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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길 거부한 악질 범죄자들 2편 -우순경이라 불린 남자...-

콜로라도 |2015.10.05 01:35
조회 3,485 |추천 2

 

한국에서 살해한 인원수 중 압도적으로 역대 최대를 갱신한 최다살인마. 천하의 개쌍놈.

전직 대한민국경찰관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희대의 살인마. 연쇄살인과는 다른 연속살인 통칭 rampage killer(spree killer라고도 부른다.)들 중에서도 살인수로 어마어마한 급이다. 통칭 우순경, 그가 저지른 사건을 우순경 사건이라고도 한다.

 

부산시 동구 초량동[5]에서 경찰관의 네 아들중 셋째로 태어난 우범곤은 어린 시절은 별 다른 말썽없이 평범하게 보냈다. 경찰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차 경찰관이 되어 아버지처럼 권총을 차고 일하겠다고 뽐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학교 진학 후부터 내성적이던 성격이 두드러지고 학업에도 흥미를 잃어 무단결석이 3년동안 28일이나 되었으며 고교시절에는 졸업당시 65명중 63등으로 열등생이 되고 말았다. 고교 재학 시절에는 분을 이기지 못해 유리창을 깨고 그 파편으로 배를 긋는 등의 자해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특히 고교 3학년때 아버지가 진급을 앞두고 대장암으로 병사하면서 가세가 기울자 우범곤은 성격 자체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하였으며, 해병대에서 특등사수로 뽑일 정도로 사격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제대 후 경찰관이 되었으며 초임지는 부산직할시 남부경찰서 감만2파출소]였다. 이후 서울특별시 101경비단에 선발되어 청와대 경호에 근무하였으나 중도에 전출당하여 경상남도 의령군의 궁류 지서로 좌천되었다. 부산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피의자들을 함부로 다루거나 윽박지르는 등 포악한 성격을 드러냈다고 하며, 당시 동료 순경에 따르면 평소 유순하다가도 만 마시면 성격이 난폭해져 꼭 무슨 사고를 낼 사람 같았다고 한다. 청와대 경호에서 제외된 것도 성격이 거칠어 근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며, 전출된 후에도 만 마시면 행패가 심해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잔혹성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궁류지서로 전근온 뒤 2월부터 하숙을 하던 우범곤은 이웃집에 살던 전(田)양과 사귀게 되었고 3월 초부터 전양의 집에서 동거생활을 한다. 동거에 들어가기 전에 전양의 부모는 결혼한 뒤 함께 살라며 만류했지만 우범곤이 결혼비용이 없다며 가을에 식을 올리기로 하고 당장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고집했다. 가뜩이나 집안이 가난해 늘 열등의식에 젖어있던 우범곤은 식도 올리기 전에 여자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고.

 

1982년 4월 26일, 그날 우범곤은 저녁시간 근무를 위해 낮 12시경에 집으로 들어와 점심을 먹고는 낮잠을 잤다. 그가 잠든 와중에 동거녀가 그의 몸에 붙은 파리를 잡기 위해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쳤고, 그 둘은 이를 계기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화를 미처 식히지 못한채, 우범곤은 오후 4시경 지서로 간 뒤, 저녁 7시 반경에  취한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코피가 날 정도로 동거녀를 주먹으로 폭행했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동거녀의 친척언니가 뛰어 들어와 말리자 친척언니의 뺨마저 닥치는대로 때리며 난폭하게 굴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건의 전말을 들은 그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갔다.

지서로 향해 방위병들과 소주를 퍼마시던 우범곤은 동거녀의 남동생이 와서 경찰이면 다냐고 소리를 질러대자 폭발, 카빈총을 장전했고 만류하는 방위병들을 총을 쏴 내쫓은 다음에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M1 카빈 소총 2자루, 실탄 180발, 수류탄 7개 등을 탈취했다.

밤 9시 40분 - 지서를 나온 우범곤은 마침 앞을 지나던 26세 대구에서 표구사를 하는 남자에게[8]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면 토곡리 시장으로 달려가 총을 난사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했다. 밤 9시 45분 - 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궁류 우체국으로 가서 교환원 2명과 숙직 중이던 집배원 1명을 살해하였다. 그러나 교환원이 숨지기 직전, 마을 이장 집의 행정전화와 의령 우체국 간의 코드를 연결했던 덕분에 주민에 의해 신고(10:34)가 가능했다. 밤 10시 - 그는 곧 압곡리 매실부락으로 가서 10여 분간 총기를 마구 난사하였고, 주민 6명을 살해했다. 밤 10시 10분 - 그는 운계리 시장으로 달려가 주민 7명을 살해했다. 밤 10시 50분 - 그는 상갓집에 난입하여 “비상이 걸렸다”고 말하고는 문상객들과 어울려 10여 분간 함께 을 마신 뒤 갑자기 총을 난사하였다. 12명이 살해당하였다. 이후 그는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난사하여, 이곳에서만 무려 23명을 살해했다. 다음날인 27일 새벽 5시 35분 - 그는 평촌리 마을에 다시 나타나 한 민가에 침입했다. 그는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렸고, 그 자리에서 우범곤 본인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62명이 주민들이 사망했고, 33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6명의 희생자는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죽었다.

그가 의령군 일대의 네개 마을을 거의 쓸다시피하여 살인을 저지르다보니, 조상대대로 친척 일가가 모여 사는 산골마을의 특성상 일가족이 사망하거나, 혼자 목숨을 부지한채 나머지 가족은 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체국에서 숙직하다 참변을 당한 집배원의 경우에는, 그의 부인마저 집에서 우범곤에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이 집의 세 남매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는 비극이 생겼다. 가장 처음으로 살해당한 청년과 우체국에서 살해당한 교환원 아가씨는 미혼으로 사망한 것이 비통하게 여겨져, 유족들끼리 합의하에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는 안타까운 사연이 생기기도 했다. 범행이 일어났던 의령 지방에는 오늘날에도 4월 26~27일 즈음에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다고 한다.

 

이날은 반상회를 하느라 마을 주민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고 밤늦게까지 불을 켠 집이 많았다. 또 기강해이로 경찰의 근무지 무단이탈이 만연했는데, 궁류지서의 다른 경찰관 3명도 반상회에 참석하려고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상태였으며, 지서장 역시 마을유지의 온천접대를 받으러 지서를 무단이탈한 상태였다. 지서는 다른 근무자 없이 텅 비어 있는 상태였으며 이에 우범곤은 무기고에서 다량의 화기를 용이하게 탈취할 수 있었다.

우범곤의 직업이 경찰이었으며 사건 당시에도 근무복을 착용하고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우범곤을 맞이했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이는 노르웨이 연쇄 테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당시는 무장공비가 심심치 않게 출몰하던 시대였으므로 주민들은 총소리를 무장공비가 나온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뒷이야기

 

국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전대미문의 흉악범죄를 저질렀다는 충격성과, 사건 진행 당시 진압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의 비열함과 무능함에 피해가 커졌다는 점 때문에 전국적으로 여론이 폭발, 전두환 정부는 내각 사퇴 압력에 직면했다. 내무부 장관이던 서정화 씨가 경질되었고 경찰 쪽 높으신 분들도 줄사퇴했다. 이 사건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부 장관에 오르게 된다.


여담으로 당시 의령경찰서장 최재윤에 대한 대법원 공판]에서 재판관이었던 대법관 중 한 명이 바로 이회창 씨였다

 

1999년작으로 조재현, 임하룡 주연한 한국 영화 얼굴이 우순경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제 사건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으며, 순수했던 경찰 조재현이 시골의 작은 사회에 점차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막판에 총기난사하는 것만 같다. 대체 왜 포스터에 충격 실화라면서 과대광고를 했는지 의문일 따름. 오히려 영화는 살인자에게 그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있고, 피해자들에게도 모종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묘사했으니 이 영화를 실화라고 하는 것은 실제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참고로 흥행 기록은 관객 1천명이 전부이다. 다만 개그맨 임하룡의 정극 데뷔작으로서 전혀 우스운 모습이 아닌 천하의 개쌍놈 연기가 돋보였고 원로 배우 윤인자의 마지막 출연작으로의 가치가 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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