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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라는 것을 들키고 학교생활이 힘들게 되었네요 . 제 얘기좀 들어주세요.

훈이 |2015.03.12 15:43
조회 4,506 |추천 25
안녕하세요. 대학생활중인 20대 청년입니다.
제목 그대로에요. ㅎㅎ
많이 심난하고 힘든 마음에 그냥 제 이야기를 적어볼까 해요.
제 이야기.. 들어주세요.

사실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는 꽤나 오래 되었습니다.

남중, 남고를 다니며 친구를 좋아해보기도 하고, 괜히 혼자 죄책감에 시달릴 때도 있었습니다.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저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제가 게이라는 것에 대해 항상 두렵고 자책감만 들었던 기억만 납니다.

어디에 털어놓을 곳도 없고, 같은 게이를 만나보는 것은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 것 같았기 때문에 청소년 시절 내내 혼자 가슴에 묵혀두고 살았습니다.

고2 즈음에 동성애에 관련하여 이런저런 칼럼을 읽어보니 청소년기의 동성애 현상은 성 정체성의 확립이 아직 미숙하고 호기심 등의 여러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종종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나와있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안심하면서 살았습니다.
나중에 알아서 이런 마음이 없어질테니 지금은 내 할일이나 열심히 하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니까 좋아하는 친구를 봐도 이전과 같은 죄책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좋은게 좋은거였죠.

하지만 여차저차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재수를 하고...
그렇게 대학에 왔는데도 저의 마음은 여전히 여성에게 끌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를 `여자`라는 성별 자체로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마음이 가지 않았던 너무나 가깝고도 먼 성별..
좋아하려 노력해봤던 여자친구들에게는 전부 상처밖에 줄 수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좋긴 좋았지만 그냥 친구를 넘어선 감정은 생기지도 않았거든요.

남중 남고를 나온 일반적인 남자라면 여대생이 얼마나 참하고 이뻐보이겠습니까.
하지만 저에게 여대생은 학점 경쟁자. 그냥 여자 사람. 친구. 그게 전부였습니다.
남녀사이에 친구는 없다? 반례가 저였네요.ㅎㅎ

덕분에 저는 정말 편하게 여자 동기들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남자애들이 넌 여자앞에서 가오떨어지게 그러고 싶냐, 너 그래서 연애는 하겠냐 라고 혀를 찰 정도로 여자친구들 앞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간혹 가다가, 못난 본인을 좋아해주는 여자애가 있어도 저는 항상 거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고백을 받아들이고 사귄다면 제가 게이인걸 아주 잘 숨길 수 있는 함정카드가 될 수 있었겠습니다만
저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가짜마음을 주는 것은 너무 비겁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의 소신이었고, 절 좋아해주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두명 거절하다보니 어느새 제 눈이 엄청 높다는 소문이 퍼져있었습니다.
이런 소문이 그닥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막상 들으니 내가 남들에게 게이처럼 보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안심부터 되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저는 남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하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냥 착하고 지극히 평범한데 좀 웃긴애였습니다.

딱 봐도 누나가 해준 옷 코디+평범한 성격+평범한얼굴+평범한 체격

이런 흔하고 흔한 남학생 같은 면만 가지고 있다보니
여러분들이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게이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서 그런지
몇번이고 여자 동기나 선배의 고백을 거절해도 게이라는 의혹 조차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행이죠.
(사실은 티가 안나서 그렇지 저처럼 평범한 게이가 제일 많습니다. 압도적으로요.)

그렇게 잘 숨기고 다니면서
저는 뒤에서는 연애하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있었습니다.ㅎ

그렇게 저는 새로운 학년이 되었습니다.

올해 신입생이 모집되고 새터와 오티에 함께 갔습니다.
친해지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입도 털어주고 게임도 진행해주고 같이 놀면서 참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친해진 새내기들과 번호교환도 하면서 술을 마시는데

저의 분수에 넘치도록 예쁘고 참한 어떤 신입생이 선배님 번호 알고싶다고 핸드폰을 들이밀었습니다.

아, 오해마세요. 그냥 서로 친해지려고 그런겁니다.
그 친구는 이미지게임에서 우리 과에서 제일 못생긴 것 같은 사람으로 절 뽑았던 친구거든요. 그정도로 전 얼굴로 매력어필 하기엔 참 불쌍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번호 주면서 참 영광이었습니다. 외모만 놓고 봐도 과에서 손가락에 뽑힐 친구가 직접 다가와서 번호를 물어봐주니...ㅎㅎ 남자다 여자다를 떠나서 기분이 좋아지는건 어쩔수 없더라구요
물론 제 주변에 잘생긴 동기들이 많아서...혹시 내 친구들한테 다가갈 용기가 없어서 나를 발판으로 친해지려는건가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딱히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티가 끝나고 나서도 이 예쁜 후배는 저와 수시로 카톡을 주고받았습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잘생긴 동기 친구들 소개시켜달라는 말은 하지도 않고
오로지 모든 이야기가 저에 대한 질문, 내가 좋아하는 것, 수강신청 나랑 만나서 같이하면 안되냐...뭐 이런 류의 말이었습니다.

처음엔 후배니깐...하는 마음으로 만나서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도 주고, 수강신청도 도와주고 같이 밥도 먹고 하면서 재밌게 놀았습니다.
물론 제 애인은 당연히 알고 있었죠. 제가 이런 후배가 있다고 맨날 자랑했거든요. 우리도 이쁜 친구들 보면 친해지고싶고 그래요.

개강하고나서도 많은 시간을 이 후배와 붙어다녔고 저는 괜히 욕을 먹었습니다.
쟤 눈 높은거 맞다고.... 이런 말이 나돌면서 사람들은 거의 그 후배와 저를 커플취급을 하더라구요.

저희는 둘 다 이런 말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서로 말 잘통하는 친한 선후배사이였으니깐요.

근데 진짜 만나면 만날수록 이 후배가 너무 진국인겁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자신이 해나가야 할 일과 본인의 목표를 분명하게 잡아놓고 벌써부터 차근차근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나중에 뭔가 하나 하겠구나...할 정도로 야무지고, 힘들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 만큼 본인의 가족을 책임지고 살아가겠다는 그 마음이 너무 예뻤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악물고 나아가겠다는 그 의지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러면 안되지만 순간적으로 제 애인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탐이 나는 내면을 가진 후배였습니다.
한심하게도 그 와중에 든 생각은
이런애가 게이였으면 진짜 좋겠다... 싶은 생각..

같이 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고맙게도 그 친구가 제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더군요.

며칠 전에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끝나고 집가는 길이었습니다. 야밤에 그 후배에게 전화가 오더니 만나자고 하더군요. 술마시자고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갔습니다.

언제봐도 이쁘고 참하고 진국인 후배. 내 절친한 동생. 정말 누가 봐도 탐낼만한 사람. 하지만 내겐 생물학적으로 여자인 동생으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술을 마시는데 그날따라 제가 말을 걸어도 대답없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을 때가 많더군요.

그러다가 갑자기 하는 소리가

난 오빠같은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벙쪘습니다.

왜 이런 애가 나를?

나보다 잘생긴 사람 과에 쌔고 쌨는데, 나보다 착하고 성격 좋은 사람들도 쌔고 쌨는데 왜 이정도나 되는 애가 저를 좋아하나 싶었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 내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니

시골 청년회장같은 순박한 모습이 좋았고, 얘기도 잘 통하고 말도 잘 들어주고 어쩌고 저쩌고...말하다가
무엇보다 같이 있으면 편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어서 좋다고 해주더군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 후배에게 나라는 존재가 편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 후배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혀 보지 않기 때문일겁니다.
이성적으로 좋아하고 싶어도 전혀 마음이 안가는데 이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전 이 후배의 모든것을 흔쾌히 받아줄 수 있는, 내숭 떨 필요 없는 편한 오빠가 된 것일텐데..
그리고 지금처럼 편한 오빠동생으로 지내고 싶은게 내 목표였는데

이 친구에게는 '편하다'라는 느낌이 생각보다 큰 매력점이 되었나봅니다.

저한테 고백을 했습니다.

같이 사귀면서 더 알아가보고싶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무생각이 안나더군요. 당황스럽고.. 내 애인보고싶고.. 이걸 어찌해야하나...
아직 소녀티도 못벗어난 갓 스무살짜리 여대생이 내게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큰 고민을 했을까..

제 애인이랑 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두려웠습니다.
제 애인도 전에 저랑 사귀는 중에
다른 여자애 고백을 받고 눈속임을 위해 사귀는 척 했다가 결국엔 그 여자애에게 상처만 주고 끝났던 일이 있었습니다.

전 이 후배를 잃기 싫었습니다. 어떻게 거절해야 원래대로 지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내가 오늘 거절하면 내일 학교에 또 무슨 소문이 돌까....
걱정되기도 했구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넌 너무 매력적이고 생각도 깊고 현명한 친구다. 하지만 아직 나는 연애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고, 아직은 아무생각 없이 공부에 올인하고 싶다. 교환학생도 가고싶고 유학도 가고싶고, 기회만 생긴다면 어느 상황이 닥치든지 내가 해낼 수 있을 만큼 준비된 사람이 되고싶다. 넌 나에게 너무 좋은 동생이다. 넌 내게 너무 과분하리만치 좋은 동생이다. 나는 너의 뒤에서 응원을 해줄 수는 있지만 너의 옆자리를 꿰차기에는 너무 그릇이 작은 사람이다. 너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또 너도 그 사람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을 만나라. 나는 지금 겨우 스무살인 너에게 받기만 하는 존재다. 난 너가 누군가에게 받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네...이런식으로 이야기를 대충 하니깐 걔가 미안하다면서 막 울더라구요...
미안한건 저였죠.... 결국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았지 결국 싫다는 핑계로 들릴 수 있으니깐요. 실제로 핑계가 맞았구요.

한참을 토닥여주다가 늦었으니 집으로 데려다준다고 하니까

활짝 웃으면서
오빠같아도 지금 상황이면 혼자서 걷고 싶겠지??
라고 하면서 혼자 가겠다고 하는데 제가 뭐라 할 말이 없더라구요..ㅎ 미안하기만하구..

결국 그 친구 혼자 가게 냅두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괜히 제가 잘못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성적 '소수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과는 조금 다르죠. 사랑의 대상이 남자와 남자니깐요.

저는 대학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수많은 노력 끝에도 제가 동성애자에서 벗어나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인정을 하고나서부터 동성애는 틀린게 아니라고 굳게 믿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게이라는 것 때문에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괜히서러웠습니다다.

이런생각을 하니 또 지금 제 애인이 생각나더군요
내가 가족만큼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같은 남자이기 때문에 더 서로를 잘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제 인생 최고의 사람. 지금도 보고싶은 사람.

제가 지금 이성애자가 된다면 또 애인에게는 큰 상처가 되겠죠. 그러기도 싫고요.ㅎ

아무튼 그렇게 뒤척이다 잠들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니 모두들 별 탈 없어보이고 그 후배는 여느때와 다른 것 없이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그렇게라도 대해주니 안심이 되더군요.

소문은 나지 않았습니다. 혹시 누군가 피해를 볼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애초에 주변 사람에게 말을 아낀 것 같습니다.

연인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보이쉬한, 완전 꾸밈없이 털털하게 노는 우리 둘을 보니 이젠 커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그냥 둘이 진짜 잘 노는구나...그래도 사람은 언제 사귈지 모르는거야..정도로 넘어가게 되었고,

저는 중이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대학 새터때부터 지금까지 연애하는 꼴, 누구랑 썸타는 꼴 한번 못봤을테니 더욱 그렇게 보일테죠.

가끔씩 동기들이 장난삼아서
어우 저 연애고자새끼 ㅋㅋ 니 혹시 게이아냐?
이렇게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ㅋㅋㅋㅋ미쳤냨ㅋㅋㅋㅋㅋㅋ으...그런거 싫어..
이러면서 아닌척 하기 바빴죠

사실 엄청 심장 졸였습니다.
들키면 안된다. 들키면 끝이다.

단순한 장난이니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일이터졌어요.

전 항상 가방 속에 애인과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넣어놓고 다닙니다.
지금은 정말 후회되는 습관 중 하나입니다.

같이 뽀뽀하면서 찍은거, 포옹한거, 서로 같은 표정지은거, 같이 워터파크가서 찍은거.. 전부 인화해서 가방에 들고다닙니다. 심심할때마다 몰래 봐요. 애인은 항상 보고싶거든요.

물론 가방 사용자 말고는 모르는 깊은 수납공간 속에 꽁꽁 숨겨놓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 당시 저는 전날 잠을 못자서 1교시 내내 자버린 상태... 수업 끝나자마자 다시 엎어져서 눈을 감았습니다. 잠결에 동기가 충전기를 빌려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잠결에 귀찮아서 가방 뒤쪽 지퍼 열면 그 속에 주머니 달려있는데 그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주머니에서 좀만 아래로 내려가보면 제 사진 넣어놓은 수납공간입니다..

고마워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 넌 가방에 뭘 넣고 다니냐?

하면서 뒤적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하기사.. 이친구랑은 서로 가방 뒤져도 아무렇지도 않을 친한 사이입니다.

아차싶어서 정신이 확 깨버렸고
가방 뒤지지 말라고 가방을 확 뺏으려 들자
인화된 사진들이 가방 안에서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주변 동기들이 뭔사진이냐 ㅋㅋㅋㅋ 이러면서 하나둘씩 집어들고 표정이 전부 굳더군요.
당연하죠.

남자둘이 뽀뽀하고있는 사진.
둘이 얼굴맞대고 부비적거리는 사진
누가봐도 친구라 하기엔 지나치게 오묘하고 어떻게 보면 더러울 수도 있는 사진을 보고 그냥 그러려니 하겠습니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학점이고 수업이고 뭐고 상관없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벙쪄있는 애들이 들고있는 사진들을 다 낚아채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빠르게 걸어 나왔습니다.

그날 저에게는 학교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교시부터 듣는 친구가 어딜 갔냐, 너 왜 수업 안들어오느냐 물어본거 빼면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이미 다 소문났겠죠. 어쩌면 다른과에도.

그렇게 어제는 하루종일 피시방에서 게임만 했습니다.

그렇게 밤이 되고

조심스럽게 그 후배에게 연락이 왔어요
우리 수업 같이 듣는거 과제때문에 연락 드렸다고
만날 수 있을까요?
물어보는 그 말투에서 이 아이도 알았겠구나..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게 설명이 될겁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내게 여자친구가 대학생활내내 없었던 이유
우선 만났습니다. 롤만 한다고 지금 상황에 답이 나오는게 아니잖아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사근사근 자기 할 말 해주는 그 후배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사건은 1교시에 터졌고. 이 어마어마한 화제는 이미 점심시간즈음에 거의 모든 학과생들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후배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카페에서 과제에 대해 얘기하다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게 힘든 시간에, 우리가 진짜 친구네어쩌네 하던 동기들은 연락한통 없고.
만난지 한달도 안되는 어린 후배가 더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된다니..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너무 서러웠습니다. 내가 한심했습니다.
사진은 집에서나 볼것이지..왜 가지고 다녔을까
후회막심했습니다. 이제 겨우 학기 초이고. 전 아직 고학년도 안된, 겪을 대학생활이 더 많이 남은 학생인데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죽고싶다
죽는건 무서운데 죽고싶다
난 왜 이렇게 태어난거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제 마음을 읽었는지 후배는 더욱 더 수업에 관한 얘기만 잘 해줬습니다.
이미 핵심은 다 말해줘놓고. 굳이 사족을 붙이면서까지 이 어색함을 대화로 풀어보려 한 것 같습니다.
더이상 사족이 붙을 수 없을 정도로 수업에 관한 얘기가 끝나고 잠시 정적이 흘러서.. 어색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도 얘기해야겠다싶어서

그냥 고맙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러니 얘가 울먹거리면서 절 혼내더라구요
그렇게 힘든 일 있었으면 나한테 연락해야지 그런 것도 못하냐면서
난 진짜 오빠한테 달리 해줄 말도 모르겠고 그냥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밖에 못하겠다면서 울먹거리는데 에휴.. 1년 넘게 지낸 동기들보다 1달도 안된 후배만 내 곁에 남는구나...싶었습니다.

분위기도 좀 풀리고 숨겨서 미안하다. 나중에 기회되면 말하려 했다 사과까지 하고 어느정도 화기애애해졌습니다. 후배가 인화한 사진 보여달래서 얘한텐 다 보여줬습니다.
'애인 잘생겼네~ 이래서 나 찼구만'
이렇게 농담을 해주는게 너무나 반가울 따름이었습니다.

애인에게는 이 상황을 아직까지도 전할 자신이 없습니다. 얘도 학교다니느라 바쁘고 힘들텐데 내 얘기를 들으면 수업도 안듣고 나랑 있어줄게 뻔하니깐요.
그건 싫습니다.

어제 학교에 잠깐 갔습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들으려고 했는데 너무 마음이 힘들어요. 모르는 척 인사해주는 고마운 동기들도 있었지만
친하게 지냈음에도 나랑 마주치면 괜히 못본 척 지나가는 동기들도 있었습니다.
얼굴도 잘 몰랐던 여후배들이 지나가면서

야, 저 선배래 ㅎㅎㅎㅎ
헐 말걸어볼까? ㅎㅎㅎㅎ

하면서 속닥속닥 거리는 말들, 못들은 척 지나가기도 하고. 그냥. 내가 구경거리가 된 기분입니다.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한 선배는 대놓고
니는 남자랑 그런거 할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물어보는데 정말 비참하고 할말도 없고..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하니까 남들 다 보는데서
아니 너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진짜로... 너 나중에 큰일나면 어쩌려고..


어쩌라고
이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참았습니다.

점심시간되자마자 그냥 학교 나와버렸습니다.

언젠가는 잊혀지겠지
생각을 해봤는데
도저히 잊혀지기가 어려운 난제입니다.
이젠 누구든 날 보면 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를 대할텐데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학교 안가고 혼자 글 끄적이고 있습니다. 그 후배가 저녁에 보자는데 사실 지금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있고싶은데 생각이 자꾸 납니다.
애인한테 말하고 싶습니다. 위로받고싶고. 무언가 말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애인도 겨우 저랑 동갑내기인 남학생입니다. 제 말을 들으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요.
오늘 애인 봐야되는데 못보겠어요. 보면 울것같아요.
내가 학교에서 버려지고 욕먹고 게이새끼라고 놀림받으면서 살아도 얘는 제 곁에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거든요
이렇게 나한테 확신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게 너무 행복하네요.
그래서 더더욱 얘기 못하겠어요

제가 거짓말을 못해서 얜 제 얼굴 보면 무슨 일 있구나 딱 알텐데
ㅎㅎ
보고싶은데 미안해서 못만나겠네요

갑자기 글이 이상해졌죠

갑자기 되게 서러워서 생각나는대로 썼어요
정신없으시죠. 죄송해요.
학교에서 그래도 좋은 후배로, 좋은 동기로 자리잡아가려 노력했습니다.
항상 술자리에 빠지면 안될 사람, 과대보다 더 과대같은 활발한 사람. 술자리 애들 챙겨주는 아빠같은 사람.
있으면 편안하고 재밌는 사람.

순식간에 사라지네요.
귀찮을 정도로 연락해댔던, 놀자고 졸라댔던 학교 친구들이 이젠 연락 한통도 없어요.
걔네도 불과 이틀 전 일이니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거겠죠? 그렇게 믿고싶어요.
믿고싶ㅅ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생 연락이 안와버리면 어쩌죠
저 이제 휴학할까봐요
휴학하고 수능 다시볼까 생각중이에요
아니요, 거의 그렇게 마음 먹었어요.

지금 이자리에서 이 시선을 버텨나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나중에 괜찮아지겠지? 아뇨. 그 과정을 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학교생활하는동안 게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
학교생활 철판깔고 한다고 해도 결국 교수님들도 여차저차 알게될테고...
그냥 전 누군가가 제그 게이라는 걸 아는 것 자체가 별로 좋지 않아요.

애인한테미안해요. 갑작스레 수능공부한다고 연락도 뜸해지면 얼마나 짜증나고 내가 미울까.

내 얘기 하고싶은데.. 위로받고싶은데 어떻게 말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애인이 내 걱정하느라 자기 생활도 못챙기는 것도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오늘 후배는 우선 만나봐야겠죠

힘들고 지칠때 이렇게 찾아와주는 고마운 후배니깐.
이 후배랑은 정말 평생 벗으로 잘 지낼거에요.
내가 수능 본다고 하면 얘도 슬퍼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평생 떨어져서 볼 사이도 아니니깐요

모르겠네요 제가 어떤식으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할지
평생을 그냥 잘 숨기고 살아왔기때문에 걸렸을 때를 예비해놓진 못했어요
그 누구도 저를 의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줄 알았으니깐요

우선은 수능을 다시 볼까 해요. 더 좋은 대학 가서 더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제 미래를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싶고, 준비하고싶어요.

글 엄청 길었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제 이야기를 적어보고싶었어요.
ㅎㅎ
겨우 개강한지 열흘남짓인데 참 다이나믹합니다.

뭐, 동성애 혐오하시는 분들이야 당연히 계실테고
동성애자라서 뭐라 하려고 이 글 읽으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쓰실 말 쓰세요 저도 여기에 그냥 제 얘기 쓰려고 글 쓴건데 님들도 그냥 쓸말 쓰세요.

아무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추천수25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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