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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지기 친구와 2년 연애 9

|2016.03.10 22:28
조회 7,904 |추천 45
오랜만이네요.

제가 대외활동 하는 걸 좋아해서 여러가디를 하고 있는데 개강까지 하다보니 글쓸 시간이 모자랐네요.

피곤하기도 하지만 여러분들이 써주신 댓글들이 저에겐 큰 힘이에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저는 정말 많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글 쓰면서 제제랑 옛날 얘기를 많이 하게 돼요.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된만큼 서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까운 사이라서 더 잘 몰랐던 부분들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네요.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제제가 저한테

요즘 니가 더 좋아진 거 같아 라고 말해줘서 저도 글쓰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부분 제제한테 피드백 들어왔는데 글보면서 제가 더 좋아졌단 말이 아니라 현실의 저보다 글 속의 제가 더 좋다는 뜻이래요. 뭔 개소린지. 그게 그거겠죠.)

글쓰면서 웃을 일이 더 많아진 거 같아서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된다면 계속 이 글을 쓰고 싶네요.

오늘은 드디어 제제랑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 써보겠습니다.

너무 많이 돌아왔죠 저희. 근데 뭐 사실 별거 없습니다...

제제가 군대가기 전에 저한테 연락을 했었어요. 한 번 보자고. 할 말 있다고.

서로 안 보기로 하고 난 뒤로는 처음으로 한 연락이었어요.

그때 저는 그 연락을 못 본 척 무시했었어요.

왜 보자고 하는 걸까, 만나서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얼굴 보고 나면 계속 보고싶어질까봐 두려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모른 척 하면서 속으로는 많이 무너졌어요.

다신 이런 기회가 안 올 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가서 후회하진 않을까.

제제가 보낸 문자를 마침표 하나까지 다 외울 정도로 수백번 되풀이해 읽으면서 고민해봤지만 한 번 얼굴보고 나면 뒤돌아설 자신이 없어서 그냥 그 기회를 떠나 보냈습니다.

제가 매정하게 연락을 씹어버리고는 제제가 입대를 거의 코앞에 두고 있을 즈음이었을 거에요.

전 욱이랑 둘이 만나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근데 욱이가 잠깐 통화하고 온다고 하길래 뭐야 그냥 여기서 해 라고 했는데 굳이 나가서 통화를 하고 오겠다는 거에요.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이상해서 뭐 빚쟁이라도 있냐? 라고 장난치듯 말하고 그냥 넘겼죠. 통화하고 오라고.

거의 30분 정도를 나갔다가 왔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뭔가 사정이 있겠지 싶었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본인이 먼저 말하지 않는 걸 굳이 캐묻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별 말 안 했어요.

근데 욱이가 통화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서 누가 우리 테이블로 오는데... 제제인 거에요.

저희가 중학교 때부터 거의 하루종일 붙어다니다가 처음으로 오랫 동안 떨어져 지냈잖아요.

그러다 몇 개월만에 만나게 된 건데 한 10초간은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냥 멍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생각이 든 게, 아까 욱이가 나가서 통화하고 온 게 제제였구나, 제제랑 통화하면서 여기 위치 알려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나중에 알았는데 사실은 제가 제제 연락 씹으니까 제제가 욱이한테 부탁해서 저 불러내 달라고 한 거 였대요.

저는 욱이랑 둘이서 술마시는 걸로 알고 나갔지만 사실 욱이는 처음부터 저 나오게 하려는 미끼였던 거죠...

술 마시면서 절 안심시켜 놓고 그 뒤에 제제를 불렀던 거에요.

제제 오니까 욱이가 일어나면서 내가 살다살다 별 지랄들을 다 보겠다고 화해할거면 빨리 하고 안 할 거면 둘다 꺼져버리라고 하고는 자리를 피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오래간만에 제제랑 마주앉게 됐는데... 굉장히 어색했어요.

생각해보니 제제랑 둘이서 술집에 있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더라고요. 성인되고 얼마 안 되서 멀어진 거니까...

막상 제제 얼굴 보고나니 너무 착잡해져서 차마 제제 눈도 못 쳐다보고 테이블만 보고 있었어요.

제제가 절 속이면서까지 저를 불러낸거니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한동안 아무런 말도 안 하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워서 이게 뭐지 싶었는데 제가 눈도 안 마주치니까 제제도 어떻게 얘기를 시작해야 할 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먼저 입을 뗐어요.

난 너랑 할 얘기 없어. 먼저 갈게. 하고는 그대로 제제 남겨두고 일어나서 가버렸어요.

사실 제제 얼굴 보자마자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요.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던 건, 욱이 나가고나서 바로 나가면 욱이랑 마주칠테니까 욱이가 갈 때까지 충분한 텀을 두고 나가려고 했던 거죠.

혼자 남겨두고 떠나는 건 저였는데, 그렇게 뒤돌아서면서 오히려 제가 상처받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제제는 지금 나한테 버려진 것처럼 느끼겠지 이런 생각드니까 제가 더 아픈 거 같고. 내가 상처줘놓고 내가 상처받았네요...

그 뒤로는 시도 때도 없이 제제 생각이 나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차라리 안 봤어야 했는데.... 한번 얼굴 보고 오니까 더 보고 싶고, 제제 학교로 몰래 가서 얼굴만이라도 보고 올까 뭐 이런 스토커적인 발상도 하고.... 미쳤었나봐요.

차마 버리지 못했던 사진들만 꺼내보는데 사진 속에선 저랑 제제랑 다 너무 행복해보이는 거에요. 우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싶기도 하고...

그때 군대를 간 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거 같아요.

그 정신으로 학교 다녔으면 개판으로 다녔을 게 뻔하죠...

그 뒤로 둘다 입대하면서 서로 보진 못 했지만 범이 통해서 간간히 소식을 들었어요.

범이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제제 얘기를 꺼내는 거에요.

제제 이름만 들어도 심란해져서 듣고 싶지 않더라고요.

범이한테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으니까 얘기 하지 말라고 하면 또 알았대요.

그래놓고 휴가 때 만나면 또 자연스럽게 제제 소식 전해주고 통화할 때도 자연스럽게 제제 얘기 하고 그래서 나중엔 저도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뒀네요... 은근히 끈질긴 친구에요...

무튼 그래서 범이 통해서 저도 제제가 지금 어떻게 지낸다던지.. 제대하고 나서 뭘 할 계획이라던지 이런 소소한 소식들을 전해 듣게 됐어요.

그래 그래 하면서 듣고는 있었지만 대체 범이 얘는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걸까 궁금하긴 했죠.

설마 우리가 잘 되기라도 바라는건가. 제제 연애 소식까지 빠짐없이 전해주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님 화해해서 예전처럼 잘 지내길 바래서 이러는건가.

궁금하긴 했지만 나한테 왜 이런 얘길 하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았고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냥 듣기만 했어요.

그러다 문득...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나한테 이렇게 제제 얘기를 하는 것처럼... 제제 만나서도 내 얘길 할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왠지 모르게 떨리더라고요...

제제는 내 이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제제가 학창시절 저를 혼자 짝사랑했던 것처럼 저도 제제를 짝사랑하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살았던 거 같아요.

제대 후 왜 연애 안 하냐는 주변의 타박에는 그냥 첫사랑을 못 잊어서. 라는 우스갯소리로 넘겼죠. 뭐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고...

못 잊어서.란 이유로 새롭게 누군갈 만난다던가 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와서.라는 게 제제한테로 향하는 제 발목을 붙잡았던거죠.

서로 상처도 많이 받았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으니.... 그 간극을 붙잡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제제가 나랑 같은 마음이었다 해도 망설였을텐데. 범이가 전해준 소식에 따르면 그후로 제제는 학교도 다니고 연애도 하면서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뒤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은 저와는 달리

제제는 군대가기 전에도 여자친구가 있었고 도중에 헤어지긴 했지만 제대하기 몇개월 전에도 여자친구를 사겼었어요.

제대하고 저는 바로 복학했지만 제제는 외국에 나가 있었는데 군복무 중 사귀던 친구랑은 헤어지고 외국에서 또 애인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나같은 건 잊고 잘 살고 있는 애 다시 불러내서 괴롭힐 수도 없잖아요.

저렇게 사랑받으면서 지낼 수 있는 애를 내가 너무 오랜 시간동안 상처만 줬다는 죄책감도 들었지만 앞으로도 그런 거 다 잊고 지금처럼 잘 지내기를 바랄 수밖엔 없었죠.

제 감정 같은 건 혼자 꾹꾹 담아뒀어야 했어요.

그러다가 범이랑 제제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전까진 범이가 제제 소식 전해주면 저는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식이었다면 그날은 둘다 술이 좀 된 상태에서 제제 얘기가 나와서였는지 제제랑 연락끊은 이후론 처음으로 제제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됐어요.

범이가 웃으면서 제제 안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저도 술을 안 마신 상태였으면 뭐라고 대답했을지 모르겠는데 그땐 저도 그냥 웃으면서 장난치듯이 보고싶지~ 했어요.

근데 범이가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더라고요. 진짜 안 보고 싶냐고.

그래서 저도 진지하게 진짜 보고 싶지. 라고 대답했어요.

범이가 그럼 담에 제제 한국 들어올 때 한번 만나라고 하길래 내가 만난다면 만나는 준대? 라고 물었더니 만나줄걸? 하더라고요.

좀 의외의 대답이라 잠깐 생각하다가, 제제가 내 얘기 한 적 있냐고 물었어요.

아니. 라고 하길래 약간 힘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이제와서 뭐 하러 만나.라고 했어요.

범이가 저한테 제제 잘 지내는 거 같아? 라고 물었는데 순간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나랑 제제랑 연락 안 하는 거 뻔히 알면서 제제 소식을 왜 나한테 묻는 건지... 그래서 제가 니가 잘 지낸다며. 라고 했더니

어떻게 지낸다고만 말해줬지 잘 지낸다는 말은 안 했는데? 하는 거에요.

그 얘길 듣고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잘 못 지내..? 라고 물으니까 응 이라고만 하더라고요.

더 자세히 듣고 싶었는데 뭐라고 물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범이가 넌 후회 안 되냐고 묻더라고요.

제제랑 안 보기로 한 거 후회 안 하냐고.

그래서 저는 안 보기로 한 게 후회되는 게 아니라, 안 볼 수밖에 없는 일을 내가 만들었다는 게 후회된다고 했어요.

범이가 그럼 너는 제제랑 안 보게 된 게 니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더라고요.

범이나 욱이한테 저희가 연락끊은 이유에 대해서 한번도 말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좀 망설이다가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잠시 말이 없더니 제제 이번 주에 한국 들어온다.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해주려는데

제제 사귀던 사람이랑 헤어졌대. 좀 됐어. 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저는 뭐지...? 왜 이런 말을 해주는 거지? 내가 제제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지금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생각해 봐. 라고 하길래 생각하긴 뭘 생각해 하면서 넘겼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오늘 한 얘기 제제한테 하지 말라고 했더니 단호하게 안해.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놓고서 이 이야길 제제한테 다 해줬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죠..

무튼 거기서 이야기는 끝났어요.

그뒤론 거기에 대해서 저도 범이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범이가 말한 제제가 한국 들어온다는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생각이 복잡해졌죠...

왠지 모르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 거 같은 예감이 드는 거에요.

이번에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평생 얘기 못 할 거 같은 예감.

그 예감에 겁먹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욱이한테 부탁했어요. 나 나온다는 말 하지 말고 제제 좀 불러달라고.

욱이가 이건 또 무슨 신종 지랄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해주긴 해주겠는데 한번만 더 이딴 수작부리면 둘이 같이 묶어서 바다에 던져 버린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제제 만나기로 한 날 저는 약간 병신같을 수도 있지만.. 제제가 좋아했던 스타일로 꾸미고 나갔어요.

뭘 기대하고서 그랬던 건 아니고요... 시각적인 것도 중요하잖아요.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건데 잘 보이고 싶고 뭐 그런 거죠.

욱이가 제제 만나고 있다는 곳으로 갔는데 제제 처음 보고 약간 놀랬어요.

저도 제제가 성인되고 나서 제대로 꾸민 모습은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 본 모습이... 뭐라 해야 될까...

양아치 같았어요.

표현을 이렇게밖에 못해서 죄송...

나쁜 뜻이 아니라 제제가 단정하거나 무난한 스타일은 별로 안 좋아해서

예쁘긴한데 어르신들은 별로 안 좋아하실 거 같은 그런 스타일이라서 저렇게밖에 표현이 안되네요.

머리색도 제 기준에선 연예인들이나 할 법한 색깔들을 하고 그러는데 저는 파격적인 염색은 잘 안 하기도 하고 염색한 걸 그때 처음 봐서 좀 놀랬던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안 그랬었거든요.

이상했다는 건 아니고.... 어 뭐라 해야하지 더 예뻐져서 놀랬어요..

저 온 거 보고 욱이가 자리를 비켜 줘서 둘만 남게 됐는데... 내 눈 앞에 제제가 있으니까 약간 감격스럽더라고요.

근데 동시에 왠지 위축도 되고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고 엄청 긴장됐어요.

제가 할 말을 고르느라 잠깐동안 침묵이 있었는데 제제가 저한테 이러더라고요.

내가 지금 여기서 나가면 너한테 복수하는건데. 그치?

하는데 뭔가 얻어맞은듯한 기분... 그제서야 지금 이 상황이 군대가기 전 제제가 욱이한테 부탁해서 저 만나게 해달랬던 상황이랑 묘하게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상황은 똑같은데 서로 입장만 바뀐거죠...

그때 생각하니까 제제가 왜 그때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도 막상 만나고나니 정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제가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던 게 생각나면서 순간 제제가 이대로 가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진짜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나가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술 따라주고...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한동안 말없이 술만 마셨어요.

술이 한잔 한잔 들어가면서 용기가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제가 입을 열 때까지 뭐 하는 거냐고 묻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기다려준 제제가 고마웠어요.

그래서 그냥 제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얘기들 다 했습니다.

후회했던 과거 일들을 다 말하진 못 했지만 제가 마음에 많이 남았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했던 거 같아요.

얘기하면서도 많이 떨렸어요...

시간 순서대로 말하다보니 마지막은 졸업 후 제제한테 키스하고 사과했던 그 이야기더라고요.

그때 착각이라고 했던 거 거짓말이었어. 그때 너한테 그랬던 그 순간이 내 진심이었어. 내가 널 좋아했었어. 라고 얘기했어요.

그 말을 해놓고서 제제가 그 자리에서 욕을 하든 그대로 일어나서 나가버리든 다 받아들이겠다는 심정으로 말없이 기다리는데

한참뒤에 살짝 웃더니 이제와서? 라고 하더라고요.

이제와서... 제 발목을 그토록 붙잡았던 단어였기에 허탈함보다는 저 역시 그런 말을 하는 제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 때 당시 같은 마음이었던 걸 알았던들 이제와서 아무 소용없다는 거 저도 잘 알았으니까요.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마음을 알았다고 해서 무작정 기뻐하기엔 이미 저희 둘다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던 거죠.

오히려 그 말을 들으니까 더 솔직해질 수 있겠더라고요.

다시 뭘 어떻게 해보자고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너무 오랜 시간동안 널 힘들게 했었던 게 너에게 또다른 나쁜 기억으로 남을까봐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했어요.

뭐든지 자기 잘못으로 돌리는 애라는 걸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 일 또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을까봐 말해주고 싶었어요.

니가 못나서 나한테 상처받은 게 아니라, 내가 못나서 좋아하고도 좋아한다 말 못 했었던 거라고. 넌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아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얘기했어요.

계속 술을 마시면서 얘기해서 횡설수설 했을 수도 있고 제제가 아무 말도 없었기 때문에 잘 듣고 있는 건지 다 알아들은 건지 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던 거 같아요.

제제가 들으면서 계속 자작해서 마시길래 처음엔 내버려두다가 지나치다 싶어 천천히 마시라고 제지했더니 상관말라더라고요.

내가 제제 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고 뭐라 할 자격이 못 되는 거 같아 그냥 뒀더니 나중엔 거의 인사불성이 되더라고요.

욱이한테 전화해서 제제 사는 곳 주소랑 비번을 물어봤어요.

저희가 다들 나와서 사는데, 본가 말고 나와서 사는 집 비번은 서로 다 공유를 하거든요.

그래서 택시타고 욱이가 알려준 곳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침대에까지 눕혀 놨어요.

그 옆에 앉아서 한숨 돌리고 자는 거 지켜보는데 옛날 생각나더라고요.

제제 불면증 때문에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던 날들이요.

그땐 제제가 잠 자는 거, 밥 먹는 거 보는 게 그렇게 좋았거든요. 둘다 제제가 잘 못 하는 거라서.

그게 내 방식대로 제제를 좋아한거였다는 걸 내가 몰랐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더라고요.

나오기 전에 책상 위에 메모지 같은 게 있길래 연락처를 남겨두고 나갔어요.

다음날 아침부터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면서 연락 기다렸는데 메모지를 보지 못한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연락이 없었어요.

제제한테 연락온 건 그로부터 2주 뒤였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요.
한번에 다 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네요...
이거 쓰는데 한참 걸렸어요...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추천수45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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