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5살 여자 사람입니다.
평소에 판을 즐겨보고 있는데 저도 톡커님들 의견을 듣고 싶어 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해요.
잡다한 이야기로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무남독녀 외동딸로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셨어요.
제 어린시절 기억은 즐거웠던 기억도 있지만, 외롭고 슬픈 기억이 훨씬 많아요.
저는 주위 분위기나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털털한 성격이라기 보다는 세심한 성격입니다.
언뜻 주위에 따뜻하고 평탄해보이는 가족도 깊게 들어가보면 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고 아프고 힘든 구석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은 '어떠어떠한 가족이다.' 라고 정의하기엔 좀 특이한 케이스 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진 학교, 집, 학원, 기껏해야 교회를 다녀오는 정도가 제 일상의 전부였기
때문에 제가 아는 세상도 그게 전부였어요.
근데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해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눠보고 하니
좁다고만 생각했던 세상이 좁으면서도 참 넓게 느껴지더라고요.
다양한 사람들, 할 수 있는 것도,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들도 많이 생겼어요.
저는 생각 ( 잡생각 ) 이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민이 많았는데
그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어요.
부모님은 엄마 24, 아빠 26 의 젊은 나이에 결혼하셔서 결혼한지 1년만에 저를 낳으시고
맞벌이를 하셔서 저는 거의 할머니 손에 컸어요.
부모님은 두분 다 서울대를 나오셨는데 제가 태어났을 당시에 아빠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계셨어요. 엄마는 교사 자격증이 있으셨는데 과외 하던집 부모님이 예고에서 선생님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의를 받기도 하셨었는데 교사자리도, 회사 취직도 마다하고 비디오 가게를 차리셨어요.
그 때는 그게 그렇게 하고 싶으셨대요. 외할아버지가 서울대 졸업해서 왜 비디오 가게 같은걸
하냐며 반대하셨어도 비디오 가게 일을 시작하셨는데( 꽤 컸어요 직원이 두명 있고, 나가면 삐삐 울리는 도난방지 장치도 있었던...가게에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도 팔고 cd도 팔았어요)
장사 시작한 첫 날 수익을 확인하시고 아, 큰 돈은 안되는구나 하고 느끼셨다고 해요 ㅎㅎ...
그렇게 엄마는 비디오 가게, 아빠는 고시 떨어지신 후에 대기업 취직하셔서 일을 하시며
저를 키우셨는데,
아빠는 막 가부장적이고 무서우신 분은 아니었지만, 가정적이고 자상하신 분이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던,
늘 꿈이 있고 열심히 사시는 존경할 만한 점이 많은 분이셨지만 자기애가 강하시고,
니 인생은 니 인생,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는 주의로,
본인의 삶에만 지극히 충실하신 느낌으로... 끙.. 어려워요 ㅎㅎㅎ
사랑이 없으신 분은 아닌데... 대화를 할 수가 없는...?
어린애와 걸어도 보폭 같은거 맞춰주지 않고 걸으셔서 쫒아가려고 힘내서 걷다가
힘들어서 원래 속도로 걸으면 아빠는 저 멀리 가있고 뒤돌아보지도 않으셨어요.
가족 여행 가려고 하면 그 돈 아껴서 차 사신다고 엄마랑 둘이만 가라고 하셨었어요.
옷 입는거 좋아하셔서 아빠 넥타이만 옷장 한개 가득이었어요.
니 돈 , 내 돈, 따지셔서 엄마랑 돈 관리도 각자 했어요.
돈 관리 각자 하는데 생활비는 엄마가 번거에서 썼어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투자한 주식 수익나면 엄마랑은 그닥 상관 없는 일이었는데
망하면 부부는 일심동체라며 같이 갚게 했대요.
할머니는 저한테는 정말 제 2의 엄마 같이 좋으신 분인데 엄마한테는 힘든 분이셨대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엄마는 할머니가 밉지만 너한테는 좋은 할머니니까 사랑해드려야해
라고 말씀하셔요.
결혼 할 때 혼수 하잖아요, 밍크코트랑 먼저 다 사놓으시고 얼마니까 돈 가져오라고 했대요.
외할아버지가 신혼집 사주셔서 신혼 때 같이 살았는데 본인 아들 자기가 교육 잘 시켜서
서울대 보냈었지 않느냐며, 다시 한번 자기한테 맡기면 사법 고시 합격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잘 말씀하셔서 신혼집 팔고 친할머니댁 들어와서 저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 , 약 7년간
같이 사셨는데,
아빠가 고시 공부하면서 수영도 배우고 ( 그 때 배워서 저병까지 잘하셔요)
골프도 배우고 하셨대요. 엄마왈 그렇게 할거 다하면서 고시를 어떻게 붙었겠냐고 하셔요.
집 판 돈 할머니가 관리해주시겠다고 해서 맡겼는데 오랜 시간 안돌려주셨다고 해요.
나중에 독립할 때 돌려주셨다는데 원금만 주셨대요.
니가 뭘 아냐고 하시면서... 할머니 집이 마당 딸린 2층 단독주택이었는데 2층 방 쓰셨어요.
월세 내라고 해서 내면서 사셨대요.
비디오 가게랑 집이랑 붙어있었는데 보일러 같은건 할머니가 내는데 기름으로 돌리는
온풍기 기름은 엄마가 채웠대요.
그래서 겨울에 바닥 보일러는 안틀고 온풍기 공기만으로 온 집안을 데우셨다는.... (헐..)
엄마가 책을 되게 좋아하셔서 지금도 막 자리가 없어서 박스에 넣어서 책을 보관할 만큼
집에 책이 많아요. (버리는 거 잘 못하셔서 늘 짐이 너무 많음..ㅠ.ㅠ 저도 배워서 잘 못버림)
그 때 독립하면서 할머니가 책을 맡아준다고 하셔서 전공책 등등 많이 맡겼는데 나중에 와봤더니
책을 불쏘시개로 쓰고 있더라는...
비디오 가게 정리하실 때 비디오 가게 하는 사람이 인수해서 비디오까지 같이 파는거였는데
할머니가 좋아하는거 좀 가져간다고 해서 몇개 가져가시는 줄 알고 그러시라고 했는데
그 당시 LD랑 좀 비쌌던걸 아예 몇박스씩 가져가셨다고...
너무 서운해서 아빠보고 돌려달라고 해달라고 했더니 아빠가 그냥 내가 돈 줄께
백만원이면 돼? 라고 하셨다고...(이 말 듣고 그건 감정의 문제고지돈 주면 되는게 아닌데..했어요)
패물도 정리 정돈 못한다고 가져가셔서 금고에 넣어놓고 안주셨다고...
이혼하고도 10년간 안주셨다가 엄마가 그걸로 너무 속상해하면서 우니까
외할아버지가 판사 하시다가 지금까지 변호사로 계속 일하고 계신데 소송이라도 걸어서 받을래 라고 하니까 그건 또 아니라고 하셨었어요... 10년 지나고 제가 커서 할머니께 부탁해서 받아서 엄마 드렸었어요...
저 초등학교 1학년 겨울쯤부터는 직장 그만두시고 엄마랑 다단계 하셨는데 그게 잘됐는지
분당으로 이사해서 본격적으로 열심히 사업을 하셨어요.
부모님은 분당으로 이사가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교수셨는데 교수 은퇴하시고
경기도 조금 외곽지역으로 이사가서 마당에 송사리 있는 냇가 있는 땅에 2층집 짖고
약 1000평 정도 되는 땅에서 고추, 고구마 같은 농사 지으시며 사셨어요.
근데 거기에 초등학교 2년, 1년간 절 데려가셨었는데 저는 나쁘지 않게 지냈지만
엄마는 그 1년간 아빠랑 많이 싸우셨다고 해요. 시댁에서 같이 사는 동안
아빠 주식 잘 안된거 갚고, 월세내고 이것저것 하느라 가게 정리해서 거의 남은게 없었대요
늦게까지 일하고, 딸도 없고, 힘드셨었나봐요.
저희 엄마 아빠 정말 열심히 일하셨는데 이혼하고 재산 정리할 때 보니까, 그 처음에 외할아버지가
사준 집 있잖아요, 두사람 돈 합쳐도 그거 다시 살 돈이 안됐대요 ㅋㅋㅋㅋ 에구 ㅠ_____ㅠ...
그 집을 다시 사진 않았지만 사려면 예전에 샀던 집을 나중에 쭉 맞벌이하면서 일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대출을 받아야 했다는데 참 씁쓸하죠...ㅠㅠㅋ...
여튼 제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1년간 살고 엄마 아빠 따라 분당으로 갔을 때는
이미 사이가 안좋아지신 후 였었는지 거의 매일 같이 싸우셨었던 기억이 나요.
근데 사회생활이 뭔지 정말 언성 높이고 탁자 쾅쾅 치면서 싸우다가도 업무 관련 전화오면
웃으면서 네 여보세요? 하고 받는 부모님.
어릴 때 싸우다가 여보세요~? 하는게 너무 신기해서 따라하고 그랬었어요.
저는 늘 외로웠어요. 외로웠는데 금전적으로는 딱히 부족한게 없었어요.
유치원 때부터 입주 아주머니가 할머니랑 살 때도 부모님하고만 살 때에도 있었고,
여유 있는게 너무너무 외로운 댓가 같은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외로운데 당연히 잘살기라도 해야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
저는 사랑을 못받은건 아닌데, 사랑 받긴 한거 같은데 그냥 자유롭게 키우셨다기 보다는
방치되어서 살았다는 느낌?
학교 갔다와서 뭔지도 모르는 영어 ecc영어 학원 같은거 갔다와서
집에와서 하루종일 컴퓨터로 까페 같은거 만들고, 게임하다가 12시 넘어서 자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놀기 좋아하는 애도 아니어서, 그냥 집에서 게임 하는게 다였고 친구들이랑 막 어울려 다니는
것도 안했고 학원 가라면 학원 가고 그랬어요.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학원 가서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반 가서
뭣도 모르고 그냥 계속 멍때리다 집에 왔어요. 여러 학원 다녔는데 막 가방 놓고 집에 들릴
시간도 없었던 기억도 나는데, 뭘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글짓기 같은 상장은 이것저것 많이 받아왔는데 영어 수학 시험은 100점 만점에10점 맞고 그랬었어요.
아빠는 그냥 얘는 누굴 닮았대~ 신기하네 ㅋㅋㅋ 하셨었죠 ㅎㅎ.
초등학교 1학년 때 비디오가게 하면서 저를 사립 학교에 보내셨는데
거기 다니는 애들은 거의 여자애들은 머리를 여러 갈래로 따오고 생머리, 예쁜 옷,
남자애들은 무스 바르고... 막 그런 분위기였어요
저는 바가지머리! ... 스쿨버스 타고 다녔는데,
운동회 같은거 끝나고 혼자 집에 가려는데 그 날은 스쿨버스 없다고 부모님 안오셨나면서
담임선생님이 불쌍하다는 듯 차로 가게 앞까지 태워다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운동장에서 애들 놀 때 저는 흙으로 그 애들 노는 흙덩이 만들어서 줬었고...
학부모 교사 시간이 있었는데 반 아이 엄마가 가르치는 그런 시간이었어요
거기 교사로 봉사하는 아주머니들 딸 두세명이 반 안에 권력이었는데,
그 중에 덩치 큰 애가 저를 싫어해서 피아노치고 있으면 내거니까 저리가, 라던가
그 애 이름이 은혜라면, 은혜가 싫어하니까 저리가- 라던가...
그 딸이 공놀이 부장? 그런거였는데 그 애 맘에 든 애들만 점심시간이나 체육시간에
공놀이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공놀이 참여자를 자기 친한 애들 + 그 날 그 날 자기 맘에 드는 애들을 끼워줬는데
급식실에서 저보고 자기 김치를 먹어달라고 했는데 제가 안땡겨서가 아니라 정말
저도 김치를 못먹어서... 못먹겠다고 했더니 다른 애들 간장이랑 남은 잔반을 물컵에 모아서
제 급식판 국에 뿌렸..? 넣었어요.
음식 남기면 안된다는 교칙이 있어서 많은 양을 남길 수가 없었는데 차마 못먹겠어서
급식시간 끝날 때까지 어떻게 먹지 하고 고민하다가 다 못먹고
버리는데에 가서... 사정 모르는 6학년 오빠가 안돼 다 먹어야지, 하니까
제가 울음이 터져서 그 자리에서 급식판 들고 울었어요... 그 옆에 언니가 버리게 해줘,
했고... 지금 생각하면 6학년도 그냥 앤데, 지금도 고마워요 그 언니 으헝 ㅠ_ㅠ
유치원에서도 저는 조금 독특한...? 애라서... 싫은걸 싫다고 말 못하는 애였어요.
화가 나도 화 같은거 낼 줄 몰랐어요, 화 내는 법을 모른다고 해야되나.
짜증내는 법도 모르고... 짜증이 안나는게 아니라 짜증내는 법을 모르는거에요, 으ㅠ_ㅠㅋㅋ
예를 들면 칭찬 스티커 같은걸 모으는데, 다른 애들이 야매로 문방구에서 그거랑 똑같은
스티커를 사서 막 붙이고 그랬어요, 저는 못그랬어요 하지 말아야 하는거 안하는 애여서..
그래서 주마다 표창하는데 걔네는 여러번 상 받고 저는 사실상 받은 스티커는 더 많은데 몇번 못받고... (지금 생각하면 유치원 선생님들! 똑바로 확인하시지 그러셨어요 ㅠ_ㅠㅋ)
친척 애들이나 동네 친구들하고는 잘 놀았는데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공간에서는
싫은 내색을 못하니까 괴롭히는 애들이 생겼었어요.
친구는 늘 있었는데 괴롭히는 애가 한명 있으면 맥을 못추겠는...ㅠ.ㅠ.... 그런 느낌.
저 좀 이상했어요... 초1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연주 발표회 때 의자에서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면 끝날 때까지 앉아서 일어나지도 않았대요.
그 때 엄마는 참 애가 참을성 많고 의연하다고 생각하셨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보기엔 좋아보일지 몰라도 당사자는 힘든, 정상적이지 않았던거 같아요.
마음의 병 같은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요.
피아노 검사 받는거 기다리느라 난로 옆에 선생님이 서있으라고 하셨던 적이 있는데
좀 예민한 선생님이었어요,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라고 하셔서 난로 앞이라
정말 뜨거웠는데도 정말 안움직이고 기다렸었어요.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겉옷 엉덩이 부분이 다 타서 갈색으로 그을렸을 정도였어요.
학예회 같은것도 즐기질 못하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대사 외우는거 실수 안하려고 집중하고... 모든게 다 두렵게 느껴졌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린 아이들 추억 만들어주려고 하는거잖아요 다... 그렇게 부담가질 필요
없었는데... 힘들었어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나 밖에서 누구랑 언성 높여서 싸워본 적이 없어요.
정말 가까운 친척 동생들 빼고요.
평생 화나는 일이 없었던게 아닐텐데, 그건 병이었던거 같아요.
부모님 맞벌이 하셔서 가족 여행 같은, 가족 추억은 고모네랑 다녔어요.
고모는 가정주부셨고 또 가정적인 분이셔요, 저는 지금도 모든면에서는 아니지만
고모네 가족 같은 분위기의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다고 생각해요.
근데 가족 여행을 가도 고모네랑 가는건 당당하지 못했어요...
엄마가 고모가 데려가주시는게 고마워서 제 몫의 여행비도 넉넉히 주셨다고는 하는데
어린애들이 그런걸 알리 없죠.
고모네는 첫째 남동생, 둘째 남동생 셋째 여동생인데 셋째는 열살 터울에 막둥이로 태어난 애여서
어린시절을 같이 보낸 애들은 남동생 두명이에요.
첫째는 유전적으로 천성이 착하고, 둘째는 막 나쁜애는 아닌데 좀 이기적인? ㅠ_ㅠ
지금에야 그냥 다 추억이고 만나면 첫째든 둘째도 좋지만,
그 때는 힘들었어요.
제 장난감 가방에 숨겨서 가져가고,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랑 자기 물건이랑 바꾸자고 해놓고 집에 갈 때 둘 다 가져가고 ㅠ_ㅠ...
고모네 가족 여행 따라가서 다투기라도 하면 누나는 왜 데려와서, 짜증나 다음부터 데려오지마,
라던가 고모네 차를 탈 때, 이건 우리차야, 누나 차 아니야, 라던가 ㅎㅎ;
그냥 그런게 상처였어요 자면서 울고... 고모네 가족과 저를 구분 짖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외롭고 외로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상태여서
고모네 가족과 있을 때가 제일 편안하고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때였는데...
그 애가 그런식으로 말할때는 당당하게 뭐!! 라고 화낼 수 없었고 위축되고 작아졌었어요.
지금은! 매력있는 남자애로 성장해서 예쁜 여자친구도 있답니당, 헤헤 만나면 반가워요!
올해 수능 봤는데 잘보라고 기도했었어요, 음 여튼 그 땐 그랬었어요!
저는 막 으하하하, 떠들고 존재감 있는 스타일이 아니고 조용조용한 애였는데
부모님 사정으로 초등학교 시절 전학을 많이 다녔어요.
A 사립 학교 서울에서 초등1학년 다니고 B학교 친할머니 따라 2학년, C학교 분당에서 3, 4학년
D학교 서울에서 5, 6학년.
무려 초등학교를 네군데나 다닌거죠, 친구를 사귀고 친해지면 옮기고 옮기고 ㅠ_ㅠ
으 너무 길어지네요 , 여튼 저는 저를 좋아해주는 친한 친구들은 늘 있었는데
주위에서 한명만 저를 싫어해도 내색도 못하고 굉장히 괴로워하는 성격이라 학교생활이
힘들었어요.
운좋게 저를 싫어하는 애가 없는 반을 만나면 즐겁게 학교를 다녔지만
한명이라도 있으면 가시방석이었죠 ㅠ_ㅠ
중학교땐 1학년땐 힘들었고 2학년땐 즐거웠고 3학년때는 후반에 힘들었고
고등학교땐 1학년 즐거웠고 2학년 정말 힘들었고 3학년 괜찮았다가 후반에 힘들었고
다 학년 단위로 기억나요 ㅋㅋㅋ
환경에 따라 제가 매년 달라지니까 바뀌지 않는 양호 선생님은 어떻게 매년 성격이
바뀌냐고 하기도 했어요. 매년 다른애 보는거 같다고.
중 1 때는 저희 초등학교에서 제가 다니는 중학교로 올라온 애가 많이 없었는데
옆반에는 그래도 아는애가 몇명 있었어도 저희 반에는 아무도 없었었어요.
근데 다른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애가 짝궁이 됐었는데 걔가 그 학교 전교 왕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 애 이름이 소망이였다면 저는 반에서 소망이 친구로 통했어요 , 소망이 친구 누구 , 이렇게.ㅎㅎ
많이 소심한 애였지만 착하고 저랑 잘맞아서 저는 걔만 있으면 별로 상관 없었는데
같이 다니니까 다른 애들이 저를 좀 피했었어요. 막 학기초에 너 쟤랑 다니면 안돼 라고 조언(?)
해주는 애도 있었는데 걔 보단 소망이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었거든요 그래서 그런말 무시하고
잘 지냈었는데, 어느날 소망이가 전학을 가버렸어요.
소망이는 착하지만 겁이 많은 아이여서, 강자한테 심하게 약하다고 해야하나...
걔네 집에 놀러갔다가 집 앞에서 학교에서 좀 기 쎈애를 만나서 안녕! 하고 저랑 인사했는데
쟤랑 인사하면 어떡하냐며 쟤가 우리집 알아서 괴롭히면 어떡하냐며 막 울고불고 소리쳤던
기억이 나네요... 집 앞에서 인사했다고 그 아이가 소망이 집이 거긴걸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봤자 동갑 아이일 뿐인데... 저는 편하니까 막 소리도 지르고 표현 하면서 그 아이가
무서워서 울며 소리치는 모습... 아직도 눈에 선해요.
전학 간 후에 한번 동네에 놀러왔었는데 큰 벙거지 모자와, 눈이 다 가려지는 큰 선글라스,
그리고 흰 마스크... 를 쓰고 온 소망이, 누가 자길 알아볼까봐 그렇게 왔다는데....
그 아이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기에, 도데체 누가 그렇게 무서워서,... 얼굴 전체를 가리고
동네로 와야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찡하네요
ㅠ_ㅠ
여튼 저는 수학여행이나 짝을 이루는 활동을 같이할 친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좀 못되게 굴어도 저를 맘에 들어하는 아이와 단짝으로 지냈는데
저는 25년간 살면서 그 아이처럼 지독한 사람을 아직까지 못만나봤어요
와 정말 어마어마했는데...
대화도 잘 통하고, 같이 있으면 진심으로 즐겁고, 이야기도 잘하고, 좋은 부분도 있긴 있었는데
남 잘되는 꼴 못보는 질투도 많은 아이였어요.
제가 다른 A라는 애랑 즐겁게 이야기를 하면 난 쟤 맘에 안든다, 쟤랑 말하지 말아라.
라고 하고 자기는 나중에 걔랑 웃으면서 말하고... 저는 신경쓰여서 A랑 말할 때
그 아이가 쳐다보고 있으면 눈치보고 ㅠ_ㅠ
옆반 친구한테 시험기간에 영어 교과서 빌려왔는데 갖다주려니까 없어져서
어딧지? 하고 찾는데 끝까지 안보여서 미술시간에 찾아보러 교실 내려가는데
저보고 잃어버려서 어떡해, 곧 시험인데 필기도 다 되어있는 책 찾아야될텐데...하고
걱정해주더라고요, 근데 그게... 뭔가 감이라는게 있는데 싸~ 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다 찾아보다가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걔 가방을 열었는데 거기에 옆반 친구 영어책이
들어있더라고요.
그게 고의 같았지만, 고의가 아니라고 믿고 싶어서 집에가서 확인하고 자기 가방에 있는거
보면 내일 갖다주겠지 해서 그냥 못찾았다고 했는데 그 다음날도 아무 말 없길래
옆반 친구한텐 교과서 사주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어요.
기말고사 전이라 곧 방학이었고 불편해지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같은 반 안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어요...흐어 ㅠ_ㅠㅋㅋ
그 다음 학년엔 그 애랑 같은반 안됐고 초등학교 때 친했던 애를 만나서 되게 잘지냈었네요.
저는 이런 저런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애였어요.
부모님은 거의 매일 싸우셨고, 외로웠고, 털어놓을 곳은 없었고, 이혼 한 후에는
엄마는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사시면서 목사님 테이프를 몇십박스씩 사서 들으시고
제가 우는 소리 하면 불평하지 말라고 소리치셨고, 기도원 가고 교회가고 십일조 내시며
사셨고, 제가 불평 같은거 안해도 이틀에 한번씩 소리치며 우셨고, 스트레스에 누워계셨고,
한달에 생활비를 500씩 고정적으로 받으셔서 이혼 후 과외 같은거 좀 하신거 말고는
일도 안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교회 활동중 누군가한테 불쾌한 소리 한마디만 들으셔도
일주일간 앓아 누우셨고, 운전하다가, 장보다가도 소리치셨고,
저는 슬프면 혼자 울고 표현을 못하는 성격이었다면 엄마는 슬프면 화내는 스타일이셨기
때문에 저는 옆에서 그런거 자체가 힘들었다기보다도, 엄마는 표현을 하니까 주위에서
힘든걸 아는데, 저 힘든건 엄마 밖에 모르는데 엄마는 받아주질 않았다 . 라는 정도...
외할머니나 이모들도 엄마가 슬프니까 엄마한테 잘해라 라는...
제일 사랑하고 믿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오직 엄마 한분인데 엄마한테도 거절당하면
그냥 살기가 싫었어요.
엄마는 평소에 친구처럼 잘 대해주시다가도 한 10분 그랬구나... 하다가,
갑자기 소리 지르시고, 화내시고 했기 때문에...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병인데, 저랑 엄마 둘이서만 사니 병이라고 해줄 사람도 없었고...
생활비는 500씩 들어온다는데 집에는 압류 딱지 빨간 딱지가 붙고 엄마는 신용 불량자가
되셨다고 하고, 사치도 안하시는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유를 알수가 없을 뿐이고,
집에는 쌀이 없고, 엄마는 히스테리 부리시고,
외할아버지 판사에, 이모부들 검사, 의사, 대기업 부장 다 잘사시는데
도와달란 소리 한번 안하고 ( 자식이 성인이면 부모를 도와드릴 망정 도움 받을순 없다고 하심)
가끔 엄마 방에 들어가면 천만원이 넘는 단위의 교회 기부금 영수증이 보이고...
가끔 전기도 끊기고 추워서 패딩 입고 이불 다섯개쯤 깔고 자기도 하고 하면서
아빠한테 쌀이 없어서 쌀 사게 돈 보내달라고 했는데 아빠도 그 때 새로 시작한 사업 자리 잡느라
힘들 때였는데 엄마는 일 안하고 500 받으니 편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소리지 생각하셨겠지만, 빨간 압류 딱지나 그런건 다 펙트였을 뿐이고,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그건 현실이었고, 아빠는 쌀이 없단 말을 안믿으셨고
그 때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진 기억이 않나지만 돈 달라고 했다가 상처 받은 이후로
아빠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없다가 요즘에서야 도움 받고 있어요 영어 학원비 정도.
길거리에서 엄마랑 서로 무릎꿇고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급기야 교회 열심히 다니다
엄마가 종말이 오는 환상을 보셨다고 잠깐 완전 미치실뻔 한 적도 있어서
이모들 도움으로 한달간 강제입원 시켜서 안정 찾고 나오셨었던 적도 있어요.
그 와중에 아빠한테 말하면 할머니나 다른 친척들 귀에 들어가서 그러게 내가 뭐랬어
하면서 우리 엄마 정상 아니랬잖아 이혼하길 잘했어, 라는 소리 할까봐,
말 안했었고... 그나마 대화하는, 속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는게 엄마 한분 뿐이었는데
몸이 편찮으신것도 아니고 정신이 그렇게 되어버리시니까 나는 왜사나 싶고,
공부 잘해서 서울대 가면 뭐하나, 나는 외로운데, 학교에서 똑같이 힘들텐데.
100억을 벌면 뭘하나, 천억을 벌면 뭐하나, 난 어차피 마음 괴로울텐데.
싶었었어요.
엄마가 나중에는 종이를 씹어드시고 외할머니가 카레 해주셔서 아침에 먹고가라고 하면
다른거 절대 먹으면 안되고 고기만 먹어야 된다고 소리지르시고,
안경 안쓰시고 차 몰고 나가셨다가 위험해서 경찰서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시고
경찰이 집에 가라는데 안간다고 경찰서 뛰어다니셔서 경찰 두명이 엄마 팔 다리 잡고
차에 집어 넣어서 집에 보내고,
할머니가 지키고 있어도 막 뛰어나가서 저녁 늦게 손발에 흙 묻혀서 들어오시고,
하... 계속 종말이 온다고 준비하라고 하시고,
엄마가 제 핸드폰 뺏어서 제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종말이 온다고 말해서 곤란해서
안되겠어서 핸드폰 엄마한테 뺏으려는데 거의... 원숭이한테 바나나 뺏는... 그 원초적인...
동물적인...으.... 느낌의.... 잊을 수가 없는데..
엄마가 그당시 핸드폰 , 폴더폰을 팬티 안에 넣으셨는데 제가 그걸 뺏으려고...
엄청난 노력 끝에 되찾아왔는데... 안씻으셔서 핸드폰에 분비물이 덕지덕지....
묻은걸 물수건으로 닦았던 기억....
별일이 다있어서 저는 학교에서
다른 애들이 짜증나는거 예를 들면 급식 시간에 누가 세치기를 했다던가, 당번인데
칠판을 안지웠다던가 쓰레기를 안버렸다던가 하는거에 전~!~~ 혀 진짜 짜증이 안났어요.
그래서 그냥 똥이니 쓰레기니 애들이 꺼림찍해야면 손에 좀 묻어도 닦으면 그만인걸 하고
내가 할께 했는데,
친한 친구들은 알아주는데 몇몇 애들은 착한척 한다고 가식 떤다고 했어요.
학교에서 꽃동네 봉사활동 가서 못움직이는데 천사 같은 할머니랑 짝짜꿍 하면서 잘 놀고
똥 닦아드리고 했는데, 안좋게 보던 어떤 애가 저랑 같은 곳에서 봉사했던 조 애한테
쟤 막 더럽다고 안만지고 그랬지? 이래서 그 애가 아니 ,ㅇㅇ이 열심히 했었어
하고 말하기도 하고... 으...ㅠ_ㅠ 착한척 한단말 많이 들었었는데
저는 착한게 아니라 욕심도 많고 그런앤데 진짜 학교에서 일어나는 그런게 정말 화가 안나고 짜증이 안났었던거에요.... 안좋게 보는 애가 있는건 못견뎌해도 다른건 진짜 상관없는...
예를 들면 전교권 어떤 애가 좀 예민한 성격이라 한 학년 꿇었던 애가 있었는데
체육이나 음악 같은것도 열심히 하려는 그런 애 있잖아요,
걔가 수학 문제집을 동그라미 별표 세모 모양 다르게 해서 같은 문제를 몇번씩 채점하는데
방과후 청소시간에 남아서 청소하던 몇몇 애들이 그 아이 책상서랍에서 그걸 보고
유난 떤다고 욕을 하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걸 보면, 제가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진 못했어도
그렇게 하는 애가 기특하고 꼼꼼한 점이 존경스러워보여요, 그래서 진심으로 얄밉게 보이지가 않아서 뒷담화에 동참할 수가 없는거에요.
아............ 저도 사회생활하면서 짜증나는 사람 있고 뒷담화 할 줄 아는데
진짜 나쁘게 안보이는거죠!!!! 아....... 그래서 겉돌고, 저보고, ㅇㅇ아 너는 먼저가 하고
말하는데 맘에 없는 뒷담을 할 순 없잖아요... 아 어렵다....
모의고사 보다가 이 답 안보이는 깜깜한 상황에 눈물이 뚞뚞뚞뚞 떨어지는데
양호실가래서 갔다가 담임쌤이 모의고사 보기 싫어서 꾀병 부리는줄 아셨던 적도 있었어요.
어떤 애가 야! 하고 부르는데 저 만만하게 부르는 야, 가 나를 부르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대답을 안했는데
야!! 야 ㅇㅇㅇ!! 하고 말하는거에요, 안친했던 애였고 왜!!!! 뭐!! 야!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야 되냐, 야! 니가 뭐 보탬 되는 말을 하려고 날 불러,
뭐 부탁이나 하려고 했겠지!! 라고 말 하고 싶었지만 그런 성격이 못되므로 ㅋㅋㅋ
어 나 불렀어? 하는.. 그런 애였어요... ㅠ__ㅠ 그 때 자습시간이라 도덕 선생님이 옆에 있었는데
피식 하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도덕적으로 좀 가르치시지 그러셨어욬ㅋㅋ!
그렇게 불렀던 그 아이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 귀여운 외모의 아이였는데... 기는 쎄던 ...
저는 깨갱 하던 애였는데 옆반에 제 절친이 점심시간에 놀러와서 제가 막대사탕을 줬었는데
걔가 나 줘! 하고 뺏으려고 하니 제 절친이 얘 뭐야? 하면서 손을 위로 올려서 키가 안닿게..ㅋㅋ
아이 다루듯 하더라고요... 와..대다나다....
근데 진짜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거라고 학기말에 그 아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담임선생님이 안부문자 하나씩 보내라고 하셨었었고... 역시 깊이 들어가서 안 힘든 사람 없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반에선 저만 힘들었던게 아닌게, 다들 고2 , 학업 스트레스가 커서 예민했는지,
중간고사 끝나고 사이좋게 스티커 사진 찍으러 놀러가고 했던 애들이 기말고사 때는
그 중에 하나를 따돌리고 있고, 친해보이는 애들이 얘 욕하고 쟤 욕하고...
그 애들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분위기가 저한텐 좀 어려웠어요.
아직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나는 장면!
따돌림 받던 애가, 나는 정말 너희 소중한 친구로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되긴 했지만
나중에 우리가 커서 사회에 나가서 너희를 다시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 할 수 있는 사이
정도로 남고 싶다. 잘지내자 라는 식으로 이야길 했는데 상대편 아이들이 우린 너랑 사회에서
인사할 생각 없는데? 라는 식으로 말했던거... 오 살벌했쓰...
여튼 개개인으로 보면 다 매력있는 아이들이었어요 , 공부를 잘하거나 , 재능이 있거나,
예쁘거나, 독서를 잘하거나, 글을 잘 쓰거나, 재밋거나, 똑똑하거나, 대학 잘 간 애들도 많고
그냥 환경이 그 때 다들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환경에 적응 했던 애들도 있고 저처럼 힘들어 했던 애들도 있고,
누굴 나쁘다고 할게 아니라 그냥 그런 환경.
그냥 마음이 강하면 힘들 게 없는데 약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처세술도 부족했었던거고, 매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힘들었겠죠
그리고 스스로 너무 많이 위축되어 있어서 제 장점을 잘 보이지도 못했고,
운좋게 반에서 제일 착하고 따뜻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랑 다음년도에 같은 반이 되어서
그 아이랑, 몇몇 애들 해서 6명 그룹으로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친하게 지내고,
지금도 서로를 응원해주는 베프로 잘 지내고 있어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더 넓은 세계에 나가보니
학교와 가족,친척이 전부가 아니구나 , 세상은 더 다양하고 넓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연애라는 것을 하면서 외로움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고,
사랑을 시작 한 후로는 모든 것에 의미가 생겼어요. 반대로 사랑이 식으면
저는 의욕이 없어졌어요. 하고 싶은게 없어지는, 무력한, 우울증이 오는 상태.
수능 100일쯤 전에 엄마가 종말이 온 줄 아셨고, 수능 보기 한 한달쯤 전에 퇴원하시고,
차차 괜찮아지셨고, 저는 그 전까진 엄마 기쁘게 해주려고, 또는 엄마랑 소통 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엄마가 다니던 교회에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고 3때까지, 중1때부터 고3때 까지는
임원반으로 봉사도 하면서 지냈는데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교회 분위기를 좋아하고, 교회에서 사귄 좋은 친구도 있었고 봉사도 열심히 해서 중학교 때는
선생님들이 뽑아주셔서 중등부 대표도 했을 정도로 성실하게 다니고 밥 먹고 자기 전에
늘 기도하고 했었지만 하나님을 확실히 믿은건 아니었거든요.
그냥 내 생각 정리하고, 대화형식으로 이야기 한다 정도의 느낌.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걸 믿으면 된다는데
예수라는 사람이 사람들 선동하다가
기득권에 미운털 박혀서 그당시 형벌인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걸
자기가 관심받고 싶어서 그랬는지, 진짜 사명감을 가지고 신의 아들이라고 착각을 한건지,
진짜 신의 아들인지 몰라도
뭐 안믿어줄 이유도 없고 믿어서 손해보는 것도 없기에 믿지 뭐, 라는 느낌이었고
성경 내용보면 모세가 빨개 벗고 있었는데 아들 한명이 그걸 말해서 부끄럽게 했다고
저주했다는 이야기 보면, 천국을 믿고 영생을 믿는 사람이 잠깐의 인생 그냥 편하게 살게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굳이 저주까지 했어야되나... 싶고 ㅋㅋ;
저희 엄마가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렇게 힘든거야 하시는데,
우리도 6 25 전쟁 겪었고 일제강점기 겪었고 , 아프리카인들만 힘든가 베트남도 힘들고
힘든 사람 많은데 뭔 헛소리지 싶고
형제들한테 미움 받아서 노예로 팔려갔다가 국무 총리가 된 요셉 이야기 들으면서
하나님의 기적, 막 이러면
그렇게 열심히 믿어도 국무총리가 단데, 그럼 왕은 뭐야, 왕은 종교가 기독교도 아닌데
뭔 축복을 받은거야 싶고 ㅋㅋ;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 데리고 자기들 땅으로 가려고 했을 때 막 개구리떼나 곤충,
같은 고난을 주는데, 그냥 그럴게 아니라 노예는 노동력이 필요한건데,
노예가 없어도 될 만큼 모두에게 풍족한 부페처럼, 곡식을 풍부하게, 바다에 생선과
먹을 것과, 재료를 풍부하게 해서 너도나도 풍족하게 여유롭게 살게 하면
그래 너네 땅가 , 할텐데, 싶고...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천지창조할 능력이 있으면 내가 키우는 강아지도 행복하고
편안하고 잘먹길 바라는데, 더 잘해줄 것 같고...
막 전쟁을 하는데 여호수와인지 누가 팔을 들고 있으면 전쟁에서 유리하게 이기다가
팔 좀 내리면 져서 양팔을 받쳐줬다는 이야기 들으면,
죽으나 죽이나, 거기서 죽고 죽는 사람들은 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
즉 하나님의 아들 딸들인데 그걸 이기고 지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 ? 싶고...
의문 투성이고 납득이 안되는거 투성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하는건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은...? 귀신 같은거 안믿지만 우주는 넓고, 뭔가 사후에 다른 삶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자는 것처럼 느끼지 못하는 상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옥같은 불합리한게 있다곤 생각안해요. 종교 적는 칸이 있으면 기독교라고 적긴 하는데
딱 이정도 느낌.
새벽에 잠이 안와서 아주 생각나는대로 막 써내려 왔는데 이걸 다 읽는 사람이 있다면
와 고마워요.
여튼 이건 지금까지의 삶이고,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다 적기는 힘드니까 여기까지 하고 지금은...
대학 생활도 만족하고, 연애도 만족하고, 직장도 괜찮은거 같아요.
제가 철이 없는 것 같아 일을 해보고 싶어서
휴학하고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는데 하는 일 어렵지 않고 월급이 많은건 아니지만
칼퇴근에 개인적인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편이라 좋아요.
올해 8월부터 사귄 남친이 스무살 대학생인데 데이트 하기에도 딱 좋은 직장인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인생 목표가 외롭지 않고 넉넉하게 살기에요.
늘 외로움이 문제였지 학업에 대한 걱정도, 취직 걱정 같은것도 해본 적이 없어요.
뼛 속 깊은 외로움 때문에 지금도 이틀에 한번은 혼자 울어요.
지금 남친이 정말 좋아서 이번엔 잘해보고 싶어서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예방차원에서 대학병원 정신과도 다니고 있어요. 조울증 같은거인 줄 알았더니
그정돈 아니고 기분순환장애 라고 했어요.
지금까지 힘든 내색, 표현, 안하고 그런거 하면 사람들이 저랑 있는거 싫어할까봐
그런게 무서워서 표현 못했는데 친구들이 표현하라면서, 오히려 연락 안하는게 서운하다며
잘해줬고,
고등학교까진 힘들때도 어떻게든 의무라고 생각해서 다녔지만, 졸업한 후에는 우울증 올 때마다 주위 사람들한테 폐 끼치기 싫어서
또는 우울한 모습 보이면 거절 당할까봐 휴학하고 히키코모리처럼 방콕하고 살았었는데
그게 정말 편한게 아니거든요, 저녁엔 그나마 잠이 와서 괜찮은데
아침에 눈을 뜨면 하고 싶은게 아무 것도 없는데 또 하루를 견뎌(?) 내야 하는 그 괴로움
죽지도 못하는 , 살고 싶지 않은,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도 아닌,
사실은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너무 우울하고 하고 싶은거 하나 없고 아무 욕구도 안들고
너무나 무력하고 의욕 없고, 아무 일도 못하겠는 그 상태가 언제 끝날지 끝도 안보이고
미래도 깜깜하고, 부모님 없고 집 없었으면 먹고 살 힘도 없는 내가 노숙자랑 뭐가 다르지,
차라리 이런 우울증 , 외로움, 자괴감, 고뇌 없이 미쳤으면 좋겠다. 라던가
자살은 할 수 없으니 시한부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주위의 안타까움 속에서 죽을 수
있을텐데 ,
몸이 안아파봐서 힘든걸 모르고 배불러서 하는 소리겠지만,
차라리 몸이 아픈거였으면, 몸은 약먹고 수술하면 낫던가,
진통제 넣으면 고통이 없기도 하고 다 안되서 안낳으면 죽기라도 할텐데
마음이 아픈건 답도 없구나 싶고...
숨이 안쉬어져서 명치가 너무 답답해서 데굴데굴 굴렀던 기억...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예민하고 경직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기억...
이사 해야되서 어쩔 수 없이 방 밖으로 나가야 됐을 때
이삿짐 싸러 온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무서워서 스무살도 넘은 나이에 옷장에 들어가서
숨어있었던 기억...ㅋㅋ 하....
씻으러 방에서 나가는 것 조차 귀찮다기보단... 음... ㅠ_ㅠ
설명하기 어려운데 여튼 두렵다고 해야되나... 씻고 나면 개운한데 씻는게 두려운?;
그래서 한 두달에 한번씩 씻어서, 겨울에는 건조해서 얼굴이 따가워서
수건을 얼굴에 대고 있고... 그래도 근본적으로 수분 공급이 안되는지 계속 얼굴이 마르고,
머리는 일주일 안감으면 기름지지만 삼주 넘어가면 푸석푸석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미용실도 안가고 머리 계속 기르고, 방에서 책이나 읽고, 컴퓨터나 하다가
아침엔 자고 저녁엔 울고..., 그래도 엄마는 아프면 쉴 수도 있지 넌 정상이야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초밥이니 , 맛있는 음식 해주시고... 하하.. 독특하죠...
교정 하고 있는 도중에 방콕 시작한거라, 교정기 장착한 상태로 일년 넘게 치과 안가고
안씻고 양치도 안해서 잇몸이랑 치아 다 상해서 나중에 다 갈아엎고 라미네이트 했어요.
치통이 심했는데도, 사람 만나는게 무서워서 그냥 참았어요. 어금니 하나는 복구가 안되서
빼야됐어요.
남친이 지금 교정하는데, 저보고 누나는 나랑 달리 치아가 예쁘잖아 하는데 ... 갈아 엎고 도자기
붙인거야 ㅋㅋㅋ 했는데 치과 언니가 고마웠어요 그만큼 잘만들어줬다는거니까.
나중에 그 이야기 치과 언니한테 말하니까 그냥 남친한테 가짜라고 말하지 말지 ㅋㅋㅋ했어요.
하하^^;
치과 치료 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작년 여름에 미국에 갔을 때 지하철에 어떤 예쁜 여자가 아이랑 남편 같아 보이는 사람이랑
행복하게 웃는데 앞니랑 어금니랑 거의 반의 반도 없는 거에요.
아.... 싶었죠.
꽤 오랜시간 치과 치료를 받았고, 교정은 교정대로 하고, 다 상하고 관리 안되서
뽑고, 라미네이트에 임플란트까지 해야됐었지만,
교통사고 나서 이빨 깨지는 사람도 있고, 주먹질하다 빠지는 사람도 있고
선천적으로 몸이 안좋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그 미국에서 봤던 예쁜데 이빨 없던 여자처럼
아마도 돈이 없어서 치료 못했겠지... 싶었는데 그래 나는 우울해도 치료 받을 경제적인
여유도 있는거니까 치료 받는다는거에 감사하자. 했어요
전엔 너무 우울해서 봉사활동 같은걸 하러가고, 기아대책 같은데서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나
동영상을 봐도, 그 아이들이 웃는 웃음을 부러워했거든요,
쟤네는 흙탕물에서 뛰어놀지언정 저 웃음은 진짜구나, 나는 제대로 웃지도 못하는데...
싶어서 ㅎㅎ...
환경을 바꾸고 싶진 않지만, 가난해도 저 아이들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하고
생각했어요.
저는 한 분기쯤 방콕하고, 한분기는 다시 사회 적응하고, 한분기는 대학 다니고,
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살았어요.
제대로 된 재수 생활을 딱히 해본적은 없지만 첫 수능 쳤을때 대학 합격하고도 등록을 안했기 때문에 그 다음해에 두달 정도 재수 학원 다니고 대학을 등록했는데,
과가 인원을 많이 뽑는 과가 아니여서 50명 정도 됐었는데 수업도 거의 정해져있고,
딱 제가 힘들어했던 고등학교 느낌이 조성됐어요. 그래서 몇일 다니다가
고등학교까진 의무였지만 대학교는 선택이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환경에서 4년동안
버티고 싶진 않고, 이제 다신 하고 싶지 않아. 라는 마음으로 자퇴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해에 경영학부!!! (사람 짱많은! 백명도 넘게 뽑는! )로 들어가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했죠.
저는 깨달았어요, 나한테 맞는 환경을 선택해서 살면 잘 살 수 있구나.
학교도 선택, 회사도 선택이구나,
저한테 딱 맞았어요, 친한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수업 꼭 다 같이 들을 필요 없고
친한 사람 외에는 밥 같이 먹고 과제 같이 하는 정도, 수업 때 자료 공유하고 인사 잘하는 정도
딱 제가 원하는 인간관계!
엠티도 오티도 즐거웠고, 봉사 동아리도 들었는데 즐거웠어요 ㅎㅎㅎ
팀플 과제 끝나고 다 같이 수고했다고 술마시러 가는 그런 것도 좋았고ㅎㅎ
제가 사탐을 잘했는데 경영학부 수업은 대부분 사탐 시험 보듯이 논술로 보는 것도 좋았고
발표도 재밋고 ㅎㅎ 공부가 재밋었어요.
성적 관리 열심히 해서 4점대 받아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대회 입상해서 학교 지원으로 여름방학 동안 미국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좋았어요.
그렇게 2학년 2학기까지 마치고 , 겨울방학에 어떠한 계기로 우울증이 와서 휴학을 했고,
올해 초 마지막으로 그렇게 방콕을 했어요 , 방콕하니 남친이 만나자고 해도 몇달간
못만났고, 제 우울함을 남친은 이해해주지 못했고, 그래서 헤어지자고 안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헤어진게 되어버렸어요.
그렇게 올 6월 전까지 쉬다가... 친할머니가 수술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수면 마취를 해서... 못깨어날 수도 있다는 소릴 듣고 할머니가 불안해 하셔서,
저를 보고싶어 하신다고...
순간 가슴이 , 머리가 쿵 하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우울한걸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면, 거절당할까봐,
거절당하면 내가 감당 안되게 상처 받을까봐, 그래서 폐 안끼치려고 집에 있었던건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무슨 의미가 있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 싶었어요.
그래서 거절 당하면 거절 당하는거고 그냥 나를 드러내면서 살자, 라고 마음 먹고,
할머니를 만나러 갔는데 알고 보니 수면 마취를 하긴 하는데 수술이 아닌 비교적 간단하다는
15분만에 끝나는 허리 관련 시술이었고, ㅎㅎㅎ
그 날 같이 부둥켜 안고 속 이야기 하고, 상의 끝에 할머니가 병원도 알아봐주셔서
제가 정신과 치료 받는거 아시니까
할머니는 원래 조금만 맘에 안들어도 이년 저년 미친년 하시는 분이시고,
상처되는 막말을 많이 하셔서 제가 마음 건강할 때 아니면 감당이 안되는 분이셨는데
그 이후로는 , 그 이후로도 가끔 감정에 못이기셔서 막말을 하신적도 있지만
저를 신경써주시는게 전보다 훨씬 더 느껴지고, 전엔 어떻게 어떻게 살아야된다 했다면
요즘은 전화하셔서, 마음 편하지? 괜찮지? 하는 식으로 물어보시곤 해요 ㅎㅎ
저는 지금은 괜찮지만 언제 다시 마음이 아플지 몰라요.
저는 아까도 언급했지만
인생의 목표가 외롭지 않게 살기에요.
외롭지 않으려면 필요한 사람이 되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쓸모 있는 사람, 매력 있는 사람.
학교나 , 어딘가에서 큰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외로웠는데,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자존감이 조금 생겼어요.
나라는 사람을 돈을 주면서까지 데리고 있고 싶어하는거잖아요.
내가 쓸모 있다고, 가치 있다고 인정해 주는 것 같았어요.
니가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실제로도 제가 매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게 기쁘구요.
요즘 생활이 참 마음에 들어요.
아직 학교도 졸업 못했고, 직장도 대기업도 아니고 중견기업도 아니고,
그냥 법률 사무소 사무직, 월급도 월 200 받는데 변호사님이 딸 같이 여겨 주셔서
같은 업종 비슷한 일 하는 사람들보다 좀 더 받고 있는 정도.
거의 6시에서 늦어야 6시반 칼퇴근, 주 5일 근무, 화 목 토는 근처에 학원 다녀요.
학원 다닌다고 하니 화요일 목요일은 6시 10분전에 끝내주셔요, 마저 못한 일은
어차피 컴퓨터로 양식에 맞게 서류 만들거나 특정 사이트에 자료 받으면 그거
하나하나 입력 시키는 등의 일이라 새벽에 마무리하고 자고 그래요 ㅎㅎ
그 학원은 영수학학원 종합학원!!
수학은 못따라가겠어서 월, 금엔 과외도 받아요 ! 7시부터 9시까지!
근데 과외쌤이 저랑 과외하는거 즐겁다고 10시까지 수업해주셔요... 저도 좋아요 ㅎㅎ
학교 다니면서 한문제 틀렸다고 울고, 이런 애들보면 부러웠거든요.
열심히 했으니까 한문제에 아쉬워서 눈물 흘릴 수 있는거겠지... 싶어서요.
저는 공부에 스트레스 받아본 적 없고, 늘 다른 고민으로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노는걸 좋아하는 애도 아니었기에 ㅋㅋㅋ 공부도 잘하는게 아닌데 놀줄도 모르는
애였던 것이었던 것이죠!
근데 제 친구들은 거의 좋은 대학 다녀요, 서울대, 연대, 고대, 선생님 되려는 애들,
공부 열심히 하는, 학점 걱정 , 취업 걱정 하는, 자격증 따고,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보면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어떨 땐 존경스럽기도 해요.
저 보면 꼭 다른 세계에서 사는 애 같대요 ㅎㅎㅎ
솔직히 그런거 걱정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취직이야 머리 안나쁘고 몸 안아픈데 마음만 건강하면 일이든 먹고 살 만큼은 하고 살것지 싶었고,
늘 저의 고민은 외로운게 다였기에...
대학교에 와서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된 후로,
지금 하는 일보다 같은 시간 일하는거 더 필요한 사람, 더 가치를 인정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늘 부모님은 서울대 나오셨는데 - 너는 - 하는 소리가 걸렸고,
엄마 아빠와 더 동질감을 느끼고 싶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제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서,
대학을 잘 가는 것 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 좋은 대학에 가면
꿈과 목표를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온 좋은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높을 것 같다고 느꼈어요
지금 생활이 만족스러워서 다 내려놓고 재수학원 다니고 이럴 생각 없고,
그냥 일 하면서 저녁에 부담없이 학원 다니는? 이런게 좋아요.
당장 내년 수능을 치려는게 아니라 이런식으로 꾸준히 짬짬히 공부하다가 원하는 성적이 나오면
대단한 대학 못가게 되더라도 그냥 만족할 만큼 수능 공부를 하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로스쿨 진학해서 변호사 자격증도 따고 싶고요.
제가 지금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는 건가요? 이래도 되는건가요? ㅠ_ㅠ
남친은 스무살이에요, 정말 자상하고, 착하고, 거의 대부분 어떤 상황에서도 그러려니 해주고,
받아주고, 예뻐해주고, 귀찮아하면서도 말 잘들어주고, 그래서 저도 계산 없이
잘해주고 사랑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에요.
막 사랑해!!! 이런 성격은 아니고 어찌보면 무미건조한 스타일인데 그건 그거대로 매력있어요.
제가 좋을땐 꺄~~~ 하고 좋아하다가 슬플땐 엉어엉 울고 하는 앤데
남친은 늘 한결 같이 그러려니 그러려니, 음 그럴 수 있지, 좋으면 ㅎㅎ, 싫어도 흠~ 정도?
ㅎㅎㅎㅎ
공부 하는걸 막 좋아하진 않지만 해야하니까 한다는 마음으로 과제 열심히 하고
그런 모습 보면 기특하고, 주말마다 만나는데 제가 자취하고 있어서 토요일날 와서
같이 저녁먹고, 영화보고, 일요일은 같이 공부도 하고, 어디 놀러도 가고 매주 별일 없으면
그렇게 지내요.
남친은 평범한 집안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화목한 집안에 2남중 둘째에요!
외박 할 때마다 엄마한테 문자하고, 부모님이 본인 위해서 수고하시는거 알고 감사하면서도
하고 싶은건 다 하는 ㅎㅎ 마마보이가 아닌! 그런면도 좋고,
같이 있을 때, 걸을 땐 늘 손을 꼭 잡고, 오른팔로 제 어깨를 감싸주는 남친이 정말 좋아요.
연애인이니 배우니 아무리 잘생겼단 사람을 봐도 남친이 제일 매력있어요!
밥을 먹어도 남친이랑 먹는 밥이 맛있어요.
일을 할 때도 일해서 번 돈으로 남친이랑 맛있는 거 먹고 데이트 할 생각하면 보람차요!
그러면서도 군대 가고 나이들어서 우리 남치니 이상형이 변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해요!
제 삶, 제 자신을 좋아해야 하는데 남친 좋아하는 맛에 사니까
문득문득 두려워요 , 잘못될까봐, 이제 그러기 싫어요,
제가 하는 일, 제 삶을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서 즐거워하고 당당해야 남친이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잘 안돼요 ㅎㅎ
남친은 정말 좋은 애라 좋아하는게 쉬운데 저 자신을 좋아하기는 참 어렵네요.
월급 200받고 할머니가 월 50만원씩 주시고 엄마가 80만원씩 용돈 주셔요.
합하면 330만원이에요.
한달에 10만원 저금하고 종합 학원비로 70만원 , 과외비로 40만원 내요!
자취방 월세가 보증금 100에 88에 관리비 7만원이라 한달에 95만원을 여기서 내고
전기세 수도세 등등 다해서 5만원이라 치면 한달에 100이 들어요!
그리고 핸드폰 요금 10만원!
그러면 고정 지출이 230 들어요.
나머지 100만원으로 교통비 하고 용돈하고 남친이랑 데이트 하는데 넉넉하게 쓰고 있어요.
주말에 만날 때 마다 평균 20만원 정도 쓰고, 주중에도 가끔 만날 때 있어서
주중에 회사 다닐 땐 거의 커피 한잔도 돈 주고 안마시고, 남친 만나는 날에만 쓴다고 보면
돼요!
지금까지 8, 9. 10, 11, 12월을 이렇게 보냈는데 다음달, 2015년 새해 부터는
데이트 통장을 만들어서 23만원씩 넣기로 했어요, 46만원 내에서 데이트 해보자고,
왜냐면 방학때마다 같이 여행가고 싶어서 여행비 모으려고요!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어요.
아빠는 재혼 하셨고 엄마는 월 500씩 일 안해도 생활비가 들어오셔서
제가 중학생 때는 과외 같은거 조금 하시다가
그 이후로는 10년 넘게 컴퓨터 학원 다니시고 영어학원 다니시고 남는 시간은
대부분 교회다니시면서 보내시고 계셔요.
재혼하신 새어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열심히 사시고, 성실하시고 예쁘시고,
능력있으시고 배려심 많으신, 어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셨을까,
아빠가 이런 분한테 사랑받으실만한 분이구나, 하고 아빠를 다시 보게 됐을 정도 ㅎㅎ
더불어 아빠가 좋은 점이 많으신 분인데 새어머니는 아빠의 그런 좋은 점을 찾아내서
사랑스럽게 봐주셨는데 저는 그러지 못하고 서운해 했던게 미안했을 정도...
나도 더 사랑하려고 노력해야지,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할머니가 저를 미리 챙겨주셔서 강남에 9억 2천짜리 25평 아파트 한채,
2억 3천짜리 실평수 13평 오피스텔을 제 명의로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현재 자유롭게 건드릴 순 없지만, 제 앞으로 된 자산이 10억 정도 되서,
쓸데 없는 생각 안하고 저것만 유지하고 살아도 결혼 자금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결혼하게 되면 35평으로 옮겨주시겠다는 말씀도 하셨었어요. 이건 보장된게 아니니까 패스.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지 어떤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살고 있어요.
저 잘 살고 있는거 맞나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제가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