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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자 동물농장을 보고 - 생명 존중에 대한 집단의식의 성장을 기원하며

바단 |2014.08.25 06:08
조회 1,829 |추천 27


초등학생이었던 13살, 동네의 보신탕 골목을 지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좁은 철창 안에 반죽처럼 얽혀 있는 개들을 보게 되었고, 그 중 한마리의 눈빛을 보고는 한참을 멈추어 서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개의 눈빛은 그야말로 텅빈 죽음과도 같았으며, 살아 있는 생명체가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본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을 안고 집으로 걸어가며 깊은 경각심을 느꼈는데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지요.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 경각심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본격적인 글을 쓰기에 앞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 글은 '개고기 식용 찬반 논쟁'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 어떤 분들은 서두만을 읽고 '여기에 또 비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편협한 사람이 있군. 내가 댓글로 이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지 깨닫게 해주어야 겠어'하며 불쾌감을 느끼셨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이러한 비슷한 논지의 글 아래 달리는 댓글의 성격이 어떠한지 이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건데, 이 글은 개고기를 먹으면 된다, 안된다에 대한 글이 아니며 따라서 개고기를 식용하시는 분들을 비판 혹은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물론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이 옳다는 편협함으로 남들을 설득시키려 한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교련 시간, 조를 짜서 토론 실습을 하는데 저희 조의 주제가 마침 '개고기 식용'이 되었습니다. 당시 저를 제외한 모든 조원들은 개고기 식용 찬성쪽이었고 홀로 반대하는 입장에서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준비했지만 나의 목적이었던 '설득'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한명이라도 나의 의견에 따르게 하고 싶었던 저는 그 수업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아이들에게 왜 개고기를 먹으면 안되는지 열심히 설명(강요)을 하고 다녔죠.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개를 친구로 생각하니까 안먹는거야. 그치? 말을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말을 안먹겠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개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은 개를 안먹으면 되고, 말을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을 안먹으면 되고, 소나 돼지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은 소나 돼지를 안먹으면 된다는 거야.'



순 간 뒷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저는 한참동안이나 할 말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맞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치킨을 아주 맛있게 먹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닭을 친구로 여기고 닭을 안먹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닭을 친구로 생각한다고 해서 나에게 치킨을 먹지말라고 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제껏 개를 먹으면 안되는 주된 이유로 들었던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개는 풍부한 감정을 갖고 있다' 이것은 그저 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닳은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며, 판단과 선택은 자기 자신의 몫이라는 것, 타인이 다른 사람의 선택이나 판단을 대신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최초로 깨닳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입니다.
그 사건 이후에 저는 한참동안이나 혼란스러웠던 것 같네요.^^


몇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이야기를 해준 친구를 동창 모임에서 다시 보게 되었고, 그때의 일을 이야기 하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자, 이제 제가 정말로 '개를 먹으면 안됩니다. !!' 라는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 졌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정체성과 가치관이라는 것이 형성되기 전인 6~7살 시절. 유난히 잠자리 날개를 뜯고 꼬리를 자르고 꿀벌을 잡아 고통스럽게 죽이는 그런 소수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일종의 공포였으며, 그 아이들 근처로는 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컸는지, 성인이 된 지금도 나의 생존에 아주 불편함을 주지 않는 이상 저는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죽이는 것을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유일하게 죽이는 개체는 모기인데, 사실 인간적인 마음으로 너무 짜증나고 불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외에 파리나 바퀴벌레 등은 불쾌하긴 하지만 특별히 나에게 직접적 해를 끼치지 않고 바퀴의 경우 내 공간을 청결히 하면 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죽이지 않습니다.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같은 작은 생명체들도 혹시나 나도 모르게 죽이게 될까봐 주의하며 다니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도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의 일반적으로 많이 식용되는 고기를 먹습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고기가 없는 식생활은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식용으로 쓰이는 동물들이 만들어내는 달걀이나, 우유등도 즐겨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잡식성동물인 내가 육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먹는 그들을 함부로 대하고 학대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요.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공장식 도축시스템에서 많은 닭과 소, 돼지들이 고통을 받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인간과 동물이 균형있게 공존하기 위하여  더 나은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일 한국에서 개를 도축할 때 하는 것 처럼, 소와 돼지, 그리고 닭들에게 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 살아 있는 동안 말도 안되는 것들을 먹고 동료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며 잦은 직접적 학대를 당하고 항생제에 온몸을 혹사 당하다가 잔인하게 맞아 죽는 것을 보게 된다면 - 육식을 끊고 돌연 채식주의자로 변할 수 있을까요?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논점이 존재합니다. '개인적 경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에게는 개와 고양이와의 깊은 유대를 느꼈던 풍부한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볼 때, 제 마음은 찢어지게 아픔을 느낍니다. 이것이 '공감대'라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에게는 닭과 소와 돼지들에게 개와 고양이에게 느끼는 것만큼의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한국의 도축 개들처럼 고통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더라도 그 좋아하는 육식을 끊을 만큼일지는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도축환경을 반대하며 살아 있을 때 좀더 나은 환경과 죽음을 당할 때 (인간을 위해 고기를 내어주는 그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최소한의 생명존중 의식을 촉구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고기가 될 것이고,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생명이라고 해서 그 생명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잡식성동물인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주고, 그렇게 흙이 되고 또 그 흙에서 자라는 풀을 다른 동물들에게 제공하며 이렇게 순환하는 고리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고마운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나온 것 같습니다.


개를 드시고 싶으면 드세요. 제가 돼지를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식용개 도축 환경에 대한 유감의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좀더 나은 환경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당장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해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처참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며 비인간적으로 죽어간다는 것에 인간으로써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옳지 않은 일'이라는 의식적 마음으로 나은 환경이 오기를 바래주세요.



아무리 여러 단체가 개고기 식용 반대를 하고 정부가 동물보호법을 강화하고 한다 해도, 개인의 의식의 변화가 없는 한, 처참한 그들의 환경은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의식이 모여 집단 의식이 되고, 어느 한 집단 의식이 충분히 단단해 졌을 때 외부로부터의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나라의 위대성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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