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잎새의 터키 자유 여행기 4
◇오스만 건축가 미마르 시난 동상과 그의 역작인 셸리미에 자미.
셋째날. 에디르네로
터키는 버스로 3시간 정도의 거리는 근거리로 여길 만큼 광활한 나라다.
이스탄불에서 3시간 거리의 에디르네는 그래서 부지런한 여행객들에게는 당일 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에디르네는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로 천도하기 전 수도였던 곳으로 유서 깊은 모스크(자미)가 많다. 특히 제국 최고의 건축가로 유명한 미마르 시난의 역작 셸리미에 자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4일을 머무르는 동안 1박2일 일정으로 에디르네를 다녀오기로 했다.
불길한 느낌은 늘 틀리지 않는다
전날 아야 소피아 박물관, 블루 모스크 등을 둘러보고 저녁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 씻지도 않고 잠들다 새벽 1시쯤 갑자기 눈이 떠졌다.
워낙 덜렁이는 성격이라 뭘 잘 잃어버리는데 느낌이 싸했다.
비몽사몽한 채로 배낭과 옷을 뒤적거려본다. 여권과 경비를 담아둔 작은 가방이 어쩐지 가볍다.
설마...설마.....
새벽 1시, 갑자기 눈떠 가방을 뒤적이는데 내 여권이 없다. 이제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여권이 없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멘붕!!!!
여권에는 전날 이스탄불 도착하자 마자 에디르네로 가기 위해 예매해둔 버스표도 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체 어디에서? 언제? 설마..........
아차.... 맞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때 여권을 제출했었다.
반납할 때 여권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그냥 나온 게 순간 기억났다.
천만 다행이다. 일어나자 마자 찾아야지 하고 다시 누웠는데 문득 가이드북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났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의 휴관일은 월요일이었다. 그날 밤은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이었다.
에디르네 가기 참 어렵다
터키 숙소는 대부분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 여행은 밥심이다.
우리는 여행 내내 딱 한 번 아침 식사를 걸렀는데 바로 이날이었다.
에드리네 행 버스를 오전 9시로 예약했는데 숙소에서 터미널(터키에선 오토가르라고 부른다)까지는
대략 1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전날 잃어버린 여권을 찾으려면 좀 더 일찍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숙소를 나왔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어쩐지 불안하다.
허겁지겁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찾았는데 역시 휴관일이다보니 입구는 굳게 닫혀있고
인기척 하나 없다. 관리자 한 두 명쯤은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차피 휴관일이니 죽치고 기다린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여권 사본은 있으니
그냥 에디르네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버스표? 뭐 수업료라 치고 새로 사지 ㅠ.ㅠ
그 사이 빗방울은 더욱 굵어졌다. 빈 속에 뭔가 개운하지 않은 상태로 오토가르를 가려니
뿌리와 잎새 모두 예민하다. 말 없이 답답한 마음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오토가르에 도착해 9시 버스표를 예약해뒀던 메트로를 찾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가 표를 잃어버렸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물어봤다. 아주 짧은 영어로.
하지만 서로 대화가 안 된다. 손짓 발짓도 안 돼 짧은 작문까지 동원했다.
그제야 직원이 눈치를 채고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10시 차 표를 끊어주겠다고 했다.
터키의 버스 시스템은 독특하다. 일단 우리처럼 정가 개념이 없고 각 회사를 찾아
가격과 시간을 알아보고 사야 한다. 표를 구매할 땐 이름과 성별을 기재하고 외국인의 경우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시가지에도 회사마다 대리점을 두고 있고 전산으로 예약관리를 하기에
표를 잃어버려도 말만 잘 하면 따로 돈 낼 필요가 없다.(버스와 관련해선 나중에 따로 포스팅할 계획!!)
임시로 발급해준 버스표. 10시 좌석 69, 70번이다.(이 버스는 2층 버스였다)
다행히 에디르네까지 돈 따로 안 들이고 갈 수 있다니 마음이 한결 놓인다.
비는 아까보다 더 많이 내린다. 여름 장마 수준으로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터키에서 타는 첫 버스가 시동을 걸고 오토가를 빠져 나간다.
이내 터키 버스 특유의 간식 서비스가 제공됐다. 차장들이 동석해 2~3시간에 한 번꼴로
커피, 과자 등 간단한 간식을 제공한다. 뭐 결국 이것도 다 버스 비용에 포함된 것이지만..
이스탄불을 벗어나자 꽤 너른 평지가 펼쳐진다. 평지 너머 펼쳐진 무지개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저 무지개를 보자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걱정이 눈녹듯 사라졌다. 뭐 별일 있겠어!!
별도의 세르비스(추후 버스 포스팅 편에서 다루겠다)가 없어 돌무쉬를 타고 에디르네 중심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종일 세찬 비가 내린데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 허기지고 감기 기운이 들었다.
아껴 먹기로 했지만 셋 째날 만에 비상식량(그래봐야 물 부어 먹는 전투식량이지만)과 소고기 고추장을 개봉했다.
뜨거운 물에 고추장을 풀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열이 나고 기력이 돌아왔다. 오호!!
여기에서 하루 머무르고 내일 오전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가야 하기에 부지런히 에디르네를 돌아보기로 하고 나왔다.
오스만의 2대 수도, 유서 깊은 도시 에디르네
에디르네는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하기 전까지 수도로 쓰였던 유서깊은 도시다.(초대 수도는 부르사!!)
콘스탄티누폴리스 점령한 메흐메드2세는 19세가 되던 해 부친 무라드 2세가 서거하자 한달음에 왕궁으로 달려가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약관의 나이로 대업을 이룬다. 앳된 나이의 메흐메드 2세는 이곳에서 어마어마한
야망을 키웠을 터...
지금은 소박한 국경도시에 불과한 곳이지만 이곳에는 유서깊은 자미들이 오밀조밀 몰려있다.
오스만 최고의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 스스로 자신의 역작으로 꼽은 셸리미에 자미를 먼저 둘러보았다.
셸리미에는 블루모스크보단 작지만 터키에서 봤던 수많은 유명 자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화려한 색채와 장식, 힘이 느껴지는(내용은 알 길 없지만) 글씨에 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셸리미에 자미 하나를 보러 이곳으로 오는 여행객이 있을 정도라고 했는데 그럴만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에스키 자미로 향하는데 그사이 밖은 어둑해졌다.
은은히 빛나는 셸리미에 자미는 낮에 보는 것과 또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4개의 미나레를 자세히 보면 3개의 발코니가 있는데 이는 인근에 있는
위츠 세레펠리 자미를 지은 자신의 전임자에 대한 존경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셸리미에 자미는 201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셸리미에를 나와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에스키 자미로 향했다. 에스키는 오래됐다는 뜻으로
에디르네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자미다.(1414년 완공)
셸리미에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부의 힘 있는 오스만 문자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부르사의 울루 자미와 함께 오스만 서예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음표 모양 같기도 하고 사원의 모양을 딴 것도 있다.
아래 큼직한 사인 같은 글자는 술탄의 것이 아닌가 싶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 초입에도 이와 비슷한(같은 것인지는 모르겠고) 사인이 있는데
돌마바흐체 건설을 지시한 술탄 압뒬메시드의 사인이다.
셸리미에 자미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여행지 느낌이 난다면 에스키 자미는
여전히 이곳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는 자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다.
셸리미에 자미와는 다른 매력에 에스키 자미에서도 한참을 머물다 숙소 가까이에 있는
위츠 쉐레펠리 자미로 갔다. 네 개의 미나레 모양이 모두 다르고 그 중 하나는 빠삐코 아이스크림처럼
나선형으로 돼 있어서 유명한데 저녁 늦게 찾아 사진을 못 찍었다. (내부도 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종일 자미만 둘러 봤는데도 에디르네 여행은 지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우리나라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 낯섦, 이국적인 멋이 크게 와닿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