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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6. 대선으로 가는 길, 감동과 반전의 드라마 ⑹

대모달 |2014.03.26 14:59
조회 82 |추천 0

 

 

● 수구세력의 ‘차떼기 트럭’을 이긴 민초들의 ‘희망돼지 저금통’

 

선거전은 막판으로 치닫고 있었다. 상황은 노무현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꾸준히 이회창이 선두를 달리고 정몽준이 한 차례 1위를 차지했다가 2위를 지켰다. 노무현은 몇 차례 여론조사에서 3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10월 17일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김민석이 정몽준 진영으로 넘어가고, 민주당 ‘후단협’ 소속 의원들 중에서 다수가 이탈할 것이라는 불길한 소문이 나돌았다. 노무현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런데 또 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후원금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내 홈페이지에 접속해 10만원 내외의 소액 후원금을 보냈다. 이날 밤 들어온 후원금이 7,000만원을 넘었다. 다음 날은 1억원을 넘겼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김민석 의원의 탈당사건이 나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마음 어느 곳을 건드린 것 같았다. 이 사건으로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지지율이 상승흐름을 탔다.”

 

이는 대통령 선거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정치인들 사이에 이합집산은 어느 때라고 없지 않았지만, 이를 지켜보던 민중들이 특정한 후보를 위해 성금을 보내고 집단적으로 지지를 표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침내 노무현에게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 7월 하순부터 노사모와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 자원 봉사자들이 ‘국민후보 지키기 서명운동’에 이어 독자적으로 인터넷 정당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었다. 이들 중에는 시사평론가로 유명세를 타던 유시민이 절필 선언을 하고 노무현 지지 활동의 선봉에 서고, 영화배우 출신으로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며〈그것이 알고 싶다〉는 TV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이름을 날린 문성근 등 소장 명사들이 참여했다. ‘개혁국민정당’은 10월 20일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인터넷 당원 투표를 통해 노무현을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노무현에게 이들의 지지 선언은 천군만마의 원군이 되었다. 당내 기반이 흔들리고, 이에 따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5퍼센트까지 추락하는 위기상황에서 국민성금의 답지와 개혁국민정당의 지지 결의는 추락하는 노무현에게 든든한 동아줄이 되어주었다.

 

노무현은 개혁국민정당 발기인 대회에서 행한 문성근의 감동적이고 진솔한 연설에 눈물을 흘렸다. 험난한 정치역정을 사심 없이 걸어온 지난날의 알아주는 젊은 동지들의 결의에 감격하고, 문성근의 순정한 연설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여느 정치인들의 연출된 눈물과는 성분이 달랐다.

 

이 장면이 사진에 찍히게 되고, ‘노무현의 눈물’이라는 TV 광고로 제작되어 국민을 감동시켰다. 이 광고는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이매진(Imagine)〉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시작된다. 4분의 3을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담은 스틸 사진으로 구성하고, 유일하게 움직이는 영상은 노무현이 흘리는 눈물 한 줄기뿐이다. 대선 뒤 노무현은 가끔 “상상해봐. 천국이 없다고 해보면 쉬워. 우리 아래 지옥 없고 우리 위엔 오직 하늘.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산다고”로 시작하여 “날 몽상가라고 해도 돼. 하지만 나 혼자 아닌 걸. 언젠가 당신도 함께하길 바래. 그리고 세상이 하나로 살길”으로 끝나는, ‘혁명을 상상한 불온한 노래’로 예찬되는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2002년의 대선 역시 ‘돈 선거’였다. 역대 어느 대통령선거에 못지 않았다. 과거에는 정부 여당에 의해 자금이 조달되고 살포되었는데 이번에는 야당이 주역이었다. 이른바 ‘차떼기’란 유행어까지 나돌만큼 거액의 뭉칫돈이 한나라당 후보 측으로 흘러갔다. ‘차떼기’로 한나라당에 건네진 선거자금은 물론 LG를 비롯하여 삼성, 한화, SK, 현대 등 재벌 기업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회창 후보의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가 LG에 연락, 대선자금을 비밀리에 요청했다. LG는 1백억원이 넘는 현금 다발을 박스에다 넣고 트럭에 실어 ‘만남의 광장’ 주차장에 놔두었다. 서정우가 현금이 들어 있는 박스 트럭을 직접 받아서 운전해 한나라당 지하주차장으로 몰아가서, 현금 박스를 당 재정국에 입고시켰다. LG뿐만 아니라 여타 재벌들도 비슷한 수법으로 한나라당에 불법자금을 보낸 총액이 5백억원에 이르렀다. 이 사건 이후 한나라당은 ‘차떼기 당’이란 오명이 붙여졌다. 민심이 분노로 들끓는 가운데 서청원·최돈웅 의원 등이 구속됐다.

 

‘돈 선거’는 이회창 진영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노무현 진영에도 자유롭지 못했다. 대선 뒤 ‘돈 선거’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불법 자금조달과 선거자금 법정 한도 초과 사용이 확인돼 민주당의 정대철·이상수와 노무현의 측근 최도술 등이 불법자금 모금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무현은 12월 14일 4당 대표와 가진 회동에서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당선되더라도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천명했다.

 

노무현은 선거 과정에서 측근과 선대위 관계자들에게 선거비용이 쪼들리더라도 결코 부정한 자금은 끌어들이지 말라고 엄명했다. 대신 전통적 선거운동 방식을 크게 바꾸고, 선거자금 모금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꾸도록 했다. 국민이 후원금을 내고 대통령선거 후보를 지원하는 방식을 공개적으로 요청,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60억원 이상의 국민성금이 모아졌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상이었다.

희망돼지 저금통, 카드결재, 휴대폰모금, 희망 티켓 등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 진행된 모금행사는 기존의 선거자금 모금방식을 뛰어넘었으며, 미디어선거·인터넷선거·정책선거의 원칙과 결합돼 국민참여형 선거운동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한나라당의 ‘차떼기’ 트럭과 노무현의 ‘희망돼지 저금통’ 간의 한판 승부였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선거전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노무현에게 다가오는 듯 했던 행운의 여신은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11월 4일 후단협 소속 국회의원 11명이 무더기로 민주당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옮겼다. 며칠 뒤에는 또 몇몇 의원들이 뒤를 따랐다. 노무현은 큰 충격에 빠졌다. 헤어나기 힘든 패닉 상황이었다. 이회창의 지지도가 40퍼센트를 넘었다.

 

당내외에서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정몽준 측에서 노무현 측에 불리한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방안을 제시했다. 노무현은 이회창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몽준의 당선으로 연립정부를 세우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 크게 불리한 방안이지만 이를 받아들였다. 다행히 11월 25일 실시한 전문기관 두 곳의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이 우세했다. 또 한 번의 기적이었다. 다행히 정몽준 측이 결과에 승복하여 노무현은 단일 후보가 되었다. 몇 차례의 고비와 위기를 겪으면서 얻어낸 ‘단일후보’ 자리였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쉽사리 길을 터주지 않았다. 정몽준 측에서 국무총리, 국정원장 등 4대 권력기관장을 포함한 내각의 절반, 정부 산하단체와 공기업 기관장 절반의 인사권을 요구하고, 이것을 문서로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몽준은 노무현의 유세장에 나오기를 꺼려했다. 노무현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서로 믿으면서 정권을 공동운영하는 것은 단일화 정신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국가권력을 물건 거래하듯 나눌 수는 없었다. 한동안 줄다리기를 한 끝에 요구 수준이 낮아졌다. 문서가 아니라 말로라도 후보가 약속하라고 했다. 이것도 거절했다. 대통령은 글이나 말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글로 써줄 수 없는 것은 말로도 약속할 수 없다고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노무현은 원칙을 지켰다. 생애를 두고 유지해온 ‘일관된 원칙’이었다. 야합과 변절이 활개쳐온 정치권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이를 두고 선거대책본부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자금과 조직이 열세인 까닭에 5퍼센트 남짓 여론조사의 우위가 언제 역전할지 모르니, 문서가 아닌 말로 하되 비공개로 약속을 해주고 정몽준을 끌어들여 일단 선거에서 승리하고보자고 조언했다. 노무현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그것도 거절했다. 비밀리에 약속한 것도 문제였고, 그것을 나중에 지키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었다. 김원기 고문이 최후의 수단을 강구했다. 후보가 구두약속을 했다고 정몽준 씨에게 거짓말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선거가 끝난 후에, 사실은 후보가 반대했는데 후보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면서 자기가 모든 비난과 책임을 뒤집어쓰고 정계은퇴라도 할 테니 거짓말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나는 화를 냈다. “대통령후보가 거짓 술수를 허락하라는 말입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이 되어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실패한 대통령이 되느니 차라리 실패한 대통령 후보로 남겠습니다.˝ - 노무현,〈운명이다〉, 돌배개, 2010년, 197쪽~199쪽.

 

선대본부나 측근들은 답답했을 것이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지언정 일단 되고 보자는 것이 정치판의 생리인데, 대선 승리가 기로에 선 판국에 ‘원칙’만 고수하는 노무현이 답답하고 한심스러웠을 터이다. 그러나 원칙이나 정도를 벗어난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닐 뿐더러 그렇게 얻은 승리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게 노무현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차라리 대통령 안 하고 말지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는 후보를 아무도 말릴 재간이 없었다.

 

정몽준이 노무현과 함께 연설을 하되 연단에는 두 사람만 앉기로 하는 조건으로 막바지 유세장에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탈이었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2월 17일 서울 명동 공동유세 자리에서 사단이 났다. 단상에 오르면서 청중 쪽에서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고 적힌 피켓을 본 노무현은 즉흥적으로 “국민통합21에서 온 분 같은데 속도위반 하지 마시라”면서 “추미애, 정동영 의원 같은 좋은 정치인 몇이 있으니 경쟁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때 현장 취재기자들은 이를 “후보 단일화했다고 해서 다음 대선 후보가 무조건 정몽준이 되는 건 아니라 다른 잠재후보들과 마땅히 경쟁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했다. 사실 노무현은 자당의 정동영 최고의원 등에게 ‘덕담’을 하느라 했던 발언인데, 이것이 폭탄의 뇌관을 건드리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날 저녁 정몽준 측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어 단일화 철회를 선언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선거를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노무현은 정대철 선거대책위원장과 더불어 평창동의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 자택을 찾아갔으나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노무현은 허탈한 심경으로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하늘에 맡기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간단히 씻고 자리에 누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막 눈을 붙였나 싶은데 정대철 선대위원장이 여럿을 데리고 새벽에 집으로 들이닥쳤다. 내가 잠옷 바람으로 나타나자 모두들 어이가 없다는 듯, 이 판국에 잠이 오느냐고 하면서 허허 웃었다.”

 

“이 판국에도” 곤히 잠잘 수 있는 게 노무현의 참모습이다. 전에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장 선거 개표 때도 그랬다. 그는 권력 자체에 중독된 사람이 아니었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추구해온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을 뿐, 결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래서 남들은 잠 못 이룰 그 밤에 그만은 그토록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정몽준의 이탈은 결과적으로 노무현에게는 행운이었다. 만약 ‘공동정부’가 구성되었다면 참여정부의 행로는 난장(亂場)이 되었을 지 모른다. 김대중이 DJP연합으로 정권을 잡은 뒤 치른 홍역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다.

 

정몽준의 이탈에 반색한 신문이 있었으니, 역시《조선일보》였다. 즉각 1면에 대문짝하게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는 제하의 기사를 뽑아 투표일에 전국에 뿌렸다. 하지만 역풍이 몰아쳤다. 분노한 젊은이들이 휴대폰 통화와 문자 메세지를 통해 투표를 독려했다. 출구조사에서 노인층의 투표가 많은 오전에는 이회창이 다소 앞섰으나 오후 3시부터 젊은 층이 투표장에 몰려들면서 역전되기 시작했다. 개표상황도 비슷했다.

 

영남지방 개표가 먼저 진행된 초반에는 노무현이 4~5퍼센트 포인트 뒤졌으나 수도권 개표가 진행되면서부터 앞서기 시작하여 끝까지 우세를 지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집계 결과 노무현은 1,201만 4,277표(48.91퍼센트)를 얻어 1,144만 3,927표(46,59퍼센트)을 얻은 한나라당의 후보 이회창을 57만 980표(2.32%) 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이때 노무현의 득표는 대선사상 최고 득표였다.

노무현은 서울·인천·경기·충청·호남·제주 등 10개 지역에서 이회창을 고르게 앞섰으며, 영남 지역에서도 평균 20퍼센트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특히 호남 지역에서는 90퍼센트가 넘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영남 출신의 후보를 호남에서 압도적으로 지지함으로써 노무현은 영·호남 간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 대통령으로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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