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월 16일, 만 27살의 나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시인 윤동주. '별 헤는 밤' '서시' '참회록' 등 주옥같은 작품들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기억되는 그이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여전히 말끔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형무소에 수감된지 1년이 채 되기 전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윤동주. 사인은 뇌일혈로 기록돼 있다. 학창시절 축구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건강했던 그의 죽음에 대해 세상은 일제 치하에 자행됐던 이른바 '생체실험'에 희생된 것이라 끊임없이 말한다.
해방 직전 일본 측이 증거 인멸을 위해 형무소 및 경찰서와 관련된 문서들을 일제히 소각한 까닭에 윤동주의 죽음은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으나, 다양한 정황상 그가 형무소에서 지속적으로 맞은 의문의 주사로 인해 사망했으리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제작진이 윤동주의 고향인 중국 용정에서 만난 그의 친동생 윤혜원(86)씨는 "평소 오빠는 날씬하고 건강이 좋았다. 앓는 법이 없었다"면서도 "아버지가 오빠 시체를 가지러 갔을 때, 일본인 간수가 말하기를 '하루만 늦게 왔어도 시체를 실험용으로 가져갔을 것'라고 했다더라"고 증언했다.
이미 사망한 그의 시신이 실험용으로 쓰일 이유가 있었던 걸까. 생체실험 의혹이 커져가는 가운데 당시 윤동주와 함께 수감돼 있던 고종사촌 故송몽규는 윤동주 일행에게 '저 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됐고, 동주도 이 모양으로...'라고 말했다고. 강제로 의문의 주사를 맞은 그 역시 3주 후 옥사했다.
당시 윤동주와 함께 수감돼 있던 국가유공자 故김헌술 씨의 저술에 따르면 윤동주는 늘 얼굴이 붉고 기침을 했다고. 과연 윤동주가 맞은 주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일본의 문학평론가 고노 에이지 씨는 당시 규슈제대에서 실험하고 있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영화화 되는 등 한때 이슈화됐던 일본 생체실험(마루타)에 대한 자료가 미국 국회도서관에 요코하마 전범 재판기록을 통해 남아있는데, 그 안에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제대에서 실시한 미군 대상 생체실험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이를 통해 윤동주의 죽음에 관련된 단서를 추론할 수 있는 것.
1945년 미국 비행기가 추락, 11명이 포로로 붙잡혔으며 이중 6명에게 규슈제대에서 생체실험이 진행됐다. 산 사람의 혈액을 뽑아내고 그 대신 바닷물을 혈관에 주입한 것. 당시는 태평양 전쟁 말기로 수형용 혈액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포로 및 수감자들이 혈액 채집의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윤동주의 시신 기증이 예정됐던 장소 역시 규슈제대였다.
생리식염수 대신 바닷물이 주입된 정황을 토대로 한다면 윤동주에게 주사된 액체 역시 바닷물일 가능성이 크다. 한 전문의는 "바닷물에 포함된 동물성 플랑크톤 등으로 인한 세균에 의해 감염이 발생할 수 있고, 뇌까지 혈액이 전달될 경우 혈액이 뇌로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 때 보이는 증상이 (사인으로 거론된)뇌일혈과 같다"고 말했다.
유학생 신분이던 윤동주가 사상범으로 체포된 이유는 무엇일까? 민족말살정책이 진행됐던 일제 말기에는 치안유지법이 강화돼 창씨개명이 강요됨은 물론, 한글로 글을 쓰는 것조차 금지됐다. 우리말로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독립 기도로 간주되던 시절, 창씨개명을 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회록'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한 윤동주는 끝내 옥중 사망했다.
다행인것은 일본의 깨어있는 시민들 사이에 윤동주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그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 사 추모하며 시비를 세우려는 시민적 차원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욘사마 보다 윤사마가 좋다"는 한 중년여성의 말이 일본 내에서 조용히 불고 있는 윤동주 바람을 짐작케 한다.
일제에 의해 희생된 윤동주의 생은 최근 일본 땅에서 연극으로 제작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윤동주에 대한 재조명 바람이 부는 데 대해 한 일본인은 "많은 희생자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왜 윤동주인가 하면, 그것은 모국어를 목숨을 걸고 지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윤동주를 단순히 '불쌍한 조선인'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아깝게 저버린 문학인의 뜻과 가치를 바로 세우려는 행동이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희망으로 다가온다.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학 교과서에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함께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장문으로 다뤄져 있다. "윤동주가 요절이라고는 하지만 윤동주는 사고나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정체모를 주사가 지속적으로 주입됐다고 한다. 언젠가는 일본인의 손에 의해 그 전모가 명백해졌어야만 하는 인물이다."(교과서 일부)
일본으로서는 감추고 싶은 치부와도 같은 전쟁의 역사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이 담겨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 하다. 역설적으로 일본의 전방위적인 역사 왜곡에 침묵하는 우리에게 스스로 역사를 바로 세우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바다. (출처: 뉴스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