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_^
저는 전직 지방신문사 편집부 기자였다가 갑작스런 청력손실(현재도 진행 중)로 인해 일용직 근로자가 되어버린 30대의 초입에 들어서가는 청년입니다.
길고 지루한 이야기겠지만, 참고 읽어주신 후 격려의 한마디만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이하 2014년 5월 8일에 국민신문고에 올린 제 글 전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 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 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어릴때는 이 말이 참 대단하고,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저 말처럼,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을거야.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9살이 된, 지금의 저는 대한민국의 기초라고 일컬어지는 헌법 제 1조 1항과 2항의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믿고 싶어도 믿는게 어려워진 탓이겠죠.
왜냐고요?
26살이던, 2011년.
갑작스럽게 저는 양쪽 귀의 청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사건은 현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고 먼저 찾은 병원에서는 「이명」이라는 말로 약을 처방한 후 상태가 악화된 것을 보고 1차례의 청력검사를 시행한 후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상적인 소통이 힘들어졌죠.
그러다보니 당시 다니던 회사를 사직하고 나와 무일푼 신세의 실직자가 되어 세상에서 제일 능력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하나뿐인 아들의 청력이 회복될 수 있을거라 믿으며, 사방을 수소문한 끝에 한의원에서 한방치료를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발병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치료를 시작했기에 「완치」는 그저 꿈과 같은 이야기였고, 치료 시작전 「완치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청력이 회복될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이 말이었죠.
그 말과 함께 시작된 치료.
언젠가는 완치가 되어서 예전과 같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더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생각과 함께 성치 않은 상태에서 2012년 4월 말, 그 무렵부터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근로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한 달, 그렇게 일년이라는 시간을 가진바 능력이나 재주가 뛰어나진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해왔습니다.
하지만, 일용직 근로자이기에 꾸준한 일거리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생활에 지장이 생겼고, 그 부분을 메꾸기 위해 선택한 것이 캐피탈사로부터 2차례에 걸쳐 1,200만원이라는 돈을 생활자금으로 대출을 받아 생활해가며, 일용직 근로자로써의 삶도 연명해갔죠.
그러다가 2013년 12월 말 경,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마저 어려워져 일을 그만둬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물류센터의 물량 감소로 인해 자연스레 쉬게 되었죠.
그와중에 나빠지는 청력상태를 조금이라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병원 검사와 일자리 구하기를 병행했지만, 소통이 어려운 사람에게 「일」을 한다는 건 밤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더군요.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일을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면, 소음이 극심한 곳인데, 그런 곳에서 일을 하는 경우를 병원에서 자제하라는 요청까지 받은 상황.
거기다가 날마다 떨어지는 청력.
불안하죠.
더는 예전의 생활을 꿈꾸는 건 어렵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다른 방법으로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한 번 찾아보자.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난 후 검사를 받아오던 병원의 담당 교수님께 장애등급에 대해 요청했지만, 몇년 전 변경된 장애등급 신청 조건에 모호하게 걸쳐있는 저의 청력 검사 결과를 보더니, 차라리 보청기 착용을 권유하시더군요.
그 당시나 지금이나 제 사정은 좋지 않기에 장애등급 판정과 보청기 착용을 모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실직자가 되어버린 저에게 있어 큰 바위처럼 느껴지던 잔여대출금 상환 납부의 문제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개인회생과 파산에 대해 알아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제 근로일수가 180일이 경과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제가 사는 곳 관할 고용지원센터에 2014년 1월22일에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을 했고, 2014년 2월5일 최초 실업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일을 하기엔 청력이 좋지 않아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으며, 간간히 채용사이트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보면서 제 성향에 맞거나 혹은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직종의 회사들에 이력서를 넣어가며 구직활동을 진행했고, 2014년 4월28일로 구직활동을 마감했습니다.
2014년 4월 30일.
최종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상담을 받기 위해 관할 고용지원센터 실업급여 담당 직원 분과 싱담을 하던 중 「확인을 해보니 올해 1월과 2월에 각 3일씩, 총 6일을 근로하신 것으로 나와있는데 왜 신고를 안하셨죠?」라고 하시더군요.
기가막히기도 하고 어이가 없는게 매 달 구직활동을 하면서 면접 때 마다 들었던 이야기가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운데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는 바보겠습니까?
더불어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전 부터 더 악화된 청력의 상태 호전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요양을 하던 제게 일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될까요?
아무튼간에 저도 모르는 제 이름으로 올라온 6일치의 고용보험 신고내역과 함께 부정수급과 담당자 분과의 면담 후 도움을 받아서 진정서 비슷한 것을 제출까지 마쳤습니다.
그 후 갑갑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걸어서 집으로 향하던 중 전에 근로하던 물류센터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그래서 「12월 말 이후에 단 한번도 나가서 일을 한적도 없고, 일당을 받은 기억도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으나 그쪽에서는 「네가 일을 했으니까 고용보험이 신고가 된거지. 네가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미쳤다고 신고하겠냐?」는 식의 답변만 되풀이 하면서 몇십분을 통화했습니다.
그러다가 연휴가 끝난 5월7일 오후에 고용지원센터 부정수급과 담당자분께서 전화를 주셔서 통화를 하다가 제가 요청한 진정에 대해서 일하던 곳에 문의해 보니 「일을 한 것이 확실하며, 그와 관련된 서류를 보내주겠다. 또한, 본인이 근로한 것에 대해 인정까지 했다.」라고 하시면서 맞느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그래서 「청력이 좋지 않아 소음이 심하거나 큰 울림이 나는 곳을 피하라는 의사 경고까지 받은 사람이다. 더불어서 현재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내가 만약에라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1월과 2월에 근로를 했었다면 자진해서 신고했을 것이며, 실업급여를 신청한 날 부터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근로를 하지 않았으며, 근로를 통해 얻은 수익은 단 한 푼도 없다. 이번 일은 나와 정말 무관하고 억울한 일이다.」라고 밝혔습니다만, 결국에는 원론적인 「서류가 없으면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반복하신 후 통화를 마무리 했습니다.
예.
이런 상황임에도 제가 이나라의 헌법 제 1조 1항과 2항의 명시된 문구를 믿을 수 있을까요?
아니, 이나라의 최고통수권자라는 대통령부터 각 부처의 장관들과 국회의원들까지.
그 어느 누구도 약자의 호소와 진실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돈이 없고, 빽이 없고, 권력이 없고, 명예가 없어서...
한창 힘을 내어 나아가야 할 나이에 갑작스럽게 청력을 상실해가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살도록 두는게 옳은 겁니까?
아니, 강한 자의 이야기에는 간이며, 쓸개며, 다 빼줄 것 마냥 시늉하면서.
왜 저와 같은 사회적 약자 또는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힘없는 국민을 사지로 몰고 계십니까?
그게 이나라의 정부고, 이나라에 사는 국민에게 주어지는 권력입니까?
만약 그런게 권력이라면 힘 있는 자 보다 힘 없는 자의 목소리를 더 대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이나라의 현주소라면...
제가 죽고 난 이후의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선례를 남기시렵니까?
제발 힘있는 자의 목소리만 듣고, 그들의 목소리만 대변하지 마시고, 저처럼 힘없고, 국가의 도움이 너무나 필요한 사람의 힘과 입술이 되어 주십시오.
제발 힘없는 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부, 국무의원, 장관, 국회의원이 되어 주십시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