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어디가~? 가지마 형!... 혀엉~... 혀어엉~~~... 으으.. 흑흑흑...... "
내 동생... 기형이가 또 운다.
못말리는 울보에 언제나 내뒤에만 꼭 달라붙어서는 항상 눈물젖은 그 특유의 눈빛으로
나만을 바라보던 연약하고 소심한 내 동생 녀석...
지금 그 녀석이 또 나를 바라보며 그칠줄 모르는 울음보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성인인데 왜 저렇게 우는거지?
그러고보니 눈안으로 들어오는 동생의 옷차림이 이상하다.
노란색 체크남방에 곤색반바지, 무릎까지 올라오는 하얀 양말과 바가지머리...
바가지머리? 그러고보니 동생의 얼굴이 다른의미로 너무나 낯익다.
그리고, 내손에 들린 이 사진. 이건... 내 아버지의 사진.
그럼 여긴.. 여긴 그때의.. 그곳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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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때, 박기자의 부모님 두분은 모두 세상을 등지셨다.
그것도 끔찍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어버리신채,
어린나이에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나약한 심성을 가진 쌍둥이동생 기형이만을 남기신채 말이다.
사건의 범행동기는 어떻게보면 지극히 평범한(?) 절도사건이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속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심한학대를 받던 한 남자아이가 절도죄로 결국
소년원에 가게되고 계속해서 순환하는 범죄의 고리를 끊지못한채 감방신세까지 지게된후,
기껏 출소해서는 병든 노모를 위해 무엇인가 해보려고 했다는게 그럴듯하게 사는듯 보이는
박기자아버지의 집을 낮에 점찍어두고서 절도행각을 벌이게 되었다는......
다소 물러터진 신파극스토리를 답습하는듯한 내용의 진술이 이 사건의 범행동기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게 언제나 그렇듯이 결국 범인은 도망치지 못했고
예정에 없었던 사건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게다가 범인은 정신질환병력이 있는 남자였다.
결국, 그냥 일반적인 절도사건으로 남을것 같았던 그 사건은 잠결에 깨어났다가 엉겁결에
범인의 흉기에 찔려죽게된 박기자아버지의 죽음과 그 피를 뒤집어쓰고서는 한순간에 광폭한
악마성을 지니게 되어버린 범인의 정신장애가 불러온 [일가족 잔혹살해사건]이라는
그 당시에 사회적인 충격으로까지 남게된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끝나버리고야 말았다.
다행히 '이형과 기형', 두 형제는 때마침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떠났던터라 화는 면했지만
박기자의 아버지와 자다가 일을 당한 박기자의 어머니, 그리고 뒤늦게 태어나 한참을 사랑받던
5살박이 어린 여동생은 처참하게 찢겨진 흉측한 시신으로 두형제의 품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다음은... 이런일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일의 수순을 밟았다.
경찰관들이 찾아오고, 학교 담임선생님이 찾아오고...
멀리산다고 왕래도 드물었던 친척들이 장례식때가 되어서야 얼굴을 들이밀고...
그리고는 모두 연습이라도 한냥 어린 박기자의 손을 붙들고서는 눈물을 삼키거나 울어댔다.
하지만... 박기자 아니, 이형이는 울지않았다.
아니, 울수가 없었다.
그것은 부모님이...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어주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몸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내일이면... 아니, 지금 잘 감기지않는 이 두 눈꺼풀만 꼭~ 하고 감았다가 뜨고나면
침대에서 막 일어난 부시시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입맞춤을 해주실 엄마와
식탁에서 신문을 보다가 씨익~하고 날보며 웃어주실 아빠, 그리고 그옆에 따로 마련된
작은 식탁의자에서 오빠~ 하고 귀엽게 옹알거릴 내 귀여운 여동생, 혜영이가 있을것 같았다.
즐거운 우리집...
갑자기 이형이의 머리속에서는 수학여행가기전날 가족모두가 불렀던
동요의 제목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가사까지...
한참후에... 엄하지만 항상 다정하셨던 아버지사진을 들고 나서면서
옆에서 어머니 사진을 든채, 울음을 삼키고있는 동생 기형이를 보았을때에도
박기자는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다만, 왜 다들 이렇게 줄지어서 걸어가고 있는것인지...
왜들 나지도 않는 눈물을 짜내며 슬퍼하고 있는것인지...
이형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아니, 알고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박기자의 옆에서는 여전히 박기자의 어린 쌍둥이동생 기형이가 그치지않는
울음소리와 함께 박기자의 얼굴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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