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크리스마스 이브.
휴
|2013.12.25 01:30
조회 4,427 |추천 8
남편입니다. 삼년 연애하고 결혼 팔년차 되었네요. 제 이야기를 하려면 사정상 사실과 조금 다르게 적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하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마 제 지인들은 글쓴이가 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될 거에요. 그래서 조금씩은 다를 수 밖에 없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삼십대 중반이고 공대를 나와 금융기업에 다닙니다. 와이프는 미대를 나왔고 저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지만 하는 일은 무척 다르지요. 동갑이고 회사에서 만나 사귀고 결혼했습니다. 사실 우리 둘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회사 전체 회식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면 아마 회사에서도 서로 이야기 할 일이 없었을 겁니다. 조금은 의존적인 성격이었던 와이프는 말은 당차게 했지만 늘 제 도움이 필요했어요.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지만요. 제가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은 과 선배, 동기, 회사 동료(같은 일을 하는) 같은 사람들로 늘 주변에서 인연이 되었었는데. 대부분 자기주장이 강하고 성취욕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별로 생각 해 본 적이 없는데 어쩌면 제가 그런 성향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처음엔 와이프도 그런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만나보니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랑은 조금은 다르더군요. 어떤 면에서는 참 대책이 없고 자기주장이나 자존심은 강한데 그렇게 노력하는 편은 아니어서 제 입장에서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목표를 당차게 얘기하다 좀 지나면 새로운 목표를 얘기하고는 했지요. 처음엔 그게 나름 매력적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했던 건 사실입니다. 아마 저도 와이프가 만났던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을거에요. 와이프가 만났던 사람들은 와이프 표현대로라면 포용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와이프가 의미하는 바가 어느정도 짐작은 되지만,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사실 제가 개입하는걸 굉장히 못 견뎌 했었고, 스스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와이프랑 사귀면서 제가 남자친구로서 해줘야 하는 일들이 기존에 제가 했던 것보다 영역이 많이 넓어졌으니까요. 와이프의 불만 중 하나가 제가 본인을 믿지 않고 애 취급한다는 점인데, 사실 제 입장에서는 저는 사귀면서 이렇게까지 챙겨줘야 했던 적이 처음이고. 항상 뭐든 도움을 줘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거와는 다르게 책임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짜증이 날 때도 있었고 당황스럽기도 했지요, 왜 너는 스스로 알아서 하지 못하니 하는 생각이 좀 있었고. 격려하기보다는 다그친 적이 많이 있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화가 나면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고 와이프도 지지 않는 편이라 말다툼이 격해지곤 했습니다. 제가 하는 폭언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 거에요. 와이프는 세상에는 칭찬을 해줘야 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는 늘 내가 잘 못한 점만 지적한다고 하니까요. 저와 와이프의 문제가 대충 보이시겠지요. 결혼 생활을 거듭할 수록 와이프는 점점 더 의존적인 성격이 되어갔고 회사 생활이 썩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늘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며 새로운 길을 이야기 했었는데.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썩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와이프는 그런 점이 많아 불만이었던 것 같고. 저는 몇번 진지하게 정말 원하는 거라면 그만큼 진지한 태도와 노력이 따라야 한다. 내게 진지함을 보여주는 방법은 요구가 아니라 행동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져가는 이유에 본인의 태도가 자초하는 면이 있다고 강하게 얘기를 수차례 했는데, 와이프는 제 그런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고 그런 점이 우리 사이를 많이 갈라놓았던 것 같네요. 우리는 많이 싸웠지만, 행복한 순간도 많이 있는 부부였습니다. 어쩌면 저 혼자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결혼하고 여러해가 지나서 우리는 아이를 갖기로 했습니다. 둘다 살림에 있어서 부지런한 편은 아니고 와이프도 몸이 몹시 약한 편이라 잘 키울 수 있을 까 하는 두려움에 오래 미뤄 왔지만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있었기에 더 미루지 않고 준비를 했고 생각보다 쉽게 가졌습니다. 산부인과 방문은 물론이고 출퇴근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항상 함께 했지요. 배가 불러오는 걸 보고, 초음파로 아이가 자라고 움직이는 걸 보면서 말 할 수 없을만큼 큰 애정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는 동안 저도 개인적으로 큰 성취가 있었어요.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있었고, 굴려오던 개인 자산도 꾸준히 불어나 상당한 금액이 되었습니다. 이때의 저는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굳은 다짐이 있었고, 항상 야근하던 생활을 고쳐 와이프와 일찍 집에 오기 위해 업무시간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초인이 된다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양된 삶을 살았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 같은 강한 자신감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아들을 안았을 때의 느낌은 몇마디로 형언하기 어렵지만, 내 안에서 넘쳐나는 듯한 벅찬 사랑과 태산같이 내리누르는 육중한 책임감이었습니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 제 모든 관심사와 에너지는 아들을 향했습니다. 와이프는 출산 이후 약 석달 정도 스스로를 돌보는 것 조차 힘들어했습니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니었고 원래 허약한데다 엄마가 되었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자신감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24시간 중 수유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시터 이모가 돌봐주셨는데. 와이프는 본인은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으면서도 시터이모에게 맡기는 상황을 불안해 했습니다. 그래서 내켜하지 않으시는 장모님을 붙들고 놓지 않았고. 시터를 계속해서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항상 장모님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요. 갓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워낙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 아들이 워낙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라 낮에 사람이 와서 거들어도 엄마와 할머니는 늘 지쳐있었습니다. 저도 일찍 퇴근해서 잠들기전까지 쉬지 않고 거들고 데리고 잤는데 셋이 붙어서도 쉽지 않더군요. 장모님과 함께 사는 것도 힘들었고 장모님도 익숙치 않은 육아에 힘들어하셔서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라 제가 시터 이모를 24시간 쓰기를 원했지만 와이프는 장모님과 함께 아이를 둘보길 원했습니다. 이러는 동안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 관심사는 온통 집에 쏠려 있었고, 좋은 컨디션에서도 일과증에 다 처리하기 힘든 일을 잠을 자지 못한 채로 처리하다보니 실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봐주시던 상사도 저를 불러서 호되게 야단을 치시기도 하셨는데. 당시에는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가정이 우선이지 회사를 때려칠까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사실 일을 안해도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그만두고 아이만 키울 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와이프가 불쌍하다가도, 반년이 넘어 일년 가까이 이어지니 왜 고집을 부려서 이렇게 일을 어렵게 만드는지 화가 나고 와이프를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법 노력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노력한 시기였지요. 어쩌면 제가 한 만큼 와이프도 하길 바랬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와이프에 대한 불만도 커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큰 사고를 냈습니다. 도의상 책임을 지고 고객들에게 끼친 손해를 변상했습니다. 십년에 걸쳐 쌓아놓은 자산을 한번에 털어넣어야 했습니다. 대략 25억정도 됩니다. 전세보증금만 남기고 모두 털어넣었습니다. 청약해서 중도금을 붓고 있던 아파트도 감당 할 수 없어 처분하려 했지만 부동산 경기가 나빠 매수자가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분양가에 인수해주셨습니다. 이만하기가 다행이었지만, 제게는 살면서 처음 경험 해 보는 나락이었습니다.재산을 잃으면서 와이프의 마음도 함께 떠났습니다.사실을 안 장모님은 당장 남은 재산 털어주고 이혼하라 하셨고. 와이프는 울면서 다시 찾아오라고 하더군요.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요...그 과정에서 차마 말 할 수없는 모욕을 많이 당했습니다. 살고 싶지 않더군요.아들이 없었다면 아마 자살했을 것 같습니다.와이프가 어떻게든 아들을 키워낼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도 아마 그랬을 것 같네요. 부족하겠지만 보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들 생각해서 살아보자고 설득했습니다. 빚을 진 것도 아니고, 아파트 전세 보증금은 남았다. 잃은 돈은 다시 못 찾겠지만, 여전히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다. 기본급이 일억이 넘습니다. 잘 벌 때는 기본급 몇배도 벌었지요. 조금 아껴서 살면 저축도 제법 할 수 있고 집도 우리 형편이 맞춰서 다시 사면 된다. 하루하루 살아내는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과 어떻게든 아들에게 가정을 지켜주려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와이프가 원망스러운 마음도 컸습니다. 사실 저도 이혼하고 싶더군요. 다 주고 이혼해도 어머님한테 기대 살면 아들은 어떻게든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절망의 구렁텅이를 헤어나온 과정에서 와이프에 대한 애정이 있는 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서 엄마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돈 버는 기계로 살겠다. 버는데 까지 벌고 더이상 못 벌게 되면 떠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낭 내 할 일만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도 했었지요. 그리고 일년. 와이프는 여전히 제게 요구하는 게 많습니다. 상처는 대화를 더욱더 어렵게 합니다. 회사에서는 빈사상태인 제 평판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몸무림 치고 있습니다. 와이프와 나누는 대화가 길어지기만 해도 오셔서 들여다보시는 장모님과 여전히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아들을 놀이학교로 데려가는 짧은 순간이 유일하게 행복한 순간입니다. 아들은 아빠도 사랑하지만, 엄마와 할머니도 사랑합니다. 제가 그 행복을 빼앗을 수는 없지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빼앗았는걸요. 가끔 아주 모진 병에 걸려 손 쓸 틈 없이 죽거나 사고를 당하는 꿈을 꿉니다. 다행히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늘의 뜻이니 아들도 이해해 주겠지요. 하지만 그런 행운을 기대 할 수는 없겠지요. 혹시 제가 누군지 눈치 채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냥 모른체 해 주세요. 쓰러져 죽을 지언정 절대 포기하진 않을거니까요. 아무에게도 얘기 할 수 없으니까요..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래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게 털어놓아봅니다. 견딜 수가 없다고. 너무나도 괴롭다고 말이에요. 그저 벌이라고 여기고 이를 악 물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