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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성장해나감을 느끼다.

reform |2014.09.16 22:00
조회 131 |추천 1

24살 남자입니다.

군대 얘기가 주를 이루는데,

 

전역한지 1년이 조금 안된시점에서 군대 간부에게 청첩장을 받으니

기분이 참 묘해서, 글을 쓰게 됐네요.

 

그다지 평범하지는 않은 이야기입니다.

지루하진 않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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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꽤 잘했었던 나, 그리고2번의 수능을 망친 나는

 

하늘 높이 올라가 있는 친구들, 흰가운을 입고 다니는 친구들에게

 

느꼈던 열등감을 잊기 위해서 무언가 집중할 곳이 필요했다.

 

나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 포커를 쳤었고, 하우스를 다녔었고,

 

그 곳에서 나쁘지 않은 수익(?)을 거두고 있었지만,

 

500에 가까운 돈이 하룻밤만에 사라졌다. 하룻밤만에 모든 것이 없어져버렸다.

 

그리고 난, 몇개월 후 어떠한 목적도 목표도 없이 단지 더이상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군대에 입대를 했다.

 

밤낮이 바뀐 생활로 망가진 몸, 눈앞에 아른거리는 카드,  잃은 돈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있

는 나에게 군대는 당연히 견딜수 없는 곳이었다.

 

초점 없는 눈, 영혼없는 표정은 나를 싸가지 없는 신병으로 만들어 주었고,

주임원사와 면담 끝에 나는 비교적 일찍 첫휴가를 나갔다.

 

나는 복귀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머릿속에는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이 있었다.

챙길것만 챙기고 나오자는 생각을 하고, 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30분 뒤, 나는 집안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항상 내맘대로 였고, 부정적이었고, 화를 내는 나를 아무런 말도없이

 

받아주었고, 위로해 주었으며 따뜻함으로 감싸안아 주었다.

또한, 개판인 성적, 도박으로 인한 소액 대출은 이미 마음속에 묻어두셨다.

 

울다 지쳐 자고 일어난 몇시간뒤, 감정이 사라지자 현실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군대에서 중요한 축구도 못했고, 노래도 잘 못했으며, 사격을 비롯한 훈련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남들이 가지지 않은 걸 가지고 있었다.

관찰력, 그러한 관찰에서 나오는 추론, 포커페이스.

 

또한, 하우스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쌓아오고 있었던 잡지식들. 그리고, 잔머리가 있었다.

나는 부대안을 하나의 크고 성기같은 포커판이라고 생각을 했고, 게임을 한다고 생각했다.

 

부대 복귀후, 맞선임부터 전역3달전 선임들까지의 신상을 파악했다.

나이, 대학, 고향, 관심사, 성격, 친한 선후임, 흡연여부, 가치관 등에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

 

했다. 그러면서, 쉬운쪽, 평범한쪽, 성기같은쪽으로 구별해 나갔다.

(가치관이라함은 주관이 있고 말이 통하는 사람인가, 생각이 없는 사람인가를 말한다)

 

그들이 하는말,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관찰력, 그러면서도 당연히 군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말 열심히 배웠다.

 

어느정도의 리스트가 만들어지면서 나는 실천에 옮겼다. 맞선임부터 차근차근히.

수능공부를 하고 있는 선임에게, 선뜻 휴가나가거나 면회가서 모의고사 문제를 갖다 주기도

 

하였고, 종교에 대한 얄팍한 지식이 있던 나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종교참석을 가면서 종교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였다.

 

또한, 여행을 좋아하는 선임 근처에 일부러, 론리 플래닛을 펼쳐놓기도 하였고,

나 역시 흡연자였기에 휴가갔다올시 2보루 정도 가지고 와서, 흡연하는 선임들에게 한갑씩 나눠주

 

기도 하였다. 물론, 매번은 아니었고, 보통 다른 담배로 한갑을 받는다.

(별거 아니지만, 군대담배보다 양담배를 군대에선 훨씬 더 좋아한다)

 

그렇게 나는 어느덧, 싸가지 없는 신병에서 개념있고 열심히 하는 후임으로 바뀌어나갔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군대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은, 짬이 되는 사람중 남성적인 사람, 즉

 

축구 헬스장 티비 후임괴롭히기 여자밝히기 이 5사이클을 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과는 그 어떠한 공통점도 없었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좀더 넓게 보면서 작은걸 버렸다. 그당시,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실세인 선임에

게 축구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결국 그 선임은 나에게 축구를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열심히 축구를 배웠다.

하지만, 나는 원채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운동신경도 좋지도 않았다.

 

결국, 그 선임은 1달인가 2달만에 축구를 가르켜 주는걸 포기하고,

나를 축구열외를 시켜주었다. 해도 안된다고.

 

얼떨결에 내가 바라던 것을 얻었다, 그 선임과 친해지는 것과 더불어 축구도 빠지게 된것이다.

이때까지의 기간이 5개월 이었다. 입대한지 7개월.

 

하지만, 몇몇 선임들은 여전히 지랄 같았고, 나는 이 선임들을 제거(?)하기로 생각한다.

나보다 후임을 혼낼때, 내가 중간에 끼어 들어서 쉴드쳐주기도 했었고, 교묘히 선임과의

 

갈등을 유발시키기도 하였고, 간부들과의 관계도 악화시켰다.

(이부분은 너무 자잘해서 생략)

하극상이라 생각될지도 모르는 행동들도 있었지만, 그 선임들은 결국 나한테 별말하지 못했다.

 

그 몇몇 선임만을 제외하곤, 나는 선임들에게 매우 잘하는 후임이었기 때문이다.

원채, 그사람들이 또라이들 이었기에, 그들의 말은 무시되었고, 그 또라이 선임들과

 

친했던 몇몇 사람들과만 지냈고, 전역할때 대부분 아주 쓸쓸히 전역을 했다.

그리고 나는, 후임들 간부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만의 방법이 있었다.

 

강한 패를 들고, 슬로우 플레이를 하고, 약한패로 블러핑을 하듯이

잘못했다고 해서 항상 혼내지 않았다. 때로는, 잘못을 했을때 아무말없이

 

PX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후임이 좋아하고 관심있어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기

도 하였고, 때로는, 크게 혼내기도 하였다.

 

또한, 나는 후임들에게 나이가 낮든 높든 무시하지 않았고, 거의 항상 예의를 갖추는

단어를 선택했다.

(예를 들어서, 동수야 이것좀 해주면 안될까? 라든지, 너가 이것좀 해줬으면 좋겠어라든지)

 

그러면서도, 개념없는 후임에게는 그 어떠한 예의도 갖추지 않았고, FM 대로 했다.

하지만, 그러한 후임들에게 단 한번도 찔려본 적이 없다. 

(내가 있을때는,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왜냐면, 후임들 사이에서도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에, 또한 당사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찌른다고 해도 신빙성과 설득력이 없었다.

 

간부들에게는 한가지 논리로 대했다. 작은 것을 주고 큰것을 얻는다.

선임들에게도 썻던 방법이지만, 간부들에게는 내가 무언가 해줄수 있는게 많지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군대를 떠나서는 한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였고,

한부모의 어머니였다.

 

자식이라는 강력한 주제를 끌어낼수 있었으며, 나역시 공부를 잘했기에 겉으로보기엔

모범생이고, 더군다나 아버지가 선생님이었기에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또한, 이쯤이, 상병이 꺽인 시기였고, 나는 분대장이었다.

이쯤되자 나는 군대안에서 왕이었다. 오전에 출근하고 오후에 생활관에서 자도 됬었고,

 

얼마남지 않은 선임들, 후임들, 간부들 다 내 손아귀에 있는 것 같았다.

전역할 날이 다가오면서, 진담반 농담반 전문하사 할 생각이 없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았고,

 

너는 진짜 회사 들어가기만 하면 회사생활 잘할거야 라는 말도 들었으며,

군대 간부가 전역하기전에 폰도 아주 싸게 구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전역날이 다가왔고, 그날 나는 주임원사님과, 팀 간부분들에게

각각 백화점상품권 5만원 10만원을 받은체, 게이트를 통과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군생활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이러한 행동들을 했던 시발점은 내가 편하게 위해서 내가 잘 생활할수 있기 위해서,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죽지않고 군대라는 곳을 빠져 나와서 제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였지만 어느새 그러한 행동들을 즐겼으며 발전시켰고, 결국엔 상상하지도 못한 많은 것들을 얻었다.

 

또한,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칭찬을 들을 일이라는게

참 씁쓸하기도 하다. 내 자신의 색깔을 다 버려가면서, 맞춰주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그런말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쨋거나, 나는 그곳을 나왔고, 지금은 평범한 복학생으로

학점을 반드시 매워야 하는 현실, 집 학교 도서관 3사이클을 무한반복하는 평범한 대학생

 

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군대 2년동안을 돌아보면 참 많이 변했다.

 

나는 3년전 포커와 도박을 하면서 아무런계획없이 살면서,

그 흔한 캠퍼스 축제, 여자친구, 동아리, 과생활같은 것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것보다 훨씬 재밌고 돈을 가져다주는 포커가 있었기에.

돈으로 행복을 얻었고, 돈으로 파멸했던 나는,그로부터 2년후 돈에 대해서 열심히 알아보면서,

 

돈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게 되었고, 경제에 관심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내 진로까지

바꿨다. 열등감은 자신감으로 바뀌었으며, 자만심은 자존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것보다도 더 나쁜건, 그 잘못된 선택에서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삐뚤어진 청소년이 어린마음에 팔에 호랑이 타투를 새겼다. 정상적인 직업을 가

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싶다면, 그 타투는 엄청난 패널티가 될것이므로, 그 아이는 타투

를 지워야 할것이다.

 

거기서 그아이는, 함부로 어떠한 일을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기 전에 한번더 생각해봐야한

다는 것을 호랑이가 없어진 팔을 보면서 느낀다면 그 아이는 그걸로 된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선택을 잘못했을때, 그 잘못된 선택을 올바른 선택으로 바꾸고, 그 잘못된 선택에서

진정으로 무언가 얻는 것이 있다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잘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성장을 해나감을 느낀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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