨었다.

은호는 다시한번 거실의 상황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그 예술적인 완성도에 또한번 좌절감을 느낀다.
은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완전한 패배라고 느꼈음이 분명하다.

'알아내고 싶다!'

은호의 머릿 속은 온통 녀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존경심? 경외심? 아니. 그런 것들은 초월한지 오래.
그저 자신보다 뛰어난 살인술을 가진 녀석의 낯짝을 갈겨주고싶다는, 그래서 자신이 우위에 서고싶다는
원초적인 본능.

'알아내고 싶다!'

은호가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녀석도 사람이라면 분명 어디엔가는 증거를 남겼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은호는 자신이 던져놓은 칼을 집어든 후에 시체를 비롯한 방안 구석구석을 들쑤셔보았다.
그러나 몇 분 뒤, 아무 소득이 없었는지 소파를 거칠게 발로 차버리는 은호.

은호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문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은호가 들어왔다.

"여기서는 먼저..."

은호는 갑자기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비호와 같이 남자의 시체가 뉘여져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푹!"

사람을 찌르는 시늉.

"그 뒤에.."

은호는 아내와 아들이 누워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내와 아들은 놀란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은호는 번개와 같이 달려나가 아들을 제압한다.

"푹! 푹!"

정확하게 목을 후벼판다. 비명이 새어나올 틈이 없다. 깔끔하다.

"마지막으로.."

은호는 아내가 서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목이 막힌 채
꺽꺽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은호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걸음을 옮긴다. 겁에 질린 눈망울이 토끼와 같아 더욱더 욕구를 자극시킨다.
순간 은호가 앞발을 크게 내딛는다. 놀란 아내는 뒤에 있는 소파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푹!푹!푹!"

목을 한번, 복부를 두번.

"푹!"

마지막으로 복부에 한번 더.

그녀는 끽소리 한번 못해본 채 눈을 부릅뜨고 인생을 마감했으리라.

은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미 열려져있는 베란다의 창을 닫는다.
그리고는 다시 열어제낀다.

한바탕 파티로 인한 혈향이 바람을 타고 이곳 저곳으로 퍼진다. 피를 머금은 커텐은 오로라가 비추는 듯
너울거린다.

"그래, 이거야. 이게 바로 예술이거든..."

은호는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녀석의 잔상을 없애기라도 할 듯이 크게 웃는다.
그러나 얼마 못가 자리에 주저앉아버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녀석의 비웃음이 머릿속에서 가시지를 않는다.
자신이 몸을 놀려서 했던 이 행동들을...그 녀석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시행했으리라..
은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잡아내고 말겠어.."

은호는 벌러덩 누워버린다. 몸을 눕히니 시선 역시 아래로 내리깔리는 듯 했다.

"어라..?"

일어서있을 때는 보이지않았던 소파의 밑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소파의 어두운 밑부분에서 흘러나오는 파란색 LED불빛 또한 은호의 시신경을 자극했다.
은호는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아챘다.

"또 핸드폰...?"

은호는 조심스럽게 폰을 열어보았다.

『발신번호 표시제한
통화시간 : 4시간 』

"이런.."

은호는 또다시 끓어오르는 열등감에 못이겨 핸드폰을 번쩍 들어올린다.
그러나 이내 이질감을 느끼고는 다시 폰을 자신의 눈 앞에 가져다 놓는다.

그는 핸드폰의 버튼을 눌러 통화목록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었다.
통화목록에서 나오자마자 화면 가득히 메시지가 떠오른다

『통화 녹음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은호는 떨리는 손으로 OK버튼을 누른다.

녹음된 통화의 음질은 굉장히 나빴고, 중간중간의 잡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은호는 한껏 표정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대었다.

『지지직.........고 싶나..?......내가 뭘 어떻게.........간단하다........
.......래서 어쩌라......그냥 잠자코 들어.......옥이다....기독교의........
수는 성경에서......2500명......학살......사탄......한명도 죽이지......
결국......불교의 윤회.......어쩌면 처음부터......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중간중간 들리는 두 명의 목소리는 분명 녀석과 저기 누워있는 먹잇감의 목소리임이 분명했다.
은호는 잡음때문에 들리지 않는 녹음을 조금이라도 잡아내려는 듯이 핸드폰을 귀 언저리에 가져다대었다.


그때, 은호의 귀에 정확하게 들리는 문장.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으으음...."

은호가 잠을 깬 시간은 해가 중천에 뜬 무렵이었다.
아직도 꿈나라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은호는 연신 이불 속에서 뒤척이기만 하고 있었다.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의 머릿 속에서 어젯밤 녹음에서 들었던 말소리가 메아리쳤다.
동시에 어젯밤 보았던 예술적인 살인행각이 눈 앞에 펼쳐졌다.

『너...천국에 가고싶나?』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다. 천국이라니...가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자기처럼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사람도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그 곳도 이 곳과 별반 다를게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천국에 가고싶나?』

하지만 막상 저런 말을 들으니 가슴속이 뭔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드는 은호였다.
물론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녀석과 자신은 살인을 통해 무언가를 주고받았다는
무언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비단 죽은 사람에게만 건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있었다.

『너...천국에 가고싶나?』

"천국이라....."

은호는 이불에서 슬그머니 기어나왔다. 얼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게 따듯하다.

"하암~~"

그는 거나하게 하품을 뿜어내었다. 따듯한 햇살을 입 속에 머금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늘어진 러닝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배를 북북 긁으며 화장실로 행했다.

"살인자 주제에 조까고있네."

바지를 내리고 변기통에 앉으며 은호가 중얼거렸다.
지금 그에겐 천국보단 배변이 먼저였다.




#




밤 10시가 되자 은호는 편의점으로 향하기 위해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은호는 그가 항상 가지고다니던 두꺼운 코트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기분 잡쳤어. 한두번도 아니고 벌써 4번째 당했는데 할 맛이 나겠냐고..젠장."

두꺼운 코트와 그 안에 들어있는 가느다란 철뭉치를 뒤로한 채 은호는 집을 나섰다.

두꺼운 코트가 은호의 발길을 잡아 끌었지만 그는 애써 무시하며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왠일인지 무겁게 들린다.




#




언제나 그렇듯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편의점 일을 대충 처리하고있던 은호가 별안간 편의점 현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하얀색 조그마한 얼굴에 긴 생머리를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짙은 다크서클이 그녀를 더욱 신비하게 보이게 해주었다.
순전히 은호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지루함을 달래던 은호의 얼굴이 별안간 환해지며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역시 12시 반.
꽤나 규칙적인 여자군. 이라고 생각하던 은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항상 그렇듯 그녀의 시리도록 차가운 표정과 무기력함이 은호의 시선을 잡아 끌었지만
자신이 해줄 일이 없다는 사실에 은호의 가슴이 살짝 시리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은호의 인사는 간단히 무시한 채 음료수 코너로 향했다.
그녀는 또다시 코카콜라를 들고 오리라.

그녀를 흐뭇하게 쳐다보던 은호가 별안간 소리친다.

"아앗! 거기있는건 그저께부터 들어와있던거라 차갑지 않아요! 그 옆에 옆에! 아니아니~좀더 옆에~
네! 그거요 그거 하핫. 그게 오늘 들어온거라 신선하고 차가워요~"

자신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왠지모르게 흐뭇해지는 은호였다.
그렇게 은호가 눈을 감고 얼굴을 붉히는 사이, 그녀는 '코카콜라'를 들고 카운터 앞에 섰다.

"계산이요"

화들짝 놀라는 은호.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400워...ㄴ....어라? 오늘은 왜 두개...?"

"계산해주세요."

"네? 아, 네!"

그녀는 카운터에 800원을 내려놓고는 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1600원을 대신 내주는 것 밖에 없나봐요.
도대체 당신은 왜그렇게 무기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가요.'

은호는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은호가 뭐라고 중얼거리던 그녀는 연신 문 밖에 시선을 두고있다.

은호는 800원을 카운터에 집어넣은 후 영수증을 뽑아서 그녀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녀는 영수증을 받아들고는 '코카콜라'를 집어들고 문으로 향했다.
그녀는 코카콜라 한개만 집어들었다.

"어..? 저기!!! 한개 놓고 가셨..."

"드세요. 1200원짜리 콜라를 800원에 먹는거니까 상관 없어요 저는."

그녀가 은호에게 살짝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은호는 벙쪄있었다.


그녀가 콜라를 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물건을 주었다.
그녀가 나와 눈을 맞춰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이..이름이?!!"

닫히는 편의점의 문 사이로 은호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갔다.
은호의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자극했는지 그녀가 몸을 돌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이지연이에요."

그녀는 간단히 말한 뒤에 다시 뒤돌아섰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코트 안들고 오셨네요."




은호는 잠시 정신이 외출함을 느꼈다.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변화를 눈치 채 주었다.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은호는 그녀가 두고간 콜라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이 떨렸다.
입술이 말랐다.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사람을 죽일때와는 또다른 카타르시스였다.
처음 느껴본 기분에 은호는 마약을 한 것처럼 붕 뜨는 느낌이었다.


"저기요. 계산이요."

불쾌한 중저음이 은호를 환상의 나락에서 끄집어내었다.
은호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 남자들에게 말했다.

"1200원이요."

3명의 남자들은 1200원을 내고 '코카콜라'를 집어든다.
은호는 혹시나 그녀가 준 콜라를 들고갈 새라 자신의 콜라를 챙겨서 구석에 옮겨두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 남자들이 인사를 하고 편의점의 문을 향해 문을 돌렸다.
남자들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가 흔들린다.


은호의 기억속에서 한 남자가 편의점의 문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 남자의 목에 걸려있던 무언가가 흔들린다.


남자들의 펜던트가 흔들린다.
기억속 남자의 목에 걸린 무언가가 흔들린다.


비슷한 움직임이다...?


은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난밤 편의점에서 맡았던 피의 향기...
지난밤 빌라에서 느꼈던 피의 향기...

저 남자들의 펜던트..
지난밤 남자의 목에 걸린 무언가...



"제기랄...!!!"


은호는 구석에 두었던 콜라를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집어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콜라가 터지며 칼이 박힌 사람의 배마냥 내용물을 토해내었다.
그녀가 준 콜라가 터져버렸지만 은호의 정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그 남자다.
자신의 먹잇감을 가로챈 남자다.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어젯밤 자신의 먹잇감을 가로챈 남자다.


그리고 그 남자는 지금 저 남자들과 같은 무언가를 목에 차고있었다!

목걸이에 대해 알게 된다면, 저 남자들과 녀석의 연결고리를 찾게 된다면
그 녀석의 면상에 한걸음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은호는 카운터를 박차고 나와 문 밖으로 뛰아나갔다.
은호는 그 남자들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면서 가슴팍을 쓰다듬는다.
항상 위치해있던 자신의 무기가 만져지지 않는다.

아, 코트를 가져오지 않았구나. 라고 은호는 생각한다.

순간 망설여진다.
은호의 머릿속에서 지난 밤에 보았던 예술적인 살인행각이 펼쳐진다.
녀석의 비웃음 소리도 귓가에 울려퍼진다.

"신발. 그딴거 없어도 세명 쯤이야."

은호는 그들이 향했을 것 같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은호의 머릿속은 녀석의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멈추려면 그들을 잡아야한다는 일념밖에 남지 않았다.





편의점의 바닥을 흐르는 콜라가 피처럼 끈적하다.


차가운 새벽바람이 은호의 볼을 거세게 갈겨대고 있었다.
은호는 벽 뒤에 자신의 몸을 붙인 채, 팬던트의 사내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끔씩 주위를 둘러보며 미행을 의식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고,
은호는 그러한 그들의 행동에 몇 번씩 몸을 숨겨야만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마침내 그들이 쉬지않고 놀리던 다리를 멈춘 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내 그들은 자신들끼리 무어라고 속닥거린다.
멀리있는 은호에게 들릴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기도 하고, 무언가 성에 차지 않는 듯 표정을 찡그리기도 했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간 기회를 놓치고 말겠군.이라고 은호는 생각한다.
은호는 자신을 엄폐해주던 벽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셋까지만 세고 달려나갈 요량인 듯, 체중을 앞다리에 바투 실었다.


"이봐! 왜이렇게 늦었어!"


은호가 멈칫한다.
모여있던 세사람의 주위로 여러명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모양의 팬던트를 걸고 있다.

은호는 벽에 자신의 몸을 바짝 대었다.
은호의 눈썹이 흔들렸다.
일이 잘못 진행되어가는 듯 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연신 입에서 욕이 흘러나온다.

"집회 장소를 똑바로 알려줘야지!"

"이 멍청아! 집회장소 문자로 보내줬잖아."

"이번에는 아지트에서 하는거 아니었어? 문자로 그렇게 왔던데?"


은호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신전이라니? 집회는 또 뭐야?'

그들의 대화에서 녀석에 대한 힌트를 얻기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는 은호.


"오늘은 아니야. '그 분'께서 직접 나서서 하신다고 했어."

"정말? 그러면 오늘 '그 분'이 여기 오시는거야?"

"그렇다니까? 아마 좀있으면 오실거야."

"오늘 드디어 '천국의 비밀'을 알 수 있는건가?"

"그랬으면 좋겠다. 솔직히 이 짓도 지겨워."

"허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은호의 귀에 '그 분'과 '천국'이 내려와 꽂혔다.
낯설지 않은 단어...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의 귀에 다시한번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

"그 분....그 녀석...천국...천국..."

은호는 작은 목소리로 뇌까린다.
은호의 머릿 속에 그 녀석의 목소리가 오버랩되었다.

분명 같은 인물이리라.

은호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자신이 대적해야하는 상대가 거대한 집회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하니 침이 마르는 모양이었다.
은호는 이러한 집회의 우두머리라면 충분히 전화만으로 사람을 죽일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한다.

은호의 뇌리에 예술적이던 녀석의 살해방법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은호는 자신도 모르게 예술적인 장관에 혀를 내두른다.
허나, 자신이 그 녀석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느꼈는지 이내 입을 다문다.

"제길..그래봐야 전화로만 사람을 죽이는 소극적인 새끼야."

애써 녀석의 살해방법을 부정하는 은호.
은호는 조용히 그들이 취하는 행동들을 관망했다.
그러고는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쉰다.

'일단 지금은 후퇴하자. 쪽수도 쪽수지만 정보가 너무 없어.'

은호는 행여나 소리가 들릴새라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녀석을 코앞에 두고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 마음에 영 내키지 않았으나,
성급한 행동으로 녀석의 예술적 피조물이 되기보다는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에
은호는 땅에 침을 몇번 뱉고선 조심스럽게 그들과 멀어져갔다.



#



"그냥 보내도 되는겁니까, 교주님?"

"그래. 녀석에게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할 필요성이 있으니까."

"저 녀석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벌써 몇번 째 살려두시는건지..."

"사냥은 때를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이번 일은 우리 사도진리회의 미래가 달려있어."

"아무리 그렇다지만..."

"불만이 있는 거냐?"

교주라고 불리우는 사나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순간 주위의 대기가 얼어붙는 듯 하다.
말대꾸하던 남자는 물론 주위에 모여있던 군중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사내의 발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교주라고 불리우는 사나이는 주위를 한번 스윽 둘러보더니 헛웃음을 피식 하고는 몸을 돌린다.

"자, 가자."

순간 사방팔방에 흩어져있던 무리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러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교주라 불리우는 사내가 서있었다.
그는 곁눈질로 살짝 은호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본다.

"조만간 다시 만나길 바라고 있으마."

사내는 성큼성큼 앞으로 향했다.
사내의 입에는 의미없는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



『너..천국에 가고싶나?』

침대에 누워있던 은호가 벌떡 일어난다.
아까부터 귓가에서 그 녀석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는다.
누군가가 은호의 귀에 반복재생이라도 눌러놓은 듯이 끊이질 않았다.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정말 천국을 원하고 있는가.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천국에 간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것인가.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다.
눈을 껌벅거리며 천장만 우두커니 바라본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마른 혀로 입술을 적셔보았지만 거칠어진 입술에 혀만 다칠 뿐이다.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가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힌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올까 싶기도 했지만 귀찮아서 그만 둔다.
은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천국이라..."

은호가 눈을 감는다.

"갈수만 있다면 나쁠 것도 없겠군.."

순간 지연의 얼굴이 떠오르는 은호.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

"아차!"

은호가 몸을 다시한번 번쩍 일으킨다.
아마 아까 내던졌던 콜라에 생각이 미쳤음이 분명하다.
은호는 자신의 머리를 쾅쾅 두들기며 자책했다.

"그걸 어쩌자고 던졌어!!아오 미친새끼!"

은호의 머릿속에서 녀석이 사라진다.
그곳에는 지연과 그녀가 준 코카콜라가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은호는 한숨을 푸욱 쉬고는 슬그머니 자리에 눕는다.
은호가 이불을 덮는다.
한숨을 푸욱 쉰다.
베개를 고쳐 벤다.
한숨을 푸욱 쉰다.
몸을 이리저리 돌려댄다.
몸을 배배 꼰다. 좌불안석이다.

'내일은...내일은 놀러가자고 말해볼까...'

은호의 얼굴이 벌게진다.
은호의 입에서 실없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런 느낌이라면....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순간 은호의 표정이 밝아진다.
족쇄에서 벗어난 듯 가벼운 얼굴을 베개에 파묻는다.


그의 등 뒤로 흐르는 바람이 싸늘하다.



"이젠 이런 짓..안해도 될줄 알았는데..안해도 행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은호의 눈썹이 암흑 속에서 꿈틀댄다.
그는 코트를 입고 있었다.
물론 코트 속에서 반짝이는 식칼도 잊지 않았다.
은호는 무언가 답답하다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암흑을 걷어내려는 듯 몇몇의 별들이 그들의 빛깔을 과시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까만 하늘은...한두개의 별가지고는 밝아질 수 없다는거냐..."

은호가 물고있던 담배를 땅에다 던졌다. 그리고는 발로 거칠게 짓이겨버렸다.

"신발..기분 더럽네."

은호가 가슴팍의 식칼을 매만지며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





"네...? 갑자기 왜...."

"미안해요. 일이 생겨버렸어요."

"하..하지만.."

"죄송해요."

"하지만 이미 약속장소에 나오셨잖아요..여긴 공원인데..."

"죄송해요."

"죄송하단 말만 하지 마시구요...방금 온 전화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그게 어떤.."

"귀찮네요."

지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은호만이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분명 그 둘은 어제 밤12시 반에 편의점에서 약속을 잡았었고, 오늘 아침 아니, 방금 전까지
약속대로 근처 공원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왔고, 아까까지는 웃으며 즐거워하던 그녀의 안색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녀가 자신에게 '귀찮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녀의 발걸음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듯 보였다. 은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지연이 은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은호는 이유없이 그녀에게 퇴짜를 맞아버렸다.

지연이라는 별로 인해 자신의 하늘이 밝아질 거라고 기대했던 은호의 마음은
전보다 어두운 칠흑으로 덮여있었다.






#






"설마..이번에도..."


은호가 아파트의 문 앞에서 중얼거렸다.
은호는 문 앞에서 서성거려보기도 하고 문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집 안에서는 티비소리만 살며시 들릴 뿐,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은호는 문에 대고 코를 킁킁거려본다.
그러나 아무 향기도 나지 않았다. 은호는 안심한 듯 보였다.

"이번엔 제대로 짚은 듯 하네."

『띵동! 띵동!』

은호가 현관문 벨을 눌렀다. 은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집은 독신남이 한명.

독신남녀들이 사는 집을 들어가는 것은 굉장히 수월하다.
독신일수록 자신의 집에 다른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즐긴다.
잡상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찾아오는 것 조차도 즐기는 편이 많다.
택배원은 말할 것도 없다.
은호 역시 택배원으로 위장해 쳐들어갈 속셈이었다.
물론 정말 택배를 시킨게 있는 집이라면 수월하겠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일말의 기대감을 품으며 문을 열어주기마련이다.

"누구세요?"

"대한통운에서 택배 배달왔습니다."

"시킨거 없는데요..?"

"네?? 그럴리가...여기 '이 호님 귀하'라고 적혀있는데요..?"

"네..?잠시만요.."

은호의 손에는 벌써부터 뱃가죽을 뚫는 촉감이 전해지는 듯 했다.
은호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였다.

"저기 무슨 택..."

은호는 빠른 손놀림으로 문을 제껴버린 후에 그의 가슴팍에 칼을 꽂아넣는다.

"이..이게 무.."

상대에게 고통에 몸부림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은호는 가슴팍에 칼을 꽂은 채로 그의 오금을 당겨 중심을 무너뜨렸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이호라는 사내가 넘어졌다. 동시에 은호는 그 남자의 위로 올라가 칼을 빼든다.
은호는 가장먼저 그의 목을 살짝, 그러나 깊숙이 찔렀다. 비명을 내지 못하게 함이었다.
그 후에 남은 것은 해체작업 뿐..

"미안미안~내가 오늘 바람맞았거든? 원래는 한방에 보내주는데 오늘은 안되겠다. 니가 재수없다고 생각해."

은호는 그의 배에다 칼을 깊숙하게 꽂아넣었다.
그리고는 칼을 좌우로 흔들고 위아래로 흔들고 한바퀴 돌렸다가 살짝 뺐다.

칼이 움직일때마다 조여주는 근육의 움직임이 은호에게 오르가즘으로 다가온다.
그는 칼을 천천히 빼보았다.
칼에는 피뿐만 아니라 내장의 일부로 보이는 살덩이들이 함께 빠져나왔다.
은호는 그것을 한입 베어물고는 이호라는 사내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다.
이호라는 사내는 이미 정신을 잃었는지 희멀건한 눈동자를 내비친 채로 은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발 재미없게 벌써 정신을 잃은거야?"

은호는 그의 눈을 푹푹 찌른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은호는 몸을 일으켜 그의 머리쪽으로 향한다.

『파삭』

은호는 그의 머리를 강하게 밟아버렸다.
두개골이 깨지고 뇌수가 튀기고, 뇌가 발에 밟히는 느낌이 여간 기분이 좋은게 아니었다.

"좀 아쉬운데....그냥 옆동네 일가족으로 할 걸 그랬나..."

은호는 머리가 날아간 사내의 시체를 거실로 질질 끌고 들어왔다.
사내의 가슴팍에서 목걸이같은 무언가가 흔들리는 듯 했으나 은호에게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띠리링』

"이게 무슨 소리지..?"

은호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 소리는 사내의 바지에서 나는 소리인 듯 했다.
은호는 조심스럽게 사내의 바지를 뒤져보았다.
커다랗고 네모난 물건이 잡혔다.
은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은호는 거칠게 그것을 빼보았다.

"핸드폰...? 신발..."

은호는 욕을 내뱉으며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666 』

"666? 뭐야 이건..스팸문자인가..."

은호는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TV를 켜라. 채널은 66번.』

은호의 표정이 굳었다.
은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은호의 뇌가 소리쳤다.

'그녀석이다!'

은호의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극도의 오르가즘 후에 느껴지는 좌절감. 허무함.

그는 핸드폰을 거칠게 내동댕이 친 후에 TV로 향하였다.
티비로 향하는 내내 은호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은호는 TV를 켰다.
66번 채널로 맞추었다.
은호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그 곳에는 한 일가족이 찍혀있었다.
은호의 눈이 실룩대었다.
그 가족은 은호가 또다른 타겟으로 삼고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은호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갑자기 전화를 받는다.
그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그는 가족들보고 무어라고 중얼거린다.
가족들은 처음엔 뭐라고 반항하는 듯 하였으나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자 아무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사내는 전화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엔 귀기울여 듣다가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더니 이러저러한 질문을 하는 듯 했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다시 전화기에 대고 무어라고 소리친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전화에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듯 하다.
그렇게 몇시간동안의 고착상태.

은호는 하품을 길게 늘어뜨렸다.

'뭐하자는 거야 지금..'

은호는 TV를 끄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TV로 보이는 사내의 눈이 촛점을 잃은 듯 흔들리고는 전화를 끊는다.
사내는 전화를 끊은 후에 식탁에서 조그마한 젓가락을 하나 집어들고는 안방으로 향했다.


몇 분간의 정적.


잠시후 안방 문이 열린다. 피칠갑을 한 사내가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안방을 나온다.
안방의 상태는 안봐도 뻔하리라..
사내는 거실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소파위에 올라섰다.

"이..이게 무슨..."

은호는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때였다.

은호는 왠지 자신이 TV속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TV속의 사내는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입을 놀렸다.


천...

국...

에...

가...

고...

싶...

나...


은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또 그녀석의 짓이라는 게 뇌리에 와서 강하게 박혔다.

패배감이었다. 지독한 패배감.

『너 천국에 가고싶나?』

지독히도 따라다닌다고 은호는 생각했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과 저녀석은 레벨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의 살인은 예술이다.
그의 살인에 비하면 나는 도축업자에 불과했다.
패배감.
지독한 패배감.
경외심
존경심
그런 것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우월감...

은호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는 브라운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은호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목을, 자신의 눈을, 자신의 가슴팍을, 코를, 입을, 배를 무지막지하게 찌르는
사내의 손짓도 보이지 않았다.
젓가락이 뚫어버린 사내의 몸에서 배출되는 오물들과 피도 보이지 않았다.
무너져가는 사내의 몸짓..
소파에서 떨어져 다리가 꺾이는 모습..
은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은호의 뇌에는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뇌리를 가득 채우는 생각은 오직 하나.

'녀석을 만나고 싶다!'

그런 은호의 뇌리에 이상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젓가락으로 자신의 몸을 난자하던 사내가 소파에서 떨어지던 그때,
아니, 어쩌면 사내가 자신의 몸을 젓가락으로 찌르던 그때,
그리고 사내가 바닥에 누워버린 지금까지...

사내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 의도적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마치 은호에게 누군가의 존재를 암시하려는 듯이..
누군가가 그 곳에 서있기라도 하듯이...




"사내의 시선...그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별안간 은호가 비호와 같은 몸놀림으로 문 밖으로 향했다.
은호는 자신의 생각이 확실하다고 단정지은 듯 했다.
그의 발걸음은 거침 없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는 서슬에 죽어있던 사내의 몸이 흔들렸다.
그의 가슴팍에서는 이상한 십자가 모양의 팬던트가 떨어졌다.
그 팬던트의 십자가는 뱀이 휘감은 형상이었다.

그러나 이미 문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은호에게 그 팬던트가 보일리 없었다.
은호는 답답함을 날리기라도 하듯 크게 소리쳤다.

"만나야해..그 녀석은 분명 저기에 서있는 거야!"

은호가 쥐고있는 식칼이 달빛을 받아 붉은 빛으로 번쩍였다.


"드디어..드디어..."

오페라의 주인공인양 달빛을 받으며 서있는 은호의 앞에는 커다란 문이 놓여있었다.
그 문은 은호와 녀석을 가로막고 있는 단절이었으며, 은호와 녀석을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리고 그 앞에 은호가 서있다.
그 뒤에는 녀석이 서 있을 것이다.
은호는 떨리는 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바깥의 공기로 젖어드는 짙은 피의 향기.

은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을 감았다.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의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치고 있었다.

더이상 은호와 녀석 사이에는 어떠한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 듯 느껴졌다.

은호는 조용히 눈을 떴다.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소파에 뒤집어져 목이 꺾인 죽은 가장의 눈 만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이럴리가 없는데..이럴리가 없어..."

은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발에 밟히는 피가 죽은 자의 손인 듯 끈적하다.

은호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카펫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에는 방금까지 누군가가 서있었던 듯이 발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
은호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카펫을 바라본다.

"늦었나.."

은호는 카펫을 향해 몸을 구부렸다. 자신의 식칼을 고쳐잡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찌익!』

현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주황색 전조등을 받은 은호의 손놀림이 비호와같이 빠르게 움직였다.
은호는 카펫을 사정없이 찢어놓고 있었다.
아니, 카펫에 비친 녀석의 체취를 사정없이 휘갈기고 있었다.

패배감이었다.
지독한 굴욕이었다.
녀석은 은호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도 모자라서
은호의 행동을 자신에게 구속시켜 버렸다.

우월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수없는 자명한 현실이었다.
녀석은 은호보다 뛰어나다.
똑똑하고
빠르고
강단이 있으며
잔인하다.
아니, 아름답다.
그 누구의 살인보다 아름답다.

은호는 자신의 주먹을 세게 쥐고는 땅을 쿵쿵 쳐댔다.
이 호라는 사내를 죽이면서 느꼈던 희열감들이 모멸감으로 자신을 스멀스멀 휘감고있었다.
녀석이 던져준 먹이를 먹고 좋아하는 꼴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치욕스러웠다.
녀석에게 은호는 그저 귀여운 애완동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차이가...차이가 너무 크다..제길..!"

은호는 자신이 들고있던 식칼을 누워있는 시체에게 던졌다.

『깡!』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

하나는 식칼.. 하나는...?

은호는 조용히 시체에게 시선을 던졌다.
뒤집어져있는 시체의 가슴팍 사이로 무언가가 빛난다.
아마도 저것이 소리를 낸 장본인이리라.

은호는 무언가에 시선을 꽂은 채로 몸을 조용히 일으켰다.
은호는 시체에게로 다가섰다.

한걸음 한걸음 시체에게로 다가갈수록,
한걸음 한걸음 그 무언가에게 가까워질수록,
은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팬던트..."

은호는 조용히 뇌까렸다.
그의 손에는 뱀이 십자가를 휘감은 형상의 팬던트가 쥐어져있었다.
은호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팬던트...편의점...검은 옷의 남자들.....콜...라?"

은호의 눈썹이 실룩거렸다.
무언가 생각해서는 안될 시나리오들이 은호의 머리를 자극하는 듯
그의 미간이 출렁였다.

"콜라...코카콜라........"

은호의 손에 들려있던 펜던트가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은호의 시선은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 속에 팬던트는, 남자의 시체는, 자신을 우롱한 녀석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지연...씨...?"

은호의 동공에 자신을 향해 웃음짓던 지연의 모습이 어렵풋이 스쳐지나간다.
은호는 움직일 수 없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곳엔 거무튀튀한 천장과 난자된 핏물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 곳엔 별 따윈 없었다.


『띠리링』


TV가 켜진다.
은호는 멍한 시선을 티비에 무의식적으로 가져간다.
그 곳엔 A4용지에 휘갈긴 듯한 문구가 비춰지고 있었다.

『체크메이트』

은호의 동공이 흔들린다. 5글자가 은호의 눈 속에 박혀들어온다.
A4용지는 이내 카메라의 앵글 속에서 사라진다.

그 곳에는 목과 복부, 눈이 난자당한 이 호씨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이 호씨의 목에는 팬던트가 걸려있었다.

 

 

출처- 웃긴대학 -hero창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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