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서울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이 다시 수복한 상태였다.
그러나 파괴된 도시 서울에는
곳곳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버려져 있었다.
브리이즈델 중령.
그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공군 군목으로 자원하여
당시 서울에 와 있는 상태였다.
그런 브레이즈델 군목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두세 살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길거리에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아이는 몇 주 뒤 배고픔에 거의 죽어가는 상태가 되고 만다.
마음이 아픈 것을 느낀 브레이즈델 중령은
그 때부터 비서인 스트랭 하사와 함께 거리에 나가
아이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고아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마침내 무려 1000명 가까운 숫자에 이르게 된다.
브레이즈델 중령은 서울시장 이기붕을 통해
고아들을 수용할수 있는 학교 건물을 얻고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 어린이들을 보살핀다.
때는 전시였고 어린이들을 먹이고 입힐 식량이나 의복을
어디서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미공군 병사들은 거리에서 고아들을 데려오는 일이나
그들의 봉급에서 100달러, 50달러 헌금하는 것도
기쁘게 여기며 고아들을 돕는다.
하지만 이런 고아들에게 큰 위기가 닥친다.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고
서울이 그들에 의해 재점령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50년 12월, 중공군은 서울 북방에 이르렀고
두려움을 느낀 시민들과 군인들은
서울을 포기한 채 퇴각하기 시작한다.
미공군 사령부도 이미 대전으로 후퇴한 상황이었다.
서울의 텅 빈 거리에는 브레이즈델 군목과 1000여명의 고아들,
그리고 그들을 지키던 100여명의 봉사자들만 남은
유령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브레이즈델은 이들을 버려 두고
혼자 피신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다급한 상황 그 어디에서도
이들을 도울수 있는 길은 없어 보였다.
다행히 한 정부 기관으로부터 인천 부두에 고아들을 수송할 수 있는
배를 마련하겠다는 연락을 받지만,
막상 3일 밤낮을 수고하여 고아들을 데리고 가보니
100명도 탈수 없는 낡은 고깃배에 불과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2월의 매서운 추위 바람 속에서
그날 밤 고아들은 8명이나 죽어간다.
공산군의 서울 진입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고아들의 생명은 경각에 달려 있는데
브레이즈델 중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가 막힌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미공군 작전 책임자인
로저스 중령을 만난 것이다.
이 시각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는 로저스 중령에게
아이들을 위한 비행기편을 빌다시피 구한다.
그러자 로저스 중령은 마침 미국에서 출발해
오키나와에 도착해있는 16대의 수송기가 있음을 알려주며
다음날 아침까지 아이들을 김포 공항으로 데려 오면
태워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가진 한 대의 트럭으로 아이들을 후송하려면
최소한 3일은 걸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공군 수송부에 협조를 요청하는데
공군 수송부의 차량은 끝내 인천항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때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난다.
시멘트 하역 작업을 위해 미 해병대 차량들이 나타난 것이다.
브레이즈델 중령은 해병대 병사들에게 엄하게 명령한다.
“상부의 명령이다.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고아들을 나르라”
그러나 해병대 책임자는 브레이즈델보다 한 계급이 높은 대령이었다.
하지만 대령은 브레이즈델의 사정을 듣고
마음을 돌이켜 차량과 병력을 지원하고
일천 명의 고아들은 다음날 아침 김포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유모차 공수작전'이다.
그렇게 제주도로 피신한 1059명의 아이들은
'보화원'을 운영하고 있던
'황옥순' 여사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놔 두고 후퇴하라는 명령에도
차마 아이들을 버릴 수 없어 서울에 남았던 중령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강제로 전역하게 되었다.
당시에 군법회의에서 브레이즈델 중령은
"누군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내 일이 죽음에 내몰린 아이들을
죽게 놔두는 일이라면 바로 전역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 아이들을 구한 브레이즈델 중령의 이야기는
같이 아이들을 수송했던 공군 조종사
'딘 헤스' 대령의 이야기로 잘못 알려졌고
심지어 '전송가'라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그럼에도 브레이즈델 대령은
영화개봉의 수익금이 고아들을 돕는데 쓰인다고 해서
아무런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