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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자유여행기]터키의 참멋 셀축

뱅알뱅알이 |2015.05.05 22:54
조회 11,434 |추천 9

뿌리와 잎새의 터키 자유 여행기 12

 셀축 여행기 및 다른 글은 블로그 http://blog.naver.com/bbury_lipsae에서 보실 수 있답니다.

 

 

끄트머리를 향해&어떤 아쉬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여행은 어느덧 종반을 향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도시와 역사유적, 여행지를 다녔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계산해보니 아쉬움만 남는다.

특히 터키 특유의 문화, 사람 사는 모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우리는 터키의 겉모습만 훑어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을까? 욕심만 앞섰을까?

여행이 끄트머리에 다다른 모양이다. 이렇게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니.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 할 일상이 걱정된다. ​아니다, 있는 동안 뒷일은 생각하지 말자...​

이사베이 자미+성 요한 교회+아르테미스 신전 터

 

셀축을 찾은 날, 다시 따사한 햇살이 우리를 반겼다.

저렴하고 맛좋은 쵭쉬쉬(꼬치 요리)로 허기를 달랜다.

 

이사베이 자미 내부엔 다른 자미와 달리 원형 기둥이 두개 서 있는데

인근 에페스에서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자미 외관과 정원을 둘러싼 풍경 역시 이색적인 멋이 있다.

 

 

 

 
아야술룩 언덕 위에 잇는 성 요한 교회.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요한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교회.

요한은 예수의 부탁으로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셀축에서 살았기 때문에

셀축과 인근 에페스에는 기독교 유적이 가득하다.

요한은 원래 어부였는데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를 만났고

이후 예수가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되었다.

열두 제자 중 가장 신앙심이 깊었기에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부탁할 정도로 신뢰했다고 한다.

 

 

  

4세기 무렵 요한의 무덤이 있던 곳에 세워진 교회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증축됐다.

건물은 가로 110m, 세로 140m 6개의 돔으로 이뤄진 형태였는데

특히 6개의 돔은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교회에 들어갈 무렵, 어슬렁 어슬렁 곁으로 다가와

자신은 유물을 발굴하고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면서

오래된 동전을 구경시켜주다가 20리라에 사라고 하는 호객꾼이 다가왔다.

그 노력은 가상했으나, 그 동전이 진짜라도 문제, 가짜라도 문제인 것

가볍게 노 땡큐 했더니 쿨하게 담배나 한개피 달란다. 허참

 

 

  

교회 뒤편으로는 셀주크 시대에 만들어진 성채(최근 다시 복원된)가 있는데

이쪽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꽤 괜찮았다.

 

 

 

두터운 벽 사이 이런 공간이 있길래 사진을 찍었는데.... 잎새는 내 안티였구나....

 

 

 

 

 

에페스 지역은 전통적으로 여신 숭배 전통이 강한 곳이었다.

기원전 10세기께 그리스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아르테미스 여신을 주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낳은 남매 쌍둥이 중 하나로

제우스에게 간청해 평생 처녀로 살게 된다.

그리스에서 아르테미스는 그래서 처녀성, 순결의 상징이었는데

에페스로 넘어와서는 다산, 대지의 여신으로 변모한다.

기원전 550년 처음 신전이 세워졌는데 길이 120m, 폭 60m에

기둥 127개의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심지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보다 2배나 컸다고)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일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는데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가 방화한 이유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지금은 황량하기만 한 신전을 보니 문득 숭례문이 떠올랐다.

어이 없는 일 때문에 신전 터는 가운데 기둥만

허무하게 남아있다(그마저도 1973년 다시 세운 것).

 

 

신전 터의 경고문 내용에 웃음이 피식났다.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이런 문구를 써놓은 것이겠지?

 

 

터키의 숨은 속살을 엿보다

1월이었지만 외투가 필요 없을 만큼 셀축 날씨는 내내 따뜻했다. ​

중심가 한 가운데 위치해있던 숙소에서 나오는데 주변이 요란스럽다.

길가를 가득 메운 낙타와 그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로 시끌벅쩍 했던 것.

​알아봤더니 셀축에선 해마다 이맘때 낙타축제가 열린다고.

이날은 전야제 성격으로 우리 식으로 치면 뽐내기 대회가 열렸다.

한껏 치장한 낙타들이 터키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다음날엔 인근 운동장에서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낙타 레슬링

우리 식으로 하면 청도 소싸움 쯤 되는 시합이 열린단다.​

 

 

 

 
축제가 있는 곳에 춤과 음악이 빠질 수 없는 법.

 

정확한 춤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춤을 사랑하고 밤새 함께 추는 걸로 봐선 꽤 유명한 전통 춤인 모양.

 

 

 

 

 

 

 

 

 ​

​이날 전야제에서 우승한 낙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토요일마다 오토가르 뒤쪽 공터에서 열리는 토요장터.

시골 5일장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시내를 둘러본 우리는 오후에 쉬린제 마을로 향했다.

이곳도 원래는 그리스인들이 살던 마을이었는데

인구 교환 협정 이후 터키인들이 정착했다고.

오스만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마을로 샤프란볼루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특히 유기농 음식과 와인(이라 쓰고 과실주라 부른다)이 유명하다.

 

 

가볍게 한 잔 시음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 손엔 과실주 3병이 들려 있었다.

 

 

​저녁시간 우리는 페티예에서 맛봤던 오징어링 맛을 잊지 못하고

같은 메뉴를 파는 식당을 찾아 이곳으로 들어왔다.

낙타 축제 전야제가 종일 열렸던 관계로 식당은 시끌벅쩍했다.

우승팀? 우승 지역의 일원이었는지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티셔츠와 모자를 나눠쓰고 흥겨운 반주에 맞춰 노래와 춤을 췄다.

형제의 나라 아니랄까봐, 터키 사람들도 흥이 가득했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지만 셀축에서만큼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그들의 문화와 여유를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추천수9
반대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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