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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3년차 지잡대생의 이야기

케이 |2014.05.17 18:35
조회 13,737 |추천 19
안녕하세요.
저는30살 남자 직장인입니다.
톡을읽다보니 취업이 고민인 인생후배들이 많아 보잘것없는 저의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자 합니다.

다소 지루하고 두서가없더라도 양해바랍니다.

우선 저는 지방사립대 출신입니다. 그것도 무려 취업이 바늘구멍에낙타가 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 국.문.학.과!
지병이있어 군대는 면제를 받았고 한번의 휴학도없이 2008년 3.14의 학점으로 졸업을 하게됩니다.

대학을 다니며 학원에서 알바를 했기에 교사의 꿈을 갖고 동대학 교육대학원에 지원하였으나 대기2번이라는 초라한 성적을받고 기다리던 중이였습니다. 마침 지인께서 모중공업의 하청기업 플랜트 현장소장으로 계셔 놀지말고 현장에서 일을 해보는것이 어떠냐며 제안하셨고 고민하던저는 어차피 대학원을 합격하더라도 임용고시에서 또 힘들어질것이 두려워 3년만 바싹 벌고 장사나하자는 가벼운맘으로 아프리카 오지에 위치한 현장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제가 어떤인생을 살게될지 무슨일로 먹구살지 몰랐으나 이 날의 선택이 오늘은 있게했던것 같네요.

현장에서는 기계시공 팀의 문서담당으로 근무했습니다.주로 검사신청서류를 발주처에 띄우고 일일보고서,주간보고서,월간보고서 등을 관리했습니다. 이때의월급은 280만원정도였습니다. 현장이라는 특수성으로인해 또래보다는 많은 월급을 받았죠. 1년4개월 정도 근무했을 시점, 영어에 대한 목마름과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했을때의 취업이점에 눈이 멀어 퇴사를 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게됩니다.

이때가 참..아쉽네요. 군대면제로 번 2년 중1년을 고스란히 낭비한 시점이였습니다.

2010년 8월 회사를 나와 4개월정도 빈둥대다 2주만에 워킹비자를 받아 호주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영어는 어느정도 한다 생각하였으나 외국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더군요. 이때의 저는 딸기농장-카지노, 청소-카지노, 데모도-카지노를 반복하며 무려 300만원이라는 거금을 고스란히 호주정부에 바치고 2010년 12월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영어가 조~~금 늘고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점이겠죠?

그렇게 귀국후에는 또 한 2개월놀고...가족의 추천으로 국내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취업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전 취업학교란 곳이 사회부적응자들 ,루져들만 다니는곳이라 생각했는데..아니더군요.정말 별사람들이 다있는곳이였습니다. 국내 중견건설사를 다니던 사람, 카튜사를 나온사람, 토익고득점자, 석사출신 등등 제가 생각지도 못한 능력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저는 또어영부영 1년이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2011년 11월 취업담당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국내 굴지의 엔지니어링사에 면접을 보게됩니다. 나중에 듣고보니 추천사유는 그나마 영어로 의사소통이되고, 뻔뻔할만큼의 자신감이 맘에 드셔 추천을 하셨답니다. 다행히 다음해 1월 계약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긴했지만 대기업인현재 회사에 입사하게됩니다. 이때의 제 월급은 200만원입니다.항상 같은 시기에 입사한 또래 공채들과 비교하고 같은일을 하나 돈은 더많이 받는 불합리함에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시기입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척 하고 뒤에서 그들을 따라잡기위해 엄청난 노력을했습니다.

그결과, 현재는 계약직에서 준계약직으로 진급하여 320가량의 세후 월급을 받고 성과금포함 5400이라는 어마한 금액을 받고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직 전환, 진급이라는 험난한 산이 남아있긴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걸 알았으니까요. 남들보다는 느려도 이 두발로 천천히 올라갈테니까요.

여기까지가 저의 이야기입니다.

후배여러분, 여러분은 아직 젊습니다.
늦었다포기하지마시고 어떤길이던 찾으시기 바랍니다.
모로 가던 서울로 가면된다는 속담처럼 빙빙돌아온 인생이지만 어쨌든 지잡대생에서 사대문 근무하는 저같은 사람도 있으니 항상 노력하시어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추천수19
반대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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