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냥꽁냥한 에피소드.. 없냐는 댓글을 봤는데,
W랑 말고 여자친구랑 꽁냥꽁냥 했던 이야기는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기말고사 끝나고도 학교를 나갔었던 것 같아요. 겨울방학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헷갈리네요.
2학기 기말고사를 치고 나니까 왠지 약간의 해방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난 주인지 그 다음 주인지 그 즈음 토요일에 여자친구를 만났죠. 뭐 영화보고 밥 먹고 했겠지만 그런 건 사실 잘 기억 안 나고, 아이스링크장에 갔던 건 기억나네요.
전 그때 아이스 스케이트 타보는 게 처음이었는데, 잘 못 타면 쪽팔리니까 약간 걱정을 했었죠. 근데 인라인이랑 크게 다를 것 없더군요. 처음엔 조금 주춤거렸지만 금방 적응하겠더라고요. 반면에 여자친구는 잘 못 타더군요. 그래서 손 잡고 탔는데, 좀 어색한 커플들에게 아이스링크장은 정말 좋은 데이트장소인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스킨십 할 기회(?)가 많더라고요.
손 잡고 타기도 하고, 앞에서 끌어주기도 하다가, 여자친구가 마주오는 사람이랑 부딪힐 뻔 해서 잡아주다가 같이 넘어졌는데, 거의 안다시피 하고 굴렀죠. 약간 영화 찍는 기분?
신체적 접촉이 잦아질수록 애정도 점점 커지더라고요. 사실 호기심 반으로 사귀던 것은 사실이지만 만나면서는 확실히 좋아졌어요. 같이 있는 시간이 즐겁고 자꾸 웃음 나오고. 그 날 유난히 더 좋더라고요.
저녁에 여자친구 데려다주면서 손 잡고 걷고 있는데, 그 때 뽀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그 전부터 집에 갈 때 해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여자친구 집 앞에 가로등이 있었는데 여자친구도 안 들어가고 머뭇거리더라고요. 마주보고서 손만 만지작거리다가 뽀뽀를 했죠. 입만 딱 대고 금방 뗐는데도 엄청 쑥스럽더라고요. 저도 부끄러워서 잘 자라고 말하고 도망치듯이 집에 왔었죠.
그 다음날이 일요일이었는데 그 날 여자친구가 룸카페를 가자고 하더군요. 전 그런 곳은 또 처음 가봤는데 신세계더라고요. 어쨌건 밀폐 된 공간에 둘이 있으니까 긴장도 되고. 근데 오히려 더 스킨십은 못하겠더라고요. 괜히 그런데서 뽀뽀하고 그런 건 좀 불건전한 행동 같아서 그냥 영화 같은 거나 보면서 달콤한 침묵을 즐기고 있었죠.
그러다가 여자친구가 먼저 제 입에 뽀뽀를 하더라고요. 놀라기도 하고 좋기도 해서 얼굴 벌개져서 있는데, 넌 왜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냐고 섭섭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 전까지 누굴 사겨본 적 없다는 걸 여자친구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첫사랑 아니야? 라고 묻더군요.
갑자기 생각난건데, 여자들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랑한단 말을 왜 안하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싸운 적도 적지 않고.
어쨌건, 여자친구가 그렇게 묻는데도 그 앞에서, 사랑해, 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좋기는 한데 사랑한다는 말까지는 안 나오더라고요. 그게 너무 부끄럽고 좀 오그라드는 기분이었죠.
하지..
라고 대답만 하고, 여자친구는 뭘 해? 이렇게 물어보고. 그래서 제가, 여자친구 사귀어본 적도 없고 그래서 이런 표현하는 게 서툴다고, 노력할테니까 조금만 이해해달라 뭐 그런 대화로 마무리(?)되었죠.
그리고 다음 날 학교를 갔는데, 음, 전 날 얘기가 나왔죠. (제가 했을 수도)
친구들 막 호들갑 떨면서 더 상세하게 말해봐라, 진짜 뽀뽀만 했냐, 키스도 했냐, 솔직히 어디까지 나간거냐 이러면서 물어대고. 전 막 떠들어대진 않았지만 어디서 뽀뽀를 했다 뭐 이런 얘기는 다 했던 것 같고, W는 그 때 어쩌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얘기 할 때 같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한 삼사일, 구름 위를 걷는 기분에 살고 있었죠. 그러다가 저녁 쯤에 일이 터졌죠.
여자친구에게서 우리 집 앞 놀이터에 있다고 전화가 왔었죠. 목소리가 울먹거리길래 저도 놀라서 놀이터로 뛰어나갔죠. 그네에 앉아서 엄청 서럽게 울고 있더라고요. 저는 그 앞 모래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눈물 닦아주고 안아주고 무슨 일이냐고 토닥여줬죠. 근데 여자친구가 울면서 더듬더듬 한다는 말이, 나 니 친구가 좋아, 하는데..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한 겨울에 얼음물 뒤집어쓴 감각?
그 친구가 누구냐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죠.
아, W구나. 얘네 나 몰래 만났구나.
울고 있던 여자친구를 달래주던 내 모습이 진짜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그 말을 직접 들으면 화가 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화도 안 나더군요. 올 것이 왔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내 안에 있던 따뜻한 감정들이 서서히 식어가는 게 느껴졌죠.
만났냐고 물으니, 어제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W가 뭐래? 라고 물어봤죠. 대답 없이 울고만 있더라고요. 니가 좋대? 다시 물었죠. 여전히 대답이 없더라고요. 둘이 사귀기로 했냐고 물었고, 고개를 젓더라고요.
계속 우는데 좀 짜증이 났어요. 지가 나 좋다고 해서 만났고, 지가 나 사랑한다고 왜 자기를 안 사랑하느냐고 징징대다가, 지가 딴 새끼 좋다고 말하면서 대체 왜 울고 있는 건지, 뭘 잘 했다고 저러는지, 난 또 왜 지금 얘를 달래고 있는 건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한숨도 나고 내 꼴이 너무 우습더라고요. 근데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약해져서 화는 못 내고, 그만 울고 진정하라고 그랬죠.
그러다가 더듬거리며 말하더라고요. W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고 하더군요. 상세한 얘기는 못 듣고 (기억이 안 나고) 생각나는 건, 만났는데 W가 뽀뽀를 했다고 하더군요. 뽀뽀만 했냐고 혹시 더 한걸 한건 아니냐고 비꼬고 싶더라고요. 그러진 못했지만.
여자친구가 한다는 말이, 자기는 나를 좋아하는데 W도 좋다고, 자꾸 W가 신경 쓰이고 생각이 난다고, W를 만나고 나니 자기 마음을 알겠다고 자긴 W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헤어지자고 말하러 왔냐, 물으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저랑 헤어지고 오랬다고.
내 여자친구가 W에게 관심 있었던 건 알고는 있었지만, W도 그렇다는 건 짐작도 못했었어요. W를 보면, 친구건 누구건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다는 게 온 몸으로 드러나는 타입이어서 더더욱 내 여자친구한테 마음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죠. 빼빼로데이다 뭐다 하면서 고백을 받아도 항상 시큰둥하던 앤데. 그런 W눈에 들어온 사람이 하필 내 여자친구라니. 내 여자친구가 하는 말은 생각보다 안 놀라운데 W의 행동들은 뭐, 뒤통수 제대로 갈긴거죠.
더 이상 여자친구랑 할 말도 없고, 더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니 말 다 알겠으니까 집에 가라고 했죠. 우리 헤어져도 친구지? 라고 말하는데, 친구는 ㅈ까고 있네,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래. 라고 대답했죠.
그길로 W에게 전화를 했고 만났죠. 만나자마자 죽빵을 날려줬어야 했는데 그러진 못햇어요.
내가 왜 왔는지 아냐고 물었더니,
대충.
이라고 대답하더군요.
기억나는 걸 적당히 대화체로 쓰겠습니다.
너 언제부터 XX(여친이름)이 좋아했어?
안 좋아하는데
근데 왜 만났어?
연락이 오길래
XX이랑 사귈거냐?
전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뽀뽀는 왜 한 거냐 그럼.
궁금해서.
저 말까지 들으니까, 겨우 유지했던 평정심이 깨지고 언성이 높아지더라고요. 미안한 기색이 없는 것도 모자라,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뽀뽀한 얘기를 하는 게 참 뻔뻔하더라고요.
너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궁금하다고 친구 여친이랑 뽀뽀를 하냐고 흥분해서 말하다가,
그럼 사귈 마음도 없으면서 왜 헤어지고 오랬냐고, 물었죠. 아무 말 안 하길래, 저도 목소리가 커져서, 왜 헤어지고 오랬어!!! 나랑 헤어지면 사귀려고 했던 거잖아, 시발새끼야!!!!! 하면서 욕을 하면서 멱살을 잡았던 것 같아요.
너는, 니 여친이 날 좋아하는데 계속 사귀고 싶어? 니 여친이 나 좋아하는 거 너도 알잖아.
뭐 대충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W가 너무 당당하게 굴어서 진짜 화 낼 마음도 사라졌었어요. 사람이 자기 잘못을 알아야 화도 나고 화를 낼 수도 있는 건데.
머리가 갑자기 너무 아프더라고요. 화 낼 기운도 없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다리 힘도 풀리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거의 한 시간을 아무말 없이 있다가, 자기를 원망하느냐고 묻더라고요.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더군요.
내가 W를 원망하나?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생각을 해봤죠. 화는 나는데, 방향을 잃은 화였어요. 내 여자친구를 홀린 W에게 화가 나는 건지, 날 먼저 좋다고 해놓고 W에게 빠져버린 여자친구에게 화가 나는건지. 이렇게 나는 친구도 여자도 둘 다 잃는건가, 생각하면 속상하고. 그럼 난 어쩌고 싶은걸까, 생각하면 또 모르겠고.
얘기가 길어져서 쓰는 제가 다 지루하네요.
결과만 말하자면, 여자친구는 W에게 고백했고 W는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잘 사귀고 있던 저랑 여자친구만 바보된거죠.
이 얘기를 쓰는데 기분이 좀 안 좋아서. 무슨 대화했는지 기억해낼수록 머리가 아파서 그냥 갈수록 대충 썼어요.
지금은 짐작하고 있어요, W가 마음에도 없던 내 여자친구에게 왜 저랬는지. 하지만 그 뒤로 또 같은 일이 있을 때까지 전 전혀 몰랐었고 W 스스로도 본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괜한 심술 같기도 하고요.
우리의 관계가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게 고2 때 처음으로 키스한 이후였는데, 그러고 W가 바로 여자를 사귀어버렸어요. 전 키스한 이후로 계속 W가 생각나고 W가 신경쓰이고 그랬는데, W는 아무렇지 않게 여자를 사귀었으니. 그 땐 저 혼자 새 된거죠. 그렇게 다시 친구인듯 친구아닌 친구같은 수험생활을 보냈어요.
둘 다 그냥 학창시절에 겪는 정체성의 혼란 같은 거라고 느껴서 다른 곳에서 돌파구를 찾기를 원했던거죠.
그리고 댓글을 읽었는데,
이 감정을 진솔한 대화를 통해 풀어보라는 말이 많더라고요. 그거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해봤고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지만 지금의 감정을 말로 표현해보자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제가 용기가 없다고 느끼시나요? 둘 다 같은 마음이면서 피하기만 하니까 답답하시겠죠?
제가 용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일부러 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것도 사실인데. 내가 용기를 내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해 좋은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 W에게 이제 와 내 마음을 고백해서 흔들어놓는 것이 진정 잘 하는 것일까. 설령 그 결혼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물론 그 여성분에게는 미안합니다.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남자와의 결혼생활이 마냥 행복할 순 없겠죠.
그렇지만, 여성분에게 미안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결혼을 깨버린다면, 그게 과연 W에게 득이 되는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여성분이 아니라 W가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기적이라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그 여성분과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할까요? 지금 W와 저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같은 게 아닐까요. 괜히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가 제대로 연인놀음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아직도 제대로 떨쳐내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다뿐이지, 사실은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과거의 한낱 추억 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것들이요.
제가 W와 연인이 된다는 것. 둘만 생각하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W의 가족들과 제 가족들에게 평생 비밀로 하고 살 수 있을지, 언젠가 말해야 한다면 자식 된 도리로서 그게 맞는 것일지. W 하나 보고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건 아닐지. 잘 살고 있던 W를 불구덩이로 끌고 들어온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책임감. 세상이 우리를 바라볼 차가운 시선. 부담감. 고립된 둘만의 세계. 이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의껏, 진솔하게, 정말 마음으로 제게 좋은 말씀 해주셨는데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면,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그게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용기없음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사랑만 좇기에는 제 머리가 너무 커버렸네요.
그리고, ‘네에’님에 관한 언급이 있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6년동안 만났습니다’란 글을 적으신 분이더군요. 이 글 본적 있냐는 댓글도 있어서 꽤 유명한 글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느낌이 비슷한가, 궁금하길래 몇 편 읽어봤는데 말투가 비슷하다거나 이런 걸 떠나서 읽는데 불편하더라고요.
그건 뭐, 부러움이겠죠.
6년 사귄 동성커플에 관한 이야기 같은데, 처음엔 꼼꼼히 읽다가 나중엔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댓글도 설렌다는 말이 많던데 그래서 더 못 읽겠더라고요. 저는 제 마음도 갈피를 못 잡아서 이러고 있는데 다른 용기 있는 두 명이 마음이 맞아서 사랑하고 있는 얘기를 보는 게, 그리 유쾌하고 즐겁지만은 않아서.
제가 쓰는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우울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비슷한 느낌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랬습니다.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W는 뺏어간 여자들이랑 얼마정도 만났냐고 물어보시던데, 첫 여자친구랑은 말했다시피 사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랑 세 번째는 사귀었고, 그리 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W의 여자관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리고 첫 키스한 얘기는, 기회가 되면 적어보겠습니다.
결국 결말이, 또 용기 없는 저를 탓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서 또 죄송하네요. 드라마 대사처럼 니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갈 때 까지 가보자, 라고 말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너무 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