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친구라는 아이는 자리를 펴고 앉자마자 쫑알쫑알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애는 여전히 말이없었다.
그러나 신경이 쓰이는건 그애들이 가지고 있던 큰 가방이었다.
책가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컸고 여행용가방 같지는 않지만
조금 옆으로 넓은 쇼핑용 가방같았다.
그리고 유명한 메이커옷가계에서 받은듯한 쇼핑백하고
난 뭔가 사연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이소중한 시간이 단1분도
아까워서 그아이가 입을열도록 쉴새없이 질문을 했다.
어느새 친구 수한이란놈은 나도 그애한테 관심이 집중돼었다는걸
느꼇는지 무언의 경쟁심이 둘사이에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하고 두분이서만 놀러왔어요?"
"네 저랑친구랑 둘이만 온거예요."
"그런데 그가방은 무엇때문에 들고왔어요?"
"저이건 친구랑 저랑 가출했는대요.."
"예 가출요??? 나이가 어떻게 돼세요?"
"16살인대요.."
16살된 여자애 두명이 가출을 하였다...
내머리는 순각아주 복잡해졌다.
말한마디 않는 저착하게보이는 여자애를 이친구가 꼬드겨서 가출한건
아닐까? 전혀 불량스럽게 보이지않는 그아이가 가출을 했다니 순간
그애의 친구가 아주 미덥게 보였다.
수한이놈은 뭐가반갑기라도 한듯 싱글벙글이다.
"잘됏내요. 그럼우리 오늘 여기서 같이 밤새놀아요."
"저 그런데 오늘낮에부터 아무것도 못먹었거든요.
그래서 밥을좀 먹어야 될거 같은대요.."
난 아차싶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한뒤 분식집에 가서 김밥을 사가지고 왔다.
왜그리고 애가탔는지 모르지만 지금 내귀에는 밤바다의 그큰파도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도 몰랐고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소리며 해운대의 그 정신없는 네온싸인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자 이거먹고. 그나저나 우리는 18인데 말놔도 돼겠지?
" 네 그러세요."
"이름은 어떻게 돼는데?"
"전 김가연이고 얘는 신소옥이예요.."
그애의 이름은 신소옥이었던 것이다.
난마치 큰비밀을 알아낸듯 즐거운 마음에 김밥을 먹는 그애들을 제쳐두고 친구들과
주거니받거니하며 소주를 따라 마셨다.
그아이들이 김밥을 다먹을때쯤 우린이미 소주를 3병이상 비운상태였다.
"저 너거들도 한잔마시라."
가연이란 애는 별꺼리낌없이 넙죽 한잔 받더니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한마디도 않던 소옥이는 입에만 살짝 갖다대고는 금새잔을
내려놓았다.
난속으로 저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새침해보이는 그애에게 함부로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가연아 그런데 니친구는 원래 말이없나?"
"아 얘는 남자하고 있으면 좀그래요.
저하고는 말도 잘하고 그러는대요."
"그럼 니가친구한테 말좀 시켜라.
심심해 하겠다."
"아마 소옥이 지금 기분 상해서 말할기분 아닐걸요?"
"왜?"
"우리가 서울에서 가출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낮에 대구갔다가 이상한애들한테 넘어가서
300만원 잊어버렸어요?"
"뭐300만원............. "
"네 300만원 더될수도 있어요.
지갑통째로 가지고 도망갔으니까요."
"그래서 무서워서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그럼 부산내려올 차비는 어디서 구했는데.."
"소옥이랑 처음에 가출할때 얘가500만원 들고왔거든요.
그래서 서울에서 옷이랑 화장품하고 많이샀는데
그중에한개 팔아가지고 내려왔어요."
"와하 나도 예전에 가출은 해봤지만 보통2-3만원들고 나왔는데
너거는 무신돈이 그리많아가지고 가출하는데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나온거고..."
나의 그말에 가연이랑 애는 대답이없고 소옥이는 얼굴이 벌개지며
뭔가 분한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애는 제법부잣집의 딸이었나보다.
그리고 그친구는 소옥이옆에서 감시나 이야기친구처럼 늘붙어다니는
친구 같았고 그래서 가출하면서도 이애랑 같이 나오게 된것 같았다.
"야 너거들 대단하내. 돈그렇게 많이 잊어먹고 걍집에 도로갈일이지
뭐하러 부산까지 또왔노?"
얼래 수한이 이놈이 염장지를라거 하내.
"다 인연이 있으니까 오게된거지 임마"
"인연은 무슨 인연이고 그나저나 이애들 어떻하노?"
"뭘 어째????"
순간 내머리속은 아주 복잡해졌다.
수한이 이놈은 나이는 어렸지만 그당시에 좀돼바라진 한마디로
불량기가 다분한 놈이었기에 데리고가서 무슨수작을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친구들 또한 그렇기에 여간불안한 맘이 안들수 없었다.
"뭘어쩐다는게 아니고 이애들 오늘 잘때도 없을거 아니가?
너거들 오늘 잘곳 없제?"
"네 오늘 갈데 없어요.."
"잘됐내 그라믄 우리친구집가서 자자.
내친구집은 옥상방에 있어서 몰래들어가면 집에서 모르거든."
"생각좀 해보구요.."
아이고 이러면 소옥이까지 데리고 갈려는건가??
왠지 그아이는 그런상황이 불편하고 두려운듯 좀 겁에 질려있었다.
"야 수한아 가연이는 니가 데려가고 소옥이는 내가 오늘 데리고 가서
재울께. 우리집도 내가 미니방써서 몰래 데리고 가면 모른다"
"그런게 어딨노. 데리고 갈려면 둘다데리고 가던지 아니면 그냥 모른체 하던지
해야지."
"야 둘다 어떻게 데리고 가노. 그라고 가연이는 너거집에 데리고 가면 된다이가.
일단 이애들한테 물어보자."
가연이는 소옥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말에 불안했던지 의심스런 눈으로 우릴쳐다봤다.
하기야 그상황에 의심이 날수밖에 처음보는 사람이 데리고가서 재워준다고 하니
마음이 여간불안한게 아니었을것이다.
"소옥아 니는 어떻게 할래?"
"난 저오빠야하고 같이갈래..."
"누구 니데리고 같이간다던 오빠?"
"어 이오빠는 무서워.."
수한이 자기를 가르키며 무섭다고 하자 열이받았는지 씩식거리며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난 그래도 이애가 나를 좋게본것 같아 마음이 붕뜨는듯 했다.
그리고 그말하는 목소리가 옥이굴러가는듯 낭랑하게 들렸다.
-이야 말도 하는구나.......
난 사람이 언어구사를 위해 말을한다는 사실까지 잠깐 잊고 있었다.-
"자자 그러면 오늘여기서 술한잔 하고 가연이는 수한이 니가 데리고가서 재우고 소옥이는
내가 데려가서 재울께.
그리고 가연이 니는 걱정하지마라.
내일아침돼면 둘이 만나게 해주고 잠만자고나면 매일 만나도록 해주께."
난 그렇게 그순간이 영원한것인줄 알고 아무런 생각과 계산없이 환상에 사로잡혔다.
이제 이인형같은 아이와 우리집에서 앞으로 백날천날 같이 살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한 이아이와 집에 같이 가게돼면 어디라도 안보낼거라고 다짐했다.
"저 그러면 매일 오전돼면 만나게 해주셔야돼요."
"그라믄 수한아 니도 그렇게 하자.
얘들 둘이 친군데 뚝떼놓고 못만나게 할수는 없다이가.."
"그래 그라믄 그러자."
수한이는 못내 아쉬웠으나 일이그렇게 된마당에 소옥이를 한번이라도 더보고 싶어하는것 같았다.
"소옥아 근데 말좀해라.
안심심하나?"
"별로 안심심한대요."
얼굴은 무척피곤해 보였으나 눈빛만은 초롱초롱하게 뜨고 말하였다.
술병이 어느덧 다쌓이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나는 내심 얼른 집으로 가고싶었다.
그러면 나하고 소옥이랑 둘만있게 돼면 좀더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이아이에
대해서 더많이 알수있을거란 기대에...
널부러져 있는 소주병과 신문지를 그대로두고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해운대역앞에 버스정류장으로 온우리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야 영식아 지금11시넘었다.."
"뭐라고 그라믄 버스없다는 말이가?"
"없지는 않고 지금가는건 서면까지가는거 밖에없다."
"그라믄 그거라도 타고가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면까지만 버스를 탄채 그먼부곡동까지 한밤중에 걷게 돼었다.
그와중에도 가연이와 소옥이는 부산의 시내가 신기한지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야야 빨리가자 여기서 부곡동까지 걸어갈라믄 몇시간 걸리는데 서면을 구경하고 갈라노."
나중에는 그때 구경하는 그애를 가만히 놔둘걸하고 아쉬워했으나 갈길이 워낙먼지라
조급한 마음만 있었을뿐이었다.
숨쉴틈도 없이 몇시간가량 걷고나서 어느덧 동래지하철역 뒷편의 작은길을 걷고 있었다.
불빛에 보이는 소옥이의 모습은 마치선녀같이 우아해 보였다.
난 그토록 오래걸어서 숨도차고 다리도 아팠으나 그애는 전혀 피곤하지 않은지 또박또박 걸으며
무심한 표정으로 앞만보고 있었다.
-16살밖에 안된애가 저렇게 몸이 잘빠질수 있나-
그애는 나이에 어울리지않게 다리에 각선미가 있었고 가슴또한 제법크고 무엇보다 나시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젖살이 여자에대한 환상을 더욱더깊게 하였다.
그런 소옥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걱정이 돼어 물어봤다.
"소옥아 다리 안아프나?"
"괜찮은대요. 아직멀었어요?"
"이제 조금만 더가면 된다. 조금만 더참아라."
"네...."
말수도 별로없고 또수줍음도 많은거 같은 이애와 오늘밤을 어떻게 보내야 돼는지 내머릿속은
정리가 돼질 않았다.
그렇게 들뜬마음으로 부곡동에 다다른 우리는 각자 헤어지기로 하였다.
먼저간 수한이친구넘의 안부는 궁금하지도 안하였다.
"수한아 그러면 여기서 헤어지자.
가연이 데리고 가서 잘재우고 엉뚱한짓 하지마라."
"니나 그러지말고 내일 오후3시에 여기서 만나기로 하자."
"그래 그러면 내일 오후에 보자. 잘가라."
"소옥아 내일만나니까 걱정하지마라."
그렇게 가연이는 소옥이를 안심시키고 수한이를 따라갔다.
나와 소옥은 말한마디없이 우리집앞에 도착하여 내가 들어가기전 한마디 일러뒀다.
"소옥아 숨소리도 내지말고 조용히 들어가라.
부모님 깨시면 난리난다."
"네"
그렇게 나는 이때까지 여자의발이 한번도 닿지않은 나의방에 여자를 처음으로 데려왔다.
방안에 들어선 소옥은 방의 쾌쾌한 냄새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숨한번 안쉬고 왔는지
숨을 크게 내쉬며 방한쪽 구석에 가서 앉았다.
난 내방이 그렇게 어지럽다는걸 그때 처음 느끼고 만화책이며 과자봉지 그리고 빨래거리등을
책상밑에 대충 쑤셔놓고 이부자리를 폈다.
방이원래 그리큰편이 아니라 이불을 펴자 책상과 소옥이가 앉아있는 자리를 빼고는 방전체가
바닥에 깐 이불로 다덮혔다.
소옥이는 크게당황했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발개졌다.
이불을 깔긴 햇지만 나도 이거 자려고 깔긴했는데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이리와서 자라고하면 소옥이랑 나랑 나란히 누워서 자야하는건가?
아니면 저구석에 가서 같이 앉아있어야 하는건가?
도저히 할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다만 그작은 방안에서 보는 그애의 모습은 어두운곳에서 보던것보다도 훨씬 얼굴이 뽀얗고 살짝 쌍꺼풀진
눈또한 매우 예뻣다.
나또한 그애의 모습을 보니 잠이 오질않고 잔다는게 생각도 나질않았다.
그렇게 그밤의 어색한 침묵이 시작돼려는듯 나는 머쓱한 나머지 책상쪽으로 가서
의자를 빼낸뒤 가만히 앉았다.
-이제 16살밖에 안된애가 서울에서 부산까지나 가출을 하다니...
그래도 나쁜일 안당해서 참다행인것같내...-
그애의 모습은 전혀세상의 때가묻지않은 하얀백지보다도 더투명해보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듯 보였다. 그것이 너무나 가슴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