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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의 항구도시, 포트수단]9개월의 아프리카 방랑기

은두비두밥 |2014.01.24 22:19
조회 25,706 |추천 61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다 짠내가 코를 훅 찔렀다. 온통 물 먹은 공기가 건조한 카르툼이랑은 확연하게 비교되서 여기가 포트수단이라는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음.

 

 

 

 

 

 

 

야시르는 학원 매니저 할리드와 함께 우리를 공항으로 픽업하러 왔다.

그는 공항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포트수단의 시내에 위치한 라마르 학원으로 우릴 데려갔다. 학원 건물 윗층이 내가 살 아파트였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우오~~~~~~~~~~~~~~~~개감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식탁과 소파, 그리고 에어컨이 갖추어진 널찍하고 깨끗한 거실, 모든 식기가 구비된 부엌, 세탁기가 갖추어진 화장실, 그리고 침대가 두개씩 있는 방이 두개나 되는 오지게 쓸데없이 큰 아파트였다!!

 

 

 




 

 

 

 

 

 

채용은 불과 몇분만에 끝났다.

 

 

아파트에 짐을 푼 나는 야시르의 사무실로 내려갔다. 나는 나름 면접이라 생각하고 긴장 탔는데 야시르는 면접이고 나발이고 쿨하게

 

"그래,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엄...........?????????????아무것도 안물어보나...........???????????????????????토플점수????가르쳐본 경험?????????????????

 

 

"음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피곤할테니 오늘은 쉬고 금요일 수업계획서 만들고 토요일 신문에 광고 때리고 일요일까지 학생 모집한 다음에 월요일쯤 수업 개강하면 되겠다!"

 

 

 

 

아니 이게 무슨.........................;;;;

학생은 누굴 대상으로 하는지, 몇 명인지, 어떤걸 가르치는지, 어떤 코스가 있는지 아무것도 안알려줬으면서 불과 4일 후 개강이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시르, 학생들은 성인이에요 아동이에요?"

"몰라요 모집해보면 알겠죠*^^*"

"아... 아직 모집을 안했군요. 그럼 몇 명인지도 모르나요?"

"모르졍*^^*"

"그럼 학생들 수준도 모르겠네요?"

"그냥 다 같이 초급으로 가르치세요."

"코스는요?"

"글쎄요 4주 코스로 할까요 아님 6주?"

"그럼 페이는..."

"학생 모집되는거 보고 몇 반이나 가르치게 될지 보고 얘기해요~~"

 

 

 

;;;;;;;한국의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학원좀 다녀본 나는 영 적응이 안됐음;;;;;;;;;;;;;;;;

정말로 준비된 것도 아무것도 없고 참고할 기존의 수업도 없고 심지어 내가 검증이 된 선생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무슨 창조주도 아니고 하루만에 수업을 무에서 유로 창조해내라니 이거슨 당황+황당 거꾸로해도 황당+당황..........

 

그리고 야시르는 내게 3명의 기존 영어강사를 소개시켜주었다. 수아드라는 이름의 여자와 아담이라는 이름의 동명이인 남자 2명이었다. 그 중 수아드는 특히 야시르의 신임을 받는 선생인 것 같았으나 외국인은 내가 유일했다. 나는 내 수업을 구상하기 위해 기존에는 어떤 수업을 했었는지 조언을 구했으나 수아드와 아담들은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군요. 보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다. 나는 이 학원에 혜성같이 등장한 원탑이었던 것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엉망진창인 행정시스템을 보고 나는 역시 수단스타일은 쿨해 생각했지만 나중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이건 비단 수단 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스타일이라는걸 깨달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명 채용은 됐는데 어딘가 얼떨떨하고 왠지 끙아하다 중간에 끊긴 마음으로 나는 라마르 학원의 영어선생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정말로 하루만에 수업계획서를 완성을 했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개강을 했다.

출처도 모르게 나타난 내가 구상한 수업을 검토하는 사람도 없었다. 야시르는 수업계획서를 대충 읽어보더니

 

"좋네요. 개강합시다."

 

이러고 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모든 수업의 권한을 내게 일임한 것 같아 나도 그냥 내 방식대로 나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라마르 학원에서 성인반 둘, 아동반 하나를 맡아 가르치게 되었다.

 

 

사실 이 세 반을 맡게 된 것도 겨우 쟁취한 것이었다. 개강 후에도 학생들은 하루하루 수가 불어났는데 그 때문에 야시르는 개강을 하고도 한참 후까지 매일 바뀌는 시간표를 내게 건내주었다. 매일 다른 학생과 다른 시간에 수업을 하려니 진도가 나갈 리도 없고 자기소개도 매일 새로 해야할 판이었음. 수업이 늘어나자 나는 주 6일을 성인반 셋과 아동반 하나, 네 반을 가르쳐야 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밥먹을 시간 빼고 눈코 뜰 새도 없이 종일 수업만 하다가 수업이 끝나면 녹초가 될 틈도 없이 또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해야했다. 게다가 야시르는 수업시간 외 야외에서 1시간 씩 그냥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는 잉글리시 클럽을 각 반 당 일주일에 한번 씩 갖을 것을 요구했다. 매일 퇴근하고 열대어랑 뛰놀긴 개뿔 휴일이 되서도 침대에서 일어날 힘도 없었다. 내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강행군을 밀어붙이는 야시르 때문에 나는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음.

 

우리는 주 5일 성인반 둘, 아동반 하나로 합의를 보았고 나는 반 하나 당 인원은 25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더이상의 수강신청은 받지 않을 것을 못박아 두었다. 한편으론 6주 코스 수업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이게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도 놀라웠다ㅡㅡ;

 

 

 

 

 

 

 

 

 

 

 

겨우 시간표가 확정이 되고나서 포트수단에서의 일상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하루 일과 중 제일 기분이 좋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수업 시작하기 전에 학원에서 한 블럭 떨어진 생과일 주스 가판대에 가서 매일 아침 신선한 생과일주스를 사 마시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주스를 마셨다. 그냥 망고만 마실때도 있고, 구아바만 마실 때도 있었다. 아랍어가 늘어갈 수록 주문도 복잡해져갔다.

 

"딸기랑 바나나랑 섞어서 우유 많이 넣고 설탕은 조금만요."

 

 

언젠가 이브라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설탕을 아무리 조금만 넣어달라고 해도 내 기준엔 너무 많아서 [엄청 조금]이 아랍어로 뭐냐고 물었더니

 

"쇼웨이아."

"그건 그냥 조금이잖아."

"그럼... 쇼웨~~~~~~~~~~~~이아(엄청 쪼끔만 달라는 표정이랑 함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이후로 나는 주스를 사러 갈때마다

 

수까르 쇼웨~~~~~~~~~~~~~~~~~~이아를 외치곤 했는데 덕분에 매일 아침 주스 아저씨는 나만 보면

수까르 쇼웨~~~~~~~~~~~~~~~~~~~~~~~~~이아??? 를 인사대신 해주곤 함ㅡㅡㅋㅋ

 

 

 

 

 

수업은 여전히 힘들어서 나는 점심시간만 땡 하면 샌드위치를 사가지고는 항구에서 이브라힘을 만났다. 항구 앞에는 차를 파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고 시샤를 빌릴 수도 있어서 우리는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곤 했다. 일 스트레스 때문에 매일 썩은 표정으로 시샤까지 뻑뻑 피워대는 나 때문에 불쌍한 이브라힘은 눈치를 슬슬 봄ㅜㅜ

 

 

 


 

 

 


 

 

 

 

 

 

 

 

 

 

 

일이 힘들긴 했지만 싫었던 적은 없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하고 매일같이 항구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심신을 달랬고 무엇보다도 열심히 따라와주는 학생들이 기특하고 고마워서 힘이 났다. 차라리 수업시간에는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학생들은 날 너무나도 좋아해주었고, 나도 그런 학생들이 너무 좋았다. 말을 시켜보면 인사 한마디 못하고 고개만 흔들며 수줍어하던 학생들이 내게 먼저 달려와 굿모닝을 외치며 말도 안되는 영어로 장난을 칠 때 제일 뿌듯했다.

 

 

  

어느날 학생이 새로운 모자를 쓰고왔길래 뺏어쓰고 셀카 한 컷!

 

 

 

 

성인반은 고3 학생부터 할아버지 성별과 나이, 직업 불문 다양했고 아동반은 대체로 초등학교 저학년 대의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포트수단에 내 수업이 소문이 났는지 학생들이 점점 더 몰려들었다. 야시르는 본인의 두 딸을 아동반에 넣었고 할리드까지 야시르를 따라 자신의 딸을 등록시켰다. 학원의 투자자인 아부암나는 자신의 대학생 딸을 성인반에 등록했고 본인도 청강을 하러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라마르 학원의 선생인 수아드까지 청강을 들어왔다.

 

배우러 오겠다는 건 고마운데 난 도저히 저 많은 인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ㅡㅡ;게다가 인원을 한 반 당 25명 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놓고서 거의 40명에 육박하는 학생들을 한 반에 처넣다시피하고도 학생을 계속 받는 할리드 때문에 학생들은 자리도 없이 책상이나 바닥에 앉아 수업을 들었고 한 시간의 교재 수업 이후에 진행하는 토론시간은 거의 뭐 한마디씩 하면 끝날 정도...

 

야시르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지만 수업 몇 주가 지나가자 야시르는 언젠가부터 아예 학원에 오지 않기 시작했고 두 딸을 데려다 주고 데려갈 때만 얼굴을 비추다가 내가 얘기좀 하자고 하면 피곤하다, 밥 먹으러 가야한다 하고 내일 얘기하자고 해놓곤 내가 다음날 야시르를 찾기 전에 후딱 사라지곤 했다.

 

 

 

산넘어 산이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각종 숙제와 시험을 만들어서 프린트하는걸 사무실에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대체 왜????????????? 질적인 수업을 만들어보겠다는데 왜 싫어하지??????????? 싶었으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잉크와 종이가 아까워서. 하긴 그 많은 학생들에게 내줄 숙제와 시험을 다 프린트 하려면 좀 종이가 많이 들긴 했다. 할리드는 숙제나 시험이 왜 필요하냐고, 그냥 교재만 했으면 좋겠다고 내게 넌지시 불편한 마음을 비추었다. 며칠 후에는 내가 강의하는 걸 찍어 학원 광고를 제작할 것이라고 개강 전 (내 행색이 너무 거지같으니) 사준 청바지가 하나 있었는데 그걸 입고 오라고 했다.

 

 

나는 깨닫고 말았다. 이 사람들은 교육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외국인 강사가 가르치는 학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학생들을 끌어모으기 바쁘다는 것을. 나는 그저 영어 좀 하는 외국인으로 학원 돈벌이에 사용되는 얼굴마담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 혼자 의욕이 넘쳤던 것 같았다. 나만 혼자 수업다운 수업을 만들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개강 4주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추천수61
반대수4
베플k|2014.01.27 07:46
남자여 여자여 불법체류자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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