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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영안이 열려 "나 천국 가니까 너무 좋다" 고백하신 아버지

죽음 앞에서 영안이 열려 "나 천국 가니까 너무 좋다" 고백하신 아버지
- 고여숙 집사 (1가나안선교회)





고여숙 집사 (1가나안선교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저는 아버지 몰래 신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만민중앙교회에 인도받은 뒤 비로소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이 생겼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에 간 것이 발각되는 날에는 옷을 가위로 잘라 버리거나 수업 외에는 외출을 금하셨습니다. 심지어 멍이 들 정도로 매를 맞기도 했지요.


불교 신자인 줄 알았던 아버지가 승려라니요?

대학 졸업 후 부모님 사이가 악화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불교 신자인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결혼 전에는 주지승이었고, 환속한 다음에는 철학원 운영과 포교 활동을 하는 승려였던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떠나고 싶어 유학을 결심했고, 영국에 있는 학교로부터 합격증서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목자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 결국 유학을 포기했지요.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는 대구에 있는 절로 내려가셨습니다. 신앙생활이 자유로워져 선교회장, 화요찬양예배 반주자 등의 사명을 맡아 헌신할 수 있었지요. 2011년부터는 수요예배 반주자와 교회 직원으로 근무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올해 1월 말, 갑자기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담도암 3기말로 더 이상 의학으로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대로 돌아가신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안타까웠지요. 이에 아버지를 위해 3일 금식과 작정해 기도하며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대신해 우상을 심히 섬긴 것을 회개하며 불쌍한 아버지를 구원시켜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통회자복 했지요. 3월 2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자서전 『나의 삶 나의 신앙』과 함께 제 마음을 실은 편지를 전해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어렸을 적부터 저희들을 위해 고생하시는 아빠께 늘 감사했고, 힘이 돼드리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다 고등학생 때 생명의 제단을 만나 전 너무 행복했어요.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게 해 주시고, 선하게 살도록 당회장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에요. 아빠한테 수없이 맞고 아파할 때도, 당회장님은 아빠가 하나님을 몰라서 그러니 아빠를 더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그랬기 때문에 아빠를 미워하지 않고 더 이해하려고 했고 사랑할 수 있었어요. 아빠가 이 책을 읽고 부디 주님을 영접해 천국에 가셨으면 좋겠어요…."


"나 천국 가니까 너무 좋다! 큰 빚을 졌다"

며칠 후, 아버지는 전화를 하셔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너와 동생들, 그리고 엄마에게 내가 너무 큰 죄인이구나. 이재록 목사님 자서전을 보니 내 마음에 와 닿는 게 너무 많더라. 목사님이 너무 훌륭하시더라." 하며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 같아 아버지를 서울로 급히 모셔 왔습니다. 이어 심방을 받았지요. 아버지는 주의 종님들이 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시면 "아멘!" 하며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지난 3월 31일, 교회에 등록하신 아버지는 며칠 후 당회장님을 뵙고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4월 14일, 꿈속에서 아버지가 지난날 판단 정죄했던 일들을 당회장님께 회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십일조 상당액을 헌금으로 내달라고 부탁하셨지요. 저는 신속히 준비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말기 암 환자들이 있는 병동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병실 안에 저승사자들이 득실득실하다며 들어가기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영안이 열려 영의 세계를 보신 것이지요.

4월 21일, 극도로 악화된 아버지는 "나 천국 가니까 너무 좋다. 당회장님 뵙고 싶다. 너무 큰 빚을 졌다." 하시며 주무시는 듯 소천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아버지는 당회장님의 사랑의 중보기도로 천국에 가실 수 있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삼위일체 하나님께 돌립니다.

 

 

 

"잘 들리지 않던 귀가 이제 잘 들려요"
- 고쿨 부젤 성도 (네팔만민선교센터)





고쿨 부젤 성도 (네팔만민선교센터)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팔 중동부 라메찹 지역 오카봇 마을 주술사였으며 힌두교를 신봉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3월, 놀라운 하나님 권능을 체험한 후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지난 1월, 저는 아들 가족을 만나러 수도 카트만두에 왔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그들은 네팔만민선교센터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먼저 이곳에 온 아내도 전도돼 주님을 만난 첫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라고 자랑하면서 매일 저를 교회로 안내했습니다. 담임 이혜천 선교사님도 하나님에 대해 아주 친절하게 알려 주셨지요.

저는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고 뛰는 등 하나님 권능의 역사가 나타난 자료들을 보며 믿음이 됐습니다. 또 가족과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에 마음 문을 열었지요.

특히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반복해 외우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생명의 씨'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던 중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청력이 좋지 않아 나지막하거나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서 말하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는데, 어느새 잘 듣고 있는 것입니다.

73세 고령의 주술사였던 제가 하나님 자녀가 됐으니 저는 참으로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나의 삶을 바꿔 준 한 장의 「만민뉴스」 감사해요
- 오영님 권사 (광주만민교회)






오영님 권사 (광주만민교회)


1992년 2월, 첫아이를 낳은 기쁨도 잠시 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7년간 몸이 무겁고 피곤하며 삶에 대한 의욕이 현저히 떨어지는 전신 무기력증으로 고생해야 했지요.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보증 선 것을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아 남편 월급으로는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고통 속에 잠 못 이루던 기나긴 밤들, 남편에게 짐이 될까봐 묵묵히 견디며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처절한 외로움에 사로잡혀 눈물 흘렸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부흥성회를 통해 전신 무기력증을 치료해 주시고

1999년 4월 말, 불행의 긴 터널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제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드리워졌습니다. 집 앞에 한 장의 소식지가 꽂혀 있었지요. 그것은 바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를 알리는 「만민뉴스」였습니다.

이 성회를 광주만민교회(담임 박형열 목사)에서도 화상(畵像)을 통해 참석할 수 있다는 소식에 '나도 가서 은혜받고 치료받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지요.

광주만민교회 상담전화로 연결된 허정 장로님은 제 영적 갈급함을 아시고 '믿음의 5단계' 15편의 설교 테이프를 가져 오셨습니다. 밤새 듣고 또 들었지요.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권세 있는 말씀에 물밀듯 감동함이 밀려왔습니다.

그해 5월, 드디어 부흥성회에 참석했습니다.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고,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목발을 버리며 걷고 뛰는 권능의 역사들은 너무나 놀라웠지요.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동안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치료받고자 복용하던 약을 끊었습니다.

부흥성회 첫날부터 저는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하루하루 삶에 희열이 넘쳤지요. 그렇게 무기력하고 무겁던 몸도 솜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전신 무기력증이 치료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후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건강하며,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고자 지역장으로서 영혼들을 갈무리하며 충성하고 있지요.


남편을 변화시켜 축복해 주신 하나님

부흥성회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체험한 후 저희 가족은 광주만민교회에 등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딸의 중이염과 아토피성 피부염도 치료해 주셨고, 무엇보다 남편 서종수 집사님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남편은 제가 건강이 회복된 것과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를 보며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을 버려 나갔지요. 즐기던 술과 화투도 미련 없이 끊어 버렸습니다. 또한 성격이 불같고 가부장적이었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온화한 성품으로 바뀌었지요.

더욱이 감사한 일은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십일조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GCN 방송 선교 헌금을 꾸준히 심고, 광주만민교회 새성전을 건축할 때에도 하나님께 힘껏 헌물을 드렸지요.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이런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축복의 물꼬를 터주기 시작하셨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차장 승진과 동시에 전남지역 본부에서 본사(경기도 의왕시 소재)로 발령받았습니다. 또 물질 축복과 더불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상 수상, 일본 연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최고농업정책과정 수료 시 우수논문상 수상 등 예기치 않은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폴리텍대학 김제 캠퍼스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지요. 교회에서는 재정부 부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맏딸 서명희 자매는 청년선교회 회장과 글로리아중창단으로, 둘째딸 서인애 자매는 고등부 선교회장과 백향목찬양율동단으로, 셋째딸 서지애 자매는 백향목찬양율동단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맏딸은 폐농양을 믿음으로 치료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렸지요. 전신 무기력증으로 삶의 의욕이 없던 저를 행복한 사람으로 바꿔 주시고, 가족 모두 하나님을 사랑해 충성하며 달려갈 수 있도록 축복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영적 지도자를 만나 행복합니다"
- 리따 하진 성도




아들 내외와 함께한 리따 하진 성도와 남편 마르크 하진 성도


리따 하진 성도 (이스라엘 아쉬도트만민교회)


저는 우크라이나 태생 유대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잘 모르고 모욕과 멸시 속에 살았지요. 그런데 아들을 통해 하나님과 주님을 알게 됐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하나님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선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습니다. 사회 경험도 없는 아들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으로 이민 간다니 몹시 걱정 됐지요.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들의 결정을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1991년, 아들은 결국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그 후 실망과 허탈함 속에 살던 중 문득 아들이 한 말이 떠올랐지요. "어머니의 모든 두려움은 불신에서 오는 거예요. 성경을 읽으세요." 저는 무릎을 꿇고 난생 처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믿음을 주세요. 그리고 제 아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때부터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바로 우리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주셨다는 것이었지요. 하나님 말씀은 제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참 평안을 주었습니다.

1991년 12월, 구소련이 붕괴되고 문호가 개방되자 많은 사람이 고국을 등지고 해외로 떠났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늘어나는 범죄로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1997년, 급기야 저희는 아들이 있는 이스라엘로 이민을 오게 됐지요. 이듬해에 우리 가족은 아쉬도트에서 가정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지요. 아들 올렉 하진 목사는 돈을 벌어야만 했고, 사역에 전념할 수 없는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저희는 하나님 뜻 가운데 진정 본받을 수 있는 영적 지도자를 만나 영혼 구원에 힘쓰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러던 2007년, 이스라엘에 선교차 방문하신 이재록 박사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기도를 통해 나타나는 수많은 치료와 권능의 사례들을 목도하고 생명의 말씀을 들으며 이분이 우리가 찾는 영적 지도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박사님은 사랑과 기도, 후원으로 이스라엘 목회자들에게 힘이 되어 주셨고, 이로 인해 2008년에 크리스탈포럼(이스라엘목회자협의회)이 설립될 수 있었습니다.

2009년 9월에는 예루살렘 ICC(국제컨벤션센터)에서 '이재록 목사 초청 이스라엘 연합대성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지요. 박사님은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담대히 선포하셨고, 놀라운 하나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암, 관절염, 당뇨 등 갖가지 질병을 치유받았으며, 휠체어와 안경을 버리는 등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지요. 참으로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어렵던 이스라엘 기독교 선교가 반전돼 목회자들이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으며, 사회 소외계층인 메시아닉 쥬(이스라엘 기독교인)들이 거리로 나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이 주시는 믿음 안에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67세 고령이지만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MIS(만민국제신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재록 박사님의 저서 『십자가의 도』, 『천국』, 『믿음의 분량』 등을 항상 책상 위에 두고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나 구역 모임 시 애용합니다. 저서들을 통해 깨우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진리 안에 굳건히 서는 체험을 하지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이스라엘을 사랑해 귀한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는 이재록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9 이재록 목사 초청 이스라엘 연합대성회

 

 

 

"진주종 중이염이 완치됐어요"
- 조경아 집사





조경아 집사 (순천만민교회)


2011년 10월, 재채기를 하는데 왼쪽 귀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병원 검진 결과, 진주종 중이염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악화될 경우 뇌에까지 영향을 받아 사망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내로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하라며 진료의뢰서를 써 주셨지요.

때마침 만민 전(全) 지교회 총지도교사이신 이희선 목사님이 순천만민교회 창립 1주년 기념예배에 강사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때 저는 손수건 기도(행 19:11~12)를 받은 후 극심했던 통증이 사라지는 체험을 했지요. 하지만 여전히 웅웅거리며 답답해 잘 듣지 못했습니다.

이후 저는 매일 밤 다니엘철야 기도회에 참석하며 제 자신을 발견해 변화되고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신앙생활하지 않는 남편에게 불편해했던 마음, 섬김받고자 했던 마음, 내가 옳다는 생각과 강한 고집 등을 떠올려 주셨지요. 저는 회개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섬길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뒤 상경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습니다. 지난 5월 4일 병원 검진 결과, 진주종 중이염이 완치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자연 치유가 불가능하고 수술할지라도 후유증이나 재발의 위험성이 있는 진주종 중이염을 치료해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고통스런 C형 간염을 손수건 기도로 치료받았습니다"
- 타리크 카라맛 전도사






타리크 카라맛 전도사 (파키스탄 CCCI교회)


저는 파키스탄 CCCI(Christ's Commission Church International) 교단 소속 카라치 지역 CCCI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5일부터 15일까지 이곳 파키스탄에서 예수교대한연합성결회 소속 대전만민교회 담임 길태식 목사님을 강사로 CCCI 주관 목회자 세미나와 손수건 집회가 있었습니다. 강사님은 지난 11년간 세미나와 집회를 인도하며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으로 기도해 주어 질병을 치유하며 무수한 사람을 주님 품으로 인도해 파키스탄에서 널리 알려져 있지요.

목사님의 이번 선교 일정에는 라호르를 비롯해 셰이쿠푸라, 물탄, 카라치 지역에서 목회자 세미나와 손수건 집회가 있었습니다. 영적 각성과 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 돌렸지요.

저는 평소에 30분도 서 있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CCCI 교단 프림로즈 샘슨 대표님은 카라치 지역 교회 오전 연합집회 홍보 및 집회 준비를 제게 맡기셨지요. 이는 어찌하든 믿음을 내보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제게 있는 질병을 치료받아 영광 돌리기 바라는 대표님의 배려였습니다.

올해 초부터 저는 가끔 열이 나면서 온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지난 3월 7일, 병원 검진 결과 C형 간염이었지요. 8개월간 하루 걸러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사를 맞고나면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지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고열과 함께 온몸에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게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게 눌리는 증상이 있었지요. 이렇게 한 달가량 지나자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4월 8일 새벽, 저는 대표님에게 전화해 주사를 그만 맞고 믿음으로 치료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대표님은 격려하며 기도해 주셨고, 가족도 제 결정에 동의했지요. 이후 대표님은 오전 연합집회 홍보 및 집회 준비를 제게 맡겨 주셔서 믿음의 고백대로 응답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4월 11일 밤, 목회자 세미나와 손수건 집회의 강사이신 길태식 목사님을 영접하러 저의 가족과 성도들은 카라치 공항에 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무척 힘들었습니다. 기력이 없어 저는 강사님 짐도 옮겨 드리지 못했지요.

숙소에 도착한 4월 12일 새벽 1시경, 프림로즈 샘슨 대표님은 길태식 목사님에게 C형 간염을 앓고 있는 저의 상황을 말씀하셨습니다. 길 목사님은 권능의 손수건을 제 머리에 얹고 기도해 주셨지요.

그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잠을 아주 편안하게 잘 수 있었고, 아침에깨어났을 때에는 몸이 가볍고 온몸의 통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 후 계단도 뛰어 오를 수 있었지요. 할렐루야!

4월 14일 주일, 마침내 CCCI 교단 주관으로 카라치 지역 교회 오전 집회가 성서침례교회(담임 쿠람 길 목사)에서 있었습니다. 이날 강사 길태식 목사님은 사람들이 성전과 마당까지 가득 앉고도 자리가 모자라 많은 사람이 돌아갈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설교 후 전체를 위한 환자기도를 해 주셨는데, 많은 사람이 치료받고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렸지요. 저도 믿음으로 기도받은 후 몸이 더 강건해졌습니다. 저희 가족은 감사한 마음으로 길 목사님이 출국하시는 날 공항까지 배웅했습니다.

이제 C형 간염으로 인한 심한 빈혈도 사라져 혈색이 좋아지고, 식사도 잘해 건강하고 행복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치료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재생 불가능한 시신경이 살아나 이제는 작은 글씨도 또렷이 보입니다"
- 이춘범 집사 (3대대 30교구)



이춘범 집사 (3대대 30교구)


2006년, 저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전류가 흐르고 있는 물웅덩이에 빠져 전기 감전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측 눈 시신경에 손상을 입었지요. 유전적으로 시력이 약한데다가 시신경까지 손상을 입으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호등 색상 구분도 안돼 길을 건너는 것이 조심스러웠고, 길을 걷다가 사람들과 부딪치거나 무언가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지요.

2009년 8월, 병원에서 '시신경위축'으로 진단돼 시각장애인 5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시각 정보를 전달하는 시신경이 위축돼 시력 감퇴, 상실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저는 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절망감이 엄습했습니다. 그런데 2개월 후 어두운 제 인생에 희망의 빛이 보였습니다. 바로 설경자 집사님을 통해 하나님 권능의 역사가 넘치는 만민중앙교회로 인도받은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저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하나님 말씀이 너무나 크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어릴적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얼마나 헛된 신앙생활을 했는지 철저히 깨닫게 됐지요.

이후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은 물론,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고자 힘썼습니다. 그러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교회 출석한 지 6개월쯤 됐을 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10여 년 된 양 무릎 관절염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오랜 통증에서 벗어나니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저는 매일 밤 다니엘철야 기도회에 참석해 열심히 기도하고 틈나는 대로 설교 말씀을 정리하는 등 하나님 뜻을 더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3월 31일 부활주일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배 시간에 단에 서신 당회장님을 바라보는데, 그 위로 강렬한 빛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지요. 성전에서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도 너무나 밝고 환한 빛들이 보였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날부터 돋보기 없이도 성경의 작은 글씨가 또렷이 보이는 것입니다. 신호등 색상이 구분되니 길을 건너는 것도 편안해졌고, 예전과 달리 직장 생활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재생 불가능한 시신경을 다시 살리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풀어주신 "피라미드와 UFO"  https://www.youtube.com/watch?v=5go7PLBDiqA   현재 피라미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피라미드는 인간 지식과 능력을 초월하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진 외계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피라미드 원석이 지구의 것이 아니라고 발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두 영적인 존재가 있는데 하나는 "천사"요 하나는 "그룹"이다. 천사는 사람의 형상을 입고 있고 그룹은 동물의 형상을 입고 있다.   네 생물과 네 마리의 용-(스핑크스는 둘째하늘 에덴을 지키고 돕는 그룹이다) 네 생물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가장 높은 그룹이며 네 마리의 용들은 악한 영들의 머리 된 그룹으로 인간경작의 모든 과정이 끝난 후 루시퍼 와 용들, 마귀들과 하나님의 명을 어긴 1/3의 천사와 함께 지옥의 가장 밑 "무저갱" 에 영원히 같히게 된다.   네 생물 [계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계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영적인 존재들(스핑크스는 둘째하늘 에덴을 지키고 돕는 그룹이다)   네 마리의 용 [계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계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 20: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이집트 기자 지구의 대 피라미드를 포함한 3기의 피라미드, 아스카 평원의 대형그림, 크랩써클, 미스터리 써클, 페루의 마추픽추와 UFO는 죄와 악이 전혀 없고 고도의 지혜와 지식을 가진 영생하는 금발의 사람들!!! 둘째하늘, 빛의 영역!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만든것이다.   그들 에게 지구는 “고향”과 같은 곳이니 그들은 근본 지구의 흙으로 창조된 생령의 사람 들이기 때문이다. 첫사람 아담은 지구에서 지구의 흙으로 영생 하는 생령의 사람으로 창조 되었다. 그리고 생령의 하늘, 둘째 하늘의 에덴으로 끌어 올려져 수많은 자녀를 낳으며 살게 된다. 그리고 지구의 시간으로 상상 할수도 없는 긴 시간이 지난후 아담과 하와는 마침내 선악과를 따 먹고 늙고,죽고,썩어지는 육의 사람이 되어 육의 하늘 지구로 쫏겨나고 에덴동산은 그룹들과 두루 도는 하염검이 지키게 된다. 그리고 지구엔 6000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앞으로 10년 전후하여 전세계의 메스컴이 지켜 보는 가운데 한국의 한 목회자가 UFO를 불러 내리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 UFO는 그 목회자의 명을 따라 어떤 행동을 하게 될것인데 (미스터리 써클 같은 문양을 그리는등......) “그러나 그때에 그 속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너희들이 볼수 없다 그것은 공의에 맞지 않다” 하고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것이기에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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