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휴대전화의 월권 Ⅱ)
스마트해지는 만큼 핑계가 안 먹힌다.
멀지 않은 예전에는,그러니까 스마트폰이 이토록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에는,이유가 많았다. 핑계의 거리가 되어주는 소재들이 많았다.
가령,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치자. 조별 과제를 함께 하는 조원 중 한 명이,가까운 친구가,가족이,직장 상사가 나에게 이메일을 한 통 보냈다고 치자.
‘아.. 지금은 밖이라서요/ 컴퓨터가 없는 곳이라서요/ 인터넷 사용이 안되는 곳이라서요..’
이렇게 대답하면 기다림이 가능했던 때. 시간을 조금 더 두고 보자는 게 수긍되고 납득되던 때. 그 땐 그랬었다.
같은 상황에서 오늘,같은 이유를 댄다면?
‘휴대폰으로 확인하면 되잖아. 답장 써서 바로 보내줘.’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이제는 미루기 힘들게 되었다.
사실은 사람들이 더 편리해지라고,더 이로워지라고,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라고 개발된 기술인데. 여기의 시간을 단축시켜 저기의 시간을 더 마련하라고 진화한 기술인데,오히려 가진 시간을 더 뺏기고 우리는 더 바빠진 것 같다.
알림이라는 게 소리나 진동 둘 중 하나이던 시절이 있었다. 어쨌거나 알림을 알려주니,그래서 반응하던 시절.
요즘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알림이 생겼다.
‘혹시? 역시. 여전히..? 행여나...? 아마도!’
와 같은 마음의 소리. 나 혼자 보고,나 혼자만 들을 수도 있어서 그때그때 반응하게 하는 조급의 소리. 하지만 이 소리에 유독 예민해진 사람들에게는 부작용도 뒤따른다. 접착되어 있는 부록처럼,챙길 수 밖에 없는 선택의 이면(裏面)과 같이.
무언가 와 있을 것 같다. 카카오톡이든,카카오스토리든,페이스북이든 무언가 새로운 알림이 있을 것 같다. 손에서 놓은 지 얼마 안 되어 금세 또 휴대폰으로 손이 간다. 버튼을 눌러 확인하고,실제로 알림이 있으면 손가락이 또다시 바빠진다. 없을 땐 또 어떤가. 없으면 없는대로 괜히 뻘쭘하고,허무하기도 하다. 그럴 땐 공연히 실시간 뉴스 목록을 보고 페이스북의 실시간 뉴스피드를 본다.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쭉쭉 밀어 내리며,별로 무겁지 않은 태도로.
언제부터 그렇게 바빴나.
언제부터 우리는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었나. 언제부터 우리는 즉시 연락 가능해야 하고,수분에 한 번씩 확인하고 알아봐야 하는,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었나. 그런데 막상 확인이 흔해지고 살펴보기 쉬워지다 보니,상대적으로 대단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우리는 왜 실망하고 있나.
특히 지하철을 탈 때,마치 휴대폰 좀비떼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 ‘대체 스마트폰이 이렇게 퍼지기 전에 사람들은 비는 시간에 뭘 했던 걸까?’생각한다. 나도 그 무리 중 하나일 때가 빈번하면서.
그러니까 불과 2년 전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횡단보도에 서서 기다릴 때,버스를 기다릴 때,지하철을 기다릴 때,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릴 때,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를 기다릴 때,이야기를 하다 잠깐의 쉼이 있어 곧 이어질 다음 대화를 기다릴 때. 나는 무얼 했었더라?
기다림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기다림이 힘에 겨운 사람이 되었다. 기다림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KBS의 예능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에서는 개그맨들이 휴대폰,인터넷,텔레비전 없이 일주일을 보내는 상황을 주고 많이들 힘들어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드디어 미션이 끝난 마지막 날,멤버들이 휴대폰을 켜서 확인하기 전에 ‘문자나 전화가 얼마나 와 있을 것 같느냐’는 인터뷰에 다들 50에서 100통 정도를 대답하며 300통까지도 예상했다.
막상 결과는 대단하지 않았다. 심지어 출연진 중의 한 명인 허경환-신수지의 열애설이 터진 다음날이었지만,당사자인 허경환의 휴대폰조차 그다지...
우리는 하루만,아니 두세 시간만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해도 분명 무슨 일인가 있었을 것처럼 불안해하고 집착하게 되었지만,실제로 현실은 생각보다 잠잠하다는 것. 보통 그래왔듯이. 점잖지 못하게 요동하는 건 진득하지 못한 내 마음뿐이다.
여배우 A,B,C양이 프로포폴 투약 혐의를 받고 있고 저스틴 비버가 마약을 한 채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져서 셀레나 고메즈에게 차였다는 연예뉴스 같은 것들이,과연 나의 일상에 무슨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현실적으로 행하기 쉬운 실천을 하려고 한다.
어느 시간이나 일이 다하기 전까지는 휴대폰을 보지 않는 습관을 키우려고 한다. 마주 보는 게 좋고 함께 하는 게 즐거운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휴대폰을 자주 들추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 지키기로 한 약속이 필요하다. 스스로 세워야 할 방패막이가 필요하다.
나는(우리는) 원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