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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합니다

어릴적, 그러니까 기억이 시작할때쯤부터 9살까지.
우리집은 꽤 살만했다.
내가 사고로 태어나는 바람에 다소 어린나이에 엄마 아빠가 된 우리 엄마 아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식구, 연달아 태어난 동생들덕분에 다섯식구가된 우리 가족.
그래도 꽤 살만했다.
부족한 것 없었다. 메이커 신발 메이커 가방 메이커..메이커..
어린 나이었기에 메이커 관심도 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난 좋은것만 입고 좋은것만 먹고 자랐다.
그리고 열살. 돌연 이사를 가게되고 전학을 가게되고 비좁아 터진 할아버지댁에서 살게되었다. 그땐 그저 친구들을 떠나 먼 곳으로 온게 불만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빠가 아직 안오고 있단걸 깨달았다.
한참 후에야 아빠는 우리곁으로 다시왔고, 그 이후로 중학교에 입학할때까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컴퓨터앞에서 당당한 게임 중독자였다.
싫은건 아니었다. 다정한 아빠는 예나지금이나 좋다. 그냥 열살이란 나이에 우리집은 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 슬플뿐이었다.
그때부터 돈이 무서웠다. 돈달라는 소리하기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 엄마가 화내는 모습은 물론이고, 가끔은 아무말없이 한숨쉬는 그 모습이 너무 슬퍼 무서웠다.
하늘과 닿아있는 달동네에 살았기때문에 다들 형편이 비슷해서 그런지 돈없는집 자식이라고 왕따당하거나 그런건 없었다.
하긴 우리집이 그렇게 가난한건 아무도 몰랐을거다. 망했어도, 아무리 바닥을 쳤어도 자존심만은 강한 나였고, 내 부모였다.
자식이 기죽는건 절대 못보는 내 부모였다. 그래서 예전만큼 좋은것을 입을 순 없었지만 항상 내옷은 섬유유연제 향기가 낫고 다림질 되있었다.
하지만 친구가 있다는 것이 조금은 슬플때도 있었다.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됫는데 생일선물 살돈이 없어 못갔다. 생일인 친구가 우리집 앞에 찾아와 엄마가 왜 생일 파티 안갔냐는 말에 대답을 못했고, 눈치챈 엄마가 슬퍼하는게 가슴이 아렸다.
아빠가 취직을 했다. 조금은 나아질줄알았다.
이것이 굴레일까.
덫일까.
우리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다.
중고등학교 내내 옷한벌 사달라는 소리를 못했다.
보이는 것이 다였던 그때, 소위 찌질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내 행색이 남루하다는것도 알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우리집은 돈이 없으니까. 그걸 아니까.
다 놓아도 단 하나 놓을 수 없었던 공부탓에 내 학원비 댄다고 이미 등골이 빠지게 일하고 있다는걸 알았으니까.
중학교시절만해도 어른이 되면 동네학원의 선생님이 되고싶었다.
대학만 나오면 다 선생시켜준다더라 바로 취직이라더라.
바로 돈벌수 있단 생각에 그냥 학원 선생님이 되고싶었다.
하고 싶었던건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돈을 벌고 싶은 거였다.
그런데 불행일까 다행일까. 꿈이 생겼다.
내 성적으로 충분한 대학이고 충분한 과였다. 다행히 내가 사는곳에 있는 국립대였다. 그리고 공부도 열심히해서 돈한푼 안내고 전액장학금 받으며 다니고있다.
하고싶던 공부였다. 그냥 딱 여기까지만 하려했다.
그런데 꿈이 자꾸만 커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그냥 여기서 멈추고 어서 빨리 취업해서 돈벌어야하는데.
내 꿈을 이루려면 대학원도가야하고 유학도 가야하는데.
그럼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그런데. 정말.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살긴싫어.
멈추고 싶지 않아.
성공하고 싶어.
어느새 애증으로 변해버린 철없는 내 감정이 다시 나를 짓누르고 숨을 쉴 수가 없다.
그토록 바라던 어른인데, 나는 돈을 벌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있는게 없다.
살림살이도 나아진것 하나없다.
조금 나아진거라면 내가 아르바이트를 할 수있단걸까.
복잡한 밤이다.
최저 시급받아가며 일하는 계약직 내 부모. 그걸 올해들어서야 에서야 알았다. 힘든건 알았지만 이리도 가난한 집인지 몰랐다.
알았다. 가난한거 알았다. 이리 가난한지 몰랐다. 백번 생각해도 몰랐다. 한달에 둘이 합쳐 백오십만원으로 다섯식구 먹여살리는 줄은 몰랐다.
자식에게 숨기려고 얼마나 한숨을 쉬었을까.
나보다 못한 형편의 사람들 많다는거 잘안다. 하지만 왜 내가 나보다 못한사람이 있다는것에 위안을 받아야하는지 난 알 수가 없다.
감사해야하나 그 사실에? 팍팍한 현실속에서 나보다 못한사람에게 동정을 주어가며 자기만족을 해야하나?
왜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위를 꿈꿔서 안되나.
왜 위를 보아서는 안되나.
위로 올라갈 수가 없나.
이것은 굴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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